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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 위해 예비된 영적 축복 (엡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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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위해 예비된 영적 축복 (엡 1:3-14)


1800년대에 독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이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나이 7살 때 아버지가 성탄절 선물로 준 라는 책에서 유명한 시인 호머가 쓴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읽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트로이라는 도시가 아직도 이 땅에 실재하는 장소라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이 믿음은 마침내 그의 일생을 이끌어 가는 포기할 수 없는 꿈이 되어 그의 나이 41세 되던 해 고고학자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51세 되던 해 1871년 드디어 그는 과거의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 에게 해 연안 언덕에서 소설속의 도시 트로이 유적을 발굴하는 일에 성공합니다. 뿐만 아니라 유적 탐사의 과정에서 그는 어마 어마한 보화들을 발굴하고 세기의 부호가 됩니다. 

그가 믿음으로만 꿈꾸던 이 보화들을 발굴하던 그 순간의 그의 감격을 상상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한 독일의 기자가 그의 부자 됨을 축하했을 때 그는 매우 흥미 있는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지금 비로소 부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트로이에 대한 믿음과 꿈을 가진 그 순간부터 나는 이미 부자였으니까요.”

그런데 이 지역(트로이, 성서의 지명은 드로아)을 하인리히 슐리만보다 1800전 앞서서 통과한 일이 있었던 사도 바울(행20장에 의하면 바울 사도 일행이 에베소에서 드로아로 옴)은 오늘의 본문에서 고대 트로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서 그들이 땅의 보화와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하늘의 영적 보화를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교회에 속하여 살고 있는 오늘 이 시대의 우리에게도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약속을 믿을 수 있는 믿음과 꿈만 있다면 이 하늘의 영적 보화가 보일 것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바울은 이어지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성도된 우리 위해 예비 된 이런 하늘에 속한 영적 축복들을 삼위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순서로 열거합니다. 우리 위해 예비 된 하늘의 영적 축복들-무엇일까요?

첫째, 성부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축복입니다.

4-6절까지의 말씀에 의하면 의 축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창세전부터 우리를 선택하셨다가 때가 되었을 때 우리를 주의 아들들 곧 주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본래는 자녀가 될 자격도 없고 그럴 처지도 아니었으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은혜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 교리에서는 이것을 ‘양자의 교리’(doctrine of Adoption)라고 말합니다. 

4-5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 보시기에 얼마나 추하고 흠이 많은 가를 아시고도 우리가 어느 날 그 분의 은혜로 그 분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로 변화되어 서실 것을 기대하며 그렇게 우리를 선택하시사 그의 자녀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6절이 그 대답을 들려줍니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안에서 우리에게 거져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제가 미국 와싱턴 지구촌 교회에서 사역할 때 워싱턴 지역의 한국 자녀들을 입양한 미국인 가정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연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헤드 테이블에 입양 부모회 회장되신 분과 한 자리에 앉았는데 그분은 미국 교회 목회자이셨습니다. 이 분은 자기 자녀가 셋이나 되는데도 한국 아이를 셋이나 입양하신 분이셨습니다. 그것만도 놀라운 일인데 거기다가 그 입양한 세 아이중 둘이 다 결함이 있는 정상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이렇게 아픈 한국 아이들을 입양한 동기가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그는 정색을 하고 제 눈을 쳐다보면서 반문하기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당신과 내가 죄인인줄 알면서도 정상이 아닌줄 알면서도 우리를 그의 자녀로 입양한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자신과 아내의 헌신은 하나님이 이미 주신 은혜에 대한 지극히 작은 보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6절의 말씀이 아닙니까?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교회는 바로 이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을 찬미하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둘째는 성자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축복입니다.

한마디로 이 축복은 다시 라는 두개의 교리적 단어들로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그의 자녀된 우리에게 하늘의 비밀을 계시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7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구속’이란 단어는 본래 ‘값을 치르고 다시 산다’와 ‘다시 사서 자유를 준다’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본래 신약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 노예시장에서 사용되던 단어이었습니다. 

이런 광경을 연상해 보십시오. 누군가가 사장에서 한 노예를 두고 흥정을 벌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고가를 치르고 이 노예를 자기의 노예로 산 사람이 나를 향해 이렇게 선포합니다. “당신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닙니다. 당신은 오늘부터 자유인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원하면 오늘부터 나의 자녀로 우리 집에서 함께 살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로마의 자비로운 주인들은 가끔 그런 은혜를 자기의 종들에게 베풀었다고 합니다. 유명한 영화 벤허에도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까! (전쟁 선에서 노를 젓던 노예 벤허가 사령관의 양자가 되다.)

