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알 수 없는 하나님(2) (롬 11:33-36)

  • 잡초 잡초
  • 514
  • 0

첨부 1


알 수 없는 하나님(2) (롬 11:33-36) 
 
 
지혜자 솔로몬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하였습니다(잠 9:10). 거룩하신 자 하나님을 알고 올바로 섬기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입니다(고전 10:31). 사도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롬 12:2). 

구약의 호세아도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이 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호6:3) 이와 같은 말씀들은 사람이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아야 될 이유와 그 결과를 일러주는 것입니다. 어느 때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자 애를 씁니다. 그렇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하나님을 느낍니다.

1.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욥기 11:7에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무엇을 하겠으며 스올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고 하였습니다. 본문 성경을 기록한 사도 바울도 여기에 공감하였습니다(33절)

1)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토기장이와 진흙으로 비유하였습니다(렘 18:6). 진흙은 토기장이가 의도하는 대로 빚어질 뿐이고 스스로 토기장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마치 유모가 아기를 알아도 아기는 젖 먹이는 엄마를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앉고 일어서는 것과 생각까지 다 알고 계신다고 하였습니다(시 139:2-3). 그는 또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시 139:13-14). 하나님의 지혜와 그 솜씨를 인간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본문 말씀 33절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의 주관이나 경험적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논할 때가 많습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 중에 자기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인 것처럼 착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했지만 생각과는 달리 전혀 반대 되는 결과가 나타났을 때 낙심하거나 원망하게 됩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르다.”고 하셨고 또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사 55:8-9). 본문 말씀에도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고 하였습니다(33절).

3) 하나님만의 비밀입니다.

성경에는 주권자 하나님만이 아시는 비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호기심을 가지고 알기 원하는 것 중의 하나가 예수님의 재림하실 날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집요하게 물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라.”고 단호히 잘랐습니다(행 1:7). 이 부분에 대해서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마 24:36).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을 심판하실 날은 인간이 전혀 알 수 없는 비밀입니다. 그뿐 아니라 개인의 운명이나 종말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알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전도서 7:14에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 부분적으로 알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계시의 지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엡 1:17). ‘계시’ 라는 말은 ‘열어서 보여 준다’는 뜻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자기를 나타내 보여 주시는 방법을 이르는 말입니다.

1)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말씀의 실체로 표현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1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λογοs)은 인격적인 말씀, 곧 예수님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하였습니다(요 10:20). 요한복은 1:18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자기의 눈으로 볼 수 있었던 제자들과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부분적으로 라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마 11:27). 

2) 성령의 감동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됩니다. 에베소서 1:17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성령의 지혜로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음을 말씀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4:26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고전 2:10). 그리스도인은 성령에 감동된 사람이지만 아직도 육신의 소욕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알 수는 없습니다(고전 2:14-15).

3) 이루어지는 결과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잘 몰랐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고 했습니다(요 1:33-34). 영적인 감각이 있는 사람은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서 나타나는 결과를 보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합니다. 전도자 바울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니면서 소아시아 지방에서 전도하려고 했으나 쉽게 풀리지 않았고 오히려 마게도냐인의 환상이 나타나게 되자 그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게 되었습니다(행 16:1-10). 미련한 인간들이 하나님보다 앞설 수는 없지만 뒤따라가면서라도 주의 뜻을 알게 되는 것은 은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3. 확실히 아는 것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12에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1) 자기의 무능함을 압니다.

빛이 있는 곳에서 어둠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서 인간의 무능함이 드러나게 됩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고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과 비교할 수 없는 차원임을 알았을 때 비로소 인간의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실토하게 됩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의 계시와 환상을 보았던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하고 고백하였습니다(사 6:5).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채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았던 사람이 뒤늦게 깨닫게 되어 회개하는 고백이 있습니다. 아삽이 노래한 시편 73:22에 “내가 이같이 우매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압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몰랐을 때는 배반하고 멀리 떠났지만 훗날 뉘우치고 돌아왔을 때 용서하고 맞아 주는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실감하였습니다(눅 15:20-24). 인간이 하나님께 대하여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습니다. 다 몰라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크기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3:18-19에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 했습니다(고후 5:14). 그 사랑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어떤 환난이나 역경에서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받게 됩니다(롬 8:37).

3) 하나님의 목적을 압니다.

본문 말씀 36절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이나 만물은 다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생성변화 하게 되며 결국 하나님의 정하신 목적에 따라 생애를 마치게 됩니다. 그 모든 과정은 주권자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은 사람도 자기의 지식으로 하나님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삶의 목적을 분명히 인식하는 사람은 그 인생을 허망하게 살지는 않습니다. 자기의 인생을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살았을 때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을 때 의의 면류관이라는 상급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딤후 4:7).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추천인 1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