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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빈 집의 위험 (마 12: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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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집의 위험 (마 12:43-45) 
 
  
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곧 의식주입니다. 사람은 입어야 하고 먹어야 하고 거처할 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집 없는 무주택자들이 전체 가구의 절반인 48%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우리나라의 100대 집부자들의 평균 주택 보유수는 평균 155채라고 하며, 두 채 이상의 주택을 소유한 가구도 88만 가구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주택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자택인데 2006년 공시가격으로 85억 원이었다고 합니다. 

반면 공동주택 가운데 최저가는 전남 고흥군 봉암리의 다세대 5평형으로, 공시가격은 100만원에 불과하고, 단독주택 가운데 가장 싼 집은 경북 포항시 북구 신광면 토성리 주택으로 공시가격이 10만7,000원으로 산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한국인은 세계 최악의 ‘집값 노예’로 조사되었고, 그래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일생을 내 집 마련에 목매’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집이란 가족들이 모여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유일한 보금자리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을 지으면 크게 짓고 아름답고 생활하기에 편리하도록 짖습니다. 그러나 집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집을 크게 짖고 아름답게 지은 집이라 할지라도, 그 집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서 집의 가치가 달라지는 법입니다. 임금이 살면 그 집은 궁궐이고, 죄인을 잡아 둔 집은 교도소 흑은 감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술을 팔면 술집이고, 무당이 살면 무당집, 성도가 살면 장로님 댁, 권사님 댁, 집사님 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마음은 두 종류의 집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곧 귀신이 거하는 처소인 귀신의 집이 있고, 성령이 거하는 전인 신령한 집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두 가지 집의 성격을 찾아보면서 ‘빈 집의 위험’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43절에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요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귀신이 어디 있냐고 하면서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며 미련한 사람들입니다. 귀신들은 그들의 두목인 사탄의 활동을 돕는 졸개들을 말합니다. 주님은 귀신이 아주 더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이란 말은 ‘불결한 영’이란 의미입니다. 성령이 거룩한 영임에 반해, 귀신들은 더럽고 불결한 영입니다. 귀신은 하는 일이 더럽고, 생각하는 것이 더럽습니다. 

