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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리아보다 복된 사람 (눅 11: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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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보다 복된 사람 (눅 11:27-28)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의심하는 병이 있습니다. 잘 믿지 않습니다. 의심이 우리 안에 본성처럼 잠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잘 믿지 않고, 늘 보여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표적을 구했습니다. 표적이 무엇입니까? 표적이란 무언가를 확증해주는 증거입니다. 즉 <예수, 당신이 정말 메시아라면 분명한 증거를 보여 달라>는 것인데, 이 때의 증거가 표적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표적을 보여주셨습니까? 예수님은 숱하게 많은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병든 사람이 고침 받고, 듣지 못하던 사람이 듣게 되고, 말못하던 사람이 말을 하고,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고, 귀신들린 사람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많은 표적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고, 예수님은 표적을 보여주셨지만, 정작 그들은 표적을 보고도 믿지는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1장 14절 이하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귀신들려 말못하는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그 때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14절-15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그들은 표적을 보고 믿기는커녕 오히려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귀신을 쫓아냈다고 비방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11장 16절을 보세요.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라고 했습니다. 믿지도 않을 사람들이 표적만 구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불신앙적인 사람들에게 보여줄 마지막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11장 29-30절을 보세요.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그렇다면 <요나의 표적>이란 무엇일까요? 요나는 물고기뱃속에 들어간 인물입니다. 그 후 물고기가 그를 다시 토해냈습니다. 물고기 배속에 들어갔다 나왔다는 것은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요나처럼 죽었다가 다시 살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후 부활하셔서 다시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요나의 표적이란 다름 아닌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표적은 예수님께서 그 때까지 보여주신 모든 표적들, 병든 자를 고친 것, 귀신을 쫓아낸 것,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이신 것, 물 위를 걸으신 것 등 그 어떤 표적보다도 수 백 배, 수 천 배 위대한 표적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보여주신 최고의 표적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보여주실 때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입니다. 표적을 보았으면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사흘 후에 부활하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믿으면 삽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구약의 두 가지 예를 들어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는 스바 여왕입니다. 11장 31절을 보세요.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스바 여왕 보다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무려 2천 킬로나 떨어진 곳에서 왔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솔로몬의 말을 듣는 것도 복된 일이라면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이겠습니까? 지혜의 근본이신 주님이 바로 자신들 곁에서 직접 표적을 보이시고, 말씀을 전하는데도 믿지 않으니, 마지막 날에 스바 여왕에게 오히려 정죄를 당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한 예는 니느웨 사람들입니다. 11장 32절을 보세요.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의 시민은 너무도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물고기 배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요나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직접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표적을 보면서도 믿지 않았으니 마지막 날에 니느웨 사람들이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본문이 나옵니다. 본문의 상황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낸 것을 바알세불의 힘을 빌린 것이라고 비방하던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11장 17-26절까지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된 생각과 패역함에 대하여 책망하셨습니다. 그 때 이 말씀을 귀기울여 듣던 한 여인이 감탄하면서 말했습니다. 27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여인은 예수님의 어머니가 부러웠습니다. 흔히 여인의 복은 젊어서는 남편이요, 늙으면 자식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여인이 보통 자식도 아니고, 최고의 인물을 낳았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복일 것입니다. 여인은 <도대체 어떤 복 있는 여인이기에 이렇게 훌륭한 선생님을 낳았을까? 그녀가 부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에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복된 여성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장 28절을 보면 천사가 와서 마리아에게 한 말이 나옵니다.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또 세례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도 다음과 같이 축복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 42절을 보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마리아도 자신이 복 있는 여성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장 46-48절을 보면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정말 복된 여자입니다. 그러기에 천주교에서 마리아를 높이는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천주교의 마리아 숭배에는 반대합니다. 마리아는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숭배의 대상은 아닙니다. 이것은 모세를 존경하지만 숭배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숭배를 받을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우리는 이 점은 분명히 해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았으니, 대단하지요. 

