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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손이 짧아졌느냐? (민 11: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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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손이 짧아졌느냐? (민 11:16-23)
 

우리가 경외하는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신이십니다. 지금도 우주만물을 운행하시며, 세계 만국의 흥망성쇠와 우리 개인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출애굽기와 민수기를 읽어 보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자손을 해방시키신 일로부터 가나안 입성 직전까지 하나님께서 선민을 어떻게 돌보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려 징벌하셨고, 홍해를 갈라 바다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셨으며, 광야생활 40년 동안 밤낮으로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으며,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40년 동안 먹이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서 마시게 하셨습니다. 호렙산에서 율법을 주셨고, 고기가 먹고 싶어 할 때는 메추라기 떼를 보내주셨고, 아말렉 족속과 모압 자손과 같은 대적들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곤경과 위기에 직면했을 때면 어김없이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광야가 낙원으로 바뀐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상한 돌보심이 있었지만, 광야생활은 고단하고 힘들었습니다. 돌이 널려 있는 거친 길을 걷기도 하고, 며칠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부추와 마늘과 참외와 푸성귀 따위를 먹을 수 없었습니다. 적들이 공격해 오면 마주 나가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한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향하여 가는 그들이 감수해야 할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인지라 믿음이 약해져서 때때로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모세와 같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도 낙심해서 하나님께 나아가 항변한 적이 있었습니다. 출애굽한 지 일 년 삼 개월이 좀 지났을 때였습니다. 백성들이 먹을 것이 박하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향하여 악한 말로 원망했습니다. 백성들이 울면서 말하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광야에서 매일 만나를 먹고 살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도 이스라엘 자손은 감사할 줄 모르고 없는 것들을 들추어 내어 불평을 늘어놓았던 것입니다.

원망, 불평은 전파되는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얼마 되지 않아 신세를 한탄하면서 장막 문에 서서 우는 백성들을 어디서나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히 진노하셨고, 모세 역시 백성들에 대하여 화가 났습니다. 그는 지친 나머지 하나님께 나아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왜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셔서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내가 어찌 그들을 생산하였기에 주께서 나더러 양육하는 아비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가로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되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이십 일만 먹을 뿐 아니라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일개월간을 먹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놀라서 하나님께 여쭙기를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일개월간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라고 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밀이나 보리와 같은 곡식을 양식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주신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것도 매일같이 내려 주셨으므로 온 백성이 일용할 양식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기적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고기를 주신다고 하셨으니 또 어떤 방법으로든 고기를 주실 것입니다. 만나를 내려주시는 하나님께서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고 놀랄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모세는 어찌 그러한 일이 가능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감사를 모르고 사사건건 원망 불평을 일삼는 백성들의 태도에 너무나 지치고 실망한 나머지, 모세는 잠시 믿음이 흔들렸던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람을 일으키셔서 바다 쪽에서 메추라기를 몰아, 이스라엘 자손의 진을 빙 둘러 이쪽과 저쪽으로 하룻길 될 만한 지역에 떨어뜨리시니 메추라기들이 땅 위로 두 자 가량 쌓였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나가서 그 날 온종일과 밤새도록, 그리고 그 이튿날도 온종일 메추라기를 모았는데, 적게 모은 사람도 22리터 통을 채울 만큼 모았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한 달 내내, 냄새도 싫어할 때까지 실컷 고기를 먹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여러분의 삶에 무슨 어려운 문제를 만났습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고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아갈 때, 모세에게 하신 이 말씀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경험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로, 당면한 문제에 집착하지 않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 시키기 위해 모세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서 바로 앞에서 당당하게 이스라엘 자손의 해방을 요구했습니다. 홍해 앞에서 울부짖는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외쳤습니다. 갈증을 호소하는 백성들 앞에서 호렙산 반석을 지팡이로 쳐서 물을 냈습니다. 그러한 일을 행하던 모세의 모습은 위엄 있고 당당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모세는 너무나 지치고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기가 진 짐이 너무나 무겁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했을까요? 모세와 같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차라리 죽여 달라고 말하다니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점은 아무리 위대하고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라도 실은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사실인즉, 모세가 행한 기적들은 그의 능력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행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지시를 순종했을 때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에서 생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당면한 문제에 집착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고기가 먹고 싶다고 우는 백성들을 보고 분노했습니다. 그는 불순종과 원망을 일삼는 백성들을 대하면서 ‘내가 왜 이 백성을 위해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회의를 느꼈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우울해지고 피로감이 물밀듯이 밀려 왔습니다. 흔히, 이런 상태를 가리켜 탈진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모세의 하소연을 들으시고 “내가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되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이십 일만 먹을 뿐 아니라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일개월간을 먹게 하겠다”고 하셨을 때, 모세는 놀라서 하나님께 여쭙기를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일개월간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때까지 그가 목격한 기적들과 비교할 때 한 달 동안 백성들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닐 것입니다. 사실이지, 홍해가 갈라진 것이나 매일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는 것은 한달 동안 고기를 먹는 것보다 더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는 믿음이 견고했기 때문에 아무리 큰 난관 앞에서도 하나님께서 능히 해결해 주실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약해지자 하나님의 사람 모세답지 않게 현실의 어려움을 들어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말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의 짐을 덜어주시려고 70인의 장로들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신을 부어 모세를 도와 백성의 짐을 나누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람을 일으키셔서 바다 쪽에서 메추라기 Ep를 몰아, 이스라엘 자손의 진 주변에 떨어지게 하셔서 물리도록 고기를 먹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사노라면 때때로 어려운 시련을 만나 힘들어 할 때가 있습니다. 혼자 짐을 지고 수고하는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 계속해서 붙잡히면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탈진하기 쉽습니다. 믿음이 좋은 성도들도 믿음이 약해져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완전하지 못하므로 때로 그러한 상태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속히 그 같은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짐으로써 가능합니다. 

