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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그리스도를 알자, 더 깊이 알자! (엡 3: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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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알자, 더 깊이 알자! (엡 3:14-21)


오대식목사님이 [골리앗 세상에서 다윗으로 살기]라는 책에서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그릇된 신앙 관행 13가지를 지적하였습니다. 

1. 경건의 모양만 있다.
2. 거대하고 힘이 센 골리앗에 더 열광하고 작고 어린 다윗은 거들떠 보지 않는다.
3. 과부의 두 렙돈 헌금을 무시하고 비웃는다.
4. 깨끗한 그릇은 관심이 없고 금 그릇과 은 그릇이 되기를 사모한다.
5. 날마다 형식적인 예배, 조는 예배, 구경하는 예배, 죽은 제사를 드린다.

6. 더 큰 은사인 사랑을 작게 여기고 작은 은사는 크게 여긴다.
7. 풍요와 쾌락의 상징인 바알을 경배한다.
8. 서로 시기 질투하며 남의 발꿈치를 밟으며 산다.
9. 여전히 사주팔자를 믿는다.
10. 입으로만 주여 주여하지 진정으로 예수님을 주님이라 여기지 않는다.

11. 은밀한 죄를 버리지 않고 어둠의 자식들로 살아간다.
12. 약육강식의 진화론에 따라 살아간다.
13. 기도를 해도 천지신명에게 빈다. 자기 소원만 이루어달라는 마음 뿐이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것은 기독교인들 조차 아직 예수님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님은 한번은 “교회가 정말 예수님을 바로 믿고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가르쳤다면 오늘날 세계에서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을 잘 모르는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오늘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새번역) 엡 3:18-19 모든 성도와 함께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고,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여러분이 충만하여지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을 아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예수님을 더 깊이 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19절에서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말씀한 것을 보면 에베소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이미 충분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지식으로만 아는 분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8장에 아볼로라는 사역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당시 정치, 문화, 학문의 세계적인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공부를 많이 했고, 구약 성경에 능하고 말에 능한 웅변가로서 초대 교회의 유명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8장 25절에 보면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했습니다. 아볼로가 지식으로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어느 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아볼로의 설교를 듣게 되었는데, 그가 열심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했지만 중요한 것이 빠져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8장 26절에 보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했습니다.
그러면 아볼로는 예수를 믿어도 무엇이 빠져있었던 것일까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친밀히 알고 사랑을 주고 받는 사이로 알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박지성 선수를 다 압니다. 그러나 박지성 선수를 개인적으로 알고 친밀히 알고 사랑하는 관계로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우리가 예수님도 그렇게 아는 데서 그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 것입니까? 

17절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 속에 머물러 계시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계십니다.
예수를 믿어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착하고 성실한 것이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성격이 착하고 성실하여도 영적으로는 매우 완고한 이들이 많습니다. 본인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 완고한지 깨닫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18절 “너희가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예수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성도는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듣고 믿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복음을 잘 압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됨을 믿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안됩니다. 이러한 복음을 다 알고 있지만 삶이 변화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예배의 감격이 무엇인지, 십자가의 감동이 무엇인지, 헌신이 무엇인지, 눈물의 기도가 무엇이지, 용서와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서로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용서와 사랑이 안됩니다. 습관적인 죄를 벗어버리지 못합니다. 그것은 복음이 불완전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직 예수를 진짜 믿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지식으로만 믿었지, 내 마음에 와계신 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마 28:20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고후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교회에 오래 다니면 알 수 있느냐? 아닙니다. 초신자이기에 모르느냐 ? 그것도 아닙니다. 교회에 다닌 세월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 지식과도 상관없습니다. 신학교 졸업과도 상관없습니다. 교회 직분과도 상관없습니다. 
오직 성령님으로 알 수 있습니다.

16절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옵시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은 우리 마음에 오신 예수님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령께서 하시는 첫째 일이 예수님을 알게 하시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할 것이요” 
 
어떤 초신자가 은혜받고 영혼구원에 열심이 생겨서 전도하는데 예수를 너무나 잘 아는 불신자를 만났습니다. 전도하다가 예수님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는데 이 새신자가 대답할 말이 없더랍니다. 그 날 전도하다가 오히려 예수에 대하여 역으로 배우고 왔습니다. 분이 가득하여 전도하기 위하여 성경공부부터 해야 하겠다고 했습니다. 신학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전도는 예수님에 대한 지식과 상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역사와 상관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아도 지식으로 아는 것은 능력이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깨우쳐 주셔야 비로서 전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많이 안다고 전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알기로는 마귀가 더 잘 압니다. 문제는 성령님의 역사로 예수님을 알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정말 믿기 어려운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함께 하심을 믿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눈으로 본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귀신을 내어 쫓고 병든 자를 고치시는 분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임하시고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예수님에 대하여 무엇을 더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알고 있던 예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하신다는 강력한 확신이 든 것일 뿐입니다. 불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과의 관계에 열정이 생긴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깊이 아는 것입니다.

