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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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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15-23)
 

쌀가게를 운영하는 김 집사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김 집사님은 아내에게 ‘오늘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사려면 박씨 집 정육점에 가지 말고 다른 정육점에 가서 사도록 해요.’ 라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놀란 얼굴로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왜요? 박씨는 우리 집 단골이잖아요. 그 집에서 고기를 사지 말라니, 두 분이 싸웠어요?’ ‘싸운게 아니고... 아무튼 오늘을 그 집에서 고기를 사지 말라고.’ ‘내가 가면 좋은 고기를 주고 언제나 넉넉하게 주는데 왜 가지 말라는 거예요.’ ‘아니, 가지 말라면 가지 말아요. 오늘만 가지 말라고...’ 남편이 짜증을 내며 말하자 아내는 ‘그래도 무슨 이유인지 알아야지 무턱대고 가지 말라니 이상하잖아요.’ 그러자 남편은 ‘오늘 아침에 박씨가 우리 집 저울을 빌려갔어!’ 라고 말했습니다.

쌀가게를 운영하는 김 집사는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그는 저울을 속이고 있었습니다. 신앙과 속인 저울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저울을 속이면서도 경건한 신앙인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신앙과 속이는 저울이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 따라 속인 저울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거룩함은 부정직한 것으로부터 정직함으로 나가는 것이고, 더러운 것으로부터 구별시켜 성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거짓 선지자들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거짓 선지자인지, 참 선지자인지가 구별이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 16절을 통해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는 오직 열매 즉 행동을 통해서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무와 열매의 비유를 통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가시나무 중에서 갈매나무는 포도나무와 거의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또 엉겅퀴나무도 멀리서 보면 무화과로 착각할 만큼 거의 비슷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감나무와 고염나무입니다. 감나무와 고염나무는 거의 비슷하여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열매는 맺으면 확연히 구분이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따겠느냐? 또 엉겅퀴나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고 말씀하시며 외형으로는 잘 구분이 되지 않아도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열매를 통해서 그 나무를 알 수가 있고 맺히는 열매의 상태를 보아서 그 나무가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를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즘 한국교회를 혼란하게 만드는 신천지라는 이단이 있습니다. 대원 시장 부근에도 신천지 교회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사 온 교인으로 위장하여 일반 교회에 등록을 합니다. 개척교회에 등록을 한 후에 충성을 다해 봉사합니다. 개척교회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일꾼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새롭게 등록한 교인이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니 목회자로서는 감사한 일입니다. 전도를 열심히 합니다. 새 교우들이 늘어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신천지 교인들을 한 사람씩 전도하는 형식으로 교회 안으로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신임을 얻은 후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좋은 교역자가 있는데 사례금을 받지 않고 헌신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분이라고 목사님께 말씀드려 신천지 교역자를 교회의 전도사로 봉사하게 합니다. 그들은 교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자신들의 사람으로 만듭니다. 

