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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기 일을 잘하면 기쁘시게 합니다 (잠 18:8-9, 빌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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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일을 잘하면 기쁘시게 합니다 (잠 18:8-9, 빌 2:1-4)


월드컵이 한참입니다. 우리나라가 어젯밤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1:2로 패하여 아쉽게 되었지만 우리 태극전사들이 잘 싸워줘서 국민들을 즐겁게 하였습니다. 축구와 일 잘하는 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공을 빨리 패스하라는 것입니다. 볼을 항상 자기가 다 가지고 있지 말고 남에게 패스해 주어야 합니다. 축구장에 22명이 있고, 내 편도 10명이 있는데 나 혼자서 볼을 가지고 있을 일이 아닙니다. 일도 그렇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일을 나누어 줄 수 있어야 유능한 일꾼입니다. 업무분담은 일의 효율성에 중요한 이치입니다. 
  
일 잘하는 사람의 특징이 있답니다. 첫째는 포기가 빠르다고 합니다. 둘째는 결론을 빨리 내린답니다. 셋째는 가능성이 낮은 일에 도전한다고 합니다. 넷째는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을 만납니다. 다섯째는 장단점이 확실히 드러납니다. 여섯째는 실패를 쉽게 잊습니다. 

반면에 일 못하는 사람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결점을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좋은 사람이라고 불리며, 적이 없습니다. 셋째는 모든 일을 자기가 처리합니다. 넷째는 상사의 마음을 잘 읽지 못합니다. 다섯째는 재미를 찾아가며 일하지 못 합니다. 여섯째는 여자사원에게 인기가 없습니다. 일 잘하는 사람의 자격이나 내용을 보면 우리의 상식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윗사람의 마음을 잘 읽는 것이 일 잘하는 사람의 중요한 자질입니다. 일을 시키는 분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일을 잘 하는 조건입니다. 윗사람이 한 마디만 해도 열 가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일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야고보는 얼마나 일을 잘 하는 사람인지 보세요. 야고보서 4:15에는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이라고 합니다. “주의 종”이란 말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의 종인가를 바로 아는 것이 좋은 종입니다. 주의 종은 주께서 하라는 대로 하는 일꾼입니다. 주의 뜻대로 살기로 하고 죽기도 하고, 이것을 하기도 하고 저것을 하기도 하는 것이 좋은 종, 일 잘 하는 종의 자세입니다. 
  
우리의 일은 우리의 일이 아니라 주인의 일입니다. 위에 계시는 분의 뜻에 따라 일하는 일꾼이 일 잘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일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일 잘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칼릴 지브란은 그의 책 ‘예언자’에서 “일은 사랑이 가시화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일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일을 시키는 분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일에서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사람입니다. 
  
카를로 카레토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배와 노를 주시지만 대신 ‘노를 젓는 것은 너희들의 몫이다’라고 말씀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일을 주신 분의 뜻을 확실하게 아는 사람입니다. 배와 노를 주면 배와 노를 저을 수 있는 일을 알고 해야 하는 것이 일하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스스로 발견하고 하는 사람이 일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빌립보교회는 좋은 교회였습니다. 사랑이 많은 교회였고, 일을 잘하는 교회였습니다. 이런 교회에 바울은 편지를 보내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기 을을 잘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을 성경을 통하여 보고 우리 모두가 자기 일을 잘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먼저 자기 일을 잘 돌보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2:4 상반절에는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라고 합니다. 자기 일을 잘 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우선 자신의 일을 잘 해야 합니다. 자신의 일을 잘 하려면 자기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이 있어야 하고, 소명을 느껴야 합니다. 
  
