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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의 자리에 서 있으라 (삿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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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자리에 서 있으라 (삿 7:1-8)
 

예전에는 조상들이 풍수설에 많이 민감했다. 묘를 쓸 때 명당자리를 찾았다. 집지을 때도 명당자리를 찾았다. 어디가 명당자리일까?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에게 사무실에 명당자리가 있단다. 사무실의 명당자리는 상사의 눈이 잘 미치지 않는 구석진 자리란다. 예배당 안에서는 어디가 명당자리일까? 
설교시간에 목사의 눈에 잘 안 띄는 자리가 명당자리일까? 
아니다. 목사 눈에 띄는 자리가 명당자리이다. 

교회든 직장이든 어디든 진짜 명당자리가 있다. 진짜 명당자리는 하나님의 눈에 잘 띄는 자리이다. 하나님이 계시는 자리가 명당자리이다. 장소가 아니다. 마음의 자리이다. 생각의 자리이다. 명당자리는 하나님을 향한 삶의 태도인 것이다. 

구약의 성전에 지성소가 있다. 지성소 안에 시은소라는 곳이 있다. 시은소란 은혜의 자리라는 뜻이다. 왜 은혜의 자리인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자리이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그래서 시은소이다. 은혜의 자리인 것이다. 
이제는 그 시은소가 우리 안에 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 우리의 마음이 시은소이다. 은혜의 자리이다. 문제는 은혜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은혜의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부르심의 자리에 끝까지 서 있으라! 

기드온과 함께한 300명에 대한 말씀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미디안의 압제를 받고 있었다. 농사철이 되면 쳐들어와서 다 파헤쳐 버리고 갔다. 추수 때가 되면 쳐들어와서 곡식도 짐승도 다 빼앗아 가 버렸다. 너무 두려워서 산에다 굴을 파고 거기서 살았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6: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시니”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다. 
6:6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하나님께서 기다리셨다는 듯이 기도를 들어주셨다.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셨다. 
누구에게 보내셨는가? 기드온이란 사람에게 보내셨다. 

기드온이 어떤 사람인가? 
6:11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밀 타작을 하는데 마당에서 도리깨질하지 않는다. 광에서 손으로 비벼서 밀 타작을 하고 있는 거다. 뭔 소린가? 
겁이 무지 많은 사람이다. 미디안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거다. 6:27 “그의 아버지의 가문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미디안 사람만 두려운게 아니다. 친척들도 두려워한다. 동네 사람들도 두려워한다. 겁도 많은데다 소심한 사람이다. 눈치 보느라고 바쁜 사람이다.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우리 교회의 모습은 아닌가? 세상이 두렵다. 세상 사람들이 두렵다. 그래서 눈치 슬슬 보느라고 전도하지 못한다. 예수 믿는 체도 못한다. 

하나님은 그런 기드온을 책망하시는가? 아니다. 무시하시는가? 아니다. 6: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큰 용사’라고 불러주신다. 말이 안 된다. 놀리시는 말씀인가? 아니다. 진심이시다. 
기드온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다. 기드온을 향한 하나님의 꿈이다. 

기드온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다. 15절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믿음도 부족해 보인다. 말씀을 들었는데 확신이 안 선다. 확인해 보고 싶다. 6:17 “내가 만일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시는 이가 주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자리에 서 있다. 끝까지 서 있다. 
마침내 하나님은 부르심의 자리에 끝까지 서 있는 기드온을 ‘큰 용사’로 세워주셨다. 

미디안 군대가 또 쳐들어 왔다. 기드온에게 하나님이 영이 임하셨다. 기드온이 백성을 소집한다. 백성들이 기드온의 부르심에 순종한다. 기드온이 지금 사사인가? 아니다. 사람들이 인정하는 지도자인가? 아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이 임한 기드온의 부름에 순종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자리에 자발적으로 나온 것이다. 귀한 백성들이다. 정말 귀한 백성들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외없이 하나님의 부르심(소명)을 받았다. 두 가지 부르심을 받았다. 
구원의 자리로 부르심을 받았다. 사명의 자리로 부르심을 받았다. 이 둘은 한 가지이다. 구원의 자리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사명의 자리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자리는 은혜의 자리이다. 하나님이 불러주신 자리는 어느 자리든 은혜의 자리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 자리에 서 있으라.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은혜의 자리에 끝까지 서 있는 사람이 되자.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2. 헌신의 자리에 끝까지 서 있으라! 

부르심의 자리는 헌신의 자리이다. 은혜의 자리이지만 고생 좀 해야 하는 자리이다. 그래서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이 많다. 헌신의 자리에서 끝장을 보는 사람이 되길 사모하자. 
기드온이 부르심의 자리에 서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두렵다. 불안하다. 아직도 확신이 안 선다. 하나님께 또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한다. 
확신이 안서면 포기하지 말고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하는 것도 귀한 신앙이다. 

기드온이 처음부터 탁월한 믿음의 사람인가? 아니다. 보통 사람이다. 좀 부족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르심의 자리에 끝까지 서 있다. 하나님은 그런 기드온을 헌신의 자리로 부르신다. 부르심의 자리에 기드온과 함께 있는 백성들도 헌신의 자리로 부르신다. 

미디안 군대가 쳐들어 왔다. 13만 5천이나 되는 대군이다(8:10). 그러나 이 전쟁에 부르심을 받고 순종한 백성들은 32000명 뿐이었다. 1/4도 안 된다. 미디안 군대는 낙타를 타고 전쟁하는 군대이다.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군대이다. 
이스라엘 군대는 그냥 민간인들이다. 무장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훈련도 안 되어 있다. 

