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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판단 (롬 11: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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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판단 (롬 11:25-36)


이번주간이 휴가로는 제일 피크라고 그럽니다. 제가 언젠가 한번 한국 대형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적이 있었는데 그 목사님은 자기 교회가 개척되서 짧은 시간에 급성장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분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두가지 이유외에는 자기 교회가 부흥되고 복을 받은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그분이 말하는 자기교회는 개척초기부터 목숨걸고 선교했다고 합니다. 선교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선교사를 파송하고 교회를 세우고하는데 교회재정의 많은 부분을 투자했다는 것입니다. 두분째는 이교회는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는 사역을 계속해 왔다는 것입니다. 두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는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많은 교회가 있지만 어떤교회를 더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혼구원 선교하는 일에 교회가 집중할 때 하나님이 당연히 그교회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시고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빨리 부흥하는 것 맞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는 이해가 안됩니다. 아니 어떻게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기도하는 것이 그 교회가 복을 받는 이유가 될까? 잘 몰랐는데 로마서 11장을 묵상하면서 이제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 민족을 변함없이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장자 바로 유대민족입니다. 지금은 그들이 버려짐을 당하고 실패하고 거부당했지만, 그들이 복음을 거부함으로 어찌보면 하나님께 버림받은 민족이 되어 버렸지만 하나님은 장자된 그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어느가정에 장남이 아버지하고 마음이 안맞아서 집을 나갔습니다. 나쁜짓을 하다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감옥에 있는 그 아들을 돌봐주고 격려해주고 위로해준다면 부모의 입장에서 얼마나 구맙겠습니까. 내 아들, 집나간 아들을 돌봐주는 사람이 너무 고마워서 은혜를 꼭 갚기를 원할 것입니다. 어찌보면 하나님의 심정은 그와같다는 것입니다. 차남이나 삼남같은 이방민족이 복음에 순종하고 복음을 증거하지만 장자된 유대민족이 다시돌아올날을 고대하는 아버지 입장에서는 그들을 축복하는 사람을 축복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에게 네 본토 친척집을 떠나서 내가 지시한 땅으로 가라 주님이 말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누구든지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나도 저주하리니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이 말씀은 분명히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에게는 나도 저주하겠다. 아브라함을 선대해주면 나도 선대하겠다 그이야기입니다. 이 말은 또 바꿔말하면 아브라함의 육신적인 후손인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민족을 축복하는 자는 내가 축복해주고 유대민족을 저주하는 자는 내가 저주할 것이다. 물론 우리들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는 영적인 이스라엘백성이니까. 우리는 영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적으로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유대민족은 육신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육신적인 이스라엘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누구든지 유대민족을 축복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고 그 일을 이루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지난주일 설교제목이 왜 이스라엘을 축복해야 하는가 그런말씀으로 나눴습니다. 유대인은 우리 믿음의 뿌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참감람나루라고 했습니다. 이방인은 돌감람나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함으로 그 줄기에서 가지가 짤려나갔는데 짤려나간곳에 이방인 가지가 접붙임되어서 이제 유대민족에게 임하는 모든 축복을 이방민족이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믿음의 뿌리는 바로 유대민족, 이스라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받은 것도 유대인으로부터 전해받은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베드로와 바울같은 제자들입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이 전한 복음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되고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또 한가지 유대인의 넘어짐으로 우리에게 복음이 흘러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 입장에서는 넘어졌다는 것이 실패요 고통이요 괴로움이지만 이방인 우리입장에서보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이 넘어오기 위해서 유대인이 고난을 받았다면 이제 우리는 유대인들이 복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기도할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이 이방인이 구원받고 유대인이 구원받을 때 온 세계가 놀라운 축복을 경험한다고 성경은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묵상한 말씀에 보면 너희 자신을 자긍하지 말라 자랑하지 말라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을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너희가 구원받은 것은 너희가 잘나고 의로워서가 아니라 유대민족이 넘어짐으로 복음이 너희에게 이르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또한 우리가 지난주 묵상한 20절 말씀에 보면 그들은 믿지 아니함으로 꺽이고 믿음으로 섰느니라. 유대민족은 하나님을 믿지아니함으로 잘려나갔습니다. 꺽였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은 믿음으로 섰다. 다시말하면 이방인인 너희들도 언제든지 믿지아니하면 너희도 잘려나갈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리라. 원가지가 누구입니까? 유대민족입니다. 하나님의 장자된 유대민족이라도 하나님을 거부하고 복음을 거부하면 잘려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이방인인 너희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에 견고히 설때에 우리는 복음의 축복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유대민족이 다시 믿음의 자리에만 서게된다면 내가 그들을 다시 접붙이겠다는 것입니다. 잘려나간 가지에 다시 유대민족을 접붙여서 그들로 하여금 구원의 축복을 누리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지난주에 묵상한 23절말씀을 읽습니다.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지금은 그들이 믿지아니함으로 잘림을 당했지만 그들이 다시 믿는자리에 선다면 언제든지 그들을 내가 접붙여 생명을 이어받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접붙이실 능력이 있으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한민족을 구원하실수도 있고 멸망시키실수도 있습니다. 하물며 한 개인이나 한가정이나 한 교회를 세우기도하시고 허물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오늘 얼마나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모하고 그분에게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맡기고 의탁하는 믿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을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판단이라고 정했습니다. 판단이라는 말은 경륜 섭리 결정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옛날성경으로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판단이라고 읽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깨달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다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사람이 성경을 다 안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성경을 다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부분을 깨닫고 계속 연구해 갈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풍성하고 무궁해서 우리가 그것을 다 알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진리안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참으로 신비스러운 것입니다. 신비라는 말을 비밀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이 말하는 비밀을 몇가지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구원의 비밀은 유대인의 버려짐의 비밀은 잠시라는 것입니다. 25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신비라는 말이 두 번이나 반복됩니다. 

