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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삭의 배필을 구하다 (창 2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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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배필을 구하다 (창 24:1-27)


1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2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컨대 네 손을 내 환도뼈 밑에 넣으라 3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4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5 종이 가로되 여자가 나를 좇아 이 땅으로 오고자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의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6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삼가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 7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8 만일 여자가 너를 좇아오고자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9 종이 이에 주인 아브라함의 환도뼈 아래 손을 넣고 이 일에 대하여 그에게 맹세하였더라

10 이에 종이 그 주인의 약대 중 열 필을 취하고 떠났는데 곧 그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 11 그 약대를 성 밖 우물 곁에 꿇렸으니 저녁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러 나올 때이었더라 12 그가 가로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13 성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섰다가 14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너는 물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15 말을 마치지 못하여서 리브가가 물 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그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라 16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더라 그가 우물에 내려가서 물을 그 물 항아리에 채워가지고 올라오는지라 17 종이 마주 달려가서 가로되 청컨대 네 물 항아리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우라 18 그가 가로되 주여 마시소서 하며 급히 그 물 항아리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하고 

19 마시우기를 다하고 가로되 당신의 약대도 위하여 물을 길어 그것들로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20 급히 물 항아리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약대를 위하여 긷는지라 21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니 22 약대가 마시기를 다하매 그가 반 세겔 중 금고리 한 개와 열 세겔 중 금 손목고리 한 쌍을 그에게 주며 23 가로되 네가 뉘 딸이냐 청컨대 내게 고하라 네 부친의 집에 우리 유숙할 곳이 있느냐 

24 그 여자가 그에게 이르되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니이다 25 또 가로되 우리에게 짚과 보리가 족하며 유숙할 곳도 있나이다 26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27 가로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오늘 읽은 말씀은 이삭의 배필을 구하는 과정입니다. 이 말씀은 전체 창세기 말씀 중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무려 67절에 걸쳐 이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비롯해 해와 달과 별 등 천지를 창조하시는 데는 31절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삭의 배필을 구하는 데는 그것보다 2배 넘게 걸렸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선택 중에 하나가 바로 배우자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어떤 배우자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 운명이 바뀝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성경에서 말씀하는 배우자 결정의 원리에 대해서 정리했으면 합니다.

충성스런 아브라함의 종

아브라함에게는 충성스런 종이 한 명 있었습니다. 이삭의 배우자를 정하는 사건의 주도적인 인물은 바로 이 종인데 24장 그 어느 곳에서도 종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15장 2절에서 아브라함의 충성스런 종의 하나로 엘리에셀이 언급되었던 것에 비추어 이 종이 엘리에셀일 거라 추론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종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엘리에셀이라 단정하기도 어렵습니다. 엘리에셀이었다면 엘리에셀이라 말을 했을 것입니다. 

이 종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이 종은 매우 충성스런 종이었습니다. 2절에서 아브라함이 자기 모든 소유를 맡겼다고 하며, 또 아브라함에게 가장 중요했던 아들의 배필을 결정하는 문제를 전적으로 일임한 것을 볼 때 그 종을 향한 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 종의 이름이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종에게 무슨 이름이 필요하겠습니까? 이 종은 24장 내내 자신을 ‘종’이라 부를 뿐이며 아브라함을 ‘나의 주인 아브라함’이라 부릅니다.

이 종의 충성됨은 24장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종은 자기 주인 아브라함의 믿음대로 하나님이 도우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12) 하고 기도했고 그 기도대로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이 종은 자기 일을 마치기까지는 먹지도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리브가의 오라버니 라반과 그의 가족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허락을 받기 전까지 음식을 대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33절입니다. “그 앞에 음식을 베푸니 그 사람이 이르되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 이 종은 또한 매우 지혜로운 종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알기를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자신 주인 집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34절과 35절입니다. “그가 가로되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시되 우양과 은금과 노비와 약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또한 34절에서 49절까지 자세히 설명하여 이 일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일이었음을 설득하여 리브가의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내었습니다. 

이 설명을 듣고 라반과 그의 아버지 브두엘은 50절과 51절에서 이렇게 동의합니다.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가 그대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대로 그로 그대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그의 충성됨은 그 다음 장면에서도 확인 됩니다. 리브가의 가족들은 열흘 동안 머물 것을 요구하였지만 이 종은 날이 밝자 당장 출발하려 합니다. 56절입니다. “그 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만류하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이삭의 배필을 찾았기에 편히 몇일 정도 쉬어갈 만도 한데 이 종은 당장 떠나겠다고 합니다. 주인이 얼마나 이 소식 듣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믿고 맡길 만한 사람, 주인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사람, 주인의 믿음을 그대로 이어받은 사람,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 그러면서도 이름도 없이 주인의 영광만을 구하는 사람. 이것이 바로 종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고백하였는데 종의 자세가 바로 이와 같다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맡은 직분에 대해서,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서 이처럼 종과 같은 자세로 일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모든 일을 자기 뜻대로 하고 자기 욕심을 좇아서 행하고 있습니까? 