그래서 귀신은 더러운 정치, 더러운 사회, 더러운 인간 집단을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영물인 것입니다. 사탄은 자기 졸개들인 귀신들을 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하고, 도덕적 불결로 이끌어 더러운 생각을 하게하고, 더러운 말과 행동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죄를 짓도록 시험하며 진리를 믿지 못하게 유혹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위협하고 괴롭혀서 자신을 섬기게 합니다. 그래서 귀신들은 죄와 불의와 불신앙을 지닌 마음을 거처삼기 좋아합니다. 마치 돼지가 더러운 진흙탕을 좋아하듯 더러운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거라사 광인 속의 귀신들도 더러운 돼지에게 들어가기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심령, 즉 속사람이 깨끗해지면 귀신은 있으라고 해도 못 견뎌 달아나며, 깨끗한 심령 속에는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 목사님이 신학교 2학년 때 등록금 낼 돈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사글세 보증금을 빼어 등록금을 내었습니다. 그러니 자고 먹고 할 집이 없는 고로, 교회당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중, 꽤 오랫동안 귀신에게 시달리는 한 여자 노인네를 만났습니다. 그는 간혹 귀신이 발작하면 그야말로 귀신의 형상이 되고, 말도 남자 목소리를 내는 등 그야말로 귀신에 완전히 사로잡힌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정신일 때는 늘 교회당에서 기도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래야 목회자에게 기도와 안수를 받아 잠시 동안이라도 귀신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노인 여성은 학생이 교회당에서 자는 것을 보고 “우리 집에 빈방이 있으니 거기서 생활을 해결하라”고 권유했습니다. 물론 방을 거저 주는 대신 자기가 발작할 때마다 기도를 받으려는 속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신학생은 그녀가 발작할 때마다, 그녀를 붙들고 귀신 추방의 기도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별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학생이 그녀의 생활을 살펴보니, 갓 시집온 며느리를 심하게 구박하는 것이었습니다. 외동아들을 자기로부터 뺏어간 존재라고 늘 욕하고 못살게 구는 것을 이 신학생이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신학생은 어느 날 그 노인 여성을 불러놓고 요 14:21절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말씀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학생은 그녀에게 “당신이 귀신에게서 해방되려면 이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며느님을 미워하는 대신 내 딸처럼 주님의 귀한 딸처럼 대하십시오!” 라고 권고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말에 순종한 그녀는 그 날부터 며느리를 미워하지 않고 잘 대해 주었는데, 한 달도 되지 않아 귀신이 완전히 물러갔고, 그녀는 그 후에 교회에서 권사 직분을 받아 열심히 충성하는 성도가 되었다는 간증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중에 혹시 악령에 시달리는 분이 계십니까? 주님을 영접했는데도 귀신이 역사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마음속을 깨끗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악한 생각과 마음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언제나 ‘사랑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으며, 우리의 영혼을 깨끗케 하며, 우리로 하여금 진실한 회개의 길로 가게 만듭니다. 참으로 우리가 사랑으로 행하고 그리하여 우리 속사람을 깨끗하게 한다면 악한 영은 결단코 우리 안에 역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찾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물 없는 곳이란, 물 없는 척박하고 건조한 땅, 즉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에 의하면, 귀신들의 처소로 여겨졌던 광야를 가리킵니다. 더러운 귀신이 쉬기를 구하였다는 말은, 주석가 렌스키에 의하면 ‘부정하고 더러운 욕망’이라고 했습니다. 더러운 귀신은 사상과 감정이 없는 광야에서는 그가 추구하는 부정하고 악한 욕망을 채울 수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람 즉 사상과 감정으로 그의 악한 욕망을 표출시켜 줄 수 있는 인간에게로 다시 돌아오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44절에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는 당시의 유대민족을 가리켜서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유대인들을 가리켜서 빈집으로 설명했는데, 그 빈집을 ‘청소되고 수리된 집’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청소되었다는 말은 그 집의 더러운 것을 내버렸다는 것이고, 수리되었다는 것은 다른 것으로 깨끗하게 포장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다는 말씀은, 유대민족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 우상 숭배의 죄악을 회개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율법으로 수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저들 중심에 하나님이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당시에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사두개인들에게 “너희들이 꼭 수리된 빈집과 같다. 너희들이 형식주의에 빠져서 외모는 경건하다 만은 속은 텅 비었고, 너희들이 율법을 주술 외우듯 암송하고 있다 만은 속에 말씀의 생명이 없고, 너희들이 외형적으로 성전을 건축하고 그 안에 있지만 너희들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45절에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을 포로에서 귀환한 후 에스라와 느혜미야를 중심으로 우상 숭배적인 요소를 척결하는 등 적극적인 종교 개혁을 단행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종교 개혁의 열기는 식어지고, 바리새인 등을 중심으로 형식적인 율법 준수에만 몰두하였습니다. 우상숭배 대신에, 그들은 세속적인 물질주의와 형식주의에 사로잡혔고, 이기주의와 교만에 깊이 빠져 들어갔습니다. 이처럼 악한 영을 몰아내었으나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헌신이 없는 그들의 심적 상태는 바로 악한 영이 깃들기 좋은 장소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집을 나온 귀신은 이제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살았으므로, 전보다 형편이 더 악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민족의 형편이 바로 이런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과거 우상 숭배하던 때보다 더 심한 상태로 타락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오신 메시야를 거역하였으며, 성령의 사역을 귀신의 사역으로 매도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고 하면서, 실재로는 하나님을 가장 결정적으로 거역하고 있었습니다. 율법의 참 정신을 망각한 채 그 형식만을 가지고 교권을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사함 받을 수 없는 최악의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주님의 경고대로 일곱 귀신과 같은 로마 군단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마음은 집과 같은데 빈집은 절대로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요즘 시골에는 빈 집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농 현상 때문입니다. 그런가하면 도시에도 빈 집들이 많이 있습니다. 재개발을 하면서 비워둔 집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비워둔 집들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청소년들이 모여 부탄가스를 마시며 혼숙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흉악범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합니다. 곧 이어 이제 바캉스 철이 되는데, 휴가를 떠나느라 비워 둔 집은 언제든지 강도 절도가 침범할 수 있는 위험한 집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마음도 주인이 없이 비워 둔 상태로 놔두면 위험천만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퍽이나 세련되어서 미신이나 우상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학문과 교양으로 마음의 집을 단장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치 새롭게 청소되고 수리된 집처럼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귀신이 그 속에 들어가 주인 노릇하기에 아주 적합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방에는 미움과 시기의 그릇들이 가득히 있고, 방은 불신으로 도배를 하였으며, 허영과 사치의 장롱을 새롭게 마련했고, 또한 정욕과 쾌락의 침대를 들여 놓았습니다. 

