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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일학교 교육(교사)의 중요성 (출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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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학교 교육(교사)의 중요성 (출 2:1-10)


한국 교회 주일학교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장년 수와 비슷한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접어들면서 정체기를 맞았고 2000년대 들어 감소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교회의 어린이 사역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곳은 예장통합 정도입니다.
우리 교단은 1만 1156교회, 교역자 2만 7633명, 평신도 289만 6967명을 자랑하고 있지만 총회 어느 곳을 살펴보아도 주일학교 통계는 없습니다. 다른 교세 통계는 있어도 어린이에 대한 교세 통계는 없다는 것은 그 만큼 어린이에 대하여 무관심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마나 예장 통합측에서 어린이 교세 통계표를 분석한 결과 전국 2,381개 교회의 어린이 수는 모두 111,829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 숫자는 이는 10년 전인 1991년도의 17만 6077명에 비해 무려 36.48%인 64,248명이 감소한 것입니다. 
50명 미만 인 교회 1,821개 교회 (76.5%) 
51명~100명인 교회는 350 개 교회
101~200명인 교회는 130개 교회
201~300명은 39개 교회
301~500명은 25개 교회 
500명 이상인 교회는 10개 교회 
1,000명 이상 인 교회는 6개에 불과했습니다. 

10년 동안 64,248명이 부흥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로 줄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그것은 한국 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는 통계입니다. 저 출산 현상으로 어린이의 숫자가 적다는 사회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어린이 전도에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목회의 초점을 장년에게만 둠으로서 교회학교가 발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앞으로 교회에 노인들만 남는 일들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교회는 어린이에게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교육 위원회 헌신예배를 드리면서 우리 교회 학교가 새 힘을 얻는 주일학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학교가 잘 되려면 좋은 교사가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장성하여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누가 그를 가르쳤습니까? 그가 배운 것은 애굽의 문화와 정치입니다. 바로 왕궁에서 그는 애굽의 지도자로서의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엉뚱하게도 애굽의 지도자가 아닌 당시 애굽사람들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되어진 일이지만 교육학적으로 볼 때 그가 받은 교육의 영향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받은 교육은 바로 왕의 궁중에서 유모의 신분으로 자신을 돌보았던 친모로부터 받은 교육입니다. 나일강에 목욕하러 왔던 바로의 공주는 아이 하나가 바구니에 담겨 떠내려오는 것을 보고 물에서 건져 올렸습니다. 공주는 그 아이를 자신의 양 아들로 삼고 그를 키우기 위해 유모를 구했는데 그가 바로 모세의 친모였습니다. 공주는 젖을 뗄 때 까지 모세를 맡겼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를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젖을 뗄 때까지 양육하였습니다. 
출 2:8-9절을 봅시다.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그 소녀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라고 했습니다. 

이 때가 모세의 교육 중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일생에 가장 중요한 시기를 바로 왕의 궁중에서 애굽사람들에게 맡기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여자 그것도 모세의 친어머니의 품에 맡겼습니다. 

사람이 어떤 시기에 어떤 교육을 받는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특히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장 깨끗한 마음을 가진 시기인 영아부터 7세 이전의 유치부 때에 어떤 교육을 받는가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모세는 인생에 황금 같은 그 시기에 친모의 품에서 이스랑엘의 영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모세는 젖 먹는 시기 동안 어머니의 품에서 “너는 이스라엘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너는 애굽인이 아니다.” 라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애굽 사람들에게 발각되면 쫓겨나고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아들에게 이스라엘 사람으로서의 긍지를 심어주었습니다. 젖먹이는 시기 동안 그런 교육을 받았는데도 그가 장성하였을 때 자신이 애굽인이 아닌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사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출 2:11-12절을 봅시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감추니라” 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청소년 시절은 애굽의 왕궁에서 왕자로 지냈습니다. 
애굽의 모든 문화와 발달된 교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왕자 수업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장성하여 어른이 되었을 때 그는 히브리 민족이 자기의 형제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 정체성 교육이 되었던 것입니다. 
자기 정체성 교육은 0세부터 자아가 형성되기 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린 나이일 수록 빠를 수록 좋습니다. 
모세에게 이 정체성의 교육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 결과 비록 애굽 왕궁의 왕자의 신분으로 자랐지만 왕자의 신분임을 자각하기 전에 이미 그는 히브리사람 즉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정체성 확립이 무의식 중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히브리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는 자라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격지 않았습니다.
애굽사람도 아니고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다. 라고 혼란스러워 했을 법한데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동족인 히브리 사람이 애굽 사람에게 핍박을 받는 것을 보고 분명하게 히브리 사람의 편에 섰습니다. 
이런 결과가 교육의 효과라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장성하여 어른이 될 때 까지 애굽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교육은 어머니가 가르친 짧은 시간의 교육을 뒤엎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가르침의 시기 문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교육하는 일에 있어서 어느 시기의 교육이 가장 중요 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정체성에 관한 한 교육은 태아 때부터 약 7세 이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가르치는 교사의 문제입니다. 
모세에게는 가장 훌륭한 교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어머니입니다. 교사는 어머니 같은 교사가 가장 훌륭한 교사입니다. 

