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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회입니까? 유혹입니까? (행 16: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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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입니까? 유혹입니까? (행 16:25-34) 
 
  
여름철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방학 중이고 직장인들은 휴가철을 맞이했고, 각종 여름행사들도 많을 것입니다. 세상 이곳 저곳에서 현란한 모습들을 하고 손짓하는 것들이 참 많을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곳 저곳, 이행사 저행사 다 기회라고 생각하다가는 멍든 여름철이 되고말 공산이 큽니다. 여름철에는 건강관리도 잘해야 하겠고, 신앙관리 영적인 관리도 잘해야 합니다. 이럴 때, 이 시기에 성도 여러분들은 영적으로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기회와 유혹을 잘 구별해서 잘 선택하고 잘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돕기 위해서 "기회입니까? 유혹입니까?"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기회는 잡아야 하겠지만 유혹은 단호하게 물리치고 뿌리쳐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밤중에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호소하는 듯한 태도로 부르면서 간청하는 것을 보았고 '마게도냐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는 확신을 얻고 마게도냐로 떠났고 빌립보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루디아와 그의 집에 세례를 주었고, 귀신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주는 기적도 행했습니다. 

이제 막 빌립보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고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역은 순탄하고 희망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시작점에서 그들은 벽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여종이 더 이상 점을 칠수 없게 되어 경제적 손실을 입은 주인이 사람들과 함께 '바울과 실라'를 없는 죄를 만들어 고발하였고 바울과 실라는 제대로 된 재판도 없이 매를 맞고 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매질을 당해서 아픈 몸, 발에는 차꼬가 채워지고,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캄캄하고 어두운 감옥 안. 바울과 실라는 이 때 기도와 찬미를 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본문의 개요이고 요점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서 많은 말씀을 묵상을 하기도 했을 것이고 설교도 여러번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찬미했더니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렸다. 그러므로 우리도 기도와 찬미를 해서 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리게 하자"이런 쪽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을 보면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미의 목적은 옥문을 열거나 착고를 풀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옥문을 열고 착고를 푸는 것이 그들의 기도의 제목이었다면,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렸을 때, 제일 먼저 기도가 응답되었으니 감옥으로부터 할 수 만 있으면 멀리 탈출하자 그렇게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전혀 사건은 다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기적적으로 옥문이 열렸습니다. 옥문이 열렸으니, 바울과 실라는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도망치는 것은 기회가 아니라 유혹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그래서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옥문이 열어젖혀져도 안 도망갔습니다. 묶여 있고 채워져 있는 것이 다 풀어져도 이들은 그 자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들이 구한 것이 탈출이라면 결코 남아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문이 열리면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이 열린다고 다 기회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웃집 문이 열렸다고 해서 그 집에 슬그머니 들어갈 기회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운동 삼아서 가끔 저는 아파트 계단을 걸어서 오르내립니다. 1층에서 13층까지 걸어오르내리다보면 가끔 한두집은 문들이 잠겨 있지 않고 열려져 있습니다. 아마도 가져갈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아주 잠깐 이라고 생각하고 아주 가까운 곳에 다녀오리라 생각하고 문을 잠그지 않았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문을 잠그지 않는 집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이 열려 있다고 해서 자기 집이 아닌 남의 집에 들어간다고 하면 그것은 범죄인 것입니다. 들어가고 범죄이지만 무엇을 들고 아오거나 어떤 행위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범죄인 것입니다.  

아쩌씨들 잘 들으세요. 아쩌씨들 뿐이겠습니까? 
상대가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여주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허락된 부부관계가 아니라면 그것은 기회가 아니라 유혹인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에게 감옥문이 열린 것은 기회가 아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울과 실라의 목적은 안락함이 아니라 사명완수에 있기 때문입니다. 환상 중에 보여주셨던 마게도니야 복음화, 빌립보 복음화가 그들의 사명이었습니다. 감옥문을 탈출하는 것이 사명완수에는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 자리가 기적의 자리이고 사명완수를 위한 실마리를 풀게 될 자리라 믿었습니다. 
  