그 헌신의 자리에 기드온과 백성들이 함께 서 있는 것이다. 두렵다. 겁난다. 후회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까? 열 번도 더 있었을 것이다. 
조금 수고하는 헌신의 자리에 불러도 외면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이 어이없는 말씀을 하신다. 숫자가 너무 많다고 하신다. 적군의 1/4도 안 되는 너무 많다고 하신다. 숫자가 너무 적으니 군대를 더 소집하라고 하신다면 이해가 되겠다. 그런데 너무 많다고 줄이라고 하신다. 정말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을 하신다. 

기드온에게 말씀하신다. 두려운 사람은 돌아가도 좋다고 선포하라고. 말이 안 되는 말씀인데 군말 없이 순종한다. 겁도 나고 확신도 안서서 지금 마음이 쫄아 있다. 그래도 순종한다. 
겁나면 돌아가도 좋다고 선포하는 기드온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모든 백성들이 벌떼처럼 일어나서 “우리는 한 사람도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습니다.” 그러지 않았을까? 그런데 현실은 어떠했나? 돌아가도 좋다고 했다고 진짜로 돌아가 버렸다. 22000명이 돌아가 버렸다. 
1만 명은 남아있다. 적은 13.5만이다. 두렵다. 그래도 남아있다. 돌아가고 싶다. 그런데도 남아있다. 부르심의 자리에, 헌신의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다. 정말 귀한 분들이다. 정말 감사한 분들이다. 

돌아 간 22000명은 부르심의 자리에 섰었다. 그러나 끝까지 그 자리에 서 있지 못했다. 
헌신의 자리에 섰었다. 그러나 끝까지 헌신의 자리에 서 있지는 못했다. 
심정적으로 이해가 된다. 그러나 아쉽다. 끝까지 은혜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데...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자리에 설 건가? 돌아가는 자리에 설 건가? 끝까지 헌신하는 자리에 설 건가? 끝까지 헌신의 자리를 지키는 충성된 종들이 되시길 축복한다. 

다시 기드온에게 말씀하신다. 1만 명도 많다고 하신다. 숫자를 더 줄이라고 말씀하신다. 
물가로 데려가서 물을 마시게 한다. 9700명은 무릎 꿇고 꿀꺽꿀꺽 마셨다. 300명은 손으로 움켜서 핧아먹었다. 둘을 나눠놓으라 하신다. 누구 데려가라고 하시면 좋을까? 
하나님이 9700명은 진으로 돌려보내라고 하신다. 300명 데리고 13만 5천과 전쟁하라고 하신다. 너무 하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사람에게는 숫자가 중요하다. 숫자가 힘이다. 
하나님께는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께는 숫자가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힘이시다. 
사람은 숫자를 의지한다. 점수, 월급액수 숫자를 의지한다. 하나님은 숫자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신다. 숫자에 매이지 말고 하나님께 매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다 헌신의 기회를 주시지는 않는다. 헌신의 자리에 서 있지만 300명에게만 헌신의 기회를 주셨다. 헌신의 기회를 주실 때 놓치지 말자. 아무에게나 헌신의 기회를 주시는 것은 아니다. 

300명이 군말 없이 남아 있다. 13만 5천의 적군 앞에서 돌아가지 않고 남아 있다. 
그들도 여전히 두렵다. 그래도 부르심의 자리에 끝까지 남아 있다. 헌신의 자리에 끝까지 남아 있다. 은혜의 자리에 끝까지 서 있다. 은혜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다. 
마침내 그들은 평생 잊지 못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힘들다고 헌신의 자리를 떠나는 사람이 되겠는가? 기드온과 300명 처럼 끝까지 헌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될 것인가? 

3. 마침내 영광의 자리에 서게 하신다. 

하나님이부 르심의 자리, 헌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킨 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하셨나? 
300명이 13.5만 군대속으로 한 밤중에 몰래 들어간다. 무기는 나팔과 항아리 속에 숨긴 횃불이다. 300명이 13만 5천이 머물고 있는 진을 둘러싸게 하신다. 기드온의 신호에 따라 300명이 나팔을 분다. 항아리를 부순다. 횃불을 들고 외친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7:22 “삼백명이 나팔을 불매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8:12 “동방 사람의 군대 중에 칼든 자 십이만 명이 죽었고 그 남은 자 만 오천 명 가량은 그들을 따라와서 거기에 있더라.” 

하나님이 기드온과 300명이 대승을 거두게 하셨다. 고통 받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구원자들이 되었다.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시고 300용사는 가장 위대한 용사들이 되게 하셨다. 
부르심의 자리에 끝까지 서 있는 사람들을 영광의 자리에 세워 주셨다. 
헌신의 자리에 끝까지 서 있는 사람들을 영광의 자리에 세워주신 것이다. 


맺는 말 

하나님이 쓰셨던 사람들 중에 본래부터 탁월한 사람들이 많은가?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오랜 세월 연단을 시키셨다. 모세는 40년을 광야에서, 바울사도는 14년을 광야에서.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이다. 부족하다. 자격 없다. 
하나님은 그들을 부르셨다. 헌신의 자리로 부르셨다. 은혜를 베풀어 주시려고.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려고. 그러므로 부르심의 자리, 헌신의 자리는 은혜의 자리다. 

다음 주에 부흥에가 있다. 은혜의 자리이다. 은혜의 자리에 서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이번 부흥회에서 부르심의 자리에 새롭게 서길 소원한다. 헌신의 자리에 새롭게 서길 소원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길 소원한다. 그 자리에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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