옛날성경에는 신비를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너희가 이 신비를 알기를 원하노라 너희가 이 신비를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한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너희가 이 구원의 비밀을 알기를 원한다. 이 신비가 무엇입니까.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바꿔말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방인의 충분한 구원의 숫자가 이르기까지 유대민족은 계속 우둔한 자리 강퍅한마음을 가지고 계속 복음을 거부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바꿔말하면 하나님이 작정하시는 이방인의 숫자가 채워지면 이제 유대인의 마음이 열려서 그들이 복음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의 버려짐은 한시적입니다. 잠시머무는 것이지 영원히 버림받은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놀라운 구원의 소식을 말씀해 주십니다.

26절입니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26절에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을 선포하고 그 말씀을 뒷받침하는 주석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인용한 이사야 59장과 27장 말씀입니다. 26장 중반절에 보면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어떻게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느냐. 

다시말하면 구원자 예수그리스도가 이 예루살렘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야곱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을 가르킵니다. 이스라엘의 경건하지 않은 것들을 돌이키시겠고 지금 죄악가운데 있는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여시겠다는 것입니다. 

27절에 보니까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때에 이스라엘의 모든 죄악을 오신 예수그리스도께서 다 없이 하시고 그들에게 이 언약을 이룰것이다. 언약은 무슨 언약입니까.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이 이루어 질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언약은 온 유대민족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번성하고 그들이 온전히 구원받는 언약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셨는데 그 언약이 그대로 이루어질것이다. 이것을 바로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이 지금 버려졌지만 그 버려짐은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이다. 곧 때가 되면 이방인의 구원의 숫자가 충만하게 이르면 복음의 물줄기를 이방인에게서 유대인에게로 옮길것이다. 지난주에 묵상할 때 이방인이 구원받는 모습을 보고 유대인의 마음에 시기하는 마음이 일어나서 그들이 복음을 영접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넘어짐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유대인을 넘어지게 하셨고 다시 이방인의 작정된 수가 구원받을때 그 복음은 다시 유대인에게로 건너간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넘어짐이 오래가지 않듯이 여러분이 당하는 고난도 잠시인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회복의 날을 계획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유대인을 영원히 잊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유대인을 구원할 계획과 섭리를 가지고 일을 진행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 자녀가운데 예수를 잘 믿다가 떠나신 분들이 있습니까? 우리가 보면 목회자자녀나 중직자자녀들중에 교회를 잘 나오다가 성장해서 교회를 떠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중단되지 않는다면 반드시 자녀들이 돌아올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유대민족이 오랫동안 아니 2천년동안 하나님을 떠나있었지만 그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본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계획을 가지고 진행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하나님이 돌아오도록 계획하고 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유대인의 버려짐은 잠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첫 번째 구원의 비밀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선택은 후회되는 법이 없다. 취소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28절입니다.