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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길에 풍랑을 만날 때 (막 4: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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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길에 풍랑을 만날 때 (막 4:35-41)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인생을 바닷가에서 폭풍의 비극을 지켜보며 웃고 울어야 하는 아이들의 놀이에 비유한 바가 있었습니다. 

그의 시 '바닷가' 의 마지막 대목은 이렇게 전개됩니다.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입니다. 폭풍은 길 없는 하늘에서 울부짖고 배들은 자취 없는 물살에서 파산하고 죽음은 널려있고 그리고 아이들은 놀이합니다.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의 위대한 모임이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이런 폭풍과 파도가 두려워 출항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배는 항구에 매여 있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은 아닙니다. 배가 항구를 출항한다는 것은 폭풍과 파도를 만나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배는 폭풍과 파도 속에서 마침내 임무를 수행하고 소원의 항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풍랑이 갑자기 우리가 항해하는 인생의 바다에 임할 때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것인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인생길에는 풍랑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37)
 
누구에게나 인생의 풍랑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건강을 자신하는 사람에게도 뜻밖에 중한 질병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사업이 탄탄한 궤도에 오른 사람에게도 먹구름이 덮이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설계하고 오손도손 서로 사랑하며 살다가도 갑자기 위기가 생각지 못한 곳에서 발생하기도 합니다.  
  
저는 어제 누님에게서 비보를 들었습니다. 아직은 젊은 조카가 갑자기 과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비교적 건강하던 조카사위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이처럼 인생길에서 풍랑을 만날 때 우리는 인생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합니까? 
  
어느날 해 저물때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건너가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아주 일상적인 여행으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자주 수도없이 왕래했던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느 평범한 밤 호수와 다름없다고 느끼던 찰나에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갈릴리에는 풍랑이 쉽게 일어난다고 합니다.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산을 넘어오면서 기온 차로 인해 갈릴리 호수로 급하게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런 심한 풍랑으로 인해 제자들은 물에 빠져 죽게 되었습니다. 아주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자들은 "우리는 이제 꼼짝없이 죽었다"하고 울부짖는 것 밖에 할일이 없었습니다. 늘상 다니던 물길이었지만 예기치 못한 풍랑이 갑자기 일어남으로 아주 위험한 사태에 처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위태로운 상황에서 예수님이 무엇을 하십니까?  주무십니다. 배를 젓는 것을 도와주시지도 않고 물을 퍼내는 것을 도와주시지도 않습니다. 충고도 하지 않으시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도움의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깊은 잠에 빠지셨습니다. 그런 사실이 제자들로 하여금 더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인생의 풍랑 속에서도 가장 힘들고 괴로울 때 주님은 침묵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 보아도 주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모르고 깊이 잠만 주무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가운데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불길한 생각만 깊어집니다.  제자들은 더 이상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닫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주님을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을 깨웁니다. "주님,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그런데 왜 상관하지 않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잠을 깨시고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풍랑이 그치고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을 도전하십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지신 것입니다.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S.Lewis교수가 옥스퍼드 채플에서 강연을 마쳤을 때 한 학생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교수님, 인간을 사랑하는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교수님은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루이스 교수는 이렇게 대답 했다고 합니다. "성경은 설명을 시도하지 않습니다. 단지 반문을 제시할 따름입니다.--(무슨 반문입니까?)그러지 않아도 교만한 인간인데 고통마저 없다면 인간은 얼마나 더 교만했겠습니까?"  고통이 아니었더라면 예수를 믿을 수 없고, 고통이 아니었더라면 기도를 배우지 못할 인생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인생의 풍랑을 만나셨습니까? 그러면 이제 창조주요 구원자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와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지금의 내 삶의 정황이 비상한 상황이라면 비상하게 기도하십시오.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나는 네게 응답하겠고--"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2. 풍랑을 만날 때는 믿음을 나타내야합니다. (40)
  
주님은 상황을 진정시킨 후 '어찌히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십니다.  우리가 인생의 풍랑 즉 위기를 만날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믿음입니다. 수없이 우리를 위협하는 인생의 풍랑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앞을 가로막는 인생의 풍랑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날마다 찾아와 위협하는 낙심과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이 충만한 예수님과 믿음이 없는 제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다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1)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랑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도 원치 않지만 우리 인생에는 풍랑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고통없는 삶, 평탄하고 순조로운 인생길을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고난, 좌절, 위기, 실패를 피해서 가려고 안간 힘을 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생에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럴때 사람들은 대부분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하고 불만섞인 의문을 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와중에에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을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해는 잘 되지 않으나 설명할수도 없지만 고난과 위기에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숨어 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나를 성숙시키고 준비시키려는 섭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 고통을 통해 나를 더 거룩하게 변화시키려는 섭리가 숨어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당신의 뜻대로 이루시도록 하나님의 손에 겸손히 맡기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것입니다.  