그래서 귀신은 너무 좋아서 이 좋은 집을 다시는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들을 일곱이나 데리고 와서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 것입니다. 수많은 연예인들이 왜 그토록 함부로 자살을 합니까? 오늘 한국의 자살율은 OECD 국가 중 1위로 알려져 있고, 사망원인 가운데 남자는 4위, 여성은 3위를 차지할 만큼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음에 진정한 주인이 없는 인생들의 상태가 얼마나 위험합니까? 

신혼부부가 집을 사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몇 시간 그렇게 돌아다니고 나니까 기운이 빠지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집들은 무척 비쌌습니다. ‘꿈같은 집’에 대한 희망은 높은 이자와 임대료라는 냉엄한 현실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그래도 신혼부부는 경치가 좋은 동네를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았습니다. “저런 집에서 살면 얼마나 멋질까?” 드디어 아름다운 집을 발견했습니다. 거기에는 수영장까지 있었습니다. 그 집을 꿈꾸듯 바라보고 있었는데, 집 안에서 갑자기 여자의 거친 목소리가 들리더니, 어린 소녀가 울면서 현관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집안에서 부부가 서로 내뱉는 거칠고 상스런 말에 신혼부부의 마음이 상했습니다. ‘꿈같은 집’에 대한 소망은 다시 한 번 무너졌고, 그들은 조용히 그 집을 떠났습니다. 

가정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많은 부를 소유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루 종일 은행에서 돈을 만지고 돈을 세는 은행원에게 “온종일 돈 속에 묻혀 살기 때문에 무척 행복하겠습니다.”라고 말했더니,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말도 마십시오. 돈 안 세는 부서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뭐 제 돈입니까?” 내 영혼의 빈집을 무엇으로 채워야 합니까? 돈으로 채울 수도 없겠지만, 채운다고 해도 참으로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지식으로 채워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모 교회의 여전도회장으로 있는 그 이름도 유명한 ‘땅 사랑’ 집사가 있었습니다. 부동산 투기가 한창 기승을 부릴 즈음, 한몫 잡으려는 땅 집사는 여전도회 헌신예배가 있는 것도 잊어버린 채, 일주일 내내 열심히 아파트와 땅을 보러 돌아다녔습니다. 이윽고 문제의 주일날 여전도회 헌신예배 시간이 되었지만,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땅 집사는 급하게 찬송가를 찾아 사회석에 올랐습니다. 무사히 틀리지 않고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한 후, 찬송을 부를 시간이 되어서 거룩하고 자신 있게 한 마디 했는데 그만 “우리 모두 찬송가 109동을 부르겠습니다!”고 했으니 도대체 이걸 어찌하면 좋습니까?