마음에 의심이 들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소리 내어 외워보십시오.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영원히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손이 짧아질 리가 있겠습니까? 야고보서 1장 17절에 이르기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언제나 변하는 것은 우리이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생각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불변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면한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그 크신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셔서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짐을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모세의 하소연을 살펴보면 “나” 라는 일인칭 표현이 빈번하게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왜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셔서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내가 어찌 그들을 생산하였기에 주께서 나더러 양육하는 아비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가로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출애굽 시로부터 그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백성의 지도자로 세우셔서 그를 통해 모든 일을 행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심부름꾼 노릇을 한 것이지 실질적인 일은 하나님께서 다 행하셨습니다. 열 가지 재앙을 내린 것은 하나님이시지 모세가 아닙니다. 홍해를 가른 것도 하나님이시지 모세가 아닙니다. 만나를 내려주신 것도 하나님이시지 모세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모세는 전혀 수고한 것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많은 수고를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감당할 능력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마땅히 “내가 많은 수고를 했지만 내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어렵고 큰일을 했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감당한 것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백성들의 거역과 불성실한 태도에 실망한 나머지 자기 혼자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 가운데 모세를 제외하고는 엘리야 선지자처럼 큰 능력을 행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가 기도하자 하늘이 닫혀 삼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았고, 그가 기도하자 긴 가뭄이 그치고 비가 내렸습니다. 갈멜산 위에서 바알의 선지 450인을 상대로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 중에서 누가 참 신인가를 놓고 대결했습니다. 그 때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늘로서 불이 내려와 제단을 살랐습니다. 그 날,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 450인을 기손 시내로 끌고 가서 처형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산 정상에 올라가 일곱 번 기도하니 삼년 반의 가뭄이 그치고 소낙비가 쏟아졌습니다. 그야말로 위대한 승리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고 말을 전했을 때 엘리야는 목숨을 위하여 도망했습니다. 혼자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는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했습니다. “하나님,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셔서 엘리야를 도와주셨습니다. 

천사가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는 엘리야를 어루만지면서 “일어나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이에 보니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었습니다.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야를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당도했습니다.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머물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르시기를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대답하기를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다 하나님을 배반하였고 오직 나만 남았다는 생각이 엘리야를 탈진시킨 원인이 된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생각했으나 알고 보니 하나님께서 칠천 인을 남겨두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혼자서 모든 짐을 다 졌다고 생각하는 모세를 위하여 70인의 장로를 세워 짐을 나누어지게 하셨습니다. 전도서 4장에 보니 “9)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짐을 혼자 지고 힘들어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돕는 자들을 세우셔서 나누어지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무거운 짐을 혼자지려고 하면 곤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짐을 주님께 맡길 때 우리가 마음에 쉼을 누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과 직분을 너끈히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음을 믿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습니다. 그런데도 기도할 때 이 사실을 망각하고 ‘하나님께서 이런 어려운 일도 해결해 주실까?’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어려운 문제가 겹치게 되면 ‘과연 하나님께서 이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주실 수 있으실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는 우리의 낮은 수준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하시다면 얼마든지 우리의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주실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한 달 동안 백성들에게 고기를 먹게 해 주시겠다고 하셨을 때, 모세는 말하기를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일개월간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생각해 낸 방법은 양 떼와 소 떼를 잡거나 바다에 가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현실성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축은 고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털과 젖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단지 고기가 먹고 싶다고 가축을 다 잡아 먹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그 많은 백성이 먹을 물고기를 어떻게 잡아올 수 있습니까?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한 달 동안 고기를 먹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람을 명하여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이스라엘 자손의 진 근처에 떨어지게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예측을 뛰어 넘는 기이한 방법으로 일을 행하십니다. 그러기에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이르기를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1장 33절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불가능이 있지만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있을 수 없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음을 믿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에 보면, 아브라함의 믿음을 설명하기를 “19)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백세가 되어서도 자식을 낳게 될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기에,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무슨 어려운 문제를 만났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미리 내 생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는 능치 못하이 없으므로 기이한 방법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바다로부터 수를 셀 수 없으리 만치 많은 메추라기가 몰려와서 진 사방에 떨어지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방법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예레미야서 33장에 이르기를 “2)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3)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할 크고 놀라운 일이라도 하나님께는 언제나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떤 난관 앞에서도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고 절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을 때 어떤 문제 앞에서도 넉넉히 대처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무슨 문제를 만나든지 문제에 집착하지 않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께 성도님들의 모든 짐을 맡기시고,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음을 믿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고말씀하신 하나님께서 그 크신 능력으로 성도님들의 삶 속에 역사하셔서 모든 것이 전화위복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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