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두려워하지 말라 (사 43:1-7)

  • 잡초 잡초
  • 234
  • 0

첨부 1


두려워하지 말라 (사 43:1-7)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펄벅(Pearl S. Buck)의 어머니 캐롤라인은 청교도적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중국의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해 심한 가뭄으로 중국인들이 농사 때문에 큰 걱정을 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다른 지방으로 전도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집안에는 세 자녀와 중국인 가정부만 있었습니다. 가뭄이 계속되던 어느 날 캐롤라인이 창가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그 동네 중국인 남자 둘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고 가뭄이 계속되는 원인은 서양인사람들이 이 지방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이야. 


그러니 오늘밤 우리들이 선교사 가족을 죽여 우리의 신에게 바치도록 하자...." 이 말을 들은 캐롤라인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녀는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캐롤라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을 확신하며 새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녁이 되었을 때 캐롤라인은 평소보다 일찍 아이들을 재우고 자신은 창가에 앉아 바느질을 계속하면서 바깥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자정쯤 되었을 때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캐롤라인은 가정부를 시켜 차와 케잌을 준비하게 하고 무슨 큰 손님이 오는 것처럼 문을 활짝 열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워 좋은 옷을 입혀 노래하면서 놀게 했습니다. 마침내 몇 명의 중국인들이 마당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마음을 진정하고 목소리를 낮추어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들어오셔서 차와 다과를 나눕시다. 


" 친절한 캐롤라인 때문에 그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다과를 함께 나누던 중국인들은 이것저것 물건을 만지작거렸습니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캐롤라인은 피아노를 치면서 중국말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비할 데 없는 존귀한 이름의 우리 주여" 이 찬송이 끝날 때쯤 방안은 조용했습니다. 그들이 찬양 중에 하나, 둘 집에서 나갔기 때문입니다. 온 집안에는 긴장이 사라지고 주님의 평안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펄벅의 어머니 캐롤라인이 이렇게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론> 

본문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지 여러 해가 지나 해방의 가능성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온 이스라엘 민족이 깊은 실망과 좌절에 빠져 아무런 희망도 갖지 못했던 절망의 시기였습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도 이와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계속되는 구조조정과 이로 인한 실업자들의 아우성 그리고 해외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안정을 찾지 못하는 증권시장과 세계화로 인해 선진국 경제의 영향을 받아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우리 경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1절 해석> 
1절-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위안이 되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연인끼리, 특히 여자편에서 여러 가지 경우의 어려움을 당하여 두려워 떨 때, 남자가 “너는 내 꺼야! 내가 책임진다!” 한다면, 이 한 마디가 얼마나 여자에게 힘이 되겠습니까? 

사람도 이렇게 위안이 되는데 하물며 하나님입니까? 그런데 이 말씀은 굳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너는 내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담긴 위로의 메시지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창조 또는 조성하셨다는 사상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두려워하지 말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창조자이시면 그들은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본래 없던 존재인데 이제 그들을 있게 하신 이가 그들의 하나님이신 까닭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도우실 때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아버지가 힘이 많으시고 능력이 많으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으로 믿는다면 그 자식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인간은 조성하시고 역사를 만들어가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교육과 고난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훈련시키시므로 자신이 세상의 창조주이시고 설립자이심을 알게 하십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듯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보살피시고 보급해 주십니다. 


(1절)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 너를 조성하신 자”, (7절)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라고 합니다. 아무리 진화론이 세상을 덮는 것 같아도 이 진리만큼 확실한 진리는 없습니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이 성경처럼 단정적인 과학적 증거는 없습니다. 

'구속'은 히브리어로 '가알'이며 이 말은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고서라도 하나님 백성은 구원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1절)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라고 합니다. (3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4절)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합니다. 물건을 돈을 지불하고 사면 그 순간부터 산 사람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지불하고 우릴 사 주셨기 때문에 우린 하나님의 것입니다. 

지명하여 불렀다는 것은 
①하나님께서 그들을 잘 아신다는 것이고 
②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이며 
③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증거하기에 합당한 자로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너는 내 것이라'고 하셨으니 주님께서는 그들을 소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므로 어떤 환경에서라도 빼앗기시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밖에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넌 것처럼 구원하셨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풀무불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세상에서 홍수나 불과 같은 재앙을 만나도 거기서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시 46:1 - 3).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환난을 당할 때에 그의 친구 멜랑톤을 찾아 이 시를 같이 읽고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우리 가운데 환난이 계속 찾아오는 이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 분에게 간절히 구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1절), 

이것은 선택적 사랑을 말합니다. 성막을 지을 때 이같이 브살렐을 지명하셨고(출 31:2), 모세를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출 33:12 - 17).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은 증거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지명하시어 부름을 받은 은혜 받은 존재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아주 분명히 선언합니다.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권리를 부여하기 위해 부른 것은 그 아름다움 것을 선전하라고 그랬다고 말씀합니다. 어두운 데서 불러내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죽음 상태에서 생명과 구원의 세계로 인도하셨으니 마땅히 주님의 것입니다. 