‘세상에서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그 일을 나는 한다’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모든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 일을 등한히 하게 됩니다. ‘모두의 일은 누구의 일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고, 내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인 것을 알고 해야 일을 잘 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 일을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일을 맡겨놓으면 안심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한 가지 일을 맡기면 200-300% 성과를 얻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필요한 사람이고 이런 사람이 일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6:27에는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 치신 자니라”고 합니다. ‘무엇을 위해 일하느냐?’라는 물음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필요합니다. 자신의 일이 영생을 위한 일인가를 물어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영생을 위한 일로 만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일을 주의 일로 바꾸어야 좋은 일꾼입니다. 
  
토마스 카라일은 “만일 내 직업이 나를 영화롭게 할 수 없다면 내가 내 직업을 영화롭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까지 영화롭게 바꾸어 놓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는 ‘무익한 종의 비유’라고 이름붙인 비유가 있습니다. 어떤 종이 있었습니다. 종이 밭을 갈고, 양을 치고 들어오면 주인이 ‘함께 앉아 먹자’고 하지 않습니다. 종일 고생하고 들어온 종이지만 주인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다 먹을 때까지 수종들라고 명령할 것입니다. 이런 명령을 다 행한 후에도 그 종은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것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고 합니다. 이런 종이 일을 잘 하는 종입니다. 항상 겸손하게 자신의 일을 충성스럽게 하는 사람이 일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면 자기의 일도 못합니다. “사람은 모든 것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어떤 것(something)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잘 분별해야 일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잘 분별하는 사람이 일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필립스 브룩스는 “당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을 주라고 기도하지 말고, 당신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라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만 해도 다 하지 못하는 세월입니다. 
  
달란트비유에는 종들이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받았다고 합니다. 왜 종들에게 달란트를 다르게 주었을까요? 그 사람의 능력에 따라 달리 준 것입니다. 1달란트 받을 분량의 종에게 5달란트를 주면 자신에게 더 큰 화가 닥칩니다. 많은 것이 오히려 비극을 초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알지 못하고 1달란트 받은 종은 자신의 무능함을 주인에게 탓을 돌렸습니다. 또 많이 받은 다른 종들과의 비교의식 속에서 자신의 일을 포기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자신의 일을 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5:21에는 결론적인 말씀이 있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굉장한 일을 잘 하는 일꾼이 일을 잘 하는 일꾼이 아니라 작은 일에 충성하는 일꾼이 일을 잘 하는 일꾼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 잘하는 사람에게는 상급이 있습니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도전정신을 묵살하는 말이 아닙니다. 지나치게 과분한 일이나 자리는 오히려 자신에게와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보세요. 이른 아침에 와서 종일 햇볕 아래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자기 몫을 감당한 일꾼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과의 계약을 잊어버리고 주인의 마음과 뜻을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주인에게 끝내 불평한 일꾼은 아무리 많은 일을 했지만 좋은 일꾼이 아닙니다. 자기 일을 잘 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평은 가장 일을 못한 사람의 결과입니다. 
  
세상에는 일을 잘하는 사람과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11에는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라고 경고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말 잘하는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을 좀 못하는 사람을 원합니다. 말 잘하는 아론이 아니라 말을 못하는 모세를 세우신 것도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일하지 않는 자들은 일을 만드는 자들입니다. 잠언 18:9에는 “자기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고 합니다. 부지런히 지혜롭게 자신의 일을 잘 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다른 사람의 일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2:4 하반절입니다.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일은 자기 일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자기 일만 하는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남의 일만 하는 사람은 허영적인 사람입니다. 쉽게 말하면 허풍쟁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이기적인 사람도 허풍쟁이도 원하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5:14에는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 사랑, 자기 사랑 그리고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사랑보다도 우선적이어야 합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자기를 사랑해야 이웃 사랑도 가능합니다. 자기 일을 잘 해야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아 줄 수 자격이 생깁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일과 남의 일을 함께 해야 합니다. 
  
