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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휴가는 쉼이 아니라 안식이다! (시 4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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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는 쉼이 아니라 안식이다!  (시 46:10-11) 
 

1. 쉴 휴(休) 틈 가(暇)

드디어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었습니다. 휴가 계획들 세우셨습니까? <여름휴가를 백배로 즐기는 방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남성들을 위한 “휴(休)7계명”이라는 것으로, 몇 년 전 명지대학교의 모 교수가 자기 책에서 말한 것입니다. “첫째, 아이들을 위해 절대 놀아주지 말아라. 휴가철만이라도 가족과 아이들을 위해 내 몸 하나 불살라야 되겠다는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떨쳐 버려라. 둘째, 운전은 전적으로 아내에게 맡겨라. 

셋째, 일상과는 완전 다른 방식으로 살아라. 넷째, 시계의 지배를 벗어나라. 때가 되었다고 밥을 먹지 말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으라. 잠잘 시간이 되었다고 잠을 자지 말고 졸리면 그때 잠을 자라. 다섯째, 아내에게는 따로 휴가를 주라. 여섯째, 모든 역할을 집어던져라. 마지막 일곱째, 총각 시절로 되돌아가라.” 이 분이 말한 <휴가를 백배로 즐기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휴가 이전까지의 모든 것에서 벗어나서 마음대로 즐기면서 쉬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과연 이것이 가능할 것 같습니까?

크리스천은 크리스천답게 휴가를 보내야 합니다. 그렇지요? 성도가 휴가라고 해서 성도됨을 내려놓을 수 없잖습니까? 여러분들이 크리스천다운 휴가를 보내기 위해서 알아야 할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휴가는 성경대로 보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성도의 모든 삶은 성경대로여야 합니다. 성경을 벗어난 삶, 특히 성경을 벗어난 휴가는 독을 마시는 것과 같기 때문에 더더욱 성경적으로 보내야만 합니다. 그래서 휴가철을 맞아 성경적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쉼이 어떤 것인지 설교하기 위하여 책들과 자료들을 찾아보니 생각 밖으로 자료나 책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성경이 말하는 쉼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고, 따라서 이제까지 성경적인 방법으로 쉰 사람들도 드물었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성경은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쉼에 관한 말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창세기는 1장에서 천지의 창조를 기록한 후 곧바로 2장 1, 2절에서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제일 마지막 장인 22장에 가서는 장차 주님이 다시 오심으로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고 거기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것에 대한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우리 예수님의 말씀 중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는 유명한 말씀도 있지 않습니까? 즉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쉼, 혹은 안식에 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쉼이 무엇이고, 어떻게 쉬는 것이 성경적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죠. 

자, 그렇다면 여러분, 성경이 이렇게 쉼이나 안식에 대해 많이 말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타락하기 전에 주어진 일에 대한 것과 또 다른 하나는 타락한 후에 주어진 일에 대한 것입니다.

2. 성경이 쉼을 말하는 이유

1) 일없이 살 수 없는 인생

‘일’이라는 말은 성경에 약 200번 정도 나옵니다. 단 한번 나오는 단어나 이름들도 많은데, 같은 말이 200번이나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사실 성경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일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창조하신 후 그에게 명하신 첫 번째 사명도 일이었습니다(창1:28). 그런 면에서 일은 하나님의 모습이었고, 하나님을 닮은 인간의 모습이고, 나아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사명이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때문에 일은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은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의 도구입니다. 사람은 일을 통하여 자아를 실현합니다. 즉 일을 통하여 자신의 재능과 가치와 역량 등을 알게 됩니다. 또 일을 통하여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꿈을 이루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사람은 일을 통하여 생활에 필요한 경제적인 유익을 얻습니다. 그리고 일을 이룬 후 맛보는 성취감과 기쁨은 또 얼마나 큽니까! 뿐만 아니라 일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사회적인 관계의 유익을 얻습니다. 즉 일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이요, 그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통로가 되는 것이죠. 그러니 일이 하나님의 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일이 이렇게 사명이자 복인 것만은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일에 매이게 되었습니다. 일을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게 된 것이지요. 사람이 일하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것과 같으며, 가장이나 부모가 일을 하지 않으면 가족들의 생계는 누가 책임지며, 자녀들의 미래는 누가 보장해 줍니까? 그리고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일은 사람에게 고통스러울 정도로 가혹한 것이 되었습니다. 

