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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깨어서 기도하라 (막 14: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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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서 기도하라 (막 14:32-42)


세계 굴지의 기업 제너럴 모터스 사에서 자동차 도장공이 은퇴하던 날이었습니다. 처음 자동차에 색깔 입히는 일을 시작한 뒤 65세가 된 그날까지 그는 그 일만 해왔습니다. 동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한 대의 멋진 자동차가 공장입구에 멈춰 섰습니다. 머리가 희끗한 신사가 차에서 내리더니 노인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며 ‘형님,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매우 놀란 기색으로 그 두 사람을 쳐다보았습니다. 그 신사가 바로 제너럴 모터스 사의 사장인 하로 카터스였던 것입니다. 사장이 돌아간 뒤 호기심을 느낀 동료들이 노인을 에워싸며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 동생이 우리 사장님이라니...어찌된 일입니까?”
노인이 시무룩한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동생과 나는 같은 날, 이곳 도장 공장에 들어왔어요. 동생도 나처럼 배운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소.”
“그런데 동생은 어떻게 사장이 된 거요?”
누군가 이렇게 묻자 노인은 언짢다는 듯 한 표정을 짓다가 말을 이었습니다.
“난 처음부터 도장 공장에 있었소. 그러다보니 다른 일을 할 기회가 없었소. 출세하기 위한 돈도 시간도 없었지. 동생? 동생은 야심가기 때문이지!”

노인은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같은 날 도장공으로 들어온 카티스 형제. 그러나 동생인 하로는 도장공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저녁 일을 마치고 나면 야간학교에 다니면서 경리 공부를 했습니다. 몇 년에 걸친 공부 끝에 학교를 졸업하였고 그는 회사의 경리사원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였습니다. 그 뒤 그는 경리부문에서 실수 하나 내지 않는 철저함으로 상사들의 주목을 받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매니저로 발탁되었습니다. 차츰 승진의 기회가 넓어진 그는 마침내 사장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형은 아무런 목표 없이 있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65세의 나이로 은퇴하였으나 동생 하로는 사장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다락방에서의 만찬을 마치고 이제 겟세마네 정원을 향합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흔히 찾는 곳이요 그들의 기도처이기도 합니다. 이 겟세마네 정원에서의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고 막 겟세마네 정원으로 제자들과 함께 오신 길입니다. 이곳은 흔히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기 위해서 찾으시던 곳입니다. 얼마나 자주 이곳에 들렀으면 예수를 넘겨주기 위한 기회만을 찾고 있었던 유다가 제사장의 호위대와 함께 이곳으로 찾아올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이 겟세마네 정원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르실 때면 종종 기도하기 위해 들르셨던 기도처였습니다. 다락방에서 예수님께서는 다른 때와는 달리 많은 말씀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직접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또 잔을 가지고 감사기도를 하신 다음 그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그리고는 함께 찬미하며 겟세마네 정원으로 오셨습니다. 그 길을 가는 동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말씀을 듣고 있던 베드로가 입을 쑥 내밉니다. 그러면서 한 마디 툭 던집니다.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이건 베드로뿐 아니라 제자들 모두 주님을 버린다고 하는 것은 아니 주님을 떠나 흩어진다고 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그런 그들의 기대 속에는 예수님께서 왕의 자리에 오르시면 나도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더 컸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계속 죽음을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제자들이 다 흩어질 것이라니 어찌 그 말에 그렇다고 할 제자들이 있겠습니까? 

이에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이젠 더 심각해졌습니다. 오늘 이 밤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밤에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게 될 만큼 힘든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럴 정도라면 다른 제자들을 어떻겠습니까? 이윽고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도착을 하게 되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자 이런 상황이면 제자들은 모두 지금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잘 압니다. 어쩌면 아주 무거운 분위기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고 하셨지만 그건 그냥 맥을 놓고 단순히 예수님 기도 마치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제자들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어떤 경우라도 자기가 있어야 될 그 자리를 지키라는 뜻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제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지금까지 잘못 알고 예수님을 따랐다면 그런 자기를 다시 돌아보고 바로 세우는 시간을 갖도록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세우기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백성들 앞에서 영광을 얻는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희생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깊이 마음에 새기라는 것입니다. 누가 더 높으냐를 가지고 다투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앉으실 때 그 좌우편의 자리에 누가 앉을 것이냐를 가지고 서로 눈치 보며 힘겨루기를 하던 제자들입니다. 그런 제자들로 하여금 깊이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고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밤에는 예수님을 부인할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건 아주 심각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예수님 없는 나 예수님 없는 우리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하지만 제자들은 다 깊이 잠들었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스스로에게는 아무런 해결책도 없는 오늘의 현대인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고민이 된다고 해도 그래서 밤을 하얗게 지새운다고 해도 길이 없습니다. 아니 길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 대한 진정한 신뢰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예수님께 참으로 내 목숨을 내맡긴 경험이 없습니다. 죽음에 이르러보지 못했습니다. 죽음 앞까지 가본 사람은 다시금 주어진 생명의 기회가 얼마나 귀한지를 잘 압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비로소 주님께 나를 맡기게 됩니다. 아직도 나는 염려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주님이 나를 붙잡고 있다는 것 이것은 압니다. 이제는 부족하나마 나를 주님께 맡깁니다. 나의 살아가는 모든 길을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이 내 길 동행하시며 인도하옵소서. 기도하게도 됩니다.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죽임이 나와는 아주 먼 세상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내가 해 보겠다고 몸부림을 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음뿐입니다. 
자 보세요. 예수님께서 다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시고 몇 걸음을 더 나아가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주님이 마음이 심히 고민되어 죽게 될 정도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베드로 야고보 요한 역시 그 주님의 마음을 느끼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아니 단순히 깨어 있는 것이 아닌 그런 주님을 위해서 함께 중보하며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데 이는 어찌 보면 좀 이상합니다. 어떻게 제자들이 주님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까? 제자들에게 그럴 힘이 있습니까? 하지만 이건 제자들이 주님의 마음을 마음에 함께 느끼며 주님의 그 힘든 사역을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셔서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뜻도 됩니다. 

