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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다의 비애 (막 1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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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비애 (막 14:10-21)


이의용씨가 쓴 글 “돈이 보낸 편지”를 소개합니다. 
당신은 언제나 나를 움켜쥐고는 나를 당신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당신이 나의 것이지요. 나는 아주 쉽게 당신을 지배할 수 있어요.
우선 당신은 나를 얻기 위해서라면 죽는 것 말고는 무엇이든지 하려고 합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있어 무한히 값지며 보배로운 존재입니다. 물이 없으면 한 포기의 풀도 살 수 없듯이, 내가 없으며 사람은 물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죽고 말 것입니다. 회사도, 정부도, 학교도, 은행도...
그렇다고 내게 어떤 신비의 생명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내 힘으로는 아무 데도 갈 수가 없지만, 이상한 사람들과 수없이 만납니다. 그들은 나 때문에 서로 인격을 무시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합니다. 순전히 나 때문에 말이죠. 
사람들에게 욕망이 없다면 난 어쩌면 아무 쓸모가 없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는 거룩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나, 가난하고 굶주린 이들을 돕는 선한 사람들, 환자들의 고통을 줄이려는 이들과도 만납니다. 나의 힘은 사실 무한하답니다. 부디 나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현명하게 나를 다루십시오.

돈에 관계된 세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첫째는 벌기가 어렵고, 둘째는 간직하기가 어려우며, 셋째는 쓰기가 어렵습니다. 그중 세 번째 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같은 돈이라도 수전노에 의해 쓰여지면 악한 것이 되고, 자선사업가에 의해 쓰여지면 선한 것이 됩니다. 잘못 쓰면 성경에 있는 대로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돈은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행복을 가져올 수도 있고 불행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돈에 정신이 팔린 유다입니다.
가룟 출신의 유다는 예수님이 택하신 열 두 명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저가 예수님과 그 일행이 사용하는 모든 돈을 관리한 것으로 보아 재정 관리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그는 치밀한 성격의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돈을 제대로 관리할 수가 없었겠죠. 더군다나 돈에 관한한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전문가가 한 사람 있습니다. 

바로 세리였던 마태입니다. 그런데도 마태를 제쳐놓고 돈 관리를 맡았다고 하는 것은 그가 돈 관리에 적합한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한 편으로는 상당히 똑똑한 사람입니다. 그만큼 신뢰를 얻기도 했을 것입니다. 다른 것도 아닌 돈을 맡길 정도라면 비록 예수님이 때로는 통행세를 낼 돈 조차도 없어서 물고기를 잡아 그 배에서 나온 한 세겔을 가지고 통행세를 내기도 했던 것을 생각하면 돈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었겠는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예수님과 열두 제자 모두 열세 명이 다니며 사용하는 비용이 결코 적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항상 필요한 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절약하며 예비하기도 해야 할 터이니 돈 맡은 자의 책임이 그만큼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가룟 유다가 돈을 너무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돈을 사랑했느냐 하면 돈 궤에 있는 것을 훔쳐갈 정도로 돈을 좋아했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서 요한 사도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겉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척 하였지만 실제로는 그가 도둑이었습니다. 그가 돈궤를 맡고 있었는데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갔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예수님의 제자 중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모든 것을 다 버려두고 주님을 좇았습니다. 그건 비록 남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자리에 있었기는 해도 세리였던 마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남들이 매국노라고 손가락질을 할망정 세리라고 하는 자리는 평생 삶이 보장되는 자리입니다. 먹고 사는 한은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마태 역시 주님이 부르실 때 그 자리에서 주님을 따랐습니다. 어찌보면 편하게 살 수 있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것입니다. 그건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한데 유다는 왜 그토록 돈에 미련을 가졌던 것일까요? 저가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마음은 탐욕으로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돈궤를 맡았으면 그것을 잘 관리를 해야 하는데 오히려 돈궤를 맡은 자로서 그 돈을 훔쳐간다고 하는 것이 그의 탐욕이 가득한 마음을 잘 보여줍니다. 어찌 보면 장사 수완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팔기 위해서 대제사장들을 만나서 얼마를 줄 거냐고 흥정을 하는 것으로 보아도 저가 그냥 보통 사람은 아닙니다. 돈에 관한한 일가견이 있습니다. 더욱 그는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따르면서 예수님의 모든 행적을 유심히 살피면서 한편으로는 예수님이 유대의 왕이 되실 것이라는 기대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한데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갔을 때부터 부쩍 죽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때 가룟 유다로서는 무척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릴 때만 해도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할 때 예수님께서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실 때 또 한 번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자기가 예수님께로부터 야단을 맞은 것도 못마땅하지만 예수님이 다시금 죽음을 말씀하실 때 이만저만 실망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왕 죽을 바에는 그 죽는 선생님 예수를 팔아서라도 한 푼이라도 챙겨야 되겠다고 하는 고도의 계산이 섰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대제사장을 찾아가서 “내가 예수를 넘겨준다면 얼마를 주겠느냐?”고 흥정하여 은 스무 냥을 받기로 하고 그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노립니다. 요한 사도는 이를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라고 기록합니다. 결국 저의 탐욕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틈탈 기회를 주었던 것입니다. 아니 탐욕 때문에 사탄의 유혹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 결과 유다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탐욕 때문에 자기 스스로 멸망의 길로 빠져들고 만 것입니다.