인간은 조그만 권력만 주어지면 그것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려는 악한 종의 모습을 보입니다. 당신은 주님이 믿고 맡길 만한 사람입니까? 주인의 명령대로 가감 없이 순종하는 사람입니까? 주님의 말씀대로 믿으며 나아가는 사람입니까?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지혜롭게 처리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주님의 기뻐하심을 좇아서 행동합니까?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주님의 영광과 기쁨만을 위하여 충성하는 사람입니까?

이렇게 주님께 충성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복을 주시되 우리 자녀들에게 믿음이 좋고 훌륭한 배우자를 얻을 수 있는 복을 주십니다.

이삭의 배필을 구하는 원리

이삭의 배필을 구하는 원리는 ‘첫째,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을 구한다.’입니다.

아브라함이 종에게 명령한 것은 3절과 4절입니다.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아브라함의 고향 족속에게로 가서 이삭의 배필을 구하라는 이유는 자기 고향 사람들은 그래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신앙적 결혼을 원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신앙적 결혼을 원하는 이유를 신명기 7장 3절과 4절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의 길로 빠진 이유를 그들은 결혼의 잘못에서 찾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솔로몬 왕의 실패를 들 수 있습니다. 열왕기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일찌기 이 여러 국민에게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와 서로 통하지 말며 저희도 너희와 서로 통하게 말라 저희가 정녕코 너희의 마음을 돌이켜 저희의 신들을 좇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저희를 연애하였더라 왕은 후비가 칠백 인이요 빈장이 삼백 인이라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왕상11:2-3) 이스라엘의 이런 우상숭배 때문에 바벨론에 의해 망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포로로부터 돌아온 뒤 펼쳤던 개혁 조치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이방 여인이나 이방인 사위를 둔 사람들을 정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 서에 그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족보를 소중히 여기는 이유도 그들이 이방인과 섞이지 않은 순수성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배우자의 존재라는 것은 이만큼 결정적입니다. 부부는 단순히 함께 사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공유하는 존재입니다. 종교개혁가 루터는 원래 수도사였지만 독신이 아니라 가정을 갖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 하여 이에 순종하여 결혼을 하였습니다. 41살에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그리스도만을 알고 살았던 수도사 루터는 결혼 후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보다 아내를 더 의지하고 그리스도에게서보다 아내에게서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아내라는 존재가 그의 인생과 신앙에 얼마나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신앙을 중시하는 것을 매우 고리타분하다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사랑이면 다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루터의 말을 언급하겠습니다. “아내를 얻는 것은 퍽 쉬운 일이다. 그러나 일관성을 갖고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어렵다. 단순한 육체의 결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취미와 성격의 동질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동질성은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취미와 성격의 동질성! 바로 신앙적 차이가 이런 동질성에 결정적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 생각하며 감사하는 사람하고 자기 노력이라 자만하며 이기적인 사람의 차이입니다. 인생에서 닥친 어려움을 기도와 하나님 뜻 안에서 풀어보려는 사람하고, 불평과 술과 담배로 풀어보려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가장 중요한 시간과 물질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기를 원하는 사람하고 자신의 행복과 쾌락을 위해서 사용하기를 원하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행동의 기준이 성경이 된 사람하고 자기 경험과 판단이 이끌어 가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가정의 목표가 하나님의 뜻과 영광이 된 사람하고 불분명하거나 자기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의 차이입니다. 물론 이 모든 차이들은 서로 사랑한다는 것과 한 가정을 이루어 안정된 생활과 자녀들을 낳고 기른다는 공동의 목표에 비한다면 극히 작은 차이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차이가 인생을 힘들 게 할 때가 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선상에 서 있다면 신앙의 문제는 심각히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모님들이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이삭의 배필을 구하는 사람은 그 아비 아브라함이었습니다. 물론 오늘날에야 본인들이 알아서 그 짝을 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녀들이 신앙 안에서 좋은 배필을 만날 수 있도록 부모는 기도하고 또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치 원격 조정과 같다 할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신앙적 결혼을 강조하는 것이 좋습니다. 신앙 안에서 보여주는 부모들의 아름다운 모델은 자녀들이 장차 배우자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은연 중 자녀들은 아빠나 엄마를 장차 그들 배우자의 모델로 삼는다는 것이 심리학의 정설입니다. 그 롤 모델이 좋지 못하면 자녀들은 엉뚱한 선택을 하고 맙니다. 무엇보다 기도가 중요합니다. 자녀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구하되 좋은 신앙의 배우자를 놓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좋을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둘째, 기도도 인도함을 받으라.