아울러 그렇게 힘든 상황이 주님께 벌어진다면 제자들에게는 더 힘든 상황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자신들을 위해서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이 밤이 정말 심각한 밤입니다. 베드로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게 될 만큼 심각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당사자인 베드로와 더불어 늘 함께 했던 야고보와 요한 역시 이 심각함을 마음에 느끼며 기도해야 마땅합니다. 그래서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시기보다는 그냥 깨어 있으라고 하신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자신을 깊이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주님이 주셨던 말씀들을 곱씹어 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셨던 말씀들이 깊은 뜻을 헤아려 보라고 하십니다. 

오늘 그저 단순히 습관적으로 반복적으로 주님 앞에 나오지만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또 듣고 듣지만 그 말씀을 되새김질해 보십니까? 그 말씀의 깊은 뜻을 새기면서 말씀대로 살고자 힘쓰십니까? 그렇다면 최소한의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정말 말씀대로 살아보겠노라고 마음에 다짐한다면 힘든 내 삶의 길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한 번 더 주님 앞에 나아오려고 하고 주님 앞에 엎드리려고 하고 그 말씀을 계속해서 마음에 담고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이 말씀대로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만나면 그런 말씀을 따르는 삶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들을 함께 나누며 서로를 격려하는 시간들이 이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살고 계십니까? 물론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있을 것입니다. 잘 안 되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중보하며 기도하고 계속해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주님 주의 영광을 위해서 이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에는 내 힘이 너무 부족합니다. 이런 저런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주님이 힘이 되어 주세요. 깨어 있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러니까 항상 먼저 말씀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힘든 세상 가운데서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내 생각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항상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께서 항상 함께 하시며 깨우쳐 주시기를 또한 간구해야 하고요. 
한데 막상 돌아오셔서 보니 그렇듯 큰 소리를 쳤던 베드로를 비롯해서 모두는 다 자고 있습니다. 물론 하루가 정말 피곤하게 지나갔습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은 마음입니다. 정신력입니다. 지금은 긴장해야 할 시간입니다. 그렇지만 자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그건 결국 스스로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너무 피곤해 그래서 좀 자야 돼”
“나 지금 너무 힘들어 그래서 기도할 수 없어.”
“이건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야 내게 있는 것으로는 불가능해,”
한결같이 나만 있습니다. 거기에 주님은 안 계십니다. 아니 예수님께서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하셨는데 그 주님이 지금 어디 계십니까? 
다시 묻습니다. 

“주님이 지금 어디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 주님이 지금 뭐하고 계시나요?”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너희 제발 좀 깨어 있어라”
그러니까 고민만 하고 있지 말고 스스로 포기하지 말고 제발 주님의 말씀에 깨어 있으십시오. “대저 주의 말씀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도 하셨습니다. 그게 내 능력이 아닌 주님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내가 하려고 합니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빌립보서 4:6~7은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두 가지 믿음이 있습니다. 염려하는 믿음과 감사 기도를 통해서 주님께 맡기는 믿음 그렇다면 이왕이면 염려하는 마음이 아닌 주님께 맡기는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깨어 있는 성도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계속해서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라고 고전 12: 25~26은 말씀합니다.