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된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이 말은 바꿔말하면 이방인을 위해서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원수되었다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지금 복음에서 버려짐을 당한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원수되었습니다.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서.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변함없이 유대민족을 사랑하고 있다는 그런뜻입니다.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자라. 하나님은 유대민족을 선택하신것을 후회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뒷받침되는 말씀을 29절에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서 유대민족을 버리셨습니다. 그들을 실패에 던져버리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대민족과 원수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유대민족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꿔말하면 우리 이방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유대민족을 버리신 것처럼 나를 구원하시기위해서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던져버리신것처럼 하나님은 이방인도 사랑하지만 동시에 유대민족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느낄수 있는 증거가 있습니다. 지난주도 말씀드렸지만 유대민족이 복음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나서 2천년동안 방랑자의 삶을 살고 6백만이 나치독일에의해서 가스실에서 희생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역사속에 2천년동안 나라를 잃고 살아가던 민족이 다시모여 나라를 이룬 그런 역사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유대민족외에는 없습니다. 

2천년동안 흩어져있던 유대민족이 1948년 5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세웠습니다.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고 독립을 선포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한 민족이 그 나라를 잃고 100년만 지나도 언어가 없어지고 전통이 없어지고 민족애가 없어져 버립니다. 그런데 유대민족은 2천년동안 나라를 잃은 백성인데 2천년만에 다시 나라를 세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유대민족을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대민족을 선택하신것을 후회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선택에는 취소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유대민족이 지금은 떠나있지만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하시고 때가되면 그들을 돌이키실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에 비하면 인간의 사랑은 얼마나 변덕이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은 그렇게 사랑한다고 하다가 다음날이 되면 내가 언제 사랑한다 했냐고 합니다. 오늘은 너무 좋아서 있는것 없는것 다 가져다 줍니다. 그 다음날에는 밉다고 다시 달라합니다.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대민족을 한번 선택하셨는데 그들이 비록 거역하고 떠나더라도 하나님은 후회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후회하시지 않는다. 오늘 29절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그걸 생각하면 뼈아픈 이야기가 하나있습니다. 제가 목사안수를 처음 받을 때 보문동에 있는 어느교회에서 안수를 받았습니다. 목사안수를 받을 때 우리교회도 그렇게 합니다만 그 교회도 저에게 목사가운을 하나 선물해 줬습니다. 거기에 제 이름표까지 새겼습니다. 보통가운이 아니고 후암동에가면 성의사라고 성의사가운이 한국에서 제일 잘하고 비싼 가운입니다. 부목사님들도 성의사가운을 선물로 드립니다만 저도 그 교회에서 성의사 가운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교회에서 목회를 잘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떠나는데 하도 그 목사님이 엄격하신 분이여서 목사님께 이거 교회에서 받은 가운인데 가져가도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이 그러셨습니다. 안됩니다. 그것은 교회 비품입니다. 그래서 이름까지 새긴 가운을 벗어놓고 온 것을 아직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줄때는 언제고 다시 달라고 합니까. 

인간의 사랑은 변덕스럽습니다. 그것만 생각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한번 선택하시면 후회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번주시면 빼앗는 법이 없습니다. 너 미운자식 다시 뺏어야지 이런것이 없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인간이 범죄하고 잘못해서 스스로 빼앗기는것 뿐이지 던져버리는 것 뿐이지 하나님은 그 축복을 다시 거둬가시는 적이 없으십니다.  

