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맥추감사절]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출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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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출 19:1-6)
오늘은 2010년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출23:19절에 보면,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40년 광야시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이 내려주는 ‘만나’로 생활했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40년 만에 처음으로 땅에서 나는 열매를 맛보게 됩니다.
얼마나 황홀하겠습니까?
얼마나 감격스럽겠습니까?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땅에서 거둔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볼 때 일상적이고, 평범하고, 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잖아요?
작년에 그랬듯이 올해도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이 평범하고,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을 새롭게 보고, ‘이게 큰 축복이구나.’ 라고 감사하도록 하는 것이 맥추감사절의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월급을 특별하다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은 오늘 살아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아 웃으며 식사하는 것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하루 세 끼 먹는 것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건강하여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한국 땅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들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맥추감사절 정신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그 평범한 것, 일상적인 것, 사소한 것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절망을 이기지못하고 죽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지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살아남는 사람은 하나같이 감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토록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무엇을 감사할 수 있을까요?
그들의 감사 제목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쪼개진 판자 사이에 햇볕이 들어와 그 빛을 받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또 하루의 생명을 연장해 주셔서 아침을 맞이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가진 것에 진정으로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몸에 병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있음을 진정으로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겠다고 제의하신 내용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시내산 계약’이라고 말합니다.
그 내용을 2010년 맥추감사절에 우리교회에 주신 말씀으로 받습니다.
1.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라.
출19:4절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은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특히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다.’라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독수리는 하늘 나는 새들 중의 제왕입니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크신 위엄과 능력으로 애굽인들을 제압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는 의미이지요.
또한 그 표현은 마치 독수리가 새끼들을 자신의 등에 업고 가장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가장 안전하게 보호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 앞에 홍해도, 목마름도, 배고픔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보호 앞에 애굽 군사들의 추격도, 아멜렉의 공격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네 본래 모습이 어떠했는지, 네가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 네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네가 얼마나 비참한 자리에 있었는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너를 일으켜 세우시고 거기서 끌어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얼마나 비참했고 부끄러운 존재였는지를 기억하고, 그러한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는 것이 감사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교만해지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기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과거 어떤 존재였는지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업고 여기까지 오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일을 만나면 두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담대히 나갈 수 있습니다.
과거를 뒤돌아보면,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베푸신 은혜가 망극합니다.
60년 전에 우리는 6.25전쟁으로 인명손실은 물론이거니와 전 강토가 폐허가 되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잿더미였습니다.
시인 모윤숙은 6.25전쟁 중에 산골짝에서 죽어 쓰러져 있는 한 국군의 시신을 보며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시를 썼습니다.
그 일부분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 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나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로 있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 지어 /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나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어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저 가볍게 나는 봄 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나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다오.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잔다........
누구에게도 이 시가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 형님의 일인 것 같고, 우리 아버지의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렵게 살아왔습니다.
이어령 박사가 지적한 대로 우리처럼 다양한 나물을 먹는 민족은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나물이 들어있는 말을 검색해보면 250여 가지나 됩니다.
아무튼 참기름만 두세 방울 떨어뜨리면 모든 풀을 나물로 무쳐 먹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나물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잡초를 다 먹는 민족이라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 민족이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나물을 먹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의 후예이기 때문입니까?
오래전부터 성인병을 예방하는 지혜가 있어서 입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먹거리가 부족해서 온갖 종류의 풀을 뜯어먹었던 것입니다.
그 나물에는 5,000년의 긴 역사동안 겪은 고난의 경험이 서려있습니다.
그래서 ‘한민족의 DNA에는 고난을 이기는 유전자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931 차례의 외침을 받고도 생존한 유일한 민족입니다.
지리적 특성을 고려해 보면, 사실 우리민족의 생존 자체가 놀라울 뿐입니다.
말하자면 중국 옆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국토의 크기로 보나, 인구로 보나, 중국이라는 큰 용광로 옆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한마디로 기적입니다.
역사상 중국 한족에게 걸려들어 녹아 들어가지 않은 민족과 문화는 없습니다.
정복자였던 몽고족이나 기세등등했던 만주족마저도 모두 한족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문화, 역사와 언어를 상실해버렸습니다.
그런 나라가 전후 60년 만에 달라졌습니다.
