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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하나님 (히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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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하나님 (히 13:8) 
  

오늘은 교회 절기상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은 구약성경의 맥추절(麥秋節 Feast of Harvest)에서 유래합니다. 이스라엘은 1년에 2모작을 했죠. 전반기에 보리농사를 짓고 나서 맥추절을, 후반기에 여러 작물을 추수하고 수장절(收藏節)을 지켰습니다. 이런 전통에 따라 오늘날 교회도 전반기에는 맥추감사주일, 후반기에는 추수감사주일을 지킵니다. 

특히 맥추감사주일은 1년의 중간에 있어 일종의 ‘작전타임’ 같은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얼마나 분주한 삶을 살아갑니까? 문자 그대로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이렇게 엄벙덤벙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을 마치게 되면 얼마나 허망할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므로 정신없이 살지 말고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가끔 멈춰서 생각할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축구경기를 할 때 전반전 마치고 10분간 휴식 시간을 갖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선수들이 몸을 회복하는 의미도 있지만, 전반전 경기를 반성하고 후반전에 더 잘 하기 위한 작전 타임입니다. 

오늘 맥추감사절을 지키면서 저와 여러분도 1년의 작전 타임, 더 나아가 인생의 작전타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감사하고, 앞날을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남은 생애 갈수록 풍성해지기를 소원합니다. 

이 시간 함께 살펴볼 말씀 히13:8을 다시 한번 함께 읽어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여기 보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하고 있죠. 예수님을 언급하고 있지만 사실은 삼위일체(三位一體 The Trinity) 하나님을 모두 언급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동등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니까 본문을 바꿔 말하면 이런 겁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이 구절에서 동일하다는 것은 변함없이 신실(성실)하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신실(성실)하심을 언급하는 구절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 중에 두 군데만 소개합니다. 시100: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faithfulness)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하나님은 대대로,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영원히 신실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애3:22~23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faithfulness)이 크시도소이다”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항상 새로운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겁니다. 

우리는 항상 3시제(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항상 신실하신 모습으로 우리의 3시제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어제 즉 과거에도 우리 인생에 역사해 주셨고, 오늘 즉 현재에도 우리 인생에 역사해 주십니다. 그리고 내일 즉 미래에도 우리 인생에 역사해 주실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제의 하나님인 동시에 오늘의 하나님이요, 내일의 하나님이십니다. 차례로 살펴보면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이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어제의 하나님 : 에벤에셀

‘어제의 하나님’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십니다. 에벤에셀이란 말은 사무엘상 7장에 나오죠. 거기 보면,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는데(사사는 재판관이란 뜻인데, 왕이 없었던 시절의 지도자), 취임하자마자 미스바에 백성들의 성회를 소집합니다.(삼상7:3~14) 

하나님 앞에 먼저 기도하고 국정을 운영하려는 사무엘의 선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한참 미스바 성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정보가 샜는지 블레셋 군대가 침 공해 옵니다. 무장해제 상태에서 기도하다 일을 당했으니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그러나 사무엘과 백성들은 더욱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하나님께서 큰 우레를 발하셔서 블레셋 군대를 어지럽게 하심으로 이스라엘로 하여금 완전 섬멸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승리를 거둔 사무엘이 감사함으로 승전비를 세웁니다. 

삼상7: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 이라 하니라” 그 승전비의 이름이 바로 에벤에셀입니다. 이 말은 ‘도움의 돌’이란 뜻인데, 여호와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감사의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어제까지 우리의 삶 속에 역사하시고 도와주신 신실하신 분입니다. 오늘 내가 살아 있는 자체가 하나님이 어제 나를 건강하게 지켜주시고 의식주를 공급해 주셨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눈을 감고 지난 과거를 회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린 시절부터 바로 어제까지 내 인생에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고 어떻게 도와주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모습들! 때때로 어려운 시련도 많았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고비마다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남은 겁니다. 있느니 없느니 하며 불평한 적도 있었지만 어쨌든 죽지 않을 만큼 필요한 대로 공급해 주셨기에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 겁니다. 때때로 실수하고 범죄한 적도 있었지만, 예수 십자가 피로 용서해 주시고 깨끗이 씻어 주셨습니다. 