민수기 23장 19절에보니까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구원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게으를때가 있고 범죄할때가 있고 완악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실망시킬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결코 후회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성령으로 탄식하실 뿐이라는 겁니다. 우리 인간은 어떻습니까. 자식을 키우다보면 말 안듣는 자식도 있습니다. 그럼 뭐라그럽니까. 너를 낳은게 내 인생의 최대 실수였다. 너는 낳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너가 비록 실수하더라도 범죄하더라도 나는 변함없이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서로 하나님의 은혜안에 만난것도 하나님의 축복이고 은혜인줄 믿습니다. 옆사람, 당신을 만난것이 인생 최대의 축복이고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를 선택한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훌륭한 선택이었어. 나는 너를 부른것을 후회하지 않아. 왜? 너가 반드시 돌아올줄 알기 때문에. 혹시 여러분을 배신하고 떠난분들이 있습니까? 혹 하나님을 등지고 떠난분들이 있습니까. 다시 돌아올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셨는데 여러분이 왜 포기하십니까. 목사님 난 우리 아들놈 포기했습니다. 틀린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셨는데 여러분이 포기할 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셨다면 반드시 그 아들은 돌아오게 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두분째 비밀은 하나님의 선택은 후회하는 법이 없다. 

세 번째 마지막 비밀은 하나님은 긍휼로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긍휼과 사랑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30절 31절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너희라는 것은 이방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느니라.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누가 긍휼을 입었습니까? 이방인들이 긍휼을 입었습니다. 

이제는 이방인들이 입은 긍휼로 인해서 불순종했던 유대인까지도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임할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은 오늘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이방인들을 기다리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우리들은 구원받은 것에 대해서 공로가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내가 목사가 되고 장로가되고 권사가되고 안수집사가 된것은 공로나 업적이나 의가 있어서 된것이 아닙니다. 이건 오직 하나님의 긍휼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고백할것이 있다면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수없도다. 이 고백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집을나간 탕자를 기다리듯이 오늘 유대민족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한영혼을 눈이빠지게 기다리고 기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서 산과 들을 헤매는목자의 심정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방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유대인을 강퍅한 자리에 버려두시기까지 하신 하나님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해 죄없으신 예수님까지 내어주신 그 하나님께서 오늘도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장로님이 그런 기도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의 부흥이나 구원을 생각하다가 보니까 한 사람의 영혼을 잃어버릴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잃어버린 한 영혼 그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그 영혼과 민족을 위해서 오늘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으신 분들 계십니까. 주님앞에 여러분의 삶을 온전히 의탁하지 못하신 분들이 계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의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실수를 문제삼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실수를 트집잡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는 여호와앞에 예수그리스도앞에 나오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놀라운 확신을 얻었습니다. 로마서 9장 1절 전반부에 큰 고통과 근심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내 골육친척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받을수만 있다면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도 좋습니다. 내가 저주받은 인생이 되어도 좋습니다.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에게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사도바울아 염려하지 말아라. 이방인도 구원받지만 내 골육친척 유대인도 구원받을것이다. 그들도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이 넘어짐으로 이방인에게 구원이 흘러갔지만 이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구원받을 때 다시 구원의 물줄기가 유대인에게로 흘러갈것을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계셨기 때문에 오늘 사도바울은 희망에 가득차 있습니다. 내 동족 유대민족이 구원받을 수 있구나. 할렐루야. 그래서 그는 로마서 9장부터 11장까지를 유대민족을 위해서 할애하고 있는데 이제 마지막 36절에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끝내고 있습니다. 

11장 36절입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오늘 사도바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만물이 그로부터 나오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만물이 그에게로 돌아가노라고 세세에 영광이 하나님께 있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든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흥망성쇄는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마지막 목적지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지막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왔던 인생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완성입니다.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고 그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나 제가 하나님의 선택받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은 기적중에 기적입니다. 오늘도 이 구원의 감격, 감사하면서 이웃의 구원을 위해 유대민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는 저와 여러분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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