가혹한 고통을 수반한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가 있게 된 것이지요. 일 자체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 육신과 정신을 고갈시키는 경험, 그리고 치열하고도 과도한 경쟁으로 인하여 마치 전쟁터에 있는 군인처럼 사람들을 몰아가는 것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뿐입니까? 어떤 사람은 일에 중독되어 거의 환자 수준으로 살아가는가 하면, 일하다 병 걸리고, 일하다 사고 당하고, 일하다 장애를 입고, 일하다가 죽는 경우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면이 일이 인류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가혹한 징벌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사명과 복으로 주어진 일이 타락한 이후 저주와 징벌로서의 노동이 되었고, 그때부터 사람은 일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 즉 일에 매이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일이 우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쉼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또 영원한 안식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2) 쉼과 안식의 차이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여러분이 아셔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쉼과 안식을 같은 말처럼 사용해왔으나, 사실 쉼과 안식은 다릅니다. 쉼과 안식은 어떻게 다를까요?

우리는 너무 일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억척같이 일하다가 지치면 잠시 쉬고, 제대로 쉬기 전에 다시 일터로 달려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사실 쉬는 것도 쉬는 것이 아니죠? 사정이 여의치 못하면 쉼 없이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곱째날을 따로 구분하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일하지 않고는 먹고 살 수 없는 잔혹함과 일에 매이는 것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6일 동안 창조의 사역을 하시고, 칠 일째 되는 날 쉬심으로서 본을 보이셨습니다. 

따라서 일로부터 쉬는 것이 안식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은 대부분 도시의 소음과 삶의 분주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일이 반복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쉴 겨를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는 휴식을 필요로 합니다. 사람에게 꼭 필요한데도 정작 누리지 못하고 잃어버린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쉼’입니다. 사람은 쉬어야 합니다. 쉼은 온 몸과 영혼을 새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을 잘 보면, 이런 식의 쉼을 어리석은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한 후에 하루를 철저하게 쉬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쉼이 아니라는 것이죠. 성경이 말하는 쉼은 일의 중단으로써의 쉼이 아닙니다. 즉 성경이 말하는 쉼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안식”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쉰다는 것은 일을 멈추는 것, 일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 잠시라도 일을 잊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식은 일을 멈추는 것이긴 하되 하나님 안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기독교 작가인 ‘마크 뷰캐넌’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해야 하나님의 성품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쉼의 원천이요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추구할 휴가, 쉼, 안식은 어떤 것입니까? 진정한 쉼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참된 쉼이 일어난다는 것, 그리고 그 하나님 안에서 쉴 때 다음을 위한 충분한 준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식은 예배가 중심입니다. 예배 없는 안식은 그냥 쉬는 것이고, 노는 것이고, 잠시 멈추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진정한 회복도 없으며, 다음을 위한 준비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의 휴가는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혹은 주님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며, 그 중심은 예배입니다. 따라서 이번 휴가가 여러분에게는 이런 의미에서 안식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이번 휴가가 단순한 쉼이 아니라 진정한 안식이 되기 위해서 주님과 예배가 그 중심에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한 안식, 즉 여러분의 휴가를 돕기 위한 것입니다. 휴가다운 휴가, 설사 휴가를 가지 못하더라도 최고의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낸 것 같은 효과를 보기 원하는 분들은 오늘 본문을 주목하십시오. 오늘 본문은 쉼과 안식에 관한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이 본문을 살펴보면서 여러분들은 성경적인 쉼이 어떤 것인지, 그 개념과 가치를 알고, 그에 따라 이번 여름휴가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3. 휴가는 안식이어야 한다!

