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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를 위해 거침없는 삶 (행 28: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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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위해 거침없는 삶 (행 28:16-31)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부분입니다. 무대는 로마이고 주역은 사도 바울입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무대와 주역 뒤에는 언제나 눈에 띄지 않는 연출자가 있는 법입니다. 사도행전의 참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굳이 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로마행을 택했습니다. 아니 그를 로마로 내어 모신 것은 사실 성령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구원의 복음이 전 세계를 향해 퍼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배를 타고 로마로 향해 출발했습니다. 호송책임자는 율리오라 하는 <아구스도>대(隊)의 백부장이었습니다. <아구스도>대(隊)란 <황제부대>라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그 부대원들이 현지 주민들 가운데서 선발된 지원부대를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아그립바 2세 시대에 가이사랴에 이 지원부대 하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지원부대의 백부장인 율리오가 다른 죄수 몇 사람과 함께 바울을 호송하게 된 것입니다(행27:1). 

백부장은 바울을 친절히 대하였으며 배가 들르는 곳마다 바울이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했습니다(행27:3). 여기서 친구들이란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로마까지의 항로는 결코 짧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리상으로는 한국에서 베트남까지 가는 정도의 뱃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선박이나 항해술이 요즘같이 발달하지 않았을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오늘날 한국에서 배타고 미국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바울의 로마행은 중간지점인 그레데 섬의 미항(美港)이라는 곳까지는 그런대로 순조로웠습니다(행27:4-13). 다시 말하면 인천에서 떠나 베트남 갈 때 홍콩까지는 조용했다든가, 부산에서 떠나 미국 갈 때 호놀룰루까지는 평온했다든가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그레데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났습니다(행27:14). 허리케인을 만난 것입니다. 그때부터 배는 바람과 파도에 떠밀려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배가 가라앉는 것을 막기 위해 짐과 배의 기구들을 내버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행27:15-19).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않고 큰 풍랑은 그대로 있었으며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도 못하게 되자 구원의 여망마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행27:21). 그때 바울은 사람들 가운데 서서 말하기를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행27:22-26) 했습니다. 

그렇게 열나흘 주야를 바다에서 이리 저리 떠밀려 다니다가 육지가 가까워지는 것을 짐작하고 물을 재어 보니 실제로 그 깊이가 줄어들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행27:27-28). 그러자 사공들은 도망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행27:30). 이를 알아챈 바울은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 사람들이 다 도망가면 당신들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행27:31). 이에 군인들은 사공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행27:32). 

날이 새자 바울은 결국 배가 육지에 부딪쳐 난파할 것을 예상하고 이에 대비해 사람들에게 모두 살아남기 위해 미리 음식을 먹어 기운을 차릴 것을 권면하며 배에 있던 이백칠십육 명 전원에게 떡을 나누어 주어 배불리 먹게 했습니다(행27:33-38). 예상대로 배는 멜리데라는 섬의 해안에 걸려 난파되었고 사람들은 혹은 헤엄을 쳐서 혹은 부서진 배의 널빤지 등에 의지해서 모두 구조되었습니다(행27:38-44, 28:1). 군인들은 그들 승객 중 죄수들이 헤엄쳐서 도망할까봐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만 백부장이 바울을 살리기 위하여 부하들의 뜻을 막았습니다(행27:42-43). 

멜리데 섬의 원주민들은 비가 오고 추운 날씨에 난파하여 구조된 바울 일행을 특별히 동정하여 불을 피워주고 영접했습니다(행28:2). 그런데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었을 때 나뭇단 속에 숨어 있던 독사 한 마리가 화기를 이기지 못하고 튀어나와 바울의 손을 물고 늘어졌습니다(행28:3). 원주민들은 그 광경을 보고는 서로 말하기를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했습니다(행28:4). 그러나 바울은 태연하게 그 독사를 손에서 털어 불속에 던져버렸고 상처도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행28:5). 

원주민들은 바울이 부어오르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알고 기다리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는 생각을 바꾸어 말하기를 “그는 신이라.” 했습니다(행28:6). 바울은 그 섬에서 가장 높은 보블리오라 하는 사람의 집에 초대되어 친절한 영접을 받고 사흘이나 머물며 그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는 것을 기도하고 안수하여 낫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그 섬의 다른 병든 사람들도 고쳐주었습니다(행28:7-9). 그들은 바울에게 후한 대접을 하고 그가 떠날 때에 쓸 것을 배에 가득 실어 로마로 전송했습니다(행28:10). 