아브라함의 종은 기도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12절에서 14절입니다. “그가 가로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성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섰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너는 물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결혼에서 절대적인 것은 본인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이 보내주신 짝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 결혼하는 것입니다. 

저는 젊었을 때 결혼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결혼을 위해서 기도하는 후배를 보면 뒤통수를 쳤습니다. 나라와 민족과 교회의 부흥과 전도, 학업, 인격성장 등 기도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 먼 훗날에나 필요한 결혼 같은 기도를 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말 중요한 기도입니다. 공부는 좀 못해도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제가 지금의 우리 집사람을 만나게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 집사람 기도 덕분입니다. 

우리 집사람은 일찍부터 결혼 기도를 시작했고 자기가 기도한 대로 하나님께서 거기에 꼭 맞는 배우자를 만나게 해주셨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저입니다. 그런데 우리 집사람이 한 가지 실수한 게 있었습니다. 자기에게 맞는 배우자의 모든 조건을 놓고 기도했는데 단 한 가지 ‘돈이 많은 사람’을 달라고는 기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우리 기도대로 응답해주시는 분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확신을 받고 결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쉽게 헤어지지 못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 감동 가운데 이룬 결혼인데 왜 결혼 생활이 어려울까 하며 다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기 때문입니다. 또 기도하다 보면 상대방이 자기에게 맞는 짝인지 아닌지 볼 수 있는 객관적인 눈이 생깁니다.

여러분도 그 상대자가 나타나면 아브라함의 종처럼 구체적인 표징을 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하나님께 간구했던 것은 어떤 신비적인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생활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의 전기를 보면 요한 웨슬리가 젊었을 때 좋아하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대한 신앙 부흥사 였던 요한 웨슬리에게도 흠이 있었는데 막상 결혼 문제를 결정해야 할 때는 매우 망설였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결혼이 매우 늦어졌습니다. 이 때 웨슬리가 취했던 방법 중에 하나가 제비뽑기였습니다. 

쪽지마다 ‘결혼한다’,  ‘금년에는 하지 않는다’, ‘더 이상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세 가지를 쓴 후 그 중에 하나를 뽑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결혼하지 않는다는 세 번째 쪽지를 뽑고 말았고 결국 그 결혼을 포기하고 맙니다. 나중에 47세에 뒤늦게 결혼을 하는데 그 때는 그 중요한 결정을 짧은 순간 다른 사람의 조언도 없이 내리고 맙니다. 그래서 결혼한 여자가 몰리라는 여성이었는데 그 아내는 욥의 아내, 소크라테스의 아내와 더불어 3대 악처로 불릴 정도도 그의 결혼 생활은 불운했습니다. 

이렇게 미신적으로 구하지 말고 생활 속에서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면서 지켜보는 것입니다. 계속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이 사람이라는 감동이나 그런 사건을 주실 것입니다. 21절에 보면 아브라함의 종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니” 기도한 후 묵묵히 지켜보십시오. 하나님의 짝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실 것입니다. 8절에서 어떻게 말씀합니까? 

“만일 여자가 너를 좇아오고자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좇아오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 짝을 찾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정해 주신 내 짝이 어딘 가에 있다고 믿는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마음에 감동이 없고 환경적으로 그렇게 인도해 주지 않는다면 아직 자기 짝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 짝이 오랜 동안 보이지 않으면 독신이 하나님의 은사라 생각하고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면 됩니다.

셋째, 근면하고 마음이 선하고 결단력 있는 배필을 구하라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도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구했던 표징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표징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배우자의 인격을 테스트하는 기준이기도 했습니다. 첫째는 물 길러 오는 근면함입니다. 성실하게 일하는 여성입니다. 둘째는 친절함입니다. 종이 “네 물 항아리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우라”고 요청할 때 불친절한 여자는 ‘저기 바가지가 있으니 당신이 직접 떠다 먹으세요’ 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18절에 묘사된 리브가의 태도는 매우 친절합니다. “그가 가로되 주여 마시소서 하며 급히 그 물 항아리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하고” 그럴 뿐만 아니라 나그네의 낙타에게도 물을 주는 친절을 행합니다. 지금 낙타가 자그마치 열 마리입니다. 낙타가 물을 좀 먹습니까? 19, 20절에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약대도 위하여 물을 길어 그것들로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급히 물 항아리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약대를 위하여 긷는지라” 리브가는 또한 결단성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종이 다음날 아침 떠나려 하자 그 가족들이 리브가에게 묻습니다. 58절입니다.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하룻만에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중차대한 일에 과감한 결정을 내립니다. 사실 온유한 사람 이삭에게는 리브가와 같이 결단력 있는 배우자가 필요했고 실제 이삭의 삶의 중요한 순간에 결단을 내린 것은 리브가였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배우자의 조건에서 남자들의 1위는 아마 ‘미모나 몸매’이고 여자들은 ‘물질’일 것입니다. 다행히 오늘 리브가가 16절에서 심히 아리땁고 순결한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묘사할 때 아름답다라고 할 때는 단순히 외모의 아름다움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신앙이나 순결, 근면성, 지혜가 어우러져 아름답다라고 합니다. 아가서에 나오는 술람미 여인이 대표적일 것입니다. 솔로몬과 연애하는 여인이었기에 우리는 그 외모가 매우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가서에서 묘사하고 있는 술람미 여인의 모습은 우리의 생각과는 약간 다릅니다. 

