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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아는 지식 (호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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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아는 지식 (호 6:1-3) 


'제임스 패커(James Packer)'라는 유명한 신학자, 목회자가 있습니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27년 동안 교수 및 목회사역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자중의 한 명입니다.  그는 청교도 신앙을 바탕으로 반지성적 경향들에 맞서 영성과 지성을 겸비한 복음주의 운동을 가능케 하고, 모든 측면에서 엄밀한 신학적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준 인물입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입니다.  이 책은 1973년 초판이 출간된 이래 100만부 이상이 팔렸고, 30년간 전 세계 사람들의 삶과 신앙에 영향을 준 현대의 고전입니다.  그는 책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의 삶에 주는 영향에 대한 성경적 교리를 탁월하게 풀어쓰고 있습니다.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영광과 기쁨, 그리고 경이로움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합니다.  믿는 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야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섬기고, 바르게 살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영생은 참 유일하는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성숙한 삶도 예수님을 아는 것에서 완성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줍니다.  성경을 가까이하면서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안다'는 말은 지식이 아니라 체험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지식으로, 체험으로, 의지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성숙한 사람으로 하나님이 원하는 길을 갑니다.  우리의 바르고 참된 삶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찾아야 합니다. 

본문이 바로 그것을 알려줍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당시 백성들에게 외쳤던 말이 바로 '여호와를 알자'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고, 그것이 있어야 모든 것이 풀어짐을 선포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 풀리지 않은 문제의 현장에서 우리는 호세아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하나님을 알아야 할까요?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발견합니다.

첫째는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오늘 우리는 호세아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호세아는 분열왕국시대 북쪽 이스라엘의 선지자였습니다.  나라가 갈라진 이후 북 왕국은 급속도로 타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총체적인 부패와 우상숭배가 만연했습니다.  그 중심에 지도자, 리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누구보다도 지도자의 잘못을 지적합니다.  특히 호세아가 활동하던 시기는 왕국의 마지막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는 혼란과 쇠퇴의 시기였습니다.  이제 나라는 심판이 임박했습니다.  백성들은 영적으로 무감각한 상태에 있었고, 죄와 우상숭배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호세아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그들을 깨우치기 위해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본문은 호세아의 선포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선포의 말씀입니다.  그는 여기에서 먼저 하나님을 아는 것의 중요함을 일깨워줍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줍니다.  먼저 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기에서 그가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다, 치셨다는 말입니다.  매우 가슴 아픈 표현이지만 이 말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찢고, 가혹하게 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의 범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주변 이방나라와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이 어둠에 빠져 있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선을 알고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경건을 추구하지 않았고, 제사에 소홀하며 성전을 찾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절기를 지키지 않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모습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주변나라보다 더 악하여 하나님을 몹시 실망시키고, 아프게 하였습니다. 

이런 백성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잠잠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그들을 향해 말씀하고, 경고하고 깨우쳤지만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진노의 매를 드시고, 심판의 잔을 쏟아 부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공의입니다.  이것이 택한 백성들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공의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 편이요, 나를 선택하고, 영원히 품고 하늘까지 이끄시는 분이시지만, 그분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불의를 용납하지 않고, 어두움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죄를 싫어하시고 악을 미워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간격을 벌리게 만드는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죄입니다.  죄가 아니면 하나님과 우리사이가 멀어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사59:1-2)

