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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기를 하나님께 드리라 (왕하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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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하나님께 드리라 (왕하 18:1-8)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왕하 18:6-7)

우리에게는 위기상황이 있습니다. 옛날 어른들의 말씀가운데 사람은 일생동안 적어도 세 번의 위기를 겪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위기가운데 처해 있을 때에 어떻게 그 위기에 대처하며 극복하고 있습니까? 
  
구약성경에는 위기를 나타내는 용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쩔라으(ע󰗛󰘡) 어떤 일을 더 이상 계속적으로 추진할 수 없는 악조건의 상태, 곧 결국 머뭇거리거나 멈추어야만 하는 어려운 상태
  
󰒒짜라(ה󰙜󰙀) 숨 막히는 상태, 위협 고통 재난과 환난의 상태

󰒓짜라르(ר󰙧󰙀) 적들에 의해 초래되는 압박, 박해. 고통  

성서 속에 나타난 히스기야라는 사람은 극한 위기 속에 있었습니다. 그는 남유다 왕국 13대 왕으로 25세에 즉위하여 29년간 통치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남북 분열 후, 유다 왕국의 왕들 가운데 위대한 왕 중의 한 왕입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그의 재위기 때 활동했습니다.
  
성서에 나타난 히스기야 왕의 위기는 중아아시아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앗시리아의 침략을 당한 국가통치자로서의 위기이고, 다른 하나는 본인자신이 불치의 병에 걸려 죽게 된 위기입니다.
  
성경은 히스기야 왕이 지도자로서 겪어야 할 국가적인 위기와, 병이 거려 죽음 앞의 직면한 개인적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했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승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위기극복의 신앙입니다.
  
우리는 히스기야에게서 위기극복의 독특성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위기 극복의 주체가 하나님이시도록 한 것입니다. 나의 위기 극복을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자기자신의 위기극복의 주체를 하나님이시도록 한 그곳에 두 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과의 연합’입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왕하 18:5-6) 
  
‘연합하다’는 히브리어 ‘따바크’(רכק)의 의미는 ‘집착하다’, ‘달라붙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새번역에서는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를 ‘주님에게만 매달렸다’ 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만 매달려야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매달려 연합하는 데서 우리는 위기가운데서 승리할 수 있고 그 위기를 축복과 영광의 역사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5-7)
  
성경은 히스기야가 하나님께만 매달리듯이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는 믿음의 행위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 성전 정화 
  
히스기야는 맨 먼저 성전의 문들을 열고 보수하였으며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모아 거룩하게 하고 성전의 부정한 것들을 정화시켰습니다.(대하 29:3-11, 15-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 예배회복

“히스기야 왕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도성에 있는 대신들을 불러모아, 주님의 성전으로 올라갔다. 왕가의 죄와 유다 백성의 죄를 속죄받으려고, 그는 황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와 어린 양 일곱 마리와 숫염소 일곱 마리를 끌어다가, 속죄제물을 삼고,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주님의 단에 드리게 하였다.”(대하29:20-21) 
  
회개를 가진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왕은, 주님께서 다윗 왕에게 지시하신 대로, 레위 사람들을 시켜서, 주님의 성전에서 심벌즈와 거문고와 수금을 연주하게 하였다. ........ 그리하여 레위 사람들은 다윗이 만든 악기를 잡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잡았다. 히스기야가 번제를 제단에 드리라고 명령하니, 번제가 시작되는 것과 함께, 주님께 드리는 찬양과, 나팔 소리와 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만든 악기 연주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온 회중이 함께 예배를 드렸다. 번제를 다 드리기까지 노래하는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나팔 부는 사람들은 나팔을 불었다. 제사를 마친 다음에, 왕과 온 회중이 다 엎드려 경배하였다.”(새번역/ 대하29:25-29)
  
찬양이 회복된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 영성회복
  
히스기야는 영성회복을 위해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왕하18:5) 뿐만 아니라 신앙갱신을 위한 종교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맨 먼저 우상 숭배를 금지하여 산당들을 없애고 기념 기둥들을 부수었으며 아세라 목상들을 잘라버렸습니다. 심지어는 모세가 만든 구리 뱀을 조각내 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온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과 므낫세에서 산당들과 제단들을 무너뜨려 모조리 없애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경배와 섬김의 대상이 된 것들은 모두 없애버린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의 감격을 회복하는 유월절 절기를 회복시켰고,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저마다 조에 따라 번제물과 친교 제물을 바치고 임무를 맡게 했습니다. 번제물들과 십일조로 제사장과 례위인들에게 몫을 부족한 없이 나누어 주어 그들이 해야 할 본래의 일에 전념하게 했습니다. 종교 개혁을 성공으로 이끎으로 하나님과 연합하는 영성을 회복했습니다.

  
󰒔 공의 실행/ 계명 준수
  
하나님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잘 지켰습니다.(왕하 18:6)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데서 하나님과 연합의 역사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합된 사람들의 위기는 그 위기를 하나님께서 처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만 매달리는 사람을 하나님은 책임지십니다. 히스기야의 인생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에게만 매달려 하나님과 연합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위기극복의 고백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시27:5-6)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사41:10-11)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히13:6)
   

󰓎 히스기야의 위기극복의 주체를 하나님이 되시도록 하는 특징은 ‘하나님과의 연합’ 외에 또 하나는 ‘벽을 향하는 기도’입니다. 
  