'너는 내것이라'는 말씀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끼시고 보호하시고 지키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무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신자가 자기의 신앙과 삶을 자신이 책임지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린 단지 하나님이 하신 일속에서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찬송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하나님은 일을 하시다가 포기하시거나 그만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자를 책임지시겠다고 하셨으면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때문에 신앙생활은 하나님에 하게 하시는 것이지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소유가 됐다는 것은 정말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나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기에 자신을 위하여 지켜주십니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보호하시고 먹이시길 원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17:8)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라고 했던 시편기자의 고백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기에 영원히 지키십니다. (시121: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 

1980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인도의 테레사 수녀가 어느 날 영국의 방송기자들과 만나서 기자회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자가 묻습니다. “당신은 평생을 길거리 노숙자와 함께 했으며, 죽어가는 사람들 곁에서 그들의 임종을 지켰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테레사 수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버림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주는 것입니다. 단 몇 시간만이라도 자신을 사랑하고 보살펴주는 이웃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일입니다.” 

참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말입니다. 버림받지 않다는 것, 나는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살아있는 단 몇 시간만이라도, 죽기 전에 단 몇 시간만이라도 사랑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살릴 능력도 없고 도와줄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베풀 수는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사랑이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을 알고 사랑을 깨닫고 사랑을 베풀고 그 사랑 안에서 만족하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사람의 사랑은 일순간, 여러번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사랑은? 계속적이며, 지속적, 영원하십니다. 
<2절 해석> 
2절-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치도 못하리니 

(2절) 이 말씀 가운데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넌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 나가면서 만나는 그 어떤 장애물도 두려워 할 것이 없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홍해와 같은 무서운 바다도 둘로 가르시어 육지처럼 건너게 해 주시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 앞을 가로막고 있는 그 무엇이라도 다 치워주시고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하십니다. 

또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는 말씀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풀무불에서 구원받은 사실을 생각나게 하는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우리를 물 가운데에서든지 불 가운데에서든지 건져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단지 우리의 육신의 안일을 돌보아 주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 당하는 그 어떤 시험과 재앙도 믿음으로 이기게 하신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시46:1∼3)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그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함으로서 물과 불을 피해가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물과 불 속에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물과 불을 우리 힘으로 벗어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 힘으로 애써보다가 힘이 부족하면 기도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고 물과 불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물 불을 통과했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우리의 힘이 전혀 아니다는 것을 알아라는 것입니다. 
 
3절-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심지어 다른 열방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신다고 하는 이 말씀은 택한 자를 위한 특별하신 사랑과 역사의 흐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보여준다. 한편 본문의 역사적 배경은 바사 왕 고레스의 애굽, 구스 및 스바 정복 계획과 연관되는 것 같다. 하나님은 고레스에게 이 열방들을 공략하도록 허락하는 대신 유대인의 귀환과 예루살렘 재건을 돕도록 역사하신 것이다. 

실제로 고레스가 애굽을 침공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아들 캄비세스 2세와 다리오 1세는 애굽 정복을 위한 발판으로 팔레스틴을 이용했다(J. Watts). 

4절-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여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4절)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그냥 사랑하실 뿐 아니라 존귀하게까지 여겨 주신 답니다. 그러기에 희생의 자리에는 다른 사람을 대신 쓰시겠다고 하십니다. 수많은 사람 중에 여러분을 뽑아주신 것은 이토록 특별한 대우를 해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권세도 있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라도 누가 떡을 달라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겠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십니다. 그 사랑을 의심하지 말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 사랑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4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배이며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3절), 이스라엘을 위해서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포기하셨습니다(3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는 어떤 희생의 댓가라도 내시기를 원하시니 하나님의 백성 된 자는 하나님밖에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명하여 불렀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4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보배롭고 존귀하기 때문에 그 어떤 악한 세력에게서든지 건져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셨기 때문입니다.(신 9:5)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 "(시135:4) 이처럼 하나님은 그의 택하신 백성들을 언제나 사랑하시고 도와주십니다. 