도이치 뱅크는 2030년쯤,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독일을 추월할 것이라고 예측한 적이 있고, 골드만 삭스는 우리나라 일인당 국민소득이 2030년에 52,000불, 2050년에 81,000불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프랑스의 자크 아탈리는 ‘미래의 물결’에서 대한민국은 미래를 이끄는 세계 11개의 강국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2030년 즈음이면 아시아 최대의 경제대국이 되어 다른 나라들이 우리를 벤치마킹할 것이며, 심지어 일본까지도 우리를 롤 모델로 삼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사실 벌써부터 일본은 한국의 대기업들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1961년, 1인당 국민소득 82달러로 세계 최하위 중 하나였던 나라가 불과 몇 십 년 만에 대단한 반전을 이뤄낸 것입니다.
지난해에는 2차 대전 후,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입장이 변화된 유일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맥추 감사절에 과거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시다.
그리고 진심으로 “하나님, 감사해요!”라고 고백합시다.
이 감사를 회복시키는 것이 맥추감사절의 뜻입니다.
감사절 찬양-응답하신 기도 감사
2. 부르신 뜻을 깨닫고 사명을 완수하라.
출19;6절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 지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은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고자하심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의 중재자입니다.
죄인인 인간은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용서를 빕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들에게 구원을 선포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제사장들입니다.
벧전 2:9절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앞에 거리낌 없이 언제나 어디서든지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히4:16절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또한 우리에게는 이 땅에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할 책임이 있습니다.
벧전2:9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축복을 받았다는 것은 사명이 있다는 뜻입니다.
재물의 축복을 받았습니까?
그것은 재물에 대한 사명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달란트의 축복을 받았습니까?
내가 가진 달란트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지에 대한 사명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지위의 축복을 받았습니까?
높아진 지위로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릴 사명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축복에 사명이 동반되지 않으면 그 축복은 저주가 되고 맙니다.
재물의 축복을 받고서 그 사명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재물은 저주일 뿐입니다.
지위가 높아졌는데도 그 사명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지위는 저주일 뿐입니다.
풍부한 재능을 가졌는데도 그 사명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재능은 저주일 뿐입니다.
이태리 말에 ‘패카토 모르탈레’란 말이 있습니다.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저 세상에서도 용서 받지 못할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온 얘기는 아니지만 생각해볼 만한 내용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패카토 모르탈레’에 해당하는 죄의 첫째는, 기업을 경영하거나 장사하는 사람이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죄입니다.
기업경영에나 상업에는 이익을 올려야 세금을 내고, 사원들의 월급을 지급하고, 자신의 가정도 꾸려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익을 내지 못하게 되면 자기 자신은 물론이려니와 사회와 국가에 큰 부담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용서 받지 못할 죄라는 것입니다.
‘패카토 모르탈레’의 두 번째는, 공무원이 세금을 낭비하는 죄입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국가가 운영됩니다.
공무원은 이 세금을 쓰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 공무원들이 불성실하여 세금을 낭비하게 되면 이는 ‘패카토 모르탈레’,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짖게 되는 것입니다.
‘패카토 모르탈레’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재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썩히거나 낭비하는 죄입니다. 유명한 박용하 탈런트가 자살을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겨울연가’란 드라마가 히트를 치게 되면서 한류(韓流) 스타가 된 탈런트입니다.
어떤 사정으로 자살했는지 모르지만 설령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달란트를 사용치 못하고 스스로 포기한 그 자체가 패카토 모르탈레,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음을 알아야 합니다.
‘헌신된 그리스도인’이란 말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우들이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망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헌신된 그리스도인이란 자기 직업을 그만두고, 교회 일만 하는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헌신된 그리스도인이란 선교, 전도를 본업으로 삼고, 직업을 부업으로 삼는 사람을 말합니다.
헌신된 그리스도인이란 삶의 목적은 선교, 전도이고, 직업은 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사람을 말합니다.
여러분, 이상하게 들리지요?
그렇게 살다가는 금방 죽을 것 같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되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고, 공급하시는 은혜를 맛보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축원합니다.
오늘은 맥추 감사주일입니다.
저는 본문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1)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라.