여러분,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시고 악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개인과 공동체에 죄가 만연하고 악이 팽배할 때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죄를 범할 때 사람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다스리십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믿으며 모든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혹이라도 이렇게 잘못하는데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는 것은 오직 기다리고, 한 번 더 기회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돌아서야 합니다.  회개하고 주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죄를 청산해야 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을 알아 모든 죄를 버리고 정결하고 깨끗한 삶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1절의 말씀을 다시 보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찢고 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라고 한다면 도로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공의의 하나님이시면서 아울러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이 잘못하며 죄를 범했을 때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마지막까지 깨닫지 못했고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찍 북쪽은 아수르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남쪽 유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외쳤지만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바벨론의 침공을 받고 멸망을 당합니다.  나라는 초토화 되었습니다.  성전은 파괴가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무수히 죽고, 남은 사람들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세상의 역사에서는 강대국의 침략으로 당한 약소국의 설움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였습니다.  살게도 하고 죽게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하시는 하나님의 간섭과 섭리였습니다.  이제 나라는 눈물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살 소망이 없어지고 참혹하고 비참했습니다.  울 기력도 없이 무너졌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습니다.  아무런 소망도 희망도 꿈도 없어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의 눈물을 보셨습니다.  그들의 고통과 시련에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 오셨습니다.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품고, 그들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다시 돌아온다, 다시 일어선다, 이제 내가 너희와 함께 한다, 내가 너희를 도와주리라'  이것이 모든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여기 호세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도로 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상처받은 육신과 영혼을 치유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을 싸매어 주십니다.  그래서 그들이 고난 중에 다시 일어서고 모든 것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그리고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때로 진노하시며 죄를 물리치지만, 상처받은 영혼을 품어 주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성품은 언제나 공의와 사랑이 병행합니다.  공의만 있지 않고, 사랑만 있지 않습니다.  공의 속에 사랑이 있고, 사랑 안에 공의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이고, 신약의 성품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구약 속에 사랑이 있고, 물론 신약 속에도 공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두 가지가 함께 갑니다.  균형과 조화를 이룹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합니다.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 심판과 긍휼의 하나님, 진노와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안다면 우리도 모든 삶에서 공의와 사랑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오직 공의만 주장합니다.  은혜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아야 합니다.  공의와 사랑, 정의와 은혜가 언제나 함께 가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기에 잘못한 것도 그냥 모든 것을 은혜로 넘어가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이기에 잘못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고, 이해하고, 자비를 베푸십니다.  불쌍히 여기고 품으십니다.  이것이 실현되는 공동체가 좋은 곳입니다.  뭔가 잘못을 찾으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사람을 매장시키는 각박한 세상에서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싸매시고, 도로 낫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기에 오늘도 힘을 얻습니다.  지치고 힘든 인생길에, 시련과 고통의 골짜기를 지나갈 때 나를 감싸시고, 위로하고, 힘주시는 하나님을 다시 붙잡으십시오.  그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며 위로받고, 힘을 얻어 날마다 승리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불변의 하나님입니다. 

3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여기 말씀에서 주목할 말은 '어김없나니'라는 말입니다.  예전 성경에서는 '일정하니'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  표준새번역에는 이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주를 알자 애써 주를 알자 새벽마다 여명이 오듯이 주께서도 그처럼 어김없이 오시고, 해마다 쏟아지는 가을비처럼 오시고,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신다"  자연은 변하지 않습니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이 일정합니다.  계절의 순환이 일정합니다.  그것과 같이 하나님의 임하심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정하게, 어김없이, 변함없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1:17)  예수님에 대해서도 이렇게 소개하며 알려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13:8)  주님은 동일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한결같은 분이십니다.  그분은 변함이 없습니다.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습니다.  언제나 일정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바로 이렇게 변함없고 한결같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변함이 없습니다.  한번 우리를 택하시면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구원이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설령 하나님을 실망시키고, 범죄하고, 잘못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버리고, 배신하고, 나를 떠나도 하나님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변함없이 나와 함께 합니다.  한결같이 나에게 다가오시고, 일정하게 우리를 대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변하는 것이지, 결코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고 사는 우리도 한결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결단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가만히보면 사람이 처음부터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의욕이 대단하고, 열정으로 가득하고, 못할 것이 없는 것처럼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속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점점 변하고, 의욕도 열정도 식어집니다.  그러다가 끝은 아주 흐지부지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많이 경험하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신 것처럼 신실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은 한마디로 신실한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곧 '신실'을 의미합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젊어서나 늙어서나, 언제나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엎드려 기도하고, 맡겨진 일에 충실한 사람들이 바로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오늘 이 시대는 바로 이런 사람을 찾습니다.  너무도 변하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시대이기에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이 바로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한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의욕과 결단과 헌신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점점 시들어갑니다.  그러다가 지금처럼 여름이 지나가면 더욱 식어집니다.  그렇게 흐지부지 한해를 마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해마다 이것을 반복합니다.  언제까지 이런 삶이 반복되어야 하겠습니까?  이제 변함없는 하나님을 안다면 다시 열정과 의욕을 회복해야 합니다.  상황이나 현실이나 조건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변하지 않는 신실한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취할 태도입니다.  이제 나의 부족함을 돌아보고 다시 열정을 회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과 불변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지식으로만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이런 하나님을 굳게 믿고, 바르고 참된 삶을 향해 한 주간도 힘 있게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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