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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자랑 나의 목표 (빌 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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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랑 나의 목표 (빌 3:1-16)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모범적인 신앙의 모델로 추천한 바울은 이 두 사람을 기쁨으로 환영하고 이런 사람들을 존귀하게 여기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일보다 자기 일을 먼저 생각하였지만 이 두 사람은 많은 어려움 중에도 주의 일을 위하여 수고한 일군들이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을 아버지처럼 섬기며 한 마음으로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 믿음의 아들이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직접 갈 수 없는 형편에 대신 믿고 일을 맡기며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들처럼 사랑하는 디모데였습니다.   바울이 이방인들을 위해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전권대사였다면 디모데는 바울이 모든 권한을 맡기고 보내고 싶었던 전권대사였습니다.   

두번째 사람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을 돕기 위하여 빌립보 교회가 대표로 보낸 일군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곁에 지내며 함께 수고하다 병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지만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힘을 다해 충성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바울, 바울과 디모데 그리고 에바브로디도의 관계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나의 관계, 나와 함께 주의 일을 위해 수고하는 동료 교우들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아름다운 모델들입니다. 주의 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섬기는 일군들을 알아주고 격려하며 함께 높여주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함께 협력하는 아름다운 자세입니다.   우리교회 모든 직분자들과 성도들이 이런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힘있게 나누며 서로 한 마음으로 섬기시길 바랍니다.

이처럼 모범적인 빌립보 교회를 칭찬하며 격려하는 바울은 중요한 문제를 지적하며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을 알아주고 칭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수고가 헛되지 않고 마지막까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 합니다. 칭찬이 좋은 약이 되지만 더 좋은 발전을 위해 어떤 때는 경고하고 주의를 주어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가 좋은 교회였지만 완전한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칭찬받을 일이 많았지만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일도 있었습니다. 무엇을 이루었다는 성취감에서 오는 자기 자랑을 조심하라는 것과,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그 목표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달려가라는 충고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읽은 말씀의 주제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쁨으로 살기를 원하는 분들은 인생의 선배요 신앙의 대 선배이신 바울 사도의 진심어린 충고를 귀담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의 편지는 결론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종말로’즉 끝으로, 형제 여러분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다. 같은 말을 여러번 쓰는 것이 나에게는 귀찮은 일이 아니고 여러분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니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자주 반복하는 기쁨, 주 안에서 기쁨으로 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오늘 제목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랑’과 ‘목표’이 두 가지가 분명하게 정해진 성도들이 누리는 기쁨입니다. 

교우 여러분은 어떤 자랑거리가 있습니까?   인생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우리의 자랑과 목표가 무엇이며 그것이 어디에 와있는지 점검하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바울은 모범적인 빌립보 교회 안에 스며들고 있는 유대인의 율법주의 신앙을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이스라엘이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큰 환란을 당했을 때 많은 유대인들이 아시아와 유럽 각 나라로 흩어졌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디아스포라’라고 부릅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어디에서 살든지 조상적부터 내려오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잘 지키는 자부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유대인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자기들의 종교적 신념과 행위에 대하여 지나친  우월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우월감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며 조상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민족이라는 자부심입니다. 그 증거로 모든 유대인 남자는 태어난지 8일 만에 받은 할례를 내세웠습니다. 할례가 없는 이방인들을 더러운 개처럼 여겼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계시던 시절에도 사마리아 사람들을 그렇게 취급하며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원의 복음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 모두에게 동일하게 열려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여전히 자기 조상들이 지켜온 구약의 율법만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유대인 기독교인들 중에도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구원의 도리로 믿고 따르면서 동시에 구약의 율법을 따라 육신의 할례도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어릴 때 할례를 받은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내세워 자랑하였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다같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우리가 너희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쓸데없는 자랑입니다.   

할례가 없는 아시아와 유럽의 기독교 신자들은 이런 가르침 때문에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몸에 상처를 낸 흔적을 자랑하는 이런 유대인 무리들을 가리켜 손할례당이라 부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부족하여 자기 몸에 있는 상처를 구원의 증거로 내세우고 자랑하는 손할례당을 가리켜 악을 행하는 자들이라 하였고 심하게는 개들이라 부르며 이런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할례 없는 이방인들을 더러운 개처럼 여기는 유대인들이 더러운 자부심과 인간의 공로를 내세워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훼손시키고 있으니 그들이 오히려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고 조심해야할 개들이라 하였습니다.  무슨 선한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며 육체적인 것들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가 진정한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빌립보 교인들도 자칫 방심하면 이런 사람들의 미혹에 흔들려 자기 자랑에 빠질 수 있음을 염려한 바울은 자신을 예로 들어 정말로 자랑해야 할 자랑거리를 소개합니다.