자,  그러면 여인이 그렇게 말했을 때 예수님은 무엇이라 대답하셨습니까? 예수님은 <그렇지요. 저를 낳은 어머니는 위대한 분이지요. 그 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분입니다>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혀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리아보다 더 복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마리아보다 더 복된 사람입니까? 28절을 다같이 읽어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란 다른 말로 바꾸면 <말씀을 믿는 자>란 말입니다. 믿지 않으면 지키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말씀을 들을 때 비웃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귀기울여 듣는 사람, 들은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 그는 믿음의 사람이요, 마리아보다 더 복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여인은 이미 예수님의 말씀을 즐거이 듣고 있었으므로 절반은 된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그 말씀을 지켜 살면 마리아보다 더 복된 여성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대로 하는 사람은 마리아 보다 더 위대합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듣고 믿어 지키는 사람이 왜 마리아보다 더 복이 있습니까?  그것은 말씀을 믿을 때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습니다.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도 그것만 가지고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사도행전 1장을 보면 마리아도 다락방에 모여 기도했습니다. 마리아도 믿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 속에도 원죄가 있었습니다. 마리아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도 믿어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다면 최고의 복을 받은 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세상의 그 어떤 방법으로도 얻을 수 없는 생명이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과 말씀의 관계를 좀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을 믿는 것과 그 말씀을 믿는 것은 결국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면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은 당연히 그 말씀을 믿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 자체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이하에서는 <태초부터 있는 말씀이 곧 독생자 예수님>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신앙 생활이란 예수님을 믿는 것이며, 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한 기독교인이 믿지 않는 친구에게 자기 교회 목사님 자랑을 하면서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물었습니다. <어때? 우리 교회 목사님 대단하지?> 그러자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응, 난 목사님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어. 왜냐하면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생각하느라고 목사님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 난 아직 목사님이 어떤 분인지는 잘 모르겠어,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거야!> 

여러분, 신앙생활은 목사를 믿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시설 좋은 큰 교회에 이름을 등록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과 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예수님과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그 이외의 부분에 아무리 열심을 낸다고 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특히 우리는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말씀은 모든 표적들 중에서 최고입니다. 유명한 D. L. 무디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새 사람이 되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에도 늘 실패하고 넘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답답한 마음으로 산에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 중에 하늘의 은혜가 그를 감쌌습니다. 신령한 복들이 자기 심령에 물밀 듯 쏟아졌습니다.  <아, 이제  됐다!>라고 생각하고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가 한 달을 못 갑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유명 목사님의 집회를 찾아갑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절망했습니다. <내 마음은 성경 속에 비유에 나오는 길가와 같아서 씨가 자라지 못하는가보다> 이러하던 그가 어느 날 문득 성경을 폈는데, 로마서 10장 17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 때부터 무디는 말씀을 읽기 시작했고, 세계 복음의 지도를 바꿔놓은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말씀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단하거나, 제가 무엇을 알기 때문에 설교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설교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말씀이 여러분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고, 복되게 하고, 능력있게 하시길 기원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할렐루야! 

말씀 앞에서는 완악하던 사람도 순한 사람으로 바뀝니다. 말씀 앞에서 의심의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말씀을 정직하게 받으면 누구나 회개하게 됩니다. 그 예리한 검 앞에서 쪼개지지 않을 마음은 없습니다. 그 맑고 밝은 말씀의 거울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말씀 앞에서 우리는 변하여 새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부흥을 두고도 그런 기대를 가집니다. <하나님, 우리는 교회를 부흥되게 할 특단의 묘책이 없습니다. 우리는 무능하고 연약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우리가 믿는 한, 우리는 부흥될 줄 믿습니다. 말씀을 믿고, 말씀을 주시는 주님을 믿을 때, 주님은 “네 믿음대로 되라”고 하실 줄 믿습니다>란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시길 기원합니다.우리교회가 말씀을 통해서 부흥되길 기원합니다. 말씀이 풍성한 교회, 말씀을 잘 듣고 지키는 성도, 말씀을 통해 복을 받는 교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더구나 우리는 말씀을 믿고 지킬 때 복을 받습니다. 그 유명한 신명기 28장 1절 이하를 보십시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여러분 모두가 이런 복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이 능력입니다. 말씀이 생명입니다. 말씀이 복입니다. 이 여름에 성경 속으로 피서를 떠나시길 바랍니다. 말씀의 숲 속에서, 그 복된 그늘에서 영혼의 쉼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읽으십시오.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믿으십시오. <말씀대로 될 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잠언  16장 20절입니다. 우리 모두 말씀을 즐겨 듣고, 즐겨 묵상하고,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고, 이를 통하여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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