2) 부르신 뜻을 깨닫고 사명을 완수하라. 아멘
오늘은 2010년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출23:19절에 보면,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40년 광야시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이 내려주는 ‘만나’로 생활했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40년 만에 처음으로 땅에서 나는 열매를 맛보게 됩니다.
얼마나 황홀하겠습니까?
얼마나 감격스럽겠습니까?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땅에서 거둔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볼 때 일상적이고, 평범하고, 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잖아요?
작년에 그랬듯이 올해도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이 평범하고,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을 새롭게 보고, ‘이게 큰 축복이구나.’ 라고 감사하도록 하는 것이 맥추감사절의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월급을 특별하다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은 오늘 살아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아 웃으며 식사하는 것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하루 세 끼 먹는 것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건강하여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한국 땅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들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맥추감사절 정신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그 평범한 것, 일상적인 것, 사소한 것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절망을 이기지못하고 죽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지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살아남는 사람은 하나같이 감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토록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무엇을 감사할 수 있을까요?
그들의 감사 제목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쪼개진 판자 사이에 햇볕이 들어와 그 빛을 받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또 하루의 생명을 연장해 주셔서 아침을 맞이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가진 것에 진정으로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몸에 병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있음을 진정으로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겠다고 제의하신 내용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시내산 계약’이라고 말합니다.
그 내용을 2010년 맥추감사절에 우리교회에 주신 말씀으로 받습니다.
1.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라.
출19:4절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은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특히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다.’라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독수리는 하늘 나는 새들 중의 제왕입니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크신 위엄과 능력으로 애굽인들을 제압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는 의미이지요.
또한 그 표현은 마치 독수리가 새끼들을 자신의 등에 업고 가장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가장 안전하게 보호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 앞에 홍해도, 목마름도, 배고픔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보호 앞에 애굽 군사들의 추격도, 아멜렉의 공격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네 본래 모습이 어떠했는지, 네가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 네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네가 얼마나 비참한 자리에 있었는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너를 일으켜 세우시고 거기서 끌어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얼마나 비참했고 부끄러운 존재였는지를 기억하고, 그러한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는 것이 감사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교만해지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기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과거 어떤 존재였는지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업고 여기까지 오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일을 만나면 두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담대히 나갈 수 있습니다.
과거를 뒤돌아보면,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베푸신 은혜가 망극합니다.
60년 전에 우리는 6.25전쟁으로 인명손실은 물론이거니와 전 강토가 폐허가 되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잿더미였습니다.
시인 모윤숙은 6.25전쟁 중에 산골짝에서 죽어 쓰러져 있는 한 국군의 시신을 보며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시를 썼습니다.
그 일부분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 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나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로 있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 지어 /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나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어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저 가볍게 나는 봄 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나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다오.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잔다........
누구에게도 이 시가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 형님의 일인 것 같고, 우리 아버지의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렵게 살아왔습니다.
이어령 박사가 지적한 대로 우리처럼 다양한 나물을 먹는 민족은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나물이 들어있는 말을 검색해보면 250여 가지나 됩니다.
아무튼 참기름만 두세 방울 떨어뜨리면 모든 풀을 나물로 무쳐 먹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나물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잡초를 다 먹는 민족이라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 민족이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나물을 먹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의 후예이기 때문입니까?
오래전부터 성인병을 예방하는 지혜가 있어서 입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먹거리가 부족해서 온갖 종류의 풀을 뜯어먹었던 것입니다.
그 나물에는 5,000년의 긴 역사동안 겪은 고난의 경험이 서려있습니다.
그래서 ‘한민족의 DNA에는 고난을 이기는 유전자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931 차례의 외침을 받고도 생존한 유일한 민족입니다.
지리적 특성을 고려해 보면, 사실 우리민족의 생존 자체가 놀라울 뿐입니다.
말하자면 중국 옆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국토의 크기로 보나, 인구로 보나, 중국이라는 큰 용광로 옆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한마디로 기적입니다.
역사상 중국 한족에게 걸려들어 녹아 들어가지 않은 민족과 문화는 없습니다.
정복자였던 몽고족이나 기세등등했던 만주족마저도 모두 한족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문화, 역사와 언어를 상실해버렸습니다.
그런 나라가 전후 60년 만에 달라졌습니다.