성경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왕하20:2-3)
  
히스기야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했다’는 것은 자신이 죄가 없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진실과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합된 삶을 살고자 최선을 다했던 히스기야는 벽을 향하여 통곡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성을 함락시킨 앗시리아는 남왕국 유다를 침공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앗시리아 왕이 보낸 랍사게가 하나님을 비방하며 항복을 강요하며 보내는 야유와 조롱을 듣고 울분을 참지 못하여 옷을 찢었습니다. 왕궁신하들과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베옷을 두르고,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면서 이사야에게 기도  를 요청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앗시리아왕 산헤립이 보낸 항복하라는 문서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는 병이 걸려 죽게 되었을 때에는 벽을 향하여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의 모든 기도는 벽을 향하듯이 하는 기도였고, 벽을 향하는 기도였습니다. 앗시리아 대군을 바라본 것이 아니고, 아픈 곳을 바라본 것도 아닙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향한 기도였습니다. 위기의 끝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기도였던 것입니다. 위기해결의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위기의 극한 상황 중에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사람을 바라보고 인간의 수단을 의지하고 우연히 해결되거나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환경을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벽을 향 하듯이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절실한 기도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 가운데서 그 위기를 당신의 것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는 이 도성에 들어오지 못하며, 이리로 활 한 번 쏴 보지도 못할 것이다. 방패를 앞세워 접근하지도 못하며, 성을 공격할 흙 언덕을 쌓지도 못할 것이다. 그는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이 도성 안으로는 결코 들어오지 못한다. 이것은 나 주의 말이다. 나는 내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 도성을 보호하여 구원하고, 내 종 다윗을 보아서라도 그렇게 하겠다.”(새번역/ 왕하19:32-34)
  
“네가 기도하는 소리를 내가 들었고, 네가 흘리는 눈물도 내가 보았다. 내가 너를 고쳐 주겠다. 사흘 뒤에는 네가 주의 성전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너의 목숨을 열다섯 해 더 연장시키고, 너와 이 도성을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구하여서, 이 도성을 보호하겠다. 내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내 종 다윗을 보아서라도, 내가 이 도성을 보호하겠다.”(왕하20:5-6)
  
하나님은 히스기야 왕과 예루살렘 성의 위기를 당신의 것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셔서 앗시리아 진영에서 군사 185,000명을 치심으로 모두가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결국 앗시리아의 왕 산헤립은 자기의 도성 니느웨로 돌아갈 수뿐이 없었습니다.  니느웨로 돌아온 산헤립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하고 있다가 그의 아들들의 칼에 암살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죽을 병에 걸린 히스기야의 위기를 당신의 것으로 삼으셔서 15년을 더 살도록 생명을 연장해 주셨습니다.
  
‘죤 프리벨’은 ‘인간의 극한 상황은 하나님께는 좋은 기회가 된다.’고 했습니다. 위기가운데 처해 어찌할 바를 모를 때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마지막이심을 알고 하나님 얼굴을 대하듯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와 함께 하시면서 그 위기를 당신의 것으로 삼으시고 해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편50:15)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의 일생은 예수님과 함께 해변가의 모래 위를 걷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가 걸어온 인생의 해변가를 돌아보니 거의 대부분의 길이 두 사람의 발자국이 나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기 발자국이고 또 하나는 예수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해변가의 모래위에 많은 부분이 한 사람의 발자국 밖에 없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는, 자기 인생에 있어 힘들고 어려웠고 슬프고 어려웠던 위기의 때였습니다. 그러한 때에, 한 사람의 발자국만 있다는 것을 이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결코 저를 떠나시지 않으시며 버리시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주님을 따르고 주님께 순종하고 필요할 때에 기도하면 함께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 일생 중 어려웠을 때마다 한 사람의 발자국 밖에 없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그 어려운 때가, 제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눈물로 기도한 때가 아닙니까? 제가 주님을 필요로 할 때에, 왜 주님은 저를 떠나 계셨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왜, 힘든 위기의 때마다, 저 홀로 걷게 하셨는지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내가 너를 사랑하고 결코 너를 떠나지 않은 것을 네가 알아주기를 바란다. 다시 한 번 그 발자국을 살펴보아라. 네가 어렵고 위기를 당할 때에 네가 본 발자국은 바로 내 것이란다. 내가 그 때에 너를 업고 걸었기 때문이란다.” 
  
위기 극복의 주체를 나에게서 하나님께로 넘겨드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과의 연합을 회복해야 합니다. 벽을 향한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그리스도인의 위기 극복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극복입니다. 그러므로 그 위기는 축복입니다. 성경은 위기의 주체를 하나님으로 삼은 히스기야를 향하여 ‘그가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였더라.’(왕하18:7)고 기록했습니다. 위기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의  기회로 만드시는 승리자가 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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