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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반환점에서 (창 32: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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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반환점에서 (창 32:24-32)


요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꼽으라면 아마 핸드폰 업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킨 아이 폰의 회장으로 있는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가 최근에 인생역전 이야기로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준 사람이 있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가 지난 번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축사를 했습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감동과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의 화려한 성공 뒤에는 남이 알지 못하는 상처와 아픔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의 어머니는 미혼모입니다. 아들을 도저히 키울 수가 없어서 가난한 양부모 밑에서 자랐으며 대학도 이름 없는 대학 그것도 한 학기 밖에 다니지를 못했습니다. 배움에 대한 갈증이 커서 청강생으로 등록을 해서 자기가 듣고 싶은 과목 몇몇을 들었는데 이것이 후일에 매켄토시 컴퓨터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애플 컴퓨터 회사를 만들어 중역으로 일하다 회사에서 쫓겨나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창업하여 신기술로 회사를 일으켰고 이것이 약이 되어 애플과 합병하여 지금 그 총수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몇 해 전에 췌장암 진단을 받고 3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요즘 말하면 사형 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지난 번 아이 폰 4G를 출시 할 때 깡 말랐지 않습니까? 그러나 암 투병에서 이기고 지금은 오늘이 마지막 말이라는 마음으로 살며 회사를 크게 성장시키고 있습니다. 그가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마지막 축사를 할 때 모두가 숙연케 만든 말 한마디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위기가 올 때 “사랑하는 것을 찾는!” 는 것입니다. - 사랑하는 것을 찾는다. 

그렇습니다. 인생에는 여러 차례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 위기 앞에서 절망하다가 인생을 망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인생의 역전을 이루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위기가 찾아왔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위기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벌써 금년도 반을 보내고 후반기를 향해 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 시간, 각자가 느끼는 것도 다양할 것이고, 또 생각하는 것도 많은 차이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특별히 여러분 각자가 처한 형편이 어떤가에 따라서 많이 달라집니다. 건강하고 형통한 사람은 남은 후반기도 아마 보람차게 보낼 것입니다. 그러나 병들고 실패하고 좌절감에 빠져 있는 분들은 세월이 흐르는 것이 더없이 처량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또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해서 많은 걱정들이 쏟아져 들어오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옥스퍼드 대학의 맥그래스 교수가 쓴 “내 평생에 가는 길”이란 책에서 인생을 묘사한 한 구절이 참으로 제 마음에 와 닿습니다. “짧고 상쾌한 산책일 줄 알았던 것이 미처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마라톤으로 바뀐다.” 어린 시절, 철이 없을 때는 인생이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걷는 산책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좀 더 걷다 보면 미처 준비가 안 된 채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 되어 버립니다. 이 마라톤을 달리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쳐 쓰러집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탈락합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절망에 빠져 허우적 거립니까? 이것이 우리가 가는 인생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대하는 본문을 보게되면 야곱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야곱이 어떤 사람입니까? 지금까지 노력해서 안 되는 것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이루었기에 불가능을 몰랐습니다. 출생서열까지 바꾸면서 축복을 가로챘고 원하는 여인을 얻고자 14년이나 봉사하며 자기가 원하는 여인을 얻게 됩니다. 또 재물을 얻기 위해 또 6년을 머슴살이하면서도 열등감에 빠지지도 않을만큼 입지 전형적 인물이 아닙니까? 분명 성공 신화에 나올법한 삶의 스토리가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가출을 해서 20년 만에 거부가 되어 고향으로 가는 그는 분명 세상 잣대로 성공자였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꿈꾸던 가문의 족장이 되기 위해 고향으로 가는 중에 야곱이지만, 그의 귀향의 발길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20년 동안 그의 마음 한 구석을 짓눌러왔던 형에 대한 두려움이 그를 온통 뒤덮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토록 무서운 형 에서와의 대면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7절에 보면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라는 말씀 속에 지금 야곱이 어떤 심정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이제 형의 환심을 사기 위해 형 에서에게 먼저 선물을 보냅니다.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지요. 그 내용물이 본문 13-15절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거기서 경야하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암염소가 이백이요 수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수양이 이십이요 젖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나귀가 열이라.? 이 정도의 가축은 한 도시가 그 도시를 포위하고 위협하는 외국군대로 하여금 되돌아 갈 마음을 품을 수 있게 하는 재산이었습니다. 게다가 각 가축마다 암컷과 수컷을 같이 보낸 것은 증산의 가능성으로 인해 선물의 가치를 한층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수의 가축을 내놓아서라도 에서의 감정을 풀어보고자 했을 만큼(32:20) 에서에 대한 야곱의 두려움은 컸던 것입니다. 