어느 날 사탄이 열 개의 병을 들고 한 청년을 찾아와서 여기 아홉 개의 병에는 꿀물이 들어있고 한 개의 병에는 독약이 들어있는데 꿀이 들어있는 병을 찾아 마시면 엄청난 액수의 돈을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처음 청년은 돈이 아무리 좋다해도 생명과 바꿀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그러나 계속 유혹되는 사탄의 간청에 청년은 ‘열 병 중에 딱 한 병인데...’ 하며 떨리는 손으로 병 하나를 골라 마십니다. 다행히 꿀물이 든 병이었습니다. 그래 청년은 돈을 받으면서 다시는 자기를 찾아오지 말라고 사탄에게 명령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이번에는 아홉 개 중 하나를 마시면 돈을 두 배로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이렇게 청년은 쉽게 번 돈으로 방탕에 빠집니다.

급기야 알콜, 마약 중독 등 허물어져 가는 생활 속에 계속 사탄을 불러대기 바쁘게 됩니다. 두려움마저 사라졌습니다. 이제 남은 두 병을 앞에 두고 ‘돈 벼락이냐, 죽음이냐’ 하며 마지막 인생의 승부를 거는 지경에 이릅니다. 이미 나이가 들어 노년에 이른 그는 마지막 병을 식은 땀을 흘리며 꿀꺽 삼킵니다. “아! 나는 이겼어. 끝까지 살아남고야 말았어! 이제 어서 돈을 내놔라.” 승리에 도취되어 어쩔 줄 모르는 노인에게 사탄은 마지막 병을 스스로 마시면서 “후후, 처음부터 독약이 든 병은 없었지, 그러나 너는 이미 돈이라는 독약에 죽어가고 있었지! 너는 청춘을 돈이란 종이에 얽매어 살다가 영원한 것을 잃어 버렸다. 이제까지 받은 돈의 댓가를 지금부터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고통과 함께 지불해야 할 것이다.”