바울은 유대인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 누구보다 더 자신만만한 사람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은 육체적인 것으로 구원을 받는다면 바울은 그 어떤 유대인들보다 더 분명하게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혈통적으로 베냐민 지파에 속하였고, 물론 태어난 주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기로 말하면 유대인들 가운데 가장 경건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열심으로 치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는 교회를 핍박하는 일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으로 굳게 믿고  열심을 내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의 기준으로 보면 도무지 흠잡을 데가 없는 완벽한 유대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분을 구주로 영접한 즉시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제까지 굳게 믿고 지키며 따랐던 모든 것을을 내려놓고 철저하게 회개하며 삶의 목표를 새롭게 정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윤리나 도덕적으로 무슨 죄를 범한 흉악범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의 기준에서 보면 누구보다 모범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할만한 유능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러나 그 기준은 어디까지나 유대인의 기준이었지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깨달은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정직하고 의롭고 내 나름대로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지 하나님도 똑같이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거저 주신 은혜의 기준이 있는데 그것을 제쳐두고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무슨 공을 세워 사람들에게 보여 자랑하고 하나님께도 흠 잡히지 않는 완전한 사람이 되겠다는 그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교만과 불신의 죄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깨달음이 있은 후 바울의 자랑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전에는 혈통과 가문을 자랑했습니다. 많이 배운 학식을 자랑하고 남보다 경건한 생활을 한다는 자랑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사랑을 발견하고 믿게 된 후로는 이 전에 자랑하던 것들은 내가 예수님을 만나는 일에 도리어 장애물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리를 깨달은 이후로 예수를 아는 지식이 세상의 어떤 지식보다 비교할 수 없을만큼 고상함을 깨달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세상의 어떤 지식도 이제 나에게는 배설물로 여길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의로운 사람이 된 것은 전에 하던 것처럼 율법을 잘 지켰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이 나같은 죄인을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였습니다.   

교우 여러분들은 무엇을 자랑하고 싶으십니까?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학위입니까?  남보다 더 가진 재산입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건강한 육신은 자랑할만 하십니까? 가문 자랑, 부모와 자식 자랑, 심지어 나는 누구보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기도를 많이하고 성경을 많이 읽으며 예수를 열심히 믿는다는 자랑… 자랑할만한 것들이 한 두가지 왜 없겠습니까?  이런 자랑들이 소중한 것들임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랑이 과거에 육체를 자랑했던 바울이나 잘못된 유대교인들의 자랑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진정한 구주와 왕으로 믿고 영접하였다면 이 모든 것들은 그 구원의 선물에 비교할 것들이 아닙니다.   그것들을 잃었다고 세상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이 없다고 불행한 사람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참 보배가 되심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그런 것들은 냄새나고 썩어질 배설물,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냄새나고 썩어질 것들을 더 많이 소유하지 못하고 잃어버렸다고 아깝게 여기고 슬퍼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보다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정말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도 되는 것들을 잔뜩 쌓아놓고 자랑하는 분들은 쓰레기 처리하는 일을 부지런히 하시기 바랍니다.   

천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의 자랑은 이 땅에 있는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천국 시민에게 있어야 할 꼭 필요한 것은 없고 많이 가지면 썩는 냄새만 나고 그리스도를 발견하는데 장애물이 되는 그것들을 얻으려고 온 인생을 허비해온 분들이 있다면 이제라도 참 보배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보배되신 그리스도를 자랑하며 그분 안에서 참 기쁨을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 안에서 발견한 바울의 자랑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삶에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울의 인생을 새롭게 바꾸는 전환점이었고 새로운 인생 목표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나를 위해 살았습니다.   내 육체를 빛내고 자랑하는 일에 목표를 두고 살았습니다.   남보다 더 배우고, 더 많이 벌고, 더 좋은 집에서 더 좋은 음식과 자동차를 가지고 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죽을 힘을 다해 살았습니다. 얼짱 몸짱을 자랑하는 세상에서 남보다 더 예쁘고 멋있는 옷을 입으며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사람 대접도 못 받는다는 생각으로 무슨 방법을 동원하든지 돈을 벌겠다고 아둥바둥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에 이런 것들이 배설물로 여겨졌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도 이런 경쟁에 뒤질세라 앞다투어 머리를 들이밀고 삽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따르는 여러분, 아직도 그런 것이 인생의 최고 목표이며 최종 목표입니까?   

바울은 말합니다.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을 아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주님과 함께 그 고난에 참여하며 주의 죽으심을 본 받아 나도 주님을 위하여 죽지만 또한 주님처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부활의 기쁨에 이르려 합니다. 내가 이미 무엇을 얻었고 완전히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고 주님과 함께 고난과 죽음을 통과하며 주님과 함께 누릴 부활의 기쁨을 목표로 삼아 달려갑니다.   형제 여러분, 혹시 여러분들 보시기에 나 바울 정도면 목표을 이루었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나는 아직 목표를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에 열심을 내어 일했던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뒤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해 달려갑니다.   그 목표는 주 안에서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스런 상입니다.   

