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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날마다 좋은 날이 되려면 (벧전 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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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좋은 날이 되려면 (벧전 3:10-12)


(벧전 3: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벧전 3: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벧전 3: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길일 즉 좋은 날을 많이 믿습니다. 기왕이면 좋은 날에 결혼하고 싶어하고 이왕이면 손없는 좋은 날에 이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몇년에 한번씩 찾아온다는 길일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예비 신혼부부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예식장 수색작전을 펼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따로 어느 달 어느 날이 좋은 날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갈 때 좋은 날이 우리를 따라온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디가서 돈을 주고 물어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좋은 날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날마다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기쁘고, 우리의 가정이 행복하고, 우리가 소망하던 일들이 다 이루어지는  좋은 날이 매일 매일 계속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읽은 본문 10절에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이라고 시작합니다. 여러분에게 여러분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좋은 날을 보기를 원하는 간절한 소원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좋은 날을 보기를 원하면 오늘 말씀에 귀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대로 실천하여 매일 매일 좋은 날이 여러분앞에 활짝 전개되는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1, 좋은 날을 보려면 좋은 말만 해야 합니다.(10)
 
10절에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복 받는 것은 간단합니다. 우리의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놀랍게도 우리가 말하는 대로 되어갑니다. 그래서 우리말에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안된다, 안된다 하면 정말 안됩니다. 죽겠다, 죽겠다 하면 죽습니다. 망한다, 망한다 하면 망합니다. 우리 입에서 떠난 말은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습니다. 겨냥한대로 꽂힙니다. 말에는 엄청난 힘과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쳐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이 좋은 날을 보기 위해서는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다른 사람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복을 받으려면 진실만을 말하라고 말씀합니다. 정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났던 경제 위기도 정직하지 않은데서 온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기술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진실이 없어서 문제고, 정직하지 않아서 문제를 키웠습니다.
  
우리는 거짓말하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말 한 번 해본 것인데' 하고 거짓말을 죄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거짓말은 굉장히 큰 죄입니다 위증죄는 아주 큰 죄로 여깁니다. 그 어떤 사람도 거짓말을 하게 되면 인격적인 대우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도 거짓말을 하게 되면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게 된 것도 정적들에 대해서 도청을 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도청한 사실을 은닉하기 위해서 거짓말한 것 때문에 결국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에게 복된 날이 찾아옵니다. 남을 속여야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성경은 진실해야 잘산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말로 인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좋은 말만 하여야 합니다. 우리 입술에는 악독이 가득하기 때문에 잘못 사용하면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악한 말을 그치고 남을 넘어뜨리고 해하기 위한 거짓의 말을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날 보기 원하고  생명을 사랑한다면 나쁜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혀에 자갈을 물리고 말을 조심하여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좋은 말을 가려 해야 합니다. 
  
벤자민 플랭클린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공의 비결은 험담을 하지 않고 상대의 장점을 드러내는데 있다."
  
말은 우리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정다운 인사 한마디가 하루를 멋지게 열어줍니다. 짧지만 이런 한마디 말이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참 잘했어."  "기도할께."  "넌 잘 될거야!"  "네가 참 좋아."
우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우리의 미래를 열어줍니다.  오늘 당장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말을 해봅시다.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이 행복해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행복한 날을 열어주십니다.

  
2. 좋은 날을 보려면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11)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불행한 원인이 재물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보다 더 크고 좋은 집에서 살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들보다 더 화려하게 꾸미지 못하고 살기 때문에 불행하고, 남들보다 더 수입이 적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많은 재산을 모으려 하고, 남들보다 더 나은 지위를 얻으려고 하고, 남들보다 더 비싼 명품으로 치장을 하려고 안간 힘을 씁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허무함을 맛보게 될 뿐입니다.  
  
본문에서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선하게 사는 삶, 화평을 따르는 삶이 진정 복 있는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날은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화목하게 사는 것,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사는 것입니다.

원래 이웃이라는 말은 '이' 라는 말과 '웃' 이라는 말이 합쳐진 말입니다. '이' 라는 말은 가까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웃' 이라는 말은 위라는 말입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윗사람으로 높이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바로 세우는 가장 기초적인 사랑입니다. 
  