한 어린 소년이 농부인 아버지와 읍내에 가보기 전까지는 농부가 되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읍내의 커다란 철공소에서 기술자가 기계를 수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부터 그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 후에 어느 변호사 사무실을 가게 되었습니다. 변호사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그는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보게 되었을 때 그는 또 다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의사가 되고 싶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교회에 갔는데 목사님의 은혜로운 설교를 듣던 그는 목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계속 꿈이 바뀌자 그는 하나님께 무엇이 되어야 할지에 대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농부, 기술자, 법률가, 의사, 군인, 항해사, 목사 이들 중 나는 무엇을 위하여 태어났습니까?“
그가 기도 드리는 중에 하나님의 세미 한 음성이 방안에 메아리치는 것 같았습니다. 응답이 내려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그 모두가 되어 보지 않겠는냐?"
그 소년은 깜짝 놀라서 "네? 어찌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음성이 대답하기를 "그들의 교사가 되면 되지 않는가 그러면 어떤 아이는 책을 쓰게 될 것이고, 어떤 아이는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아이는 의사가 되어 수술을 잘하게 되고, 또 어떤 아이는 설교를 잘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는 모든 것 중에 가장 훌륭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교사가 되면 됩니다. 

예수님 같은 교사가 됩시다. 
세상적인 성공의 기준에 의하면 예수님은 큰 '실패자'였습니다. 그의 탄생은 귀족적이 못되었습니다. 짚으로 된 마굿간의 침대는 아무리 보아도 귀족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장차 유명해질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교육을 받는데도 실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국민학교 문턱도 가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유명한 랍비들이 가르치는 유대의 어떤 신학 공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논문 쓰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배운 사람마다 완전한 변화와 놀라운 행복의 체험을 하였습니다. 

성질이 아주 급한 베드로는 교회의 반석이 되었고 우뢰의 아들 요한을 사랑의 사도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후에 그분에 대해 거대한 분량의 책들을 저술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수 백 개의 합창과 교향악의 주제가 되었으며 그의 가르침에 따라 수 많은 대학들이 창립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스승이며 선생님이십니다. 

본을 보이는 교사이셨습니다. 
요 13:13-15절에 보면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본을 보이는 교사가 위대한 교사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어떤 본입니까? 섬김의 본입니다. 낮아짐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교사가 본을 보이지 않으면 학생들은 가르침을 받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본은 놀랍게도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님이신 동시에 위대한 교사인 것입니다. 

인도의 한 어머니가 어느 날 아들을 데리고 간디를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제 아이가 사탕을 너무 많이 먹어 이빨이 다 썩었어요. 사탕을 먹지 말라고 아무리 타일러도 말을 안 듣습니다. 제 아들은 선생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지 잘 들어요.그러니 선생님께서 말씀 좀 해주세요” 
그런데 뜻밖에도 간디는 한달 후에 데리고 오십시오. 그때 말하지요라고 했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놀랍고도 이상했으나 한 달을 기다렸다가 다시 간디에게 갔습니다. 그랬더니 “한달 만 더 있다가 오십시오”하는 것이였습니다. 
“한 달씩이나 또 기다려야 하나요?” “글쎄 한 달만 더 있다가 오십시오”
아이 어머니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으나 참고 있다가 한달 후에 또 갔다. 그러자 비로서 간디는 그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지금부터는 사탕을 먹지 말아라” 
“예! 절대로 사탕을 먹지 않을래요”

소년의 어머니가 간디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말씀 한 마디 하시는데 왜 두 달씩이나 걸려야 하나요?”
그러자 간디는 말했습니다. “실은 나도 사탕을 너무 좋아해서 사탕을 먹고 있었어요. 그런 내가 어떻게 아이보고 사탕을 먹지 말라고 할 수 있나요. 내가 사탕을 끊는데 두 달이 걸렸답니다” 
교육은 말로만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사 한 사람의 희생의 모범이 가장 좋은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교육이란 끝없이 지속되는 희생의 과정입니다. 

결심하십시오.
훌륭한 교사가 되겠다고.... 당신이 교회학교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가르치면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놀라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주일학교 교육에 관심을 가집시다. 그리고 교사로 섬기시를 바랍니다. 교회학교 교사로서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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