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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놀라운 하나님의 위로 (사 6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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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하나님의 위로 (사 66:10-14)

 
시인 김재진이 쓴 "너를 만나고 싶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사소한 습관이나 잦은 실수,
쉬 다치기 쉬운 내 자존심을 용납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직설적으로 내뱉고선 이내 후회하는
내 급한 성격을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과 만나고 싶다.

입꼬리 말려 올라가는 미소 하나로
모든 걸 녹여버리는 그런 사람.

막무가내의 고집과 시퍼런 질투,
때로 타오르는 증오에 불길처럼 이글거리는
내 못된 인간성을 용납하는 사람,
덫에 치여 비틀거리거나
어린아이처럼 꺼이꺼이 울기도 하는
내 어리석음 그윽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 살아가는 방식을 송두리째 이해하는
너를 만나고 싶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관심과 위로가 필요합니다. 위로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면서 시인이 고백한 것처럼 우리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극히 이기적인 우리를 그 주님이 용납하시고 위로하셨다는 사실 앞에서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의해서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먼 땅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칠십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포로로 비참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원인을 우리는 이사야 1장 2절 이하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사 1:2~3)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사 1:4)
어째서 이스라엘이 망했습니까?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그 말씀을 거역했기 때문에 망했습니다.

그러나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또한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오랜 바벨론 포로 생활 때문에 백성들은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이제 완전히 끝났다고 절망하고 있는 그들에게 놀라운 선물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절망 중에 있는 백성들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사 40:1~2)

선지자는 더욱 분명하게 외칩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 61:1~3)

마침내 이스라엘은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가 포로로 잡혀 갔던 자들을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습니까?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았습니다. 고레스 왕이 직접 조서를 내리며 말하지 않았습니까?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대하 36:22~23)

이스라엘이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그들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습니다. 마치 진통을 하기 전에 해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아를 낳은 것과 같다고 선지자가 말하지 않습니까?(사 66:7 참조) 때문에 선지자 이사야는 그들에게 함께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그 성읍과 함께 다 즐거워하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먼저 다시 찾은 자유로 인해서 그들은 기뻐해야 합니다.
포로 생활이 어째서 고달픈 것입니까? 포로에게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은 자유를 빼앗긴 것입니다. 아무것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자유를 되찾았다는 말입니다. 당장 먹을 것이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잠자리가 좀 불편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이 8.15 해방을 맞았을 때에 어땠습니까? 그 무엇도 보장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유를 다시 찾았기 때문에 모두 함께 목이 터지도록 만세를 부르지 않았습니까?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자유를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어머니의 품과 같은 위로로 인해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포로 생활 동안에는 전혀 맛볼 수 없었던 것이 위로였습니다. 이제 그 위로로 인해서 그들은 만족했습니다. 노래가 저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심하게 울던 아기도 엄마가 젖을 물리면 울음을 그치게 마련 아닙니까? 좀 생소하게 느껴지겠지만 하나님의 모습을 성경은 어머니와 같은 모습으로 소개할 때가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경우도 그렇지 않습니까?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을 경우에 무엇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합니까? 위로하시는 엄마의 손길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습니까? 엄마 품에 다시 안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 엄마 품보다 더 큰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의 품에 안길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쁘고 즐겁겠습니까?

끝으로 참 평강이 넘칠 것이기 때문에 기뻐해야 합니다.
고향에 돌아온 이스라엘은 전에 맛보지 못했던 평강을 맛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이 평화를 추구하는 역사였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전쟁을 치르면서도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옛날 로마 제국도 평화를 추구했습니다. 대영 제국이 추구한 것도 또한 세계 평화였습니다.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많은 젊은이들의 피를 흘리고 있는 까닭도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평화입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간이 추구하는 평화는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참 평강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실 때에 비로소 우리가 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선지자는 그 사실을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사 66:12 상반절)

병상에 누워서 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 고백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비통한 심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찾아와서 하나님이 나를 다루시는 것에 대해서,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죽음을 넘어선 소망에 대해서 말했다. 그는 쉬지 않고 말했다. 그의 말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에 별로 감동을 받지 않았다. 나는 단지 그가 빨리 가 주었으면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갔다. 또 다른 사람이 와서 내 옆에 앉았다. 그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무엇인가를 말할 때에 그는 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는 나를 위해서 짧게 기도했다. 그리고 그는 떠났다. 그런데 내 마음이 움직였다. 나는 그를 통해서 위로받았다. 나는 사실 그가 떠나는 것이 싫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멀리한 결과 나라는 망하고 백성들은 포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아주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때가 되자 그들로 하여금 다시금 고향으로 돌아와 기쁘고 즐겁게 참 평강과 영광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현 주소는 과연 어디입니까?
혹시 몸은 고향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아직도 포로 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부디 주님이 주시는 참 평강을 누릴 수 있기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큰 영광을 누릴 수 있기 바랍니다.
오직 그 주님만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위로로 위로받고 항상 기쁘고 즐겁게 본향을 향하여 전진하는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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