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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복 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라 (엡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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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에베소서 1:3 
제목 : 복 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라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하나님의 자녀는 하루하루가 감사절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시대가 아무리 어둡고, 어려울지라도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할 제목들이 넘치고도 넘치는 것입니다. 특별히 칠일 가운데 주일은 일하지 않아도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날입니다. 주일은 일해도 소용없습니다. 일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주일이 그리스도 안에서 감사하고 평안함을 누리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주일까지도 세상일에 얽매이고 염려와 근심에 시달릴 이유가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하고 주신 축복들을 감사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주일 가운데서도 지난 6개월 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맥추 감사절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6개월 지나서 맥추감사절에 감사하고, 후반 6개월 지나서 추수감사절에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보살펴 주심에 대해 일 년에 두 번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녀의 영혼은 은혜스러운 영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은혜스럽지 못하고 피폐한 영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은혜로운 심령에 중요한 특징은 마음속에 감사한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은혜스러운 사람입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은 은혜스럽지 못합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향해서도 감사를 해야 합니다. 가족들이 있다는 것, 성도가 있다는 것, 대화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 싸울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이 있으니 감사한 것입니다. 온 세상의 모든 것이 내 것이고, 혼자 산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마음은 은혜로운 심령에 극치입니다.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바울은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심령은 어떤 것인가, 왜 감사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Ⅰ. 성도들에게 감사의 노래가 있다 

우리 영혼 속에는 노래가 있습니다. 에베소서에는 두 가지 감사의 노래가 나옵니다. 이런 감사의 노래를 영광의 찬가라고 하고, 송영(doxology)이라고도 합니다. 에베소서 1장 3절과 3장 2절이 에베소서에 나타나 있는 두 가지 송영입니다. 에베소서 1장 3절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에베소서 3장 21절입니다.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두 송영 사이에 하나님 아버지를 찬송해야 할 이유가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런 자격이 없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 전부터 구원을 주시기로 우리를 선택해 주신 은혜입니다(grace of election). 우리를 예정하신 은혜입니다(grace of predestination). 또 하나님의 자녀로서 양자 삼아 주신 은혜입니다(grace of adoption).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씻어 주시고 구원해 주신 은혜입니다(grace of redemption). 성령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인 쳐주신 은혜입니다(grace of sealing). 

이런 은혜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 공짜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선행으로 양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공짜로 주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주체 할 수 없는 감사가 넘쳐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도 이런 감사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은 겪고 있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또 세상의 일이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에서 오는 불만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어떻게 내 마음대로 돌아갑니까? 저는 58년을 살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내 마음대로 안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내 마음대로 안 돌아간다는 것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려움과 어두운 현실에 몰입되어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도 불평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을 갖고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언제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성도들에게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 올 때에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맥추 감사절에 하나님께 나아올 때 넘치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나오셨기를 바랍니다. 다윗 같은 위대한 사람도 언제나 그 영혼이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송축합니다. 
 
장인인 사울에게 쫓기고 생명까지 위협받아도 다윗은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시편 145편 10절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지으신 모든 것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가 주를 송축하리이다(Bless the Lord)” 하나님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Bless’는 사람이 사람을 축복할 때에는 축복한다고 번역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을 축복할 때에는 송축한다고 번역합니다. 우리가 송축하는 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송축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말로 다할 수 없는 축복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모든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시편 103편 1절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다윗의 영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송축하고 감사하는 심령이었습니다. 
 
