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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곱의 트레이드마크 (창 32: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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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트레이드마크 (창 32:21-32)
  

사람마다 고유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생각나면 얼른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런 것을 가리켜 ‘트레이드마크’(Trademark)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물건에 대해 사용할 때는 상표라는 뜻이지만, 사람에 대해 사용할 때는 그 사람을 연상시키는 특징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도 이런 트레이드마크가 있습니다. 예들 들어보죠. 에훗 하면 뭐가 생각납니까? 왼손잡이! 그렇죠. 또 모세 하면 뭐가 생각납니까? 지팡이가 생각납니다. 삼손 하면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긴 머리가 생각납니다. 긴 머리 소녀 가 아니라, ‘긴 머리 아저씨’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보니까 누가 등장하죠? 야곱입니다. 그러면 야곱의 트레이드마크는 뭘까요? 본문 31절에 나옵니다. “ ...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여기서 ‘허벅다리’는 대퇴골 즉 넓적다리뼈를 가리킵니다. 개정되기 전 한글개역성경에는 ‘환도뼈’라고 번역되어 있죠. 환도(環刀)라는 말은 ‘두를 環’ ‘칼 刀’, 그러니까 칼을 차는 데라는 뜻으로 환도뼈라고 부르는 겁니다. 야곱이 얍복강(요단강 상류 지류) 나루에서 천사와 씨름하다 얻어맞아서 환도뼈가 위골됐죠. 

그는 그 후 평생 동안 절며 살았습니다. 겉으로 보면, 안돼 보입니다. 신체장애가 생겼으니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요즘처럼 휠체어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 앞에 큰 은혜를 받은 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환도뼈 위골 사건은 야곱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체험의 ‘증표’입니다. 야곱의 트레이드마크는 위골된 환도뼈입니다. 그는 그 이후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겸손히 의지하며 살게 됩니다. 육신은 연약해졌지만, 영적으로는 더욱 강건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 시간 야곱의 트레이드마크인 환도뼈 위골 사건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야곱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겸손히 의지함으로 승리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본문을 잘 이해하기 위해 먼저 야곱에게 어떤 이야기들이 전개되었는지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야곱은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 태어난 쌍둥이 형제 중 둘째입니다. 형은 에서! 그런데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욕심이 많고 약삭빠른 사람입니다. 태어날 때 그 어린 것이 뒤로 처지니까 앞서 보겠다고 형의 발꿈치를 붙잡았습니다. 그래도 결국 뒤에 나왔지만, 그가 어떤 인물인지 단적으로 짐작할 수 있겠죠. 그는 에서의 장자권이 탐났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사냥 나갔다 들어온 에서가 시장해 하는 것을 노려 팥죽 한 그릇에 장자 명분을 삽니다. 이게 사고파는 게 아닌데, 어쨌든 그랬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흐려졌습니다. 어느 날 이삭이 에서를 불러 놓고 말합니다. “얘, 에서야! 이제 내가 늙었으니 너에게 축복하겠다! 네가 나의 장자가 아니냐? 내 기력이 쇠하니 사냥해서 별미를 만들어 다오. 그러면 내가 힘을 내서 축복하마.” 에서는 신바람이 나서 사냥을 나갑니다. 마침 그 말을 리브가가 엿듣습니다. 리브가는 야곱과 작당하고 이삭을 속이죠. 야곱을 에서인 것처럼 위장합니다. 

염소를 잡아 별미를 만들고, 에서의 옷을 입고, 염소 가죽을 손목에 덮어씌웁니다. 음성을 달라 잠시 의심하는 이삭을 감쪽같이 속이고 장자 축복 기도를 받아냅니다. 사냥 나갔다 나중에 들어온 에서가 그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형제지간에 칼부림이 날 상황입니다. 몰린 야곱은 황급히 야반도주합니다. 이렇게 해서 고향 브엘세바를 떠나 밧단아람으로 떠납니다. 밧단아람은 하란 땅으로 지금의 터키 남부지방입니다. 리브가의 친정 즉 야곱의 외가댁이 있는 곳입니다. 브엘세바에서 밧단아람까지 거리는 대략 8백 km쯤 됐으니까 당시로서는 엄청 먼 거리였습니다.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무려 20년을 지냅니다. 고생 고생한 끝에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재산을 모으고, 두 아내와 아들딸 그리고 종들을 거느리게 됩니다. 20년 만에 가나안 땅으로 금의환향하는 야곱! 하지만 20년 전 에서가 품은 원한이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다. 소식을 들으니 군사 4백 명을 데리고 야곱을 치러 온다는 겁니다. 그러니 금의환향이 아니라, 다 빼앗기고 쪽박을 차게 생겼습니다. 최악의 경우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창32:6~7이 그 상황을 단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 ” 한 마디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1] 옛사람 야곱 : 내가 주인 되는 사람

