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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 동역하는 사람 (삼상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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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동역하는 사람 (삼상 14:45)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하였음이니이다 하여 백성이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 

사울왕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지 2년쯤 지나서 블레셋 군대와 큰 전쟁을 치루게 됩니다. 그런데 삼상 13:5절에 보면 블레셋 군대의 규묘는 병거, 즉 요샛말로 말하면 전차입니다. 그 병거가 3만대, 기병, 즉 말탄 군사가 6천명, 그외 군사는 아예 셀 수가 없어서 해변의 모래처럼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블레셋은 그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는 강한 민족중의 하나입니다. 그러한 블레셋 족속의 입장에서 볼때 사울 왕이 강력한 지도력을 갖는 다는 것은 바라지 않는 일이였습니다. 그래서 블레셋은 이스라엘이 국가 조직을 갖추기 전, 초기 단계에서 이스라엘의 힘을 무력화 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전략적 계산에서 아마 전 군대를 총동원해서 전쟁을 일으키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반면 사울 왕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는 어떠했습니까?

무기가 없었습니다. 삼상 13:22절에 보면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라고 했습니다. 
사울이 왕이 된 다음에 군대는 조직이 되었지만 군사들이 전쟁에서 싸울 만한 변변한 무기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야 말로 맨주먹 가지고 싸울 수 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군대가 모집되었지만 창이 없습니다 칼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전쟁을 할 수가 있습니까? 이것이 이스라엘 군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숫자에 있어서도 열세하였습니다.
13:5절에 보면 블레셋 군대의 수는 해변의 모래처럼 많았는데 이스라엘 군대의 수는 14:2절에 보면 사울과 함께한 백성의 수가 6백명 가량이라고 하였습니다. 변변한 무기하나 제대로 갖지 못한 이스라엘 군대는 그나마 숫자에 있어서도 열세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군대가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지도력과 조직력을 가지고 있는 블레셋 군대와 전투를 한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패배의 결과가 주어질 것은 거의 확실한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의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사무엘 상 14장에 나오는 블레셋과의 전투 결과는 어떠한가 하면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야말로 초능력적인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믹마스 골짜기에서 행한 전투의 결과는 이스라엘의 대승리로 막을 내리고<삼상 14:16-23> 사울왕의 통치 기반은 더욱 견고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역한 사람 요나단 
이와 같이 누가 보든지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대승리를 거두게 되기까지는 그 이면에, 이스라엘이 무기에 있어서도 숫자에 있어서도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있어서 승리를 거두게 되기까지 그 이면에 요나단과 같은 훌륭한 하나님과 동역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는 주의 하여 살펴야합니다. 

본문 45절 말씀에 보니까 백성들이 요나단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하였음이니다” 
동역이란 말은 함께 일 하였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행하였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동역한 요나단이 있었기 때문에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대 승리를 거둘 수가 있었던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동사한 이 요나단은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말씀을 들으므로 이제부터 하나님과 동사하기로 작정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람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과 동역하면 그 한 사람 때문에 가정이 살고 사회가 밝은 빛을 보게 되며 나라가 살고 민족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나단의 신앙성격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과 동역하는 일꾼들이 되기 위하여 새로운 다짐과 결심이 있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과 동역하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① 목표 지향주의적인 사고와 행동을 합니다. 
다시 말하면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이끄는 이스라엘의 부대는 믹마스로부터 뻗어 내려오는 1,5Km의 협곡을 사이에 두고 불레셋과 대치하고 있으면서 서로 심리전을 펴고 있었습니다. 저 쪽은 블레셋 수비대가 있고 계곡을 사이에 두고 이쪽은 이스라엘의 수비대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왜 불레셋 군대가 선제 공격을 해오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사울왕은 지금 군사 6백명, 그것도 칼든 사람은 자기와 자기 아들 요나단 두 사람 밖에 없고 그저 맨주먹 쥐고 싸워야할 자기 군대의 모습을 보면서 전쟁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왕과 이스라엘 군대가 이렇게 싸울만한 전의를 상실한 채, 실망과 낙심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만 버리고 있는 그 때에 요나단은 무엇인가를 하려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병기든 병사에게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로 건너가자” 라고 말합니다. 

(삼상 14:1)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로 건너가자 하고 그의 아버지에게는 아뢰지 아니하였더라 
실로 위대한 결정입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는 사실을 요나단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무엇인가를 하기위해 일어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이 건너가야 할 계곡은 무엇입니까? 
그 계곡을 사이에 두고 저편에는 나를 죽이고 해치려는 원수가 있는데 우리는 계곡 이편에서 두려움에 떨고 근심에 떨고 걱정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무엇인가 하려고 일어나는 사람을 도와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열심히 사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할일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을 결코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무엇이든지 열심히 사십시요. 생활에 열심을 내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위하여 열심을 내십시요. 신약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처음에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데 남다른 열정을 보였던 사울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불러서 사도 바울 되게 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의 열심 때문입니다. 변화된 후 그만큼 복음을 위해서 열심히 일한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사물을 볼 때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만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아무고 일도하지 않는 사람은 세 가지 핑게가 있습니다.