술람미 여인은 자신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아1:5-6) 노동과 집안 일로 검게 탄 얼굴입니다. 이어지는 솔로몬의 술람미 여인에 대한 사랑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아1:9) 사랑하는 여인을 병거의 준마에 비교합니다. 준마는 야생성과 근면성, 범접할 수 없는 순결성을 상징합니다.

미모가 다가 아닙니다. 미모나 몸매는 남 보기에만 좋지 같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옛말에도 얼굴 예쁜 것은 3달 가고, 마음씨 좋은 것은 3년 가고, 음식 솜씨 좋은 것은 30년을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가 가진 성격이나 삶에 대한 태도,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루터의 아내 이야기를 좀 더 해야 하겠습니다. 루터의 아내 폰 보라는 원래 수녀였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 주장에 동조하여 수녀원을 뛰쳐나왔습니다. 그녀는 미모가 좀 뒤쳐졌습니다. “길다란 얼굴에 툭 튀어나온 이마, 볼품없이 긴 코, 그리고 고집이 세 보이는 완고한 턱”을 가졌다고 묘사합니다. 

게다가 말이 빨라서 남편의 말에 끼어들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루터가 “내가 다시 결혼한다면 저 사람을 돌로 다듬어서 순종하는 아내로 만들어 놓겠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루터가 폰 보라와 결혼했던 이유도 함께 도망쳐 나왔던 수녀들은 다 결혼을 했는데 폰 보라만 결혼을 하지 못했고, 루터의 신념 때문에 마지못해 결혼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폰 보라는 똑똑했고 그 능력은 결혼한 이후 들어났습니다. 

루터는 식탁대화로 유명한데 그의 추종자나 제자들이 같이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고 그것이 그의 6천여 편에 달하는 강론집으로 남겨졌습니다. 그래서 40개에 달하는 루터의 수도원 방에는 사람들로 가득한 때가 많았고 그 많은 사람들을 관리하고 먹였던 것이 바로 폰 보라였습니다. 루터는 바빴을 뿐만 아니라 많은 병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통풍(관절염의 일종), 불면증, 감기, 치질, 변비, 결석, 현기증, 이명증 등이 그 병 목록 이었습니다. 

적절한 식이요법과 약초 맛사지로 끈기 있게 간호했던 것이 바로 폰 보라였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나에게 프랑스 또는 베니스를 준다 해도 폰 보라와는 바꾸지 않겠다”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결혼 생활의 유익을 맛보았기에 루터는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아내여, 그대의 남편이 집에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게 만들어라. 남편이여, 그대의 아내가 남편이 집을 떠날 때 서운해지게 만들어라.”

우리는 한 사람의 배우자를 선택할 때 먼저 외모와 물질을 따지는 데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보다는 그 사람이 가진 인격과 성품이 중요합니다. 근면성과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또 한 극단으로 신앙만 보고 결혼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가 교회에서 헌신적인 일꾼이기 때문에, 그가 전도사이기 때문에, 그 집안이 장로 집안이기 때문에 결혼하였다가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앙은 좋지만 인격이 좋지 않거나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성품이나 인격도 보아야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일곱 집사를 선택할 때 요구했던 기준은 성경과 지혜의 사람, 그리고 칭찬받는, 곧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을 택하여 세웠습니다. 인격 또한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는 부모의 축복 속에 결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 좋아서 하는 것도 좋지만 양가 부모가 인정하는 결혼이 더 좋습니다. 오늘 이삭과 리브가는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과 또 리브가의 아버지 브두엘과 오라비 라반이 인정하는 결혼을 하였습니다. 결혼은 단지 두 사람만의 만남이 아니라 두 집안의 만남입니다. 결혼할 때 배우자뿐만 아니라 그 집안도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집안의 물질이나 명성을 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집안의 분위기나 화목함, 또 그 집안의 정신이나 인격을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배우자의 성격과 인격이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배우자를 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맞는 배우자를 만나게 해주십니다. 좋은 배필을 얻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노력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딱 맞는 사람을 만나고, 또 그때 우리 마음이 열리고, 시간이나 환경적으로 적당한 때를 얻는다는 것이 어찌 인력으로 되겠습니까? 그러니 열심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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