성도들은 악에서 떠나고 선한 일을  열심히 찾아서 하고 그리고 서로  화목하고 화평을 구하여야 합니다. (히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말슴하십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두 주간 쯤 전에 우리 동네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부부간에 다투다가 남편이 아내를 찔러 죽인 무서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오남매가 하루 아침에 부모없이 살게 되는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살인 사건의 7-80%는 이처럼 가족 또는 친구 등 아주 가까운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들을 열심히 사랑하고 잘 대해야 합니다. 가까운 가족과 이웃, 친구와 동료들과 관계를 악화시키지 말고 좋은 관계로 개선해야 합니다.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함부로 대하지 마십시오. 다투지 마십시오. 본문에 악에서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분이 상할 때 특히 악한 생각, 악한 감정, 악한 언어를 다 제하시기 바랍니다. 화를 내는 것,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은 모두 악한 것입니다. 가족과 이웃에게 늘 선하게 대하십시오. 적극적으로 화평을 구하고 화목을 추구하십시오. 이웃중에서 사이가 나쁜 사람이 있다면 속히 화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섭섭함을 풀고 사랑을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좋은 날을 불러오는 열쇠입니다. 

  
3. 좋은 날을 보려면 좋은 신앙을 소유해야 합니다.(12) 
  
눅15장에 보면 탕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아버지의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자기가 불행한 원인이 재산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친구를 다 잃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행해진 진짜 이유가 아닙니다.  후에 그는 자신이 아버지를 떠났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버지품을 떠나서는 절대로 좋은 날을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을 깨달은 둘째 아들은 곧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버지 품으로 돌아갑니다.  아버지는 실패한 자식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쁘게 맞이합니다. 잔치를 크게 열고  사람들에게 돌아온 자식을 자랑하며 즐거워합니다.  
  
여기에 중요한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없이도 세상적으로 성공하면 좋은 날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성공을 위하여 정신없이 달려갑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난채 세상적으로도 성공한다고해도 나쁜 날을 계속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일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활동은 기도입니다. 부모자녀사이에도 대화가 중단되면 저절로 관계가 멀어집니다. 날마다 온갖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가족은 행복합니다. 서로에게 친밀함을 느끼고 좋은 날로 가득한 행복한 삶이 이어집니다. 

어느날 세계적인 설교자 스펄전 목사가 화단을 가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집의 강아지 한 마리가 울타리를 넘어 들어와 화단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꽃을 무척 좋아했던 스펄전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강아지를 향해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강아지를 내쫓기 위해 나무토막을 집어던졌습니다. 얼마 후 그 강아지가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나무토막을 물고와 스펄전의 발앞에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스펄전은 자신을 믿어준 강아지를 향해 더이상 고함을 지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강아지를 쓰다듬으면서 말했습니다. "강아지야, 화단에 들어오고 싶으면 언제라도 들어오렴. 내가 네게 졌다"  하나님 앞에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로는 하나님께 옳다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허물이 있어도 염치없는 강아지처럼 계속 매달리는 사람이 결국 큰 사랑을 얻습니다. 신앙이란 '눈치'보다 '간구'가 더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미국에서 노예를 팔고 사던 시절 어느 집에 주인의 신임을 받는 '조'라는 노예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주인은 몇 명의 노예를 더 사려고 조와 함께 노예시장을 갔습니다. 그 때 조는 유난히 늙고 힘없어 보이는 노예를 보더니 그를 사자고 했습니다. 주인은 "저 노예는 너무 늙어서 쓸모가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네게 짐만 될 것이다"고 거절하였지만 사랑하고 신뢰하는 조의 간절한 청원 때문에 할 수 없이 늙은 노예를 샀습니다. 집에 돌아온 조는 그 늙은 노예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며 유별나게 보살폈습니다. 그러한 조를 이상히 여긴 주인이 그를 불러 "혹시 네 아비가 아니냐?"하고 물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는 제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원수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그가 나를 유괴해 노예시장에 팔았습니다. 그런데 노예시장에서 뜻밖에 그를 보게 되었고 순간 '너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지금의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제 신분 때문에 그를 사랑하고 돌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매일 매일을 좋은 날로 바꾸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분의 언어에서 악을 제거하며 은혜로운 말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원수관계 불편한 관계를 정리하시고 피차 화해하고 화평의 길을 쫓으시기 바랍니다. 화평의 길을 쫓음으로 더 좋은 날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 더, 좋은 날 보기를 원하면 하나님게 의롭게 보리고 기도에 힘써서 귀기울여 듣고 계시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감정이 밝아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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