어느 정도 자신들의 세력이 확보가 되면 그때부터 목회자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교회의 일에 대해 사사건건 불평하고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결국은 교인들을 선동해 목회자를 쫓아내고 교회를 접수합니다. 수많은 목회자와 개척교회들이 신천지로 인해 고통을 받고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요즘은 대형교회에도 파고 들어가 성경공부 그룹을 만들어 아주 집요하게 교회를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들이 처음 교회에 들어와 생활할 때는 참으로 선하고 좋은 일꾼입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말과 행동이 변하기 시작하고 결국은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맙니다. 양의 탈을 쓰고 있는 늑대입니다. 그들에게서 선한 열매를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열매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생활의 내용을 알 수가 있습니다. 좋은 신앙인은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신앙인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덕이 되지 않는 일은 멀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덕이 되는 일을 가까이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먹지 말아야 할 것, 머물지 말아야 할 곳,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즐기는 사람 가운데 좋은 신앙인은 없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은 교회에 덕이 되는 일을 합니다. 교회의 좋은 일꾼인가 아닌가를 확인하려면 교회를 위해 얼마나 좋은 열매를 많이 맺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교회의 평안과 질서를 깨는 사람은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없고, 교회의 좋은 일꾼일 수가 없습니다. 교회의 좋은 일꾼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에 자신을 헌신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건강하고 좋은 나무가 될 수 없듯이 말만 무성하고 행동이 없는 일꾼을 교회의 좋은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에 순종해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가정과 직장, 이웃들 속에서 믿음의 좋은 열매를 풍성하게 맺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 모든 지체들과 교회의 일꾼들이 교회 안에서 믿음의 좋은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 교회 안에 믿음의 덕을 세우는 선한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은 나무가 좋으면 자연스럽게 좋은 열매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이 속담과 반대되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 있습니다. ‘싹 수가 노랗다’는 말입니다. 싹이 빈약하면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즉 나무가 나쁘면 열매 또한 나쁘다는 것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 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새겨보면 열매 맺는 참 원리를 알 수 있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나무는 가시나무인데 거기서 포도를 따겠다고 말하면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입니다. 나무는 엉겅퀴나무인데 거기에서 무화과를 따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망상이고 도둑놈의 심보입니다. 믿음은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따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포도를 따기 위해 좋은 포도나무가 되도록 힘을 쓰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오늘의 말씀에서 좋은 열매를 강조하시지만 더 강조하시는 것은 좋은 나무가 되라는 것입니다. ‘가시나무과 엉겅퀴나무’ 인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일에 급급해 하지 말고 자신을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열매가 행동이라면 나무는 인격과 성품입니다. 우리의 인격과 성품이 예수님 안에서 변하지 않으면 좋은 언행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성품이 좋은 나무로 변화할 때 그 곳에 좋은 열매들이 맺혀지게 됩니다. 좋은 나무가 되는 과정이 바로 경건의 훈련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집집마다 신상을 하나씩 모시고 있답니다. 신상이 없는 집이 거의 없답니다. 그러기에 일본에는 1억 개 이상 되는 신(神)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집에 모시고 있는 신상에게 음식을 먼저 드린다고 합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믿는 신에게 아침 문안 인사를 올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신상과 대화를 한다고 합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있는데 도와주셔서 일이 잘 해결되게 해 달라고 자신이 믿는 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잡신을 우상으로 섬기는 사람들도 자신이 믿는 신을 향해 매일 문안 인사를 하고, 모든 일에 도움을 요청하며 상의를 하는데 하나님은 믿는 우리들을 어떻습니까? 하나님과 깊은 인격적인 대화를 매일 나누고 있습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과 짧은 기도라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단 한 구절이라도 묵상하며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과의 만남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이 성품을 닮아갈 수 있겠습니까? 누구와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느냐는 그 사람의 성품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아이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를 닮아가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을 가장 많이 보고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영향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려면 그분과의 만남과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대화하며 삶을 나누지 않으면 하나님을 닮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닮지 않으면 좋은 믿음의 나무가 될 수 없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애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먼저 좋은 나무가 되기 위해 힘을 기울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좋은 나무가 되면 아름다운 열매는 자연스럽게 맺혀지는 것입니다. 성품은 나무와 같아서 하룻밤 사이에 자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성품은 평생 자랍니다. 좋은 믿음의 성품은 벼락공부처럼 이뤄지지 않습니다. 성품은 논술형 시험과 같습니다. 평생에 걸쳐 써야 하는 논술입니다. 

82세의 노인이 52세 된 아들과 거실에 마주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의 나무에 날아와 앉았습니다. 노인이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저게 뭐냐?’ 아들은 다정하게 말했습니다. ‘까마귀에요. 아버지.’ 아버지는 조금 후 다시 물었습니다. ‘저게 뭐냐?’ 아들은 다시 대답했습니다. ‘까마귀라고요.’ 노인은 조금 뒤 또 물었습니다. 세 번째였습니다. ‘저게 뭐냐?’ 아들은 짜증이 났습니다. ‘글쎄 까마귀라고요.’ 아들의 음성에는 아버지가 느낄 만큼 짜증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 아버지는 다시 물었습니다. 네 번째였습니다. ‘저게 뭐냐?’ 아들은 그만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까마귀, 까마귀라고요! 그 말도 이해가 안 돼요? 왜 자꾸만 같은 질문을 반복하세요?’ 조금 뒤였습니다.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 때가 묻고 찢어진 일기장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 일기장을 펴주며 아들에게 읽어보라고 말했습니다. 거기에는 아들의 세 살적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은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에 날아와 앉았다. 어린 아들은 “저게 뭐야?” 라고 물었다. 나는 까마귀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아들은 연거푸 23번을 똑같이 물었다. 

귀여운 아들을 안아주며 끝까지 다정하게 대답해 주었다. 까마귀라고 똑같은 대답을 23번이나 하면서도 즐거웠다. 아들이 새로운 것에 관심이 생겨 감사했고 아들에게 사랑을 준다는 게 즐거웠다.’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은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마음에 품고 있는 것만큼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사랑의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한 순간은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속적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은 좋은 열매를 맺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좋은 나무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닮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맺혀지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좋은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면 좋은 나무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좋은 나무입니까? 나쁜 나무입니까? 믿음의 좋은 나무가 될 수 있도록 한 주간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가운데 좋은 나무가 되어 좋은 열매를 맺는 풍성한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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