20년 만에 찾아온 고향이었지만 이렇게 답답한 상황을 맞이한 야곱의 처신을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 자신의 생각과 경험, 능력을 갖고 어떻게 해보려고 합니다. 인간적인 욕심과 꾀로 살다가 그렇게 오랜 세월 고생했으면 이젠 정신 차릴 만도 하건만, 정말 안타까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여전히 변화 받지 못한 ‘옛사람’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인데, 여전히 내가 주인 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겁니다. 창32:7~23 보면 야곱의 인간적인 꼼수가 얼마나 간교하고 한심한지 나와 있습니다. 에서의 마음을 물질로 달래 보려고 자신의 소유 중 많은 짐승 떼를 뇌물로 보냅니다. 한 마디로 물질공세를 한 거죠. 소, 염소, 양, 낙타 등을 무려 550마리를 보냅니다. 새끼들을 뺀 숫자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리고 짐승들을 보내는데, 여러 떼로 나누어서 보냅니다. 많아 보이게 한 거죠. 잔꾀의 명수죠? 그런데도 불안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또 어떻게 합니까? 21절~23절을 보세요. “21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심지어 두 아내와 자식들까지 나루를 건너게 하고, 자기 혼자만 강 반대편에 머물었습니다. 말하자면 가족들을 인간방패로 삼은 겁니다. 여차 하면 자기 혼자라도 튀겠다는 속셈이었는지 모릅니다. 이쯤 보면, 야곱의 인간성이 어떤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죠?

그런데요, 인간이 제아무리 지식과 경험이 많고, 소유가 많아도 결국은 한계에 부딪칩니다. 나루 이쪽에서 혼자 있었지만, 밤이 되면서 갈수록 더 불안해집니다. 해결이 안 됩니다. 그는 한 마디로 겉똑똑이였습니다. 자기는 머리를 잔뜩 굴렸지만 멍청한 짓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밤에 어떤 일이 생기죠? 택한 백성을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십니다. 24절 보십시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납니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너무 두려워서 초죽음이 된 상태였을 텐데 말입니다. 여기서 ‘어떤 사람’은 누구일까요?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보통 천사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성육신(성탄) 하시기 전 구약 시대에 이따금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났던 케이스 중 하나로 해석합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신 건데, 그것도 모르고 그 사람을 붙잡고 씨름을 합니다. 처음에는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정체불명의 사람이니까 혹시 에서가 보낸 자객이라도 될까봐 사력을 다해 싸웠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야곱이 하나님을 믿노라 했지만 어떤 신앙인이지 판단할 수 있겠죠?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참 신앙’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겁니다.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범사를 하나님과 의논하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또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겁니다. 자기 혼자 하다하다 안 될 때, 할 수 없이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주여!” 하면 나타나는 해결사 내지는 119 구조대원이 아닙니다. 심부름센터 직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게 참 신앙입니다. 주종전도(主從顚倒), 다시 말해서 주인과 종이 바뀌는 식이 되면 곤란합니다. 이건 죄와 욕심의 지배를 받는 육적인 신앙이며 미성숙한 신앙입니다. 

[2] 어긋난 허벅지 관절(환도뼈) : 야곱의 변화된 증표(트레이드마크)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육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는 것을 방치하지 않습니다. 정말 하나님 한 분만 주인 삼고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영적인 신앙, 성숙한 신앙으로 연단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런 저런 체험을 통해 만나주십니다. 때로는 고난과 역경, 그리고 징계를 통해 변화시킵니다. 