‘나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쉬운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믿기만 하면 됩니다!
17절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많은 성도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받으려고 이 목사님에게 가야 하나? 저 기도원에 가면 될까? 찾아다닙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열쇠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오셨고, 우리가 그것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메일 상담 중에 이런 분이 계셨습니다.
“간증하는 사람들을 보면 영화 필림처럼 죄목이 드러난다는데 너무 부럽더군요. 전 아직도 하나님 못 만나고 죄문제도 해결 못 받은것 같아 큰 바위를 안고 살아가는 마음입니다. 진정 회개할 수 있는 법을 알려고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생각이 안나고 집회나 책에나 회개 하라는 말은 많은데, 정작 방법에 관한 건 없더군요. 목사님, 방법 좀 알으켜 주세요.”

답은 간단합니다. 주님께 직접 구하면 됩니다! 그리고 믿고 기다리십시오!

백승학집사님이 단기선교를 떠나면서 기도 부탁을 하였습니다. 찬양을 인도하여야 하는데, 주님의 임재하심이 항상 함께 하게 되기를 구하셨습니다. 기도하기 전에 깨달아져서 말씀드렸습니다. “집사님이 항상 주님을 바라보시면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는 순간, 주님의 임재 안에 들어갑니다.” 열쇠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번 휴가 중에 읽고 큰 은혜를 받은 책 중에 오스왈드챔버스 목사님이 쓰신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 있습니다. 

3월9일자 글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고하고 희생하는 사역자들이 많으나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일하는 사역자는 참으로 적다.’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기를 싫어하셔서 그럴까요? 물론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오스왈드챔버스 목사님은 2월12일자 글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듣기를 거부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을 인용하셨습니다.   
출 20:19『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정말일까? 나는 아닌데!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기 원하는데.’ 하실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직하게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어떤 말씀을 하셔도 좋습니다. 제가 이제는 된다 안된다 하지 않겠습니다. 무조건 순종하겠습니다.” 하는 결단이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는 말이 진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라 하시면 저는 못합니다!” 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힘들고 어려운 것을 명령하시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는 말이 거짓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불순종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오히려 부담스러워 하는 것입니다. 설교자의 설교로 듣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들어도 부담스러우면 “목사님의 말씀이니까!” 하고 넘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인데요.” 해도 “하나님께서 내게 직접 하신 말씀은 아니잖아요!” 하고 불순종할 여지를 남겨두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마음에 와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면할 준비, 하나님을 정말 마음에 모실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라 우리가 마음으로 믿고 영접하지 않으면 우리 마음 안에 오시지 않으십니다.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을 죽을 때, 심판 받을 때, 그 때만 중요한 분인 줄로 여깁니다. 가정에서 집안 일에, 직장에서 거래할 때, 학교에서 예수님에 대하여는 관심도 없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은 친구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당신의 관계가 이렇게 가깝습니까? 예수님께 시간을 드리지 않고 어떻게 예수님과 친구가 될 수 있습니까? 서로 만날 기회가 적은 사람들이 서로 알 수 있습니까?
누구나 하나님이 마음에 오심을 믿고 기도하면, 반드시 예수님을 아는 눈이 열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과연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이 사실인가?’ 이 문제는 제 신앙과 목회에 있어서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살았던 저로서는 정말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배우면서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신다. 믿는 자에게 반드시 역사 하신다.’너무나 분명한 것입니다. 그래서‘이 성경대로 되는 것이 정상이다.’하고 믿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깨닫게 하시는 것이 있으면 순종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 제 삶 속에도 역사하여 주셨습니다, 믿음에 응답해 주시고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나갈 길과 행할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번에 기독교 영적각성의 역사를 훑어보는 중에 존칼빈,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삶을 살았던 청교도의 목사 죤오웬, 존웨슬리, 죠지휫필드, 미국 영적대각성 운동을 일으킨 조나단에드워드목사님, 스펄젼목사님 등 대부분 영적인 거장들이 회심 때 누구로부터 설교를 들었는지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음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단지 성경 말씀을 통하여 영적인 눈이 뜨였습니다. 그러므로 누구 설교를 듣느냐 하는 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님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더 깊이 알기 위하여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합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임마누엘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반드시 도와 주십니다.

♬ 살아계신 주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날 위하여 오시었네 
내 모든 죄 다사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나의 구세주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유가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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