인간은 사실상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고 사는 죄의 노예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당신의 생명으로 우리 죄의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받아 그의 자녀로 살아가게 된 우리에게 그는 하늘의 비밀을 알고 살아가는 축복을 또한 베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8-9절의 말씀입니다.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여러분은 누구와 비밀을 나누고 계십니까? 정말 ‘친한 친구’(절친)가 아니면 우리는 비밀을 나누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와 비밀을 나눈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가 우리를 그렇게 신뢰할만한 당신의 친구로 여겨 주신다는 선언이 아닙니까? 

요15:15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히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이 얼마나 특권입니까?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어찌 그 분의 은혜를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바로 이런 구속과 계시의 은혜를 찬양하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셋째는 성령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축복은 다시 이라는 두개의 교리적 단어로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13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인치심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엇보다 소유권(ownership)을 뜻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구원의 복음을 듣고 예수를 우리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는 순간 성령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로 인치셨다는 것입니다. 도장을 찍으셨다, 혹은 서명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자산이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실족하면 누가 손해입니까? 하나님이 손해시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의 인생에 개입하십니다. 날마다 그는 우리에게 이사야의 말씀처럼 “너는 내 것이라”(사43:1)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본문은 성령께서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어주셨다고 말합니다. 

14절입니다.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에서 기업이란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성도들이 누리게 될 모든 축복을 망라하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영접할 때 우리안에 거하시게 되신 예수의 영이신 성령의 임재 그 자체가 우리가 누릴 이 기업의 보증인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함이 첫 번째 기업의 축복이고 이제 그 축복은 우리가 계속해서 이땅과 저 나라에서 누리게 될 축복의 시작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집을 계약하면 먼저 보증금을 지불합니다. 이 보증금은 앞으로 남은 금액도 확실히 지불하겠다는 보증이요 약속입니다.

구약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의 종이 자기 주인의 아들 이삭의 신부감을 구하기 위해 주인의 고향을 방문합니다. 리브가를 만나자 그녀가 바로 예비된 신부감 임을 알아 차린 종은 그녀에게 보따리를 풀어 금 손목걸이 금 코걸이 패물을 주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였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축복의 보증이요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이 메마르고 황페하다고 느끼십니까? 그러면 우리 위해 예비된 이 하늘의 축복을 바라보는 눈을 주께서 열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눈으로 이 축복을 본다면 우리 인생은 흥분된 모험의 장으로 다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비된 축복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이 설교의 화두에 소개드린 고고학자 슐리만의 이야기를 다시 기억해 주십시오. 그는 본래는 가난한 목사의 아들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의 가난과 실패로 그는 중학교로 정식 공부를 마감해야 했던 사람입니다. 그후 식료품 가게 점원으로 외항 선원으로 전전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살아있었고 그는 지치지 않고 독학하며 고고학 연구에 몰두합니다. 트로이 유적의 믿음과 꿈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이 40에 겨우 자리 잡기 시작한 사업을 접고 본격적인 고고학 연구에 나서자 그는 미친 놈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는 나이 50이 되도록 사랑을 만나지 못했고 뼈속까지 스미는 인생의 고독을 감수하면서도 모국어인 독일어외에 7개국어를 공부하며 트로이 유적 탑사 연구에 매달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트로이의 보화를 손에 넣는 주인공이 됩니다. 거기에 그의 인생을 도달시킨 것은 두 가지였다고 그는 고백합니다. 하나는 일리아드 책에서 발견한 트로이의 꿈, 그리고 둘째는 이 꿈에 대한 믿음과 헌신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꿈을 믿고 그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신화를 현실로 바꾸는 기적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을 통해 바울 사도는 우리도 이런 기적의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만일 우리도 오늘의 성경이 약속하는 하늘의 보화, 하늘의 축복의 꿈을 꿀 수 있다면 이것을 믿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믿음으로 나아갈 수 만 있다면 어느 날 우리는 이 축복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 하늘의 보화를 꿈꾸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눈을 뜨십시오. 하늘과 땅에 전능하신 주께서 예비하고 약속하신 비전을 보십시오. 거기 우리 위해 준비된 부요한 영적 축복의 보화들을 발견하십시오. 이제 그 보화를 찾아 누리기 위한 믿음의 모험을 떠나십시오. 이 여름, 우리의 선교와 섬김, 그리고 쉼의 발걸음이 궁극적으로는 이 하늘의 보화를 찾아 나서는 믿음의 행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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