돈은 아주 좋은 종이 되기도 하지만 아주 나쁜 주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 돈이 말하기 시작하면 진리는 침묵하게 됩니다. 사람이 돈을 시간보다 소중히 여기면 그 때문에 잃어버린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망각하고 삽니다.
나를 위해 쓴 돈은 내 목의 연자 맷돌이요,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준 돈은 천사처럼 나에게 날개를 달아줍니다. 돈을 벌기보다 바로 쓰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가룟 유다 꿈 많고 총명한 젊은이였지만 그만 탐욕 때문에 돈 돈 하다가 돌아버리고 만 불쌍한 사람입니다. 결국 그는 자기 스스로 자기의 목을 맬 수밖에 없었지만 그 죽음마저도 그에게는 사치였습니다. 목맨 나뭇가지가 끊어진 건지 아니면 줄이 풀린 건지는 몰라도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와서 죽고 말았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가운데 돈 돈 하다가 돈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이리 저리 치이다 불쌍하게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나는 무엇에 정신이 팔렸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하나님은 God입니까 Gold입니까? 시력 나쁜 사람이 많아 난시현상이 일고 있습니다. 두 손 모아 기도하며 입으로는 ‘하나님’을 찾는데 속으로는 ‘돈님’을 찾는 돈 때문에 돌아버린, 돈 세상 속에서 돈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돈이 전지전능이요 돈에 생사여탈권이 달렸습니다. 돈 많으면 복 받은 자요. 돈 없으면 저주 받은 듯한 세상입니다. 현대인의 모든 척도는 돈입니다. 그래서 성도들도 돈을 믿고, 돈에 소망을 걸고, 돈을 사랑하며, 돈이 없으면 저희가 아무 것도 아니요 오직 돈만이 영원할 듯합니다. 돈 앞에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도 무너지고 선교도 돈으로 하고 돈이 인격이고 돈만 있으면 박사도,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총회장도 됩니다. 벌고 싶은 돈은 무한하고 돈 앞에 인간은 무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페르디난트 퀴튼베르거가 <양키의 신앙고백>이라고 조롱한 벤자민 프랭클린의 글 “돈기도문”은 오늘의 한국적 자본주의 정신을 풍자적으로 엮어 보기에 충분합니다. 
“지갑(토는 통장)에 계신 나의 돈님이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돈이 판치는 세상이 임하셨사오니 소득이 부동산 투자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증권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나에게 쓰고 남을 돈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고소함같이 나의 진 빚은 잊게 하옵시고, 우리를 불황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부도와 파산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자본주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돈님께만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돈내.>

아마 이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돈을 지배하느냐 아니면 내가 돈의 지배를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8:18은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재물을 어떻게 얻느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얼마큼의 재물을 얻도록 만드시느냐 하면 빌립보서 4:19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주의 사자 바울을 위하여 선교 예물을 드린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해 주신 말씀입니다.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지성으로 섬겼다가 자식의 복과 자식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는 복과 재물을 잃지 않는 복과 잃었던 것을 다시 찾는 복을 받았습니다. 나그네와 가난한 자를 돕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람은 지나가는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하나님이셨습니다. 잠언 11:24은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고 합니다. 

이러한 원리는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적용됩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 안에서 능력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서 쓰고자 하면 우리의 재물도 우리의 건강도 우리의 시간도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이요 더 부하게 되고 더 건강하게 되고 더 여유롭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우리들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이고 있습니다. 얼마나 바쁜지 예배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쁩니다. 이건 일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신 것은 결국 일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복된 삶을 누리며 살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즐겁게 일하는 가운데 건강을 얻게 되고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기에 일에 매이지 말고 즐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즐기기는커녕 하나님 앞에 예배할 시간조차 빼앗긴다면 그것은 결코 복이 아닙니다. 우리 나름대로의 목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목표가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는 것이 되지 못한다면 결국은 유다처럼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밖에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나발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많은 양떼를 거느린 목동들의 주인이었습니다. 그에게 어느 날 다윗이 부하들을 보내어 “우리에게 먹을 것을 좀 나눠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청을 합니다. 사실이지 그동안 다윗은 나발의 목동들과 함께 있으면서 오히려 그 모든 양떼를 지켜주는 역할을 해주었지 결코 조금도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나발은 한 마디로 거절합니다. 심지어는 다윗을 욕하기까지 합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다윗이 그 이야기를 듣고 화가 잔뜩 나서 “그냥 둘 수가 없다 죽여 버리고 말겠다”고 하면서 부하들을 무장시켜 함께 나발을 향해 나갑니다. 다행히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라 그 말을 듣고는 얼른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싣고 다윗을 마중나가 다윗의 마음을 누구러뜨렸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뼈도 못추릴 뻔 했습니다. 한데도 그 성질머리가 얼마나 못됐으면 나중에 그 말을 듣고는 낙담하여 죽었다고 하지를 않습니까? 