그러고도 불안해서 가족과 재산을 삼분대로 나눕니다. 1소대 하인의 자식들과 그 재산을, 2소대 레아의 자식과 그 재산을, 3소대 사랑하는 여인 라헬의 그 자식과 재산을 그리고 자기는 맨 꽁지에 섭니다. 여차하면 모든 가족과 재산을 버리고 도망이라도 갈 수 있을 만큼 멀리 떨어져 따라옵니다. 그러다가 한 나루터에 머물게 됩니다. 선뜻 나루터를 넘기가 편치 않습니다. 

22-24절에 보면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여기 홀로 남았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야곱은 이 고독하고 두려운 밤을 지내면서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이제 자기의 인생을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못하는 자기만의 자리입니다. 정말 정신없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밤을 지새는데 잠이 오지 않습니다. 잠을 이룰 수 없는 이 밤에 괴로움과 고민이 야곱을 계속 안타깝게 만듭니다. 

그때 웬 사람이 자신을 공격합니다. 야곱은 형이 보낸 첩자가 왔구나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싸웠을지 모릅니다. 야곱은 이때껏 한번도 누구에게 져 본적이 없었습니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실패라고는 몰랐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못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공격하던 그 사람은 자신의 환도뼈를 쳤습니다. 환도뼈는 허벅지와 엉덩이 사이에 연결되는 뼈를 가리킵니다. 환도 뼈를 치니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닥에 나뒹굴었습니다. 

그래도 뭐 야곱의 기질이 어디 가겠습니까? 다리를 질질 끌면서도 끝까지 상대방을 놓치 않았습니다. 26절에 보시면, 야곱에게 싸움을 걸어온 자가 “나로 가게 하라‘ 는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물고 늘어졌으면 이런 표현을 하겠습니까? 여기 26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무슨 말입니까? ”나를 축복하십시오. 이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를 축복하십시오.“ 이것은 절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야곱은 이 나루터에서 발버둥과 매달림의 차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진정 누구를 위해 무엇을 의지하고 살아야 될지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신앙은 발버둥이 아닙니다. 신앙은 매달림입니다. 여기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성공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성공이 아니지 않았습니까? 

밥 포드의 「하프타임」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가운데 “성공추구에서 의미 찾기로 바꾸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공만을 찾아서 몸부림치는 인생의 신기루 같은 성공은 인생의 모든 가치를 파괴시키고 우리를 허무 속에서 떨게 합니다. 사람이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결산이 가까울수록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의미 있는 일에 내 삶을 바치며 살아 왔느냐 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느냐, 내 이름이 남느냐, 그런 것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질수록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의미와 보람과 기회를 발견하고 “하나님, 정말 하나님이 주신 일 대문에 내 인생은 보람 있었고, 신바람 나고, 놀라운 인생이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내 평생의 보람 있는 가치를 발견하여야 합니다. 

여기 얍복강 나루터에서 주님이 물어 보십니다. 27절에 보시면 ?네 이름이 무엇이냐?‘ 여러분! 하나님이 몰라서 물어보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야곱 자신으로 하여금 자기 이름을 고백함으로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야곱이란 말은 그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 먼저 나오는 형을 시기하여 ’발뒤꿈치를 붙들고 나왔다‘는 데서 생긴 이름입니다. ?약탈자, 사기꾼, 강도?라는 뜻입니다. 왜 그러한 이름을 지었습니까? 야곱은 형님과 쌍둥이로 출생할 때 뱃속에서부터 형의 발꿈치를 붙들었습니다. 그는 신경질이 나서 2등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1등이 아니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절대 양보가 없는 사람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목적을 쟁취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 음성 앞에 부끄럽지만, 자기의 이름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예, 약탈자 야곱입니다. 네, 간사한 야곱입니다. 예, 저는 나하나 잘되는 것이라면 남을 짓밟고서라도 살았던 사람입니다.” 얼마나 챙피하겠습니까? 자신의 자존심이 그대로 무너지는 순간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고백을 듣고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십니다. ‘이제부터 네 이름을 야곱이라고 하지 말라.’ 네 재주로 인생을 살아가려고 하지 마라. 네 꾀로 네 요령만 가지고 험악한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지 말아라. 남의 복을 빼앗아 살려고 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내가 모자람이 없도록 마음껏 복을 부어 줄 것이다! ‘이제부터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하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하나님이 책임진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축복이요 이것이 신앙입니다. 