어제의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를 영적으로 육적으로 도와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그저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복음송 중에 이런 노래가 있죠. “(1절)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 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2절)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없네 (후렴) 오 신실하신주 오 신실하신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 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그러므로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116: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우리는 어제의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오늘을 살아갈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는 평생 최선을 다하며 살았습니다. 그 동기가 무엇입니까? 죄인 중에 괴수였던 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시고, 더욱이 사도로 불러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용해 주시고, ... 이런 은혜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이러한 감사가 바울로 하여금 목숨 바쳐 헌신할 수 있게 했던 겁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도 바로 어제까지 사랑과 은혜로 보살펴주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열심히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오늘의 하나님 : 임마누엘

하나님은 ‘어제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오늘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실 때, 다시 말해서 성탄하실 때 천사가 예수님에 관해 전해준 말씀이 있습니다.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사7:14 인용)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을 성령으로 잉태했을 때 정혼한 요셉이 고민하고 있을 때 천사가 나타나서 전해준 말씀이죠.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날 텐데, 그 이름이 ‘임마누엘’이란 겁니다. 예수님의 별명입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God with us)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지만, 늘 함께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28:20 “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요? 예수님과 동일하게 함께 해 주시는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 가운데 가장 큰 게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와 함께 하면 무엇이 아쉽겠습니까? 그분은 전지전능자인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사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외에도 임마누엘에 관한 성경 구절은 신구약 성경에 무수히 많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구절이 시121:4~6입니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의인법으로 표현한 것이죠. 인간은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잠도 자지 않고 보살펴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밤낮으로 매일매일 순간순간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세상의 돈만큼도 믿지 않습니다. 돈만 있으면 다 되는 줄로 착각합니다. 돈이 있으면 좋죠. 그러나 돈으로도 못 하는 게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따지고 보면 그 돈조차 하나님이 주시는 겁니다. 그런데 돈만 의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통장 잔고를 보고 마음이 왔다 갔다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건 불신앙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히13:5~6 “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어느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외국에 집회를 인도하러 갔답니다. 집회 첫 시간 직전 식사를 하고 차에 돌아오니까 그 사이에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도둑이 차 안에 있는 가방을 들고 가버린 겁니다.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가방 안에는 귀중품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일까요? 설교 원고! 목사에게 설교 원고는 군인에게 총과 같은 것인데 큰일 난 겁니다. 그 순간 마음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설교 원고를 의지하느냐? 나를 의지하느냐?” 즉시 회개했습니다. 순간순간 함께 해 주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분이 주시는 은혜를 전해야 되는데 이미 작성된 원고만 의지하려고 했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랬더니 무사히, 아니 그 어느 때보다 큰 은혜로 집회를 인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주시면 다 된 겁니다. 아무리 많은 것들을 갖춰 놓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지 않으면 헛된 겁니다. 수학 기호로 말하면 하나님은 무한대(∞)입니다. 아무리 큰 숫자라도 무한대(∞)를 빼면 마이너스 무한대(-∞)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숫자가 적어도 심지어 마이너스라도 무한대를 더하면 플러스 무한대(+∞)가 됩니다. 

때때로 고난과 역강 가운데 있으면 불안합니다. 심한 경우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한 그 고난과 역경은 분명히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오늘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해서 허용하시는 고난이라는 말씀입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사역하던 싱글 여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사역 중에 위중한 병에 걸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생활비가 오지 않아 보리죽과 깡통에 든 분유만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홀대하는 것 같아 섭섭했고. 하나님의 사랑까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이렇게 버티고 있는데 30일쯤 지나서 병세가 사라지고 건강해졌습니다. 마침 생활비도 도착해서 양식을 구입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안식년이 되어 귀국해서 선교 보고를 하게 됐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의사이신 교인이 다가오더니 병세에 대해 자세히 묻습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님, 생활비가 제때에 왔더라면 선교사님은 살아계시지 못할 뻔 했어요. 그 정도의 위장 장애는 30일간 보리죽을 드셔야 낫습니다. 보통 때처럼 음식을 드셨더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그 말을 듣고 선교사는 깜짝 놀라 회개하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정확하신 분입니다. 실수가 없으십니다. 혹시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무엇인가 뜻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시는 분입니다.(롬8:28)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어떻게 살아야 마땅하겠습니까? 환경과 조건이 어떠하든지 임마누엘 하나님이 오늘 나와 함께 하심을 확신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평안과 기쁨을 주시고 결국은 승리하는 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3] 내일의 하나님 : 여호와 이레 

하나님은 어제와 오늘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책임져 주시는 ‘내일의 하나님’입니다. 미래의 특징은 한 마디로 불확실성입니다. 그러니까 불안한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저런 것들로 안전장치를 합니다. 예를 들어, 예금을 하고 보험에 들고 ... 그럽니다. 물론 필요하죠. 하지만 인간의 방법은 다 한계가 있습니다. 그 역시 불확실합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게 때문에 역설적으로 돈이 많아질수록, 권력이 커질수록 오히려 더 불안한 겁니다. 