첫째는 실패할까 두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와 성공율 어짜피 50대 50 입니다. 여기에다 믿음의 가능성을 더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둘째는 경험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세상 모든일을 다 경험해 보고 일을 판단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결혼 생활을 어떻게 경험해 보고 하겠습니까? 나는 죽음에 대한 경험이 없으니 한번 죽어 보고 나서 결정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셋째는 환경이 허락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핑게합니다.
그런데 언제나 우리의 환경은 인간이 세상을 사는데 장애물이요 거치는 돌입니다. 환경이 나아지기를 기다린다면 아마도 천국 가서야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스가 그의 친구와 함께 사냥을 갖다가 친구가 그만 늪 속에 빠져씁니다. 친구는 점점 늪 속으로 빠져갑니다. 절망적인 상황이였습니다.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었습니다. 친구는 빠져나오기 위해서 몸부림 쳤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몸은 깊이 빠져만 갑니다. 자포자기 상태였습니다. 그는 친구인 비스마르크애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비스마르크는 갑자기 사냥용 총을 늪 속에 빠진 친구의 머리통을 향해 겨누었습니다. 친구는 깜짝 놀랐습니다. 비스마르크는 말했습니다. 어차피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것이니 늪 속에 빠져 고통 당하며 죽는 것보다 차라리 내 손에 죽는 것이 좋지 않겠나?

친구는 비스마르크의 이런 행동에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는 살아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늪에서 있는 힘을 다해 애쓴 나머지 혼자의 힘으로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비스마르크에게 어떻게 친구가 죽어 가는데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총구를 겨눌 수 있느냐고 거세게 항의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비스마르크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자네의 머리를 쏘려고 총구를 겨눈게 아니네, 자네의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겨눈 것일세. 자 자네는 이제 살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기위해 몸부림 쳤을 때 혼자의 힘으로 늪에서 빠져 나오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살려고 몸부림 치며 무엇인가를 하는 사람은 무엇인가를 이룹니다. 그러나 실의와 자포자기에 빠져 아무것도 아니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② 큰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요나단은 그야 말로 큰 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이 컸습니까. 믿음이 컸습니다. 그냥 믿음이 아닙니다. 큰 믿음입니다. 요나단이 무엇을 믿었습니까? 

a.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었습니다.

6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라고 말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군산에 성실교회가 있습니다. 20년전의 이야기입니다. 
그 교회가 전도사님이 중고등부 아이들을 데리고 무등산 기도원으로 수련회를 갔다가 산사태가 나서 전도사님 내외와 17명의 아이들이 죽는 시험을 당했습니다.

얼마 후 수양산 기도원 원장님이 그 교회에 부흥회를 갔습니다. 사람들은 성실교회가 문 닫을 줄 알았습니다. 교인들이 다 떠나고 몇 사람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핍박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를 문닫게 하지 않았습니다. 갖은 핍박속에서도 지금은 장로님이 된 집사님 한 분이 눈물로 그 핍박, 그 고통을 혼자 견디며 눈물로 교회를 지켰습니다. 
3년 정도가 지난 후 죽은 아이들의 부모들이 하나 둘씩 회개하고 교회로 나와 예수를 믿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핍박하고 조롱하던 그들이 회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은 큰 교회로 부흥하였습니다.

큰 교회당을 건축하고 헌당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성도들에게 얼마간의 시련을 던져주시고 그 시련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셔서 축복하시기 원하십니다. 시련을 이기는 믿음이 큰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일에 심부름꾼으로 쓰임 받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실 줄, 믿고 시련을 이기는 큰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b.사람의 수 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더 믿는 믿음이였습니다.
요나단은 사람의 수 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더 믿어서 큰 믿음이 되었습니다. 6절 하반 절에 보면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블레셋 군대의 수가 병거가 3만, 마병이 6천, 그외 보병은 해변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을 만큼의 수였지만 그런데도 요나단은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c.작은 표징을 큰 확신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축복 받을 사람은 작은 표징을 귀히 여김니다. 그리고 큰 확신을 가짐니다. 요나단은 블레셋 수비대에게로 올라가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표징을 구합니다. 10절에 보면 “그들이 만일 이같이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붙히셨음이니라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 고 말하고 있읍니다.

열왕기상 18:44절에서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 산에서 우상 선지자 850명을 멸하고 하나님께 비 오기를 비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다가 서쪽 하늘에 손 바닥 만한 구름이 일어남을 큰 비의 징조로 믿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도의 응답을 큰 확신으로 받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왜냐면 응답은 작은 징조로 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동역하는 사람 즉 하나님과 함게 일하는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일어나서 믿음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하나님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쓰신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일어나서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긍정적으로 외치며 나갈 때 가진 것이 없고 능력이 부족해도, 주님이 일하십니다. 요나단은 하나님과 동역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주시는 작은 표징을 크게 받아드리고 확신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그의 전쟁에 동역해 주셨습니다.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블레셋을 이길 힘이 없었지만 하나님은 불레셋과의 전투에서 놀라운 승리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요나단을 대신하여 싸워주신 것입니다. 

a. 큰 지진이 발생하였습니다.<15절> 
b. 블레셋 진중에 일대 혼란이 왔습니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서로 죽이고 죽였습니다.<19-20>
c. 블레셋에 귀화했던 히브리인들이 그들에게 반기를 들고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21절>
d. 숨었던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기가 충만해져서 전투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22절> 

놀라운 결과입니다. 
무기도 변변히 없는 군대가 숫자에서도 게임이 안되는 이스라엘 군대가 큰 승리를 할수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려는 사람을 위해 하나님을 일해주시고 싸워주십니다. 하나님의 승리를 그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 오실 때까지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믿도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여 그분과 동역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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