그러므로 헝제 여러분, 나는 이만하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혹시 있다면 아직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을 꼭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지점에 와있든지 우리의 목표는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의 삶과 진리의 말씀을 목표삼아 부지런히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수료하는 주일학생들도 앞을 향해 목표를 정하고 부지런히 달려갑시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목표입니다. 영국 어린이들은 더 이상 주일학교를 나오지 않습니다.  주일 아침에 늦잠 자고 싶어 아빠 엄마를 따라 교회를 나오지 않는 어린이들 때문에 이른 아침 주일학교를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물론 부모들이 데려다 주지 않으니 혼자 올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일요일에 열리는 축구경기 응원하러 가기 위하여 온 가족이 유니폼을 입고 이른 아침부터 장거리 운전을 하고 경기장으로 갑니다. 어린 아이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팀 선수들 이름은 물론 팀의 성적과 점수까지 줄줄 외우지만 예수님 12 제자 이름을 아는대로 말해보라면 한 두명이라도 제대로 맞히는 어린이는 드뭅니다. 주일 아침 교회 가는 길에 축구장 곁을 지나오며 어린이 축구 클럽들이 경기하는 광경을 거의 매주일 볼 수 있습니다.  부모들이 아이들 챙겨 데리고 나와 열심히 응원을 합니다.  과연 오늘날 영국은 축구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 목회자, 선교사 가족들과 함께 웨일즈 신앙부흥의 역사 현장들을 탐방하고 돌아왔습니다.  앞으로 틈틈이 다녀온 감상들을 교우들과 나누기로 합니다.  오늘 말씀과 연관지어 기억나는 한 인물은 1800년, Mary Jones 라는 어린 소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어린 소녀는 웨일즈 언어로 번역된 성경책 한권을 사러 시골길 25마일을 걸어 Bala에 왔습니다.  그 시절에 구하기 힘든 성경책 한권을 얻기 위하여 말씀에 대한 갈급함으로 장거리를 걸어온 어린 소녀의 헌신적 행동에 감동된 Thomas Charles 목사님과 동료들이 더 많은 성경보급을 위하여 Bible Society를 만들게 됩니다. 150-200여년 전 영국의 신앙 열정은 이처럼 뜨거웠습니다. 

주일학교가 제일 먼저 시작된 나라가 영국인데 통계에 의하면 지금은 40%의 영국교회에 주일학교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1989년에는 15세 미만 아이들 중 14%가 교회에 출석했으나, 1998년에는 8%로 감소했습니다.  15세 미만의 연령충에서 교회출석 감소의 속도가 가장 빠르다고 합니다. 잉글랜드에서는 매주 1천 명의 어린이가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에 대한 준비가 없는 영국의 교회의 미래는 참으로 어둡기만 합니다.  지금의 영국은 전에 그들이 그렇게 사랑했던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즐기고 자랑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무엇이며 어디에 우리의 목표를 두었습니까?

빌립보 교회는 교우들 사이에 분쟁이 심하고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많은 고린도 교회나 이단과 율법주의자들의 활동으로 문제가 있던 갈라디아 교회에 비하여 모든 면에 아주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그렇다면 안심하고 편안하게 지내도 좋을까요?  아닙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이런 분위기가 자리 잡을 것을 염려하여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푯대로 삼고 계속하여 달려라. 뒤를 돌아보지 말고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하여 달려가라고 충고합니다. 우리교회가 작은 공동체로서 교우들이 서로 사랑하고 열심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려 힘쓰며 나그네들을 잘 영접하며 구원받는 사람들의 수가 날마더 더해가는 교회로 자라가기 바랍니다.  이 정도면 되었다고 자만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닮아 더 나아지고 더 뜨거워지며 더 사랑스러워지는 교회로 진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목표입니다. 

바울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화를 발견한 이후로 세상의 다른 것들은 그 보화에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이 되었습니다.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를 얻기 위하여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그 밭을 산 농부와 같습니다.  세상에서 자랑스럽던 것을 배설물로 여길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노력하여 얻은 것, 그래서 드러내고 자랑하고픈 것들은 하나님이 거저 주신 은혜의 선물과 전혀 다릅니다. 율법을 잘 지켜 얻은 의로움이 나를 구원한 것이 아니라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죄사함을 받을 수 있음을 믿고 따르는 그 믿음이 나를 구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또 함께 부활하는 믿음 안에 살아갑니다. 그렇게 하여 내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런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오늘 나누는 그리스도의 성찬에 참여합니다. 무엇을 자랑할 수 있음은 기쁨입니다. 그 기쁨이 그리스도가 되고 있습니까?   목표가 분명한 삶은 고난이 와도 기쁨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주님의 성찬에 참여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고 모든 성도 여러분 이 한 주간도 그리스도로 자랑하고 그리스도를 목표로 삼아 기쁨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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