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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8 02:10

어디로 가리이까? (삼하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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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리이까? (삼하 2:1-7)
  

어린 아이가 글씨쓰기 공부를 할 때 어머니는 아이의 손을 싸잡고 글씨쓰기를 가르칩니다. 
아이가 고집을 피우지 않고 어머니 손길 가는대로 따라하면 멋진 글씨, 멋진 그림이 됩니다. 
그러나 고집을 부려 자기 마음대로 그어대면 글씨도 그림도 엉망이 되고 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이끄심대로 잘 따르면 멋진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뜻대로 살면 엉망진창이 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멋진 인생을 시작하는 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는 바로 다윗입니다.

B.C. 1050년에 왕이 되어 40여 년 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사울 왕이 B.C. 1010년 경에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하였습니다. 
이로써 사울왕의 시대는 마감되었습니다. 
다윗은 사무엘의 기름부음 받은 후 지금까지 15년 동안이나 기다렸습니다. 
이제는 나서야할 때입니다.
아무도 다윗의 등장을 잘못됐다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때 다윗이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묻는 일이었습니다. 
본문은 이 사실을 밝히면서 독자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습니다.
저는 본문을 묵상하면서 받은 은혜를 다음 두 가지 소제목으로 나누고자 합니다.

1) 인생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다.

2) 하나님께 묻자.

1. 인생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다.

1절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그 후에”
인생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전 3:1절~2절에 보면,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삶을 살다보면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생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대하여 사람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우선, 그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믿음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기다리겠습니까?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인내하겠습니까? 
믿음이 없다면 그만두든지, 뒤엎든지 하게 되지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때를 믿음으로 기다리면 웃음을 낳고, 하나님의 때를 조급함으로 기다리지 못하면 슬픔을 낳게 됩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하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때 아브람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조급해졌습니다. 

나이는 들어가고 하나님의 약속은 이뤄지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지 10년이 되던 어느 날, 그의 아내 사라가 조급해 하는 남편에게 제안했습니다. 
“내 종인 하갈과 동침해서 자식을 얻어보라.”고. 
그래서 이방 여인 하갈 사이에서 얻은 자식이 ‘이스마엘’입니다. 
그러나 조급함으로 얻은 아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근심이 되었습니다. 
아들을 낳았으면 기뻐해야 되는데.......
창 21:11절에는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하고 적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식어져서 조급해지면 근심을 낳게 됩니다. 
그 후 세월이 지나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지 25년이 지난 때, 아브라함이 100세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이삭을 주셨습니다. 
기다림의 아들, ‘이삭’이란 이름의 뜻은 ‘웃음’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기다렸더니 ‘웃음’의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믿음으로 기다리면 웃음을 낳습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여러분의 삶에도 하나님의 때가 있음을 인정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도응답에도 하나님의 때가 있음을 인정하시길 바랍니다. 
그 때를 믿음으로 기다리십시오. 
기다리고 또 기다리십시오! 
여러분의 기다림이 웃음으로 열매 맺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 때를 정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해합니다.
지금 웃을 때라면 그 웃음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지금 고난의 때라면, 심드렁하게 여기지 말고, 고난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왜냐하면 그 고난의 때는 자기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실 준비기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태풍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태풍이 바닷물을 휘저어 놓아야만 바다 속에 산소가 공급되어 프랑크톤이 자라고, 어류들이 풍성해져서 산 바다가 된다는 거지요.

또 태풍이 한번 휘몰아쳐야 공중의 대기가 맑아진답니다.
지금 서울 같은 대도시의 빌딩 숲들은 대기의 흐름을 막아, 오염된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죽은 도시가 됩니다.
그런데 태풍이 한 번 지나가면 그나마 도시의 공기가 환기됩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의 때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고난을 통하여 잊었던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됩니다.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가족 간의 사랑을 회복하게 됩니다.
남편의 자리를, 아내의 자리를, 자녀들의 존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따라서 고난의 때조차도 감사와 찬양의 제목이 됩니다.

2. 하나님께 묻다.

다시 한 번 1절의 말씀을 읽습니다.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다윗은 그 때를 자신의 판단으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때를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본문을 묵상하면서 꼭 마음에 새겨야할 부분입니다.
하나님께 물으십시오.