야곱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천사가 나타나 씨름하다 야곱이 너무 집요하니까, 어떻게 하죠? 내리쳐서 환도뼈가 위골되게 합니다. 그는 절음발이가 되는데, 이를 통해 새로운 영적 체험을 하게 합니다. 본문 25절 보세요.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왜 하필이면 환도뼈를 치셨을까요? 가장 강한 뼈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야곱의 고집스러운 옛사람의 자아를 꺾으신 겁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주인 행세하는 꼴을 못 보십니다. 반드시 손을 대십니다. 고치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겸손히 무릎 꿇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순종해야 되는데(그게 또 우리 자신에게 축복인데), 그러지 않고 자기 힘과 지혜로, 능력으로 뭔가 해보려고 하면 싫어하십니다. 그러면 함께 해 주시지 않습니다.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면 혼자 아등바등 대다가 마침내 한계에 부딪치고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이라고 주인 행세하려고 들면 큰일 납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천안에 독립기념관이 있죠. 워낙 넓어서 관람하려면 다리도 아프고 힘듭니다. 단체 관람 차 갔던 한 할머니가 너무 힘들어서 김 구 선생 의자에 앉았습니다. 관리인이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할머니! 거기 앉으시면 안돼요!” 그러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뭘 그렇게 빡빡하게 굴어. 주인 양반 오면 그때 자리 내 주면 되잖아!” 우스갯소리 같지만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리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생활 속에 그분의 자리가 있는데, 나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자행자지하면 안 됩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야곱의 환도뼈가 위골괴고 말았습니다. 평생 절며 살게 됩니다. 그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시죠. 31절입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여러분, 이 장면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십니까? 불쌍해 보이나요? 겉으로 보면 그래요. 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오히려 좋아진 겁니다. 은혜가 넘칩니다. 밤새 천사와 씨름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자 야곱의 마음은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런 영적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 뭐죠? 해가 돋는 모습입니다. 감정이입(感情移入)의 표현법입니다. 햇빛이 환하게 비춰오듯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신령한 기쁨이 흘러넘친 겁니다. 그곳 이름을 브니엘(하나님의 얼굴)로 명명한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은 변화됩니다. 내가 주인 되어 제멋대로 살던 인본주의자(人本主義者)였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주인 삼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신본주의자(神本主義者)로 변화됩니다. 나 중심(I-Centerd)의 사람이 하나님 중심(God-Centered)의 사람으로, 이제는 죄와 욕심이 지배하던 옛사람(Old Self)이 하나님의 다스림, 하나님의 통치를 따라가는 새사람(New Self)으로 변화된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에 고난이 유익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고난이 고단하고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를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만들어 주고,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절실히 깨닫게 해 줍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을 보십시오. 시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천방지축으로 제멋대로 살았다 이겁니다. 그런데 고난 가운데 연단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몸소 체험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해졌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내 생각과 내 방법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순종하며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3] 새사람 이스라엘 : 하나님이 주인 되는 사람 

야곱은 환도뼈가 부러지는 아픔을 겪었지만, 이런 점에서 큰 유익을 얻었습니다. 정말로 야곱은 이 사건을 계기로 변화됩니다. 새사람이 된 겁니다. 내가 주인 되는 옛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 되는 새사람이 됐습니다. 이제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게 됐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강조해서 다시 말씀드립니다. 신앙의 본질은 주권(Lordship)의 문제입니다. 주권이 과연 누구에게 있느냐? 어디에 있느냐? 이 문제입니다. 환도뼈가 위골되면서 야곱이 정신이 확 깼습니다. “아니, 이게 뭐야? 천사였어? 하나님이셨어? 그런 이 분만 붙잡고 매달리면 되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그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 솟구친 겁니다. 26절을 보십시오.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외길입니다. 다른 길이 없어요. 

그래서 시력을 다해, 이제는 육체의 씨름이 아니라 영적인 씨름을 합니다. 야곱이 정말 눈물로 간구하는 모습을 확인한 천사가 말합니다. 27절~28절 보십시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의 이름 몰라서 부른 게 아닙니다. 네 자신의 과거 모습이 뭐냐 이겁니다. 옛사람의 모습이죠. 그리고 새 이름을 붙여 줍니다. 야곱은 무슨 뜻이죠? 발꿈치를 잡는 자, 즉 사기꾼이고 실패자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무슨 뜻이죠? 하나님과 겨뤄 이긴 자 즉 승리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뭐예요? 과거에 자기가 주인 되어 제멋대로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 앞에 복종하며 살라는 겁니다. 그러면 승리한다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술로만 하나님께 주여! 주여! 하지 말고, 실제 삶 가운데 하나님을 주님으로 주권자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이게 승리의 비결입니다. 축복의 비결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자기 능력으로 자기 머리로 하나님이 이겨 먹어요? 말도 안 돼죠. 하나님 앞에 항복하고 복종할 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준다는 겁니다. 사람에게 항복하면 자존심 상하고 불행해지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지는 게 이기는 겁니다. 하나님은 항복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께 ‘항복’하면 ‘행복’해집니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엄청난 축복이 담겨져 있는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날마다 힘쓸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옛사람의 고집스런 자아를 깨뜨려야 합니다. 좀 더 강하게 표현하면 박살을 내야 합니다. 마음속의 환도뼈를 깨뜨려야 돼요. 바울 사도도 강하게 표현합니다. 고후10: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인간의 교만, 고집, 아집, 주관 등 모든 육신적인 것들을 깨뜨리고 무너뜨리라고 말합니다. 그럼으로써 예수님께 복종하라는 겁니다. 