미국의 유명한 시인이었던 롱펠로우가 갑자기 떠오른 시상을 적을 곳이 없어서 옆에 있는 휴지에 그 시를 적었습니다. 이후에 아무 가치도 없었던 그 휴지는 6,000달러에 팔렸습니다. 피카소라는 위대한 화가가 평범한 종이 한 장에 데생을 한 것은 지금 유럽에서 대저택을 살 수 있을만한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한낱 종이 조각과 같이 무가치한 인간이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더해질 때, 하나님의 자녀라는 엄청난 가치가 생깁니다. 내가 구원함을 받아 새로운 인간이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5절-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두려워말라'는 말씀은 성경에 365회 나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 신앙에 크게 해로운 두려움을 많이 금하셨습니다. 유대 민족이 많은 위험과 심지어 바벨론에 잡혀갈 것이나 두려워할 것이 없음을 계속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필경 사로잡혀간 백성들을 동서남북 어디서든지 해방 시켜 돌아오도록 하실 때가 반드시 오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구원하실 이유를 보여 주셨으니 곧 그들은 하나님이 택하여 세운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을 몰아내려면?> 

첫째, 온전한 믿음이 두려움을 몰아냅니다(1절).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온전히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1절-내가 너를 구속하였다, 지명하여 불렀다, 창조하였다, . 
둘째,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몰아냅니다(4절-5절). 
4절에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확신이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습니다. 

요한 1서 4장 18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왜 삶의 두려움이 있습니까? 그것은 사랑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만하고, 삶을 긍정하고, 감사가 넘치면 어느새 두려움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셋째, 온전한 소망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6절-7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심판을 당해도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루터기는 남겨놓고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회복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 회복 후의 축복은 반드시 이전의 축복을 능가하는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소망이 퇴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큰 기대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우리의 소망의 원천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큰 기대를 하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우리의 소망의 원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낼 때 그냥 보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존재로 큰 기대를 담아 창조하셨습니다. 본문 7절 말씀을 보십시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기대를 결코 저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누가 제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입니까? 돈 많이 번 사람입니까? 성공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돈 많이 벌어 성공한 뒤에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활용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영광 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없어도 부족해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하나님을 향한 순정과 믿음이 변함없는 사람입니다. 

이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은 희망을 가진 사람들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이 없다고 할 때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면 희망이 있다"고 우리는 일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기회의 문은 열리게 될 것입니다. 

너무 어렵습니까? 너무 힘듭니까? 과거의 그 후회되는 일 때문에 손에 일이 잡히지 않습니까? 그때 낙심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때 희망을 말하십니다. 희망을 선포하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꿈을 꾸고 나가보십시오. 그리고 기다리면서 묵묵히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꿈꾼 것보다 훨씬 더한 축복을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이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가지고 삶의 온갖 두려움의 순간들을 물리치고 항상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행복하게 사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6절-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끝에서 오게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부자관계> 
특별한 관계 가운데 가장 최고의 관계가 부모와 자녀관계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피흘려 죽으시므로 우리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사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이지요. 예수께서 피로 값주고 사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되고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작품이다 소유다 자녀다 말씀을 하시고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하신다(4a)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관계기 때문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특별히 사랑하고 특별히 높인다는 말씀이지요. 여러분 작품이나 자녀를 돈으로 계산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 그림을 돈주고 사고 팔고 그렇게 돈으로 계산하겠지만 작가, 그 그림을 그린 작가는 자기 작품에 대해서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그런 사랑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자녀를 돈으로 계산할 수 있습니까?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스러운 존재가 자녀지요. 특별한 관계이기 때문에 특별한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작품으로 만드시고 소유로 삼아주셔서 개인적인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삼아주셔서 특별한 관계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잘생기던 못생기던 유능하던 무능하던 빈부귀천 관계 없이 각각 다 독특하게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랑과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들 각자가 다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나는) 보배롭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7절-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7절). 이것은 유대 민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것에 대한 말씀이기도 하지만 좀더 먼 장래에 있을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흩어졌던 이들이 모여지고 빼앗겼던 것들은 찾아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7절)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자들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것도 구속하신 것도 부르시는 것도 모두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하십니다.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 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 맞습니다. 

과거에는 혹 내 것이라고 알고 계획하고 행동했다 하더라도, 이젠 하나님을 위해 계획하고 행동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루터는 “인간의 궁극목적은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이것이 성경의 인간창조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 특히 땅 위에 그의 택한 백성을 두신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 때문입니다. 이는 에베소서의 한 구절을 상기케 합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5, 6).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를 죄(지옥)에서 구원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일, 증거하는 일> 

그러면 하나님 택함받은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들에게 무엇을 명령하고 계십니까? 

성경은 이르기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중요)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잘 것 없는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만드신 이유는 바로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덕을 널리 선전하며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에 보답하고자 
우리는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시지 않으셨고(1절), 시련 중에도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하심을 약속해 주셨으며(2절), 신속하게 회복될 것이라고(3 - 7절) 하셨습니다. 

본문의 제목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부제: 너는 내것이라)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 백성에 대한 격려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1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잘 보호하실 것이고 동행할 터이니 재앙이 오거나 곤고한 날이 임했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조성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창조와 구속과 부르심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주님을 위해 살기만 하면 됩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