인도양의 외딴섬에 도도라고 불리는 새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도도 새는 모습이 너무나 못생겼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도 새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도도 새가 멸종되고 나자 그 섬에서 자라고 있던 갈바리야라는 나무가 더 이상 번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갈바리야라는 나무의 씨앗은 껍질이 너무 두텁기 때문에 도도 새에게 먹혀서 배설물로 나와야만 싹이 틀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모든 것에는 나름대로의 존재가치가 있습니다. 사람은 더 더욱 그렇습니다. 쓸모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게 귀한 존재입니다. 여러분의 직장과 교회에서 능력이 뒤떨어지거나 믿음과 행동이 미성숙한 형제자매가 있습니까?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누구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한 몸으로 부름 받은 교회의 구성원들입니다. 
손가락을 다치면 온 신경이 쓰이고 몸 전체가 아프다는 것을 느끼듯이 우리는 몸을 구성하고 있는 어떤 지체도 없어서는 안 될 그리고 너무나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똥구멍이 구리다고 베어버리랴’는 말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이로써 모든 사람이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 것을 알게 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요 13:34~35은 말씀합니다.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라고 하신 고전 12 :22~23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우리 육신의 약함을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들의 약함과 문제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누가 문제다”, “누구 때문에 일이 안 된다”, “어째 사람이 저러는지 몰라” 하는 말들을 흔히 합니다. 하지만 그걸 아는 나는 어떻습니까? 내게는 아무 문제도 없는가요?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십니다.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주었노라.”
그때 유다가 어떻게 합니까?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말하기를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네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그 결과 유다는 약속받은 모든 땅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얻어서 그것을 시므온에게 나누어 줍니다. 유다는 하나님이 제일 먼저 올라가라고 하실 정도로 광야 40년 길에서도 항상 제일 앞장 섰었던 지파입니다. 그런데 여기 이 시므온은 제일 약한 지파입니다. 

이왕 싸우러 나간다면 그래도 힘이 될 만한 지파와 함께 나가야 승리도 할 수 있을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유다는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갑니다. 나아가되 혼자가 아닌 가장 약한 자로 하여금 이 일에 동참하게 함으로 그들에게 힘도 주고 나중에 그들을 도울 명분도 만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유다도 시므온도 다 잘 되었습니다. 요즘 말로 win win(윈 윈) 전략입니다. 함께 할 때 함께 이길 수 있는 원리 오히려 약한 자와 함께 함으로 더욱 강하게 되는 원리가 바로 주님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살고자 하면 죽어야 한다고 하셨고 섬김을 받고자 하면 먼저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한 마디로 이 모든 것이 다 마중물의 원리입니다. 보잘 것 없는 것 같으나 마중물은 큰 역사를 위해 결코 빼놓아서는 안 될 아주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 마중물이 바로 말씀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그냥 기도하라고 하지 않고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수 있는 분임을 분명히 믿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아닌 주님만이 나를 도우실 수 있습니다. 주님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나를 앞세우지 마십시오. 오직 주님이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말씀에 깨어 기도하십시오. 왜 우리의 기도가 힘이 없었습니까? 이 마중물로서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중물이 없는 기도는 내 지식으로의 기도요 내 의의 기도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십시오. 아니 깨어 있을 뿐 아니라 깨어서 기도하십시오. 항상 말씀에 의지하여 기도하심으로 말미암아 오직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나는 아름다운 삶이 이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그 말씀은 주님은 몰인정하게 우리의 약함도 상관치 않고 몰아붙이는 분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도 우리의 피곤함을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고 쉬라”고 하십니다. 쉼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쉬려고 하는 것이 아닌 주님이 나에게 쉼을 주셔야 합니다. 

스패훠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변호사요 린드대학교와 시카고 의과대학의 법리학 교수였습니다. 또 신학교 이사요, 운영위원이며, 무디 교회의 회계집사였고 부동산 사업가였습니다. 
그런데 1871년 시카고의 대화재 때 미시간 호숫가에 즐비하게 지은 별장들이 다 불타버렸습니다. 이때 무디 교회도 다 불타버려 우선 교회의 재건을 위하여 헌신적인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그의 부인은 충격으로 인해 건강이 몹시 악화되었습니다. 
의사는 환경을 바꾸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온 가족이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으나 교회재건 문제와 부동산의 뒤처리 문제가 있어서 부인과 네 딸을 먼저 출발시키고 후에 프랑스의 파리에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1873년 11월15일 프랑스의 호화 여객선은 많은 승객들과 함께 뉴욕항을 출발하여 순항을 하였습니다. 모두 잠이든 22일 새벽 2시 그 여객선은 대서양 한 가운데서 영국의 철갑선 록키안호와 정면충돌을 하였습니다. 배는 226명의 생명과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배가 침몰하기 전에 스패훠드 부인은 딸들을 이끌고 갑판위로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 와중에 딸들은 모두 배와 함께 잠기고 부인은 물위에 떠올라 있다가 록키안호의 구명정에 구조되었습니다. 9일후 웨일즈의 카디프에 도착한 그녀는 ‘단독 구조되었음’이라는 짤막한 전문을 보냈습니다. 스패훠드 교수는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딸을 잃고 정신없이 헤맬 부인이 걱정되어 부인을 데리러 가기 위해 배를 탔습니다. 순항을 하던 어느 날, 선장실에서 차를 같이하자는 전갈이 왔습니다. 선장과 둘이 차를 나누는데 선장은 곧 딸들이 잠긴 물위를 지나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선실로 돌아와 아픔과 슬픔으로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요. 새벽 3시에 그는 아직까지 체험해 보지 못한 평안이 그의 마음에 깃들이었습니다. 그 때 그는 그 자리에서 시를 썼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평안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우리의 약함을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의 평안이 오늘 깨어 있어 기도하는 우리 모두 위에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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