다윗도 비슷한 고백을 합니다. 자기 욕망대로 살다 밧세바 범하고 우리야 죽이고 죄악에 빠졌습니다, 실패했습니다. 그것은 옛사람의 욕망에 이끌려 패배한 겁니다. 그것을 철저히 회개한 다윗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시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broken heart)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여러분, 두더지 게임(일명 뿅망치) 아시죠. 두더지가 여러 마리 설치되어 있는데, 하나씩 튀어 나오면 망치로 내리치는 겁니다. 그러면 쏙 들어가요. 그런데요, 이게 계속 그래요. 여기저기서 튀어 오릅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계속 내리쳐야 돼요. 우리의 영적인 씨름도 이와 비슷합니다. 신앙생활 오래 했다고 해도 옛사람의 고집스런 자아(욕심, 못된 성격, 세상 지식, 세상 경험, 세상 습성 등)가 살아남아 불쑥 불쑥 튀어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정없이 내려쳐야 합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주님께 백기 드는 것! 이게 살 길입니다. 승리의 길이며 축복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왜 인간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져요? 옛사람의 자아를 가지고 죄성과 욕심 등 고집으로 자기 스스로 인생을 살려고 하니까 곤고한 겁니다. 이제는 다 내려놓고 살라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인생의 주인이신 그 분께 순종하며 살라는 겁니다. 이게 바로 예수님의 멍에를 메는 겁니다. 그러면 평안해져요. 은혜가 넘쳐요. 축복의 하이웨이가 펼쳐져요. 

여러분, 다시 야곱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는 이제 환도뼈가 위골되어서 도망도 못갑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정말 큰일이 났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 변화되니까 괜찮아요! 오히려 평안해졌어요. 담대해졌어요. 그리고 승리합니다. 원수 같은 에서와 감격적인 상봉을 합니다. 나중에 사양하는 에서에게 선물을 좀 주기는 했지만, 돈으로 해결한 게 아예요. 꼼수로 해결한 것도 아녜요. 창33:3~4 잘 보면 어떻게 승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간밤에는 가족들을 인간방패로 삼았었는데, 이제는 절뚝거리면서 오히려 맨 앞으로 나섭니다. 그리고 20년 전 잘못에 대해 정식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에서의 마음을 만져 주셨어요. 녹았어요. 눈물 흘리고 입 맞추고 난리가 났어요! 이게 바로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이렇게 쉬운 걸 모르고 괜히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허튼 짓을 했던 겁니다. 

여러분, 거듭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 두 손 들고 완전히 항복하면 문자 그대로 만사형통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도 이런 원리를 설명해 주잖아요. 그는 다메섹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납니다. 악명 높은 핍박자였던 그가 변화됩니다. 새사람이 됩니다. 그 흔적이 육체의 가시였어요. 고질적인 안질인데, 그 고통이 평생 갔습니다. 그는 고민하면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은혜가 족하니까 그냥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약하니까 오히려 주님 의지하며 살아야 은혜가 넘치고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 승리할 수 있다는 겁니다. 눈이 어두워진 게 아니라 영적으로는 환해졌다는 겁니다. 육체의 가시가 바울에게는 트레이드마크가 된 겁니다. 그의 유명한 고백입니다. 고후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엄상익 변호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대도 조세형, 탈주범 신창원 등을 변호해서 유명해진 분입니다. 모든 것을 기도하면서 주님의 뜻대로 처리하려고 애쓰는 신실한 크리스천 변호사입니다. 그의 간증에 의하면 본래부터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도 환도뼈 위골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퇴근하려고 운전석에 앉았는데, 손가락에 감각이 없어요. 병원에 갔더니 전신에 말초신경이 파괴되는 희귀병이라는 겁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아내를 옆에서 눈물로 기도만 하고 있었고, 자신의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오랜 시간 눈물의 기도를 드린 후 발가락부터 회복되기 시작했고 전신이 회복됩니다. 그러면서 새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기도하는 변호사! 복음 전하는 변호사! 

여러분! 한번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나 자신에게 위골되어야 할 환도뼈가 있지 않은지 찾아보세요! 내 마음속의 환도뼈가 있다면 내 스스로 단호하게 내리쳐야 합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직접 치십니다. 하나님께 항복하면 행복합니다. 부디 이 말씀을 명심하시고 신앙의 본질 속에 들어가 진정한 행복자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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