오늘 본문인 시편 46편은 지난 주 설교 본문인 시편 84편처럼 ‘고라’라는 분의 후손인 어느 사람에 의해 쓰여진 시입니다. 이 시가 언제,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쓰였는지에 대해서 두 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첫째는 남 왕국 유다 나라의 여호사밧 왕 때, 모압과 암몬과 마온 사람들의 聯合軍이 유다를 공격해 왔을 때 지어졌다는 것입니다(역대하 20장). 적들의 공격을 받은 여호사밧 왕은 온 백성에게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 기도 이후에, 敵陣에서는 웃지 못 할 일이 일어났는데요. 세 개 부족의 聯合軍이었던 적들은 자기들끼리 분열이 일어나서 서로 죽고 죽이는 바람에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기도 전에 스스로 自滅해 버렸습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에 대한 또 다른 견해는 역시 유다의 왕이었던 히스기야 왕 때(역대하 32장),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공격해 왔는데, 그때 역시 군사적으로 절대 劣勢였던 히스기야 왕과 유다 나라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외에는 달리 전쟁을 감당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 왕과 전 백성들은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그 결과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영문을 알 수는 없으나, 앗수르 진영의 사령관과 부대장들, 그리고 군인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즉 自中之亂이 일어난 것이죠. 그로 인해서 유다는 위기를 모면했고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이 두 사건 중, 어느 것과 연관이 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유다 나라와 전 백성이 絶體絶命의 危機를 만났을 때, 그리고 그 위기를 자신들의 힘으로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고, 또 다른 누군가의 도움조차도 기대할 수 없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적을 물리친 일을 체험한 사람들이 부른 노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오늘 본문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인은 원수들의 전쟁 도발로 인한 “환난” 중에 있었습니다(1). “환난”이란 ‘좁고 사방이 막힌 곳에 묶여있다, 갇혀 있다’는 의미로서, 시인을 비롯한 모든 백성들은 적군들이 사방에서 자신들을 조여 오는 가운데 상상을 넘어서는 큰 어려움을 만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2절과 3절에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진이 흔하지 않는 유다 지경에 지진이 일어나 산과 들과 강이 완전 뒤바뀌어버리는 것, 그야말로 驚天動地할 일 아닙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을 산이 흔들리고, 아니 아예 산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미친 듯이 춤을 추고 …. 여러분, 이것이 지금 시인과 유다 백성의 처지를 설명한 말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시련을 만난 것이죠. 이렇게 엄청난 적국의 공격으로 인하여 나라만 흔들립니까? 개인의 생명이 끝나고 가정이 사라지는 등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기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작 지금 당장 시급한 것은 적군들이 성을 둘러싸고 있어서 식량이 조달되지 못해 굶어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울부짖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어버이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나아가 이런 엄청난 외부적인 상황보다 시인과 백성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마음, 내적인 상태였을 것입니다. 즉 지금 가장 흔들리는 것, 바닷물처럼 뛰노는 것은 바로 두려움과 불안에 빠진 시인과 백성들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시인은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3).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피난처시며 힘이시기 때문입니다(1,7).’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신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7).’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의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11).’ 그가 이렇게 비슷한 말을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만큼 자신의 확신이 틀림없다는 말입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피할 길을 주시고 이길 길을 주실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성도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지금 그가 당한 위기를 넘어서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의 위기를 넘어서게 하는 것으로만 끝내지 않습니다. 4절에 보면,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시냇물이 흘러 그 주변 땅을 옥토로 만들듯, 하나님께서 자기를 믿는 백성들의 삶의 자리와 가정을 축복하여 번영을 이루게 하겠다는 말입니다. 

5절에도 비슷한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그 성중에 계시면서 자기 백성의 삶의 자리, 생활터전을 지키시고 번성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그러면서 시의 분위기는 5절부터 앞부분과 완전히 달라집니다.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조용한듯하나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가진 사랑이 표현되는가 하면, 9절처럼 아주 격정적인 사랑도 표현됩니다.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그러고 나서 10절, 11절에서 이 시의 결론이 나옵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이것은 시인과 유다 백성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혹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의 첫 마디가 무엇입니까? “너희는 가만히 있어라!” “가만히 있다”의 정확한 의미는 ‘그만두다’, ‘멈추다’, ‘내버려두다’, ‘힘을 빼다’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의 의미는 ‘너희의 노력을 멈추어라’, ‘모든 도모와 동작을 그만 두어라’, 혹은 ‘적과 문제 앞에서 긴장하여 힘을 주지 말고 힘을 완전히 빼어라’는 뜻입니다. 왜요? 만물의 통치자이자 재판관이신 하나님께서 세상의 나라들과 군왕들을 ‘직접 다스리겠다’, ‘친히 조치를 취하겠다’, ‘하나님께서 몸소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침묵할 때 비로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여러분, 그때의 침묵은 입의 침묵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침묵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을 것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이고, 주님의 능력과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입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휴가가 참된 안식이 되기 위해서 여러분이 10절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시인은 지금까지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이 행하신 역사의 현장으로 초대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치러 온 대적들이 있던 곳을 황폐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압, 암몬, 마온의 연합군이든지, 혹은 앗수르 왕 산헤립의 대군이든지, 그들을 직접 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예루살렘을 치려는 대적들의 활을 꺾고, 그들의 창을 부러뜨렸으며, 그들의 전차를 불태우셨습니다. 그리고 동맹군들이 자기들끼리 다투어 서로를 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대적하는 자들을 분열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기적적인 사건을 통해서 열방에 자신이 진정한 참 하나님이라는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런 역사가 말해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도가 할 일은 살아계신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자기 백성을 위하여 친히 싸우시고 승리케 하시는 여호와, 그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주목하고, 그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고, 그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 연약한 우리가 이 세상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비결이 된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반 년 동안 여러분은 일과 사건들과 사람들 속에 파묻혀 하나님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마치 오늘 본문의 시인과 유다 백성들을 적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공격해 들어오는 것 같은 삶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을 향하여 오늘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첫째, “모든 것을 멈추어라!” 둘째,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휴가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휴가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기만 하다가 일에 복귀하면 도리어 일에 지장만 주고, 휴가 시간마저 만족스럽지 못하게 합니다. 