2) 믿음은 풍랑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지레 겁을 먹고 두려움에 울부짖었습니다. 미리 결론을 내리고 죽는다고 울부짖었습니다. 제자들은 곧 죽을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죽은 사람도 보았습니다. 풍랑이 밀려오면 두려움도 함께 밀려옵니다. 그런 상황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두려워하는 것을 올바른 반응으로 보시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행동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믿음의 반응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시고 싶어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믿는 자로써, 내 제자로써 남들에게 없는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나의 임재의 약속이다.  어떤 풍랑이 몰아쳐도 내가 너희와 함께 하며 너희를 버리지도 않는다는 믿음을 붙잡아야 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통 두려움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는 것을 믿음으로 이기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약속을 붙잡기를 원하십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실제 이런 말을 기대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님, 거센 풍랑과 높은 파도 그리고 세찬 바람이 보입니다. 두려움과 공포가 저희를 사로잡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이 모든 상황을 보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고통과 풍랑의 때에 필요한 것은 높은 파도에 고정되어 잇는 우리 눈을 예수님께로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예수께 속해 있는가? 하나님이 나를 알고 내가 하나님께 속해 있는가? 자문해 보는 것입니다.  

3) 믿음은 예수님이 주무시더라도 견디는 것입니다. 

에수님과 함께 하는 항해인데 왜 풍랑은 일어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의 인생에 왜 고통과 좌절, 실패가 찾아오는 것입니까? 또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을 주기에 하나님은 허락하신 것일까요? 그리고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고통들을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런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나아가 빨리 시원한 답변을 듣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속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붙잡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답변해 달라고 조릅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사람들에게 답을 기대하는 생각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임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물어오지만 목회를 오래하면 할수록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라는 대답을 자주 하게됩니다. 
  
믿음이 모든 답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저히 알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 내 앞에 전개될지라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더 이상 따지지 않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위기에 처해서 주님이 필요한데 주님은 잠만 주무시는 것같이 보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지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습니다. 상황을 변화시켜 달라고 간구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요구하는대로 즉각 움직이지 않습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중에 대부분은 이런 시간을 견딜 수 없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판기처럼 대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앞에 서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기도라는 동전을 집어 넣고 원하는 것을 마구 누릅니다. 곧 원하는대로 응답되기를 기대하나 자판기처럼 응답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당황해서 더 많은 동전을 넣고 세게 누르지만 주님은 그래도 침묵하십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판기가 고장났을 때처럼 흥분하고 마구 두드리며 날뜁니다.  그리고 실망합니다. 
  
여러분은 원하는대로 응답해 주시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십니까? 기도해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주님께서 주무시면 어떻게 대합니까?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주님의 침묵앞에서 매우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이럴 때도 견디는 것입니다. 믿음은 말합니다. '주님은 침묵하실 수도 있다.  주님은 응답하지 않을 수도 있다. 주무실 수도 있다. 그럼에도 주님이 우리를 돌보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요즘 베스트셀러로 많이 읽히는 책중에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어령박사가 70이 넘어 예수를 믿고 쓴 책입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어쩌다가 예수를 믿게 되었느냐?'고 묻는답니다. 믿게된 배경에는 사랑하는 딸 민아씨가 갑상선암이 발병하고 몇년 후에 재발하여 실명의 위기에 직면한 사건, 그리고 어린 손자의 자폐증으로 인해 학교도 다닐 수 없는 고통이 겹쳐졌습니다. 그런 풍랑이 있었기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고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민아씨도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보여 아버지를 구원하고 존귀하게 쓰임받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향해 질책하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풍랑이 높이 이는 때는 정말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능동적으로 믿음을 보여야 하는 때입니다. 실패와 질병과 위기속에서 여러분의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고 더 강해지기 바랍니다. 주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고 주님께서 궁극적으로 건져 주실 것을 내다보며 묵묵히 견디어 내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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