바울도 찬가를 부를 때에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에베소서는 옥중서신입니다. 바울이 1차로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에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네 권의 책을 썼습니다. 에베소서는 감옥 속에서 쓴 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감옥에 가보신 분계십니까? 저는 대학 시절 시위하다가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하룻밤 갇혀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리창 밖으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걸어 다니는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였습니다. 밥 먹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합니까? 예배드리고 노래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입니까?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어도 그의 영혼은 하나님을 향한 넘치는 감사와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빌립보서 4장 4절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우리는 기뻐할 일이 있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이미 주신 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환경이 어떠하던지 하나님께 감사하고, 송축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걸어가다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어도 감사해야 합니다. 소매치기를 당했어도 감사해야 합니다. 매튜 헨리는 “하나님, 제가 소매치기당하는 사람이 되고, 소매치기하는 사람이 되지 않은 것을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환경, 처지를 보고 감사할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지금 감사의 노래는 환경, 처지에 관계없이 하나님 아버지가 내게 주신 은혜에 감사해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Ⅱ. 성도들에게는 감사해야 할 영역이 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두 종류의 복을 주십니다. 첫째, 일반은혜(보통은혜)입니다. 이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악인이든, 선인이든 가리지 않고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45절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야고보서 1장 17절입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사람이 누리는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햇빛도 주십니다. 아주 적당한 온도로 비춰 주시는데 그것을 감사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적당한 온도로 비출 수 있는 것입니까? 어떤 과학자가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비도 선인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교회에도 비를 주시고, 봉은사에도 비를 주시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이 농사를 지어야만 열매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나쁜 사람이 지어도 쌀과 밀, 보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선인도 하나님께 양식을 얻고, 악인도 하나님께 양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인과 악인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악인은 하나님께 대해 전혀 감사가 없습니다.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인데 감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쌀 한 톨도 감사하고, 반찬 한 가지라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지난 3월에 제 아내가 양수리 수양관에 블루베리를 심었습니다. 열매가 열렸습니다. 오늘 제가 블루베리를 먹고 나왔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악인은 하나님께 감사가 없습니다. 그러나 선인은 하나님이 주신 일반은혜의 영역에 대해서 깊은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밥 먹고 사는 것 감사하고, 걸어 다니는 것도 감사하고, 자동차 타고 다닌 것도 감사하고, 내게 자녀를 주신 것도 감사하고, 가정을 주신 것도 감사하고, 남편을 주신 것도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 은혜의 영역에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이 일반 은혜를 넘어서 특별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의 은혜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창세 전에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입니다. 예정하신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경에 문서 계시로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세 전부터 택하여 주시고 그리스도 예수가 피를 흘려서 우리 죗값을 대신 갚아 주시고, 성령님이 거듭나게 해 주시고, 내주하시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은 단순히 창조의 차원, 일반 은혜의 차원에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속의 차원, 특별 은혜의 차원, 영적 축복을 받고, 누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과는 아주 다른 차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십자가에서 우리 죗값을 갚아 주신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체험하며 사는 사람들이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능력을 주시고, 우리의 맡은 사명을 이루며 살도록 권능을 체험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배우고, 깨닫고 이 말씀을 사랑하며 사는 영적 차원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불신자들은 성경을 깨닫지 못합니다. 재미도 없고,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성령 받은 우리는 성경을 보면 믿어지고, 깨달아지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이런 특별 은혜를 주시겠다고 창세 전부터 언약을 하신 것입니다. 언약은 단순한 약속과는 다릅니다. 목숨 걸고 맺는 것이 언약입니다. 

창세기 15장에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을 때에 짐승을 쪼개 놓으시고 그 사이로 횃불이 지나간다고 했습니다. 즉 언약을 어기면 쪼갠 짐승 신세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에게 이런 축복을 영원 전부터 언약을 맺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명예를 걸고 언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는 축복은 언약적인 축복입니다. 언약의 축복, 신령한 축복을 받은 우리 성도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넘치고도 넘쳐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한 번 따라 해 보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일반 은혜에 감사합니다. 구원의 은혜는 더 감사합니다.” 자꾸 감사하다는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그 영혼이 어두워집니다. 목사가 비판하는 설교만 하면 성도들의 심령도 비뚤어집니다. 감사하는 설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높이는 설교하면 우리 영혼이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육적인 차원의 삶을 넘어서서 영적인 차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Ⅲ. 성도들에게는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다 

이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나라도 많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영적인 위치로는 두 종류뿐입니다. 하나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이고, 하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중간에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에베소서 2장 12절입니다.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하나님도 없고, 약속에 대해서도 외인이고, 신령한 축복과 관계가 없고, 현세와 내세에 소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이라는 표현이 신비하고 놀라운 표현입니다. 

에베소서 1장 13절로 14절입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복음을 들으면 믿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신 분이시고, 예수님은 하늘의 비밀을 알려 주시는 분이시고, 예수님은 우리 죗값을 갚아 주신 대제사장이시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는 복음을 듣게 되면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무리 들어도 안 믿어지고, 믿으려고 하는 생각도 없고, 의지도 없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 두시고, 복음을 듣고 믿어지게 하셨으니 이것이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성령으로 도장으로 찍어주시고, 너는 내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천국의 축복을 보장해 주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9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권속이라는 단어는 family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 내 아들은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육신적으로는 그렇게 불러야 하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이것만 생각해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전능하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고 계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신대 무엇을 염려하고,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염려, 걱정을 모두 갖다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두려워 할 일 없고, 걱정 할 일 없고, 염려 할 일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간마다 우리에게 주는 일을 감당하며 살아가면 됩니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은 포기하고, 해서 되는 것은 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두 가지 걱정을 합니다. 해도 되는 것을 걱정합니다. 걱정하지 말고 하시기 바랍니다. 해도 안 되는 것을 걱정합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탄에게 꿈에서라도 당하지 마시고 쫓아가서 잡아 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의 검으로 물리시치시기 바랍니다. 
  

 결론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 두신 것입니다. 우리는 신령한 축복을 이미 받은 사람들입니다. 앞으로 받을 것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것 때문에 감사한 것입니다. 맥추 감사절을 맞이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를 향한 감사가 우리 마음에 넘치고 우리 입술에는 찬양의 노래가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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