따라서 아무 것도 안하고 빈둥대는 것보다 적절한 몰입을 할 수 있는 휴가를 보내는 것이 좋다고 충고합니다. 낚시와 같이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활동에 푹 빠져보는 것, 가족들과 모든 것을 잊고 가까운 산과 바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새로운 운동을 배우는 것, 그간 보지 못했던 영화 감상을 하는 등 뭔가에 몰입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마저도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낚시, 운동, 영화나 그 외 취미활동에 몰입한들 거기서 진정한 안식을 얻겠습니까? 그러한 것들은 안식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 본문이 말하는 대로,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가만히 있는 것, 즉 하던 모든 것을 멈추고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주목하여 바라볼 때, 즉 하나님께 몰입할 때, 바로 그때 진정한 안식이 여러분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4. 모든 것을 멈추고 하나님을 바라보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느 심리학자는 ‘사람이 잘 쉬지 못하고 마음에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네 가지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스스로 만족을 모르는 끊임없는 탐욕 때문입니다. 둘째는 늘 남과 비교해서 오는 시기와 질투 때문입니다. 셋째는 분노 때문입니다. 순간적으로 혈기를 냅니다. 그리고 그 혈기의 상처는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그 때문에 마음에 쉼이 사라지는 것이죠. 넷째는 교만 때문입니다. 이 네 가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죄 때문에 인간은 쉬지 못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참된 쉼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누군가 쉼의 의미를 ‘休暇’라는 한자말을 가지고 설명했습니다. ‘휴가(休暇)’를 한문으로 표현해 보면, ‘사람이 나무 밑에서 여유롭게 지내는 것’입니다. 나무가 많이 우거진 숲에서 여유롭게 생각도 하고 글도 읽으면서 보내는 것이 휴가라는 말이 가진 뜻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직도 휴가처를 정하지 못했다면, 그런 곳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에서 바가지요금 물어가면서 짜증나는 휴가를 보내고, 그로 인해 휴가 후유증까지 얻지 마시고, 숲이 우거진 곳에서, 맑은 시냇물이 있다면 더 좋겠지요? 그런 곳에서 몸도 마음도 푹 쉬고 오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休暇’라는 말이 ‘나무 밑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는 것’이라고 할 때, 번뜩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까? 어느 분이 이 한자말의 나무를 영적으로 해석하여,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라고 했습니다. 참 일리가 있더라고요. 그렇지요? 때로는 영육간의 쉼이 나무 밑에서 이뤄지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서 참된 쉼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쉼은 주님의 십자가 아래서 주님과 주님이 하신 일을 깊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던 모든 일을 멈춘 후, 무엇보다 하나님을 주목하고 하나님을 알아 가시기 바랍니다! 그때 진정한 안식과 회복과 충전과 충만이 주어진다는 것, 이것을 경험하는 여러분의 休暇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굳이 많은 돈을 들여 멀리 가지 않더라도, 名山 유명 溪谷 유명 海水浴場을 가지 않더라도 가장 휴가다운 휴가를 보낼 수 있다는 보여주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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