여기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얻는다는 것은 그의 존재와 성격과 사명과 삶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외면하고 자기 뜻과 자기 방식으로 재산을 모으고 큰 집안을 이루며 번성하는 인생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변화된 인생으로 세워집니다. 어두움 가운데서 하나님께 얻어맞고 새벽에 절룩거리며 얍복 나루를 건너는 홀로 섰지만, 그의 생애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붙잡히지 않으면 모든 것을 다 놓치게 되어있습니다. 여기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 상황을 호세아 선지자는 호12:4절에서?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기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더라’ 했는데 왜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는데 왜 웁니까? 기뻐 뛰어야지 왜 웁니까? 이 눈물은 가슴 깊이 숨겨두었던 자신의 속내를 들어내 보이는 눈물이었습니다. 꼭꼭 잠궈 두었던 교만과 가식를 털어 내는 눈물이었습니다. 그동안 인생을 발버둥치며 자기의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몸부림 속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는 그의 삶의 새로운 전환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억척스럽게 사는 것 같지만 그럴수록 더 외롭고 힘들었던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진실한 고백의 눈물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억척스러워 보였고 강해 보였지만 속에는 깊은 불안과 한없이 약한 모습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숨길 수 없는 부끄러움을 토하는 눈물이었습니다. 가장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야곱은 환도 뼈가 부러진 다음에야 진실한 기도, 제대로 된 씨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씨름은 야곱의 인생을 바꾼 새벽의 씨름이었습니다. 여기가 장소적으로 얍복 나루터였다면 시간적으로 새벽녘이었습니다. 내 인생을 버티어 주던 환도 뼈가 부러지는 얍복 나루터! 어둠이 물러가고 동이 터 오는 이른 새벽! 거기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긴긴 밤의 싸움이 끝나는 오늘 말씀의 결론 그 마지막 절 31절을 보십시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여기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입니다. 이제까지 태양은 나를 감시하고 나를 책망하는 두려움의 얼굴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깨지고 하나님 만나고 은혜를 체험하고 나니 어제 떠올랐던 그 태양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얼굴이었습니다. 사랑의 얼굴이었습니다. ?하나님, 내 환도뼈 잘 치셨어요.? 야곱은 일평생 절뚝거릴 때마다 얍복강 나루터를 건넙니다. 어거스틴은 말했습니다. ?위풍 당당하게 불의의 길은 걸어가는 것보다 절뚝거리며 의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축복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 가운데 이 나루터에 앉아 계신 분이 있습니까? 전진은 해야 하는데 그냥 주저 않고 싶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분이 있나요? 기도는 해야겠는데 선뜻 기도의 자리에 나서지 못하는 사람이 있나요? 또 무엇인가 사업을 추진하다가, 그만 장애물 앞에 모든 것을 포기하다시피 한 분들이 계십니까? 또 10년, 20년을 한 지붕 밑에서 부부가 함께 살면서 심각한 갈등을 가진 가정이 있나요? 이제 얍복강 나루터에서 야곱을 붙잡아 그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을 만드신 주님의 은혜 앞에 서야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것들이 위축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내 인생의 얍복강을 건너지 못하는 인생이 있다면 이제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 가운데 어려움이 있고, 또 뜻하지 않는 문제가 있을찌라도 얍복강에 다가오신 그 하나님을 만나야합니다.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등불 마져도 꺼뜨리기를 심히 원치 않으시는 그 주님의 가슴에 내 인생을 던지셔야합니다.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분은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그렇습니다. 어떤 인생의 짐도 심지어 내가 내 힘으로 벗어 던질 수 없는 죄 짐도 그 분은 당신이 나 대신 짊어지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내 짐을 대신 져 주실 뿐만 아니라 내 안에 성령으로 오셔서 죄 많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죄와 범벅이 되어 사는 나로 하여금 그 죄와 단절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할 뿐만 아니라!! 새 생명을 가진 자로서... 새 삶을 살게 하려고!! 하나님은 나에게 비전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굴복시키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주저앉히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약하게 만들겠습니까?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그 하나님은 내 인생 한 가운데 계셔서 나를 붙잡고 모든 것을 넉넉하게 이기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 다시 일어나 문제에 눌리지 말고 그 문제를 타고 오늘 수 있는 강한 믿음의 날개를 달고 일어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날개만 있으면 이 세상에서도 우리는 천국의 생활을 맛 볼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날개의 힘이 없어서 높이 날으지 못하는 것이 탈입니다. 

우리가 강한 믿음의 날개만 달면 그래서 높이 솟을 줄만 안다면 언제나 때를 따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볼 수 있고, 바위에서 샘이 터지는 응답을 볼 수 있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능력을 체험 할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서 풍성함을 맛보는 위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이 아침!! 야곱을 붙잡고 계신 그 은혜 앞에 설 때, 우리 역시 이 얍복강 나루터에서 브니엘의 아침 햇살이 맞이하게 것입니다. 분명 태양은 태양인데 어제의 그 태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얼굴 - 브니엘의 태양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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