그로부터 수개월 후(행28:11-15) 드디어 바울은 로마에 들어갔습니다. 본문 16절에서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한 것 보면 로마에서의 바울은 감시는 받고 있었지만 대단히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본문 30-31절에도 보면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합니다. 말하자면 그는 불구속 기소상태에서 이년간이나 자유롭게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우선 로마에 있는 유대인 지도층 인사들을 청하여 자기가 왜 로마에 오게 되었는지에 관해서 설명했습니다. 본문 17절 하반절부터 20절까지입니다: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바울의 설명을 들은 유대인들은 선입견을 가지고 그를 배척하려 하지 않고 바울의 사상이 무엇인지 일단 들어보겠다는 객관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본문 21-22절)하고는 날짜를 정하고 바울이 유숙하는 집에 많이 모였으며 바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 믿기를 권했습니다(본문 23절). 물론 그 사람들 가운데는 그의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본문 24절). 

그렇게 각각 상반된 반응을 보이며 흩어지는 것을 본 바울은 성령께서 옛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하신 말씀이 딱 맞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한 마디 했습니다. 본문 26-28절입니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이 말은 유대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역시 쉽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이방인을 위한 전도자로서의 자신의 사명과 그 당위성을 더욱 분명히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그 말은 결국 바울이 로마로까지 오지 않을 수 없었음을 뒷받침해주는 말인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마무리하는 이 대단원의 마지막 31절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한 데서 “거침없이”라는 말을 특별히 음미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단지 가르치는 데만 거침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그의 구원의 복음을 증언하는 삶의 길을 가기에 거침이 없었던 것이라고 봅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길에 장애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마어마한 장애가 수없이 있었습니다. 고후11:23-27에서만도 바울 자신이 뭐라고 쓰고 있습니까?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결코 바울의 복음전도의 행보를 막을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주님 위해 삶을 온전히 바치기로 한 사도 바울의 의지를 조금이라도 꺾을 수는 없었다는 말입니다. 주님 위한 그의 삶에 거치는 것들이 수없이 있었지만 그는 주님 위해 거침없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바울이었기에 로마로 가는 그의 모습은 재판을 받고 죽으러 가는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로마로 가는 배에는 호송책임자인 백부장도 있었고 군인들도 있었으며 선장도 있었고 선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항해에 관해 조언을 하고 승객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군인들을 지휘하고 난파선의 이백칠십육 명의 재난구조작업을 총괄한 것은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이 곧 백부장이고 선장이고 선주였습니다. 원목, 군목, 의사 역할까지도 그가 다 하고 있었습니다. 멜리데 섬에서도 신처럼 가장 존경받으며 지낸 사람은 바울이었습니다. 

로마로 가면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하고 자포자기한 사람의 모습이 전혀 아닌 것입니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최선을 다하는 사도 바울을 봅니다. 그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용서의 은총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가장 고상한 것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달려갈 길이 무엇인지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걸 일이 무엇인지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온전히 자신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바울에게 그의 사역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다 주셨습니다. 그가 사도행전의 주역으로서 필요한 은사를 다 베푸셨습니다. 믿음도 주시고 소망도 주시고 사랑도 주시고 성경의 지식도 주시고 신학적 통찰도 주시고 말씀의 권능도 주시고 예언의 은사도 주시고 병 고치는 은사도 주시고 귀신 쫓는 은사도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힘도 주시고 용기도 주시고 인내도 주시고 천막 만드는 기술이나 고치는 기술도 주시고 절제와 자족의 은사도 주시고 굶어도 안 죽고 맞아도 안 죽고 뱀에 물려도 안 죽는 은사도 주시고 감옥에 갇혀도 풀려나는 은사도 주시는 등 온갖 은사를 다 주셨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은사도 주셨습니다. 온전히 주님 위해 살려 하기에 주님께서도 아낌없이 다 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 위해 온전히 살려한다면 그런 삶을 위해 필요한 것 하나님께서 다 주실 것입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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