사울 왕과 다윗 왕을 비교해보면 다른 점이 있습니다.
사울왕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사울 왕이 죽게 되어 왕위를 다윗에게 넘겨준 이유를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단정 짓습니다. 

대상 10:13-14절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더라.” 
그러나 다윗왕은 작은 일일지라도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삼상2:1절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한마디로 사울왕은 기도를 잃은 사람이었고, 다윗왕은 기도를 붙든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인생을 성공과 실패로 가르는 갈림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물으십시오.
자꾸 하나님께 물으십시오.

기도를 하다보면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기도에는 어떤 단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① 자기 욕구의 단계 ② 자기 욕구와 하나님의 뜻과의 갈등단계 ③ 자기 욕구의 포기 단계입니다.

저의 아이들을 키울 때의 경험입니다.
이상하게 둘째 아이의 요구는 다 들어주게 됩니다.
큰 아들이 요구하면 ‘안 돼’라는 대답을 많이 했고, 작은 아들이 요구하면 ‘그래’라는 대답을 많이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봤습니다.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둘째 아이는 아빠가 들어줄 것만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값비싼 장난감을 보다가도 살 때는 그렇게 비싸지 않은 것을 사달라고 요구합니다.
말하자면 둘째 아이는 나름대로 자기 욕구를 포기한 단계를 지나 요구한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이 성숙되면 우리의 뜻을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의 포기의 기도(눅 22:39-46)를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적인 요구는, 십자가 죽음이란 쓴 잔을 마시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우리의 죄에 대한 벌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대신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자기 욕구와 하나님의 뜻과의 갈등이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자기 포기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포기하기를 원하십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주시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종종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좋은 것에 너무 집착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훨씬 더 좋은 것에 대하여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두신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작은 꿈을 버리도록 요구하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자아의 죽음을 통하여 성품이 변화되길 원하십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토저(A.W.Toser)는 말하기를 “포기의 기도를 통하여 비로소 자기중심적인 생활에서 해방되어 우리의 성품이 변화된다.”고 하였습니다. 
즉 자기포기를 통하여 자기충족, 자기동정, 자기도취, 자기비난, 자기과장, 자기징계, 자기기만, 자기칭찬, 자기경시, 자기방종, 자기증오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기도의 목적은 상황을 변화시키기보다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에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변화되면 모든 것이 다 변화됩니다.
자기 자신이 변화되면 가족도 변하고, 직장동료들도 변하고, 사업도 변하고, 이웃도 변하고 다 변화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상황이 변화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이 변화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물론 기도하면 상황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병을 고칩니다. 
돼지가 한 배에 새끼를 12마리씩 낳습니다. 
기대 이상의 성적으로 진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이 변화되길 더 기대하십니다.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예로 들어봅니다. 
자식이 용돈을 달라하면 부모는 용돈을 주지요. 
자식이 먹을 것을 사달라고 하면 부모는 먹을 것을 사줍니다. 
자식이 컴퓨터를 사달라고 하면 부모는 컴퓨터를 사줍니다. 
그것만으로 끝난다면 부모자식관계는 공급자와 수요자의 관계이지요. 

부모 되시는 여러분, 부모자식과의 관계가 이렇게 공급자와 수요자의 관계로 끝나서야 되겠습니까? 
부모는 자식의 필요를 채워주면서 자식의 인격이 성장하고 성숙하여 더 끈끈하고 더 밀접하고 더 깊은 부자 관계가 형성되길 바랍니다.
자식이 부모의 존재를 인정하고, 부모의 소중함을 느끼고,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쓰고, 부모의 사랑에 보답하려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요? 
이런 모습은 보이지 않고, 때만 되면 돈이나 달라고 하면, 부모는 “내가 네 물주냐?”라고 자식을 책망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우리와의 관계가 수요공급자의 관계로 끝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격이 변화되고 성숙되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길 기대하십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인생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다윗은 그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것이 그의 인생성공의 비결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랄 줄 아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사울왕은 하나님께 묻지 않은 사람이었고, 다윗왕은 하나님께 묻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인생을 성공과 실패로 가르는 갈림길이었습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하나님께 묻기를 잘 하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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