과연 그렇게 되었습니다. 
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리는 기적 상황이 전개되자 제일 먼저 날리를 친 것이 간수였습니다. 간수가 자신이 차고 있는 칼을 빼서 자결하려고 한 것입니다.  
자결하려는 간수에게 바울은 외칩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행16:28) 문이 열렸지만, 바울과 실라는 도망가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바울과 실라에게 감옥은 결코 편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러나 그 자리를 떠나지 아니했습니다. 

기회란 무엇입니까?
기회란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기회란 목적과 같은 방향으로 갈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바울이 옥문이 열렸다고 도망했다면, 간수와 그 가족을 변화시키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옥문이 열렸을 때 그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음으로 인해서 간수와 그 가족을 구원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명자는 사명의 현장을 떠나서는 안됩니다. 사명을 이루려면 항상 현장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유혹은 무엇입니까?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 사명으로부터 일탈하는 것을 유혹이라고 합니다. 목적과 방향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이룰 수 있는 자리에서 떠나고자 하는 것은 기회가 아니라 그것은 유혹입니다. 쓰임받는 자리, 증거할 수 있는 자리를 쉽게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꾸준히 사명의 자리를 지킬 때, 세상은 변화될 것입니다. 

고인이 되었습니다만 현대그룹의 창업자인 고 정주영회장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라는 책에 보면
"열 아홉살 때 인천에서 막노동을 할 때였다. 노동자 합숙소에는 밤이면 들끓는 빈대로 잠을 잘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빈대를 피하기 위하여 밥상 위로 올라가 잠을 잤는데 빈대는 밥상 다리를 타고 올라와 물었다. 다시 밥상사 네 다리에 물을 담은 양재기를 하나 씩 고여 놓고 잤다. 그런데 빈대는 여전히 괴롭혔다. 밥상다릴 타고 기어오르다가 몽땅 양재기의 물에 빠져 죽었어야 했다. 

불을 켜고 살펴보다가 아연해질 수 밖에 없었다. 빈대들이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사람을 향해 툭 툭 떨어지고 있는게 아닌가. 빈대도 목적을 위해 저토록 머리를 쓰고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서 성공하지 않는가, 무슨 일에든 절대 중도포기하지 않고 죽을 힘을 다한 노력만 쏟아붙는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큰 지진이 일어나 옥 터가 무너지고 문과 매인 것이 다 열리고 풀려졌습니다. 
갇혀있던 죄수들이 다 도망가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한 옥문을 지키고 있는 간수, 그는 이제 옥문을 지키는 당당한 간수가 아니라 죄인들을 지키지 못한 죄지은 간수가 되었습니다. 한 순간에 자신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간수, 결국 두려워 자결하려는 간수를 막아선 사람은 다름 아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죄수였던 바울이었습니다. 간수가 원했던 구원은 지금 자기가 살 방도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상황의 다급함과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는 힘. 

그러나 바울의 대답은 훨씬 근본적인 문제, 그런 육체의 차원을 넘어선 영혼 구원의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가정을 구원을 얻을 것이다' 바울을 통해 간수와 그 가정은 복음을 듣게 되었고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이들은 훗날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을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유혹을 이기고 기회로 삼았던 바울과 실라에 의해서 간수와 그 가족들을 구원하였고, 또 이 빌립보 지역에 교회가 세워지게 한 것입니다.

기회는 달콤하지 않습니다. 기회는 가볍게 오지 않습니다. 기회는 댓가를 치루라고 하고 기회는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리라합니다. 그러나 유혹은 달콤하게 찾아옵니다. 아주 가볍게 찾아옵니다. 다이어트 하려는 사람에게 식후에 설탕 커피 한잔이나 저녁 잠자리 전에 카라멜 한개는 대단히 달콤하고 가벼운 유혹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이어트를 실패케 하는 가장 치명적인 유혹입니다. 유혹을 기회로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회는 잡고 유혹은 물리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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