프랑스 어느 마을에 새로 부임한 목사가 교인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목사가 다녀간 후에 남편이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오늘 새로 오신 목사님이 다녀가셨어요.” “목사님이 뭐라 하셨는데?” “목사님은 제게 묻기를, ‘이 가정에 그리스도가 함께 하십니까?’ 하시는 거예요. 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이 말을 들은 남편이 얼굴을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그럼 당신은 우리가 점잖고 훌륭한 가문의 자손이라고 말하면 되잖아.” “저도 처음엔 그러려고 했지만, 목사님이 물으신 것은 그게 아니란 말이에요.” “아, 그러면 우리 식구들은 매일 기도하고 열심히 성경책을 읽고 있다고 그래야지.” “그렇지만 여보, 그것도 목사님이 질문하신 것은 아니잖아요!” 남편은 점점 더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당신은 우리 식구들이 매주일 항상 교회에 출석한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단 말이야?” “그것도 목사님은 묻지 않으신 걸 어떡해요. 단지 그 분은 그리스도께서 여기 이 집에 거하시냐? 고 하셨단 말이에요.”

이 부부는 여러 달 동안, 목사님이 하신 이 심상치 않은 물음의 의미가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 부부는 주님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집에 찾아와 모든 일에 함께 하시는 분으로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통하여, 모든 일에 주님을 앞세우는 것은 물론이요. 철저하게 의뢰하는 그야말로 그 가정의 주인으로 모시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영광스런 하늘 보좌를 떠나서 죄로 어두운 이 땅에 평화를 심고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어린아이로 탄생하셨습니다. 탄생하실 때 방이 없어서 여관의 마구간을 빌려야 했던 주님은, 오늘날도 우리 마음과 가정에서 외면당하고 계시지는 않을까요? 여러분 집에는 예수님이 계십니까?

우리가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입니다. 어떤 음식점에 갔는데 집이 너무 더럽고 주인도 불친절하고 음식 맛도 형편이 없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후 오랜만에 그 집을 한번 가봤더니 집이 깨끗하게 수리되었어요. 그 집에 들어가서 음식을 먹으면서 “이 집이 옛날 그 집 아닙니까? 왜 이렇게 집이 달라졌습니까?” 물어보았더니 “주인이 바뀌었습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래요. 주인이 바뀌니까 음식 맛이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비위생적이고 더럽고 맛도 없더니 주인이 바뀌니까 집도 깨끗하게 수리되고, 음식 맛도 달라지고 완전히 새로워졌습니다. 이와 같이 내 인생의 주인도 바뀌어야 합니다. 

주경가 클락(Clarke)은 “타락하고 부패한 영은 역시 부패한 인간의 마음밖에는 쉴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중요한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그것은 빈집은 좋지 않다는 것과, 빈집에는 주님을 모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 안에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네 빈집을 예수로 채우라”는 것입니다. 예수로 가득 채운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방안을 만 원권으로 가득 채운다면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요? 

그러나 한 자루의 촛불을 밝히면 방안을 채울 수 있습니다. 같은 이치입니다. 내 영혼의 빈집을 성령으로 충만히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귀신은 약한 자는 가지고 놀지만, 강한 힘 앞에는 꼼짝 못하는 간사한 존재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마음의 주인으로 계시고, 예수님을 내 마음의 왕좌에 모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더러운 귀신은 천리만리 도망칠 줄로 믿습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종종 하인들의 집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한번은 여왕이 신앙이 독실한 과부의 집을 방문하고 돌아가자 이웃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패티, 당신 집에 모신 손님 중에 누가 가장 높은 분이지?” 사람들은 그녀가 당연히 예수님이라고 대답하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패티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가장 귀한 손님이야 여왕폐하지!” “뭐라고, 그러면 예수님은 어쩌고?” “그분은 손님이 아니야. 그분은 항상 내 집에서 사시는 분이지!” 

여러분의 마음이 빈집과 같은 상태가 되어서 귀신들이 놀이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고 성령께서 거하시므로 말미암아 악한 영은 기웃거리지도 못하는 복된 심령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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