“돌보아”라는 말은 헬라어로 ‘스코푼테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주의 깊게 남을 관찰하며 흥미를 가지고 돌봐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깊은 뜻은 ‘목표 혹은 목적을 바라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을 돌보아 주는 것도 나의 삶의 목표, 목적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아 주는 것도 나의 일의 일부분인 것을 아십니까? 나의 일만 잘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도 잘 돌보아주어야 자기의 일을 잘 하는 것입니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최근에 방영된 것을 보면 강원도 원주의 빨간 민소매 셔츠를 입고, 빨간 반바지를 입고, 알록달록한 스타킹을 신고, 양손에 엿가위를 흔들며 호루라기를 불어대는 교통정리맨 손영민씨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복잡한 교통을 돕겠다고 나선 범상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텐데 돈을 받고 하는 것도 아니지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나서서 하는 것을 보면 참 가상합니다. 조금이라도 남을 돕겠다고 나선 사람이 우리 사회는 참 많습니다. 
  
오래 전에는 빨간 제복을 입고 트럼펫을 부는 어느 분이 소개된 적도 있습니다. 이 분은 장애를 가진 분인데 한 손을 잘 쓰지 못합니다. 그런데 밤중에 산에 올라가서 트럼펫을 연습하고 자신의 옷을 입고 벗는 것도 힘 드는 데 노인정에 가서 어르신들들 위로하고 다닙니다. 작은 일이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고 사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보람 있게 사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니지만 보람과 기쁨이 생깁니다. 이런 사람에게 유익이 있습니다. TV에 출연하지 않습니까?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하지 말고 좋은 일 하면 TV에 나와요. 
  
로마서 12:15에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합니다. 정말 이웃과 함께 하는 이런 마음의 자세가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아주게 합니다. 이런 마음이 있으면 돌봐주게 되고 자신도 기쁘고 하나님의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잭 하일스는 어떤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과 함께 일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과 친밀해지고 싶으면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을 잘 하고 남의 일을 잘 돌봐 주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일하면, 예수님과 함께 일하면 어떻게 됩니까? 병든 자를 만나면 다 고쳐주고 싶을 것입니다. 불쌍한 자를 만나면 다 돌봐주고 싶을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만나면 다 부요케 하고 싶을 것입니다. 죽어가는 자를 만나면 살려주고 싶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0:29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한 것처럼 우리의 삶도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빌립보서 2:3레는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겸손의 미덕을 가르칩니다. 마음의 원리가 어떤 것인지를 말합니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이 남을 돌봐주는 마음의 기본입니다. 내가 아래에 서줄 줄 아는 마음, 이런 마음의 자세가 다른 사람을 자신처럼 돌보게 합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과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예수쟁이들은 말은 잘 한다고도 합니다. 말을 잘 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차라리 말을 못하면 괜찮은데 말을 잘해서 탈입니다. 회의가 길고 많은 회사는 망합니다. 회사만 그렇겠습니까? 교회나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의가 많고, 말이 많으면 안 됩니다. 말은 좀 못해도 일을 잘해야 합니다. 
  
후나이 유키오는 그의 책 ‘셀프 매니지먼트’에서 하루 행동의 테마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첫째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둘째는 일과 관련된 것으로 정한다. 셋째는 성과를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테마는 이런 것과는 차별성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덕을 끼쳐야 합니다. 

  
결론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일을 잘 하려면 계획성이 있어야 합니다. 휴식을 취해가며 일해야 합니다. 머리가 좋아야 합니다. 최근에는 스트레스 관리나 스트레스 회복이 현대의 유행어처럼 되었습니다. ‘일중독’이란 심각한 중독의 하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을 잘하는 사람은 일중독이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일과 남의 일을 조화시킬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남의 일을 자기의 일로 아는 사람입니다. 
  
인디라 간디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일을 하는 사람과 명성이 필요한 사람이다. 첫 그룹에 속하도록 노력하라. 그곳에서 하는 투쟁이 덜 사악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일을 하되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명성은 일을 잘 하면 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일을 잘 하여 나에게 보람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귀한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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