도이치 뱅크는 2030년쯤,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독일을 추월할 것이라고 예측한 적이 있고, 골드만 삭스는 우리나라 일인당 국민소득이 2030년에 52,000불, 2050년에 81,000불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프랑스의 자크 아탈리는 ‘미래의 물결’에서 대한민국은 미래를 이끄는 세계 11개의 강국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2030년 즈음이면 아시아 최대의 경제대국이 되어 다른 나라들이 우리를 벤치마킹할 것이며, 심지어 일본까지도 우리를 롤 모델로 삼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사실 벌써부터 일본은 한국의 대기업들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1961년, 1인당 국민소득 82달러로 세계 최하위 중 하나였던 나라가 불과 몇 십 년 만에 대단한 반전을 이뤄낸 것입니다.
지난해에는 2차 대전 후,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입장이 변화된 유일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맥추 감사절에 과거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시다.
그리고 진심으로 “하나님, 감사해요!”라고 고백합시다.
이 감사를 회복시키는 것이 맥추감사절의 뜻입니다.
감사절 찬양-응답하신 기도 감사
2. 부르신 뜻을 깨닫고 사명을 완수하라.
출19;6절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 지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은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고자하심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의 중재자입니다.
죄인인 인간은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용서를 빕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들에게 구원을 선포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제사장들입니다.
벧전 2:9절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앞에 거리낌 없이 언제나 어디서든지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히4:16절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또한 우리에게는 이 땅에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할 책임이 있습니다.
벧전2:9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축복을 받았다는 것은 사명이 있다는 뜻입니다.
재물의 축복을 받았습니까?
그것은 재물에 대한 사명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달란트의 축복을 받았습니까?
내가 가진 달란트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지에 대한 사명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지위의 축복을 받았습니까?
높아진 지위로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릴 사명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축복에 사명이 동반되지 않으면 그 축복은 저주가 되고 맙니다.
재물의 축복을 받고서 그 사명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재물은 저주일 뿐입니다.
지위가 높아졌는데도 그 사명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지위는 저주일 뿐입니다.
풍부한 재능을 가졌는데도 그 사명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재능은 저주일 뿐입니다.
이태리 말에 ‘패카토 모르탈레’란 말이 있습니다.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저 세상에서도 용서 받지 못할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온 얘기는 아니지만 생각해볼 만한 내용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패카토 모르탈레’에 해당하는 죄의 첫째는, 기업을 경영하거나 장사하는 사람이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죄입니다.
기업경영에나 상업에는 이익을 올려야 세금을 내고, 사원들의 월급을 지급하고, 자신의 가정도 꾸려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익을 내지 못하게 되면 자기 자신은 물론이려니와 사회와 국가에 큰 부담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용서 받지 못할 죄라는 것입니다.
‘패카토 모르탈레’의 두 번째는, 공무원이 세금을 낭비하는 죄입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국가가 운영됩니다.
공무원은 이 세금을 쓰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 공무원들이 불성실하여 세금을 낭비하게 되면 이는 ‘패카토 모르탈레’,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짖게 되는 것입니다.
‘패카토 모르탈레’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재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썩히거나 낭비하는 죄입니다. 유명한 박용하 탈런트가 자살을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겨울연가’란 드라마가 히트를 치게 되면서 한류(韓流) 스타가 된 탈런트입니다.
어떤 사정으로 자살했는지 모르지만 설령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달란트를 사용치 못하고 스스로 포기한 그 자체가 패카토 모르탈레,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음을 알아야 합니다.
‘헌신된 그리스도인’이란 말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우들이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망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헌신된 그리스도인이란 자기 직업을 그만두고, 교회 일만 하는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헌신된 그리스도인이란 선교, 전도를 본업으로 삼고, 직업을 부업으로 삼는 사람을 말합니다.
헌신된 그리스도인이란 삶의 목적은 선교, 전도이고, 직업은 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사람을 말합니다.
여러분, 이상하게 들리지요?
그렇게 살다가는 금방 죽을 것 같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되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고, 공급하시는 은혜를 맛보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축원합니다.
오늘은 맥추 감사주일입니다.
저는 본문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1)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라.
2) 부르신 뜻을 깨닫고 사명을 완수하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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