내일을 위한 유일하고도 완벽한 안전장치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하나님 자신만이 우리의 미래를 책임져 줄 수 있습니다. 나 자신조차 내 인생의 미래를 모릅니다. 알아도 걱정이죠.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미래의 일을 미리 알면 더 불안합니다. 지레 죽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게 상책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린 사건(창22:1~19)을 잘 아실 겁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서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믿음을 시험하신 겁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순종할 정도로 믿음이 견고해져 있었습니다. 이삭을 제단 위에 묶어 놓고 칼로 찌르려고 합니다. 그 순간이 하나님이 중지시키죠. “잠깐! 네 믿음을 확인했으니 이제 이삭을 풀어줘라.” 아브라함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주위를 살펴보니까 수풀에 한 숫양이 있습니다. 그 숫양으로 번제를 드립니다. 아브라함이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그 땅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짓습니다. 신앙 고백의 차원에서 명명한 겁니다. 창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여호와 이레’는 여호와 하나님이 준비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나 자신도 내일을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이 앞서 행하시고 다 준비해 주신다는 겁니다. 

우리는 내일에 대해 낙관도 비관도 해서는 안 됩니다. 지나치게 낙관해서 무조건 “괜찮겠지. 잘 될 거야”라며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단지 희망 사항일 뿐입니다. 잠27:1 “네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어제 인천 대교 부근에서 관광버스 추락사고가 있었습니다. 사상자가 많이 생겼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봤어요. 그 사람들이 사고 날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 버스 탔을까요?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인생을 뭐라고 말씀합니까? 약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있는가 싶었는데 금세 사라져버리는 안개! 인생이 그와 같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미래에 대해 무조건 비관만하고 불안에 떠는 것 역시 문제입니다. 옛날 사람들보다 현대인들이 많이 풍요로워졌는데도 오히려 더 불안해합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선진국일수록 신경안정제나 수면제 같은 약이 잘 팔린다는 겁니다. 

가장 지혜로운 태도는 미래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맡기는 겁니다. 마6:31~34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내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내일을 책임져 주십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나님 자신이 가장 좋은 보험입니다. 평생 책임져 주는 종신 보험! 노후 대책 걱정 안 해도 됩니다! 하나님이 노후 대책입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노후 대책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뭐죠? 사후 대책입니다. 사람은 예외 없이 한 번 죽는데, 그 후에는 어떻게 되느냐? 이겁니다. 신경을 끈다고요? 자기 인생인데, 그래도 될까요? 천국이냐 지옥이냐 둘 중의 하나인데 그렇게 무책임하게 모르는 척 할 수 있나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아시죠.(눅12:16~21) 한 부자가 농사를 잘 짓고 추수를 잔뜩 합니다. 창고를 확장하고 가득 채웁니다. 기분이 좋아서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이제 먹고 마시고 푹 쉬면서 인생을 엔조이하자!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합니다. 눅12:20 “ ...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 ”

감사하게 우리 성도들에게는 사후 대책이 있습니다. 요14:2~3,6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6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사후 대책입니다. 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 지신 예수! 부활 승천하셔서 나의 영원한 거처 하늘나라 새 집을 준비해 놓으신 예수! 그분이 사후대책입니다.

아이젠하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유명한 장군이요, 34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분입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항상 기도하고 철저히 주일 성수를 한 분입니다. 소련의 후르시초프가 미국을 방문해서 정상 회담을 하던 중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주일예배 참석했던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런데 임종 시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평소 신앙이 좋았지만 죽음이 다가오니까 불안했습니다.(그래서 신앙이 좋은 분들도 임종 시에는 옆에서 영적으로 잘 도와드려야 합니다.) 

1969년 3월 월터 리드 육군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마침 빌리 그래함 목사가 심방을 왔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가려고 하는데, 아이젠하워가 가지 못하게 합니다. 자기를 도와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래서 다시 앉아 십자가 복음을 처음부터 제시해 주었습니다. 확신을 얻은 아이젠하워는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맙소, 빌리! 이제는 준비되었소. 평안히 가시오.” 그 후 오래지 않아 그의 영혼은 평안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이렇게 평안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에벤에셀의 하나님으로 어제까지 우리 인생을 도와주셨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오늘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그리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으로 내일도 우리를 보살펴 주실 겁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면서(살전5:16~18) 승리의 인생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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