이것이 섬김의 기회를 저버린 자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재물을 나에게 맡겨 주셨는지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재물, 재능, 시간, 건강, 자녀들, 그리고 우리의 가문이나 학벌이나 직위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들은 주와 이웃들을 섬기라고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나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로 하여금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있습니까? 가룟 유다는 돈 때문에 예수를 팔았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예수를 팔고 있는지 아니 예수로부터 멀어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자신을 살펴야 됩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사랑을 베풀고 섬길 수 있는 기회를 막고 있는지 살피십시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것들을 가지고 이를 아름답게 선용하여 나와 온 가족들 그리고 모든 이웃들과 교회와 학교와 직장에 이르기까지 다 함께 복된 길로 나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조건 없이 다락방을 준비하는 한 여인입니다.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묻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제자 중의 둘을 보내십니다.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그래서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 음식을 준비합니다. 
이 때 만났던 여인이 마가 요한의 어머니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일컫는 이 장소가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의 장소로 사용이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하나됨을 이루기 위한 섬김의 표시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십니다. 나중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하늘로 승천하신 다음 120명의 주를 따르는 제자들이 함께 모여 한 마음으로 전혀 기도에 힘쓰는 기도처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순절 성령께서 이 다락방에 모인 무리들 가운데 강림하심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시작이 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최초의 교회가 바로 이 마가의 다락방이 됩니다. 
한 여인이 조건 없이 주님을 섬겼더니 이 놀라운 복을 누리게 되었고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지만 그 아들 마가가 위대한 사도 베드로의 수제자로 그리고 최초의 복음서 집필자로 우뚝 서게 된 것을 기억하십시오. 

유다는 욕심에 눈이 어두워 심지어는 자기 선생까지도 팔아먹다가 결국 자기 영혼까지 팔아먹고 망해버렸지만 이 여인은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 기쁨으로 주님을 섬겼고 그로 말미암아 자기 집의 다락방이 위대한 복음 역사의 산실이 되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아 함께 살피는 이 마가복음이 바로 그 여인의 아들 마가가 쓴 복음서의 한 장면입니다. 마가가 이 다락방을 주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게 된 배경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것도 바로 자신이 그 집의 아들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그 배경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한 이 대목에서 의도적으로 가룟 유다와 자기 어머니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돈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이라면 자기 어머니는 주님을 위해서 자기 다락방까지도 흔쾌하게 내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가장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이 여인이기에 마가는 더 이상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자기가 이 복음서를 통해서 이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은혜와 복을 받았는가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매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보다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습니까? 나로 하여금 세상의 늪으로 결과적으로 죽음의 늪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제 나에게 있어서 주가 쓰시겠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살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버려지는 자요 멸망하는 자가 아니라 쓰임 받는 자요 영광의 자리에 함께 나아가는 성도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마지막 만찬이 시작이 됩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그때 모두가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했지만 끝까지 뻔뻔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하였겠습니까? 그러니 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디 가룟 유다 한 사람뿐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자신을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는 주님과 우리 자신 모두에게 유익한 자입니까? 아니면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한 사람입니까? 하지만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이라도 다시 주님의 손에 붙잡히면 가장 존귀한 자로 바뀌게 된다는 것도 기억하십시오. 마가가 바로 그랬습니다. 그랬던 마가가 이 복음서를 기록할 정도로 존귀한 자로 탈바꿈을 했습니다. 그 누구라도 안 될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의 손에 붙들리기만 하면 아니 우리가 그 주님의 못 박힌 손을 붙잡으면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과 모두를 위하여 존귀한 자로 귀하게 쓰임 받는 자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가지고 주님과 이웃을 위해 아름다운 섬김을 실천하는 성도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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