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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인으로 사는 길 (갈 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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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으로 사는 길 (갈 3:1-11)

하나님 말씀이 보여준 진리

어떤 분이 성경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①처음으로 성경을 읽다가 깨달은 바 있어, 먼저 신앙생활을 하던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성경이 사실이라면, 우리 모두는 죄인이야!" 아내는 옳다고 긍정했습니다. 
②그는 계속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내에게 말합니다.  "여보, 성경이 사실이라면, 우리 모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야."  아내는 맞다고 말하면서 남편의 눈이 열리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③남편은 더 계속 성경을 읽더니, 더 크고 새로운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여보, 성경이 사실이라면, 우리 모두는 예수님 안에서 살길이 있어!" 

그렇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이 발견한 대로 영적 사실과 사람이 정말 제대로 사는 길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의 죄, 죽을 수밖에 없는 죄 때문에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3일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살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내가 살아났으니 너희도 살리라." (요 11:25-26, 개정)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은혜(sola gratia) 

죄인이 의인으로 사는 길, 첫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 때문에 죽습니다. 롬 6:23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 라고 말씀하며  엡 2:1도 ‘죄와 허물로 죽었다’고 했고, 롬 3:23은 ‘모든 사람이 죄 속에 있기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낼 수 있을까?”라고 탄식을 했습니다(롬 7:24)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자기 머리채를 잡고 스스로 잡아당긴다고 빠져 들어가는 늪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죽음을 면하는 유일한 길은  누군가 밖에서 꺼내줘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집 나간 탕자를 마중하러 매일 동구 밖까지 아버지는 나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 주시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제 1차 세계대전 때의 일이랍니다. 영국 군함이 폭격으로 파선되자, 물에 뛰어든 병사 한 명이, 간신히 널빤지 하나를 붙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자기처럼, 수영을 잘하지 못하는 병사가,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널빤지를 그 동료에게 붙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널빤지가 너무 작아, 두 병사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 채, 자꾸만 가라앉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동료에게 널빤지를 내어주며 말했습니다. "아무쪼록 살아서 돌아가시오." 
동료 병사는 극구 사양했습니다. "아니오. 나는 예수 믿고, 구원 얻은 사람이니, 천국 가겠지만, 당신은 아직 믿지 않는 것 같으니, 부디 살아서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서 만납시다." 

그는 잡고 있는 널빤지를 놓고, 물에 가라앉았습니다. 동료는 널빤지를 붙들고 나와, 살게 되었습니다. 살아난 병사는 이 사건으로 은혜가 무엇인지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시려고 아무 값없이 예수님을 내어 주셨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그리고 수영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을 지불할 힘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필요합니다.  살아난 병사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독실한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받은 바 은혜를 전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살리시려 십자가에 죽으신 사실을 알리고 다녔습니다.  

그렇습니다.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자기 죄로 자기가 죽습니다.  남까지 구원할 힘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서는 자꾸,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묻고 있고,  그 예수님에 대한 고백을 들으려고 합니다.  사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독선적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타 종교는 사람이 구원을 이루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늪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데, 자기가 자기 머리카락을 잡고 건져내려는 것과 같습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니 둘 다 구덩이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마 15:14). 

성철 스님의 涅槃頌(열반- 입적, 죽음) 

生平欺狂男女群(생평기광남녀군-속일기)하니, 彌天罪業過須彌(미천죄업과수미)라. 活陷阿鼻恨萬端(활함아비한만단-빠질함,언덕아,)이여, 一輪吐紅掛碧山(일륜토홍괘벽산,)이로다. 

"일생 동안에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미치게 했으니, 그 죄업이 하늘에 미쳐,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불의 아비지옥에 떨어지니, 그 한이 만 갈래나 된다. 한 둥근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이를 선문답이라고 합니다. 알송달송- 알 듯 모를 듯하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다.  성철 스님을 좇아 다니는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매한 중생을 깨우쳐 주려면 확실하고 명확하게 알아 듣게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자기가 누구인지 아주 명확히 밝히셨습니다.  또한 성경은 곳곳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과 근본 본체시라고 했습니다.  (빌 2:6-8, 개정)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려고 하늘에서 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이것이 갈3:1에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인다”고 했습니다.  또한 고전 2:1-2에 오직 예수님과 십자가 만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의인으로 사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아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세상은 자꾸 자기 힘으로 구원을 이루려고 합니다.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거짓교사가 들어왔습니다.(갈2:4) 그리고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전적 은혜를 전하지 않고 다른 복음을 전합니다.(갈1:7)  
거짓교사들이 전하는 다른복음은 유대주의입니다.  율법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행위 구원은 동서양을 막논하고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주장입니다.  죄를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공적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행위에 있어서 완전한 사람이 있을까요?  
본문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갈 3:10, 개정)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마틴 루터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어느 날 친구와 함께 있는 루터 옆에 벼락이 떨어졌습니다. 둘은 떨어져 나갔습니다. 깨어나 보니 자기는 살고 친구는 죽었습니다.  이 사건은 죽고 사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했습니다.  하필 친구는 죽고 자기는 왜 살았습니까? 루터는 학업을 중단하고  수도사가 되기로 작정합니다. 
그리고 루터는 카톨릭 교리와 교훈을 따라, 고행과 선행에 힘습니다.  그러나 도무지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구원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로마에 가면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서 올라간 계단을 예루살렘에서 옮겨온 것이 있답니다.  순례자들은 이 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면서 고행을 합니다.  이를 통해 속죄하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루터도 그렇게 무릎으로 계단을 수없이 올라갔습니다. 미션이라는 카롤릭 영화를 보면 자신의 죄를 갚기 위해 몸에 무거운 물건을 잔뜩 메고 지고 절벽을 오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금도 카톨릭은 고해성사를 하고 그 죄에 대한 속죄로 정해준 봉사를 합니다. 

유대교는 죄를 없애기 위해서 매번 동물을 잡아 희생 번제를 드렸습니다.  타 종교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한 죄를 없애려는 노력이 다 헛것이라는 것입니다.  한다고 해도 임시방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찾아 오신 것이고, 우리를 위하여 단 번에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히 10:11-12, 개정)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라고하시면서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히 10:10, 개정)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로마서는 십자가 복음을 이렇게 다시 요약합니다.  

(롬 10:9-10, 개정)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것이 바로 구약 합 2:4, 롬 1:17, 본문 3:11에 성경 전체를 흐르며 관통하고 있는 의인으로 사는 길입니다.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던 루터는 자기 몸에게 수없이 자행해도 죄가 없어지지 않는 것으로 고민하다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리라는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무릎으로 올라가던 계단에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참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 계단을 돌아서서 무플이 아닌 발로 평안히 내려왔습니다. 
같은 구절에서 존 웨슬리 목사님도 마음이 뜨거워 짐을 경험하며 평안함을 경험했습니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의인으로 사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기에  값없이  하늘에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고,  또한 나의 죄 값을 다 십자가에서  용서해 주신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단지 믿음으로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몫은 바로 이것입니다.    복음이 기쁜 소식인 것은  이 하나님께서 내신 구원만이  박사나  어린아이나,  병자나 건강한 사람이나,  아프리카 사람이나,  북한 사람이나 우리도 모두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됩니다. 
행위에서 구원이 난다고 하면 그 구원은 제약이 따릅니다. 그렇다면 기쁜 소식이 아닙니다.  행할 수 없는 조건은 또 다른 올가미가 될 뿐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고백하기를 ‘나의 나된 것은 주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전15:10)’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도 이런 고백 속에 참으로 복된 삶으로 승리하기를 축복합니다. 

(서연교회 이명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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