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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리석은 자의 사고(思考) (눅 12: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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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의 사고(思考) (눅 12:15-21)


하나님은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늘 지혜롭게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0장 16절에 말씀하시기를“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셨습니다. 지혜롭게 살아야 후회함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인지에 관해 어느 부자의 삶을 비유로 교훈하신 말씀입니다. 한 부자가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 해에 농사가 얼마나 잘 되었든지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을 정도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생각하기를“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누가복음 12:17) 하면서 행복한 고민에 잠겼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에게 반짝이는 지혜가 떠올랐습니다.“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가 쌓아 두리라.”(누가복음 12:18)고 했습니다. 마음이 흡족한 이 부자는 자신을 향해 말하기를“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누가복음 12:19)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보기에 참으로 부러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부자의 삶과 생각하는 것을 다 알고 계신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배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누가복음 12:20) 하셨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재산관리를 잘하는 지혜로운 사람, 행복한 사람, 성공한 사람 같은데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어리석은 자”라고 일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 부자를 가리켜 어리석다고 하셨을까요? 

1. 이 부자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는 이 부자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부자가 사용한 인칭대명사를 살펴보면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말 외에 다른 사람을 가리키는 말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본문 17절~19절을 보면“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짖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세 구절가운데“내가”라는 말이 무려 여섯 번이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내가”이고, 모든 것이“내것”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하나님도 없고 이웃도 없습니다. 오직 내 자신 뿐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삶의 주성분인 사랑이 빠져있습니다. 인정이 빠져 있습니다. 긍휼이 빠져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세의 세속에 물들어 타락한 사람의 마음에 대해 디모데후서 3장 1절~2절에 말씀하시기를“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교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률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삶은 사탄의 미혹에 빠진 타락한 증거라는 것입니다. 

뉴욕 전화회사에서 한번은 사람들이 어떤 말을 제일 많이 쓰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제일 많이 쓰는 말이“나”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5,000번 대화 가운데 3,999번이“나”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합니다. 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기적인가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모든 분쟁과 갈등, 모든 죄악은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생각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이기적인 것에 사로잡히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인 것이 자기를 위하고 자기를 지키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자기를 해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야야기가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에는 밥을 먹는 수저의 길이가 2m 정도 되는데 반드시 수저의 끝을 잡고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옥은 자기 자신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그들은 하나님도 이웃도 모르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온갖 죄를 범한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수저의 길이가 너무 길어 열심히 음식을 집기는 하지만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굶주림에 고통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천국에 있는 성도들은 수저의 길이가 2m나 되지만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음식을 집어 자기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생각해서 이웃의 입으로 가져다주기 때문에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흑인여자 성악가인 마리아 엔더슨 평소에“나”라는 말보다“우리”라는 말을 즐겨 썼다고 합니다. 이러한 엔더슨의 말을 관심 있게 듣던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녀는 대답하기를“사람이 오래 살면 살수록 나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노래 한 곡을 부를 때에도 작곡가가 있어야 하고, 피아노 제조업자가 있어야 하고, 반주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 속에 나는 작은 협력자일 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만을 생각하지 않고, 나를 다른 사람과 연관시켜 생각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줄 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2. 이 부자는 재물밖에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통해 어리석은 자의 생각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나 있는 이 부자의 머릿속에는 온통 재물에 대한 생각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곡식, 자기 곡간, 자기 물건이 이 사람의 생각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어느 심리학자의 말에 의하면 사람들의 생각의 70~80%는 돈에 대한 생각이라고 합니다. 돈을 어떻게 벌까? 돈을 어떻게 저축할까? 나를 위해 돈을 어떻게 쓸까? 하는 생각이 우리들의 생각의 70~80%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고, 돈을 모든 가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어리석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2절 말씀에“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교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말세의 징조라고 하셨습니다. 돈의 허상에 대한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으나 단잠은 살수가 없다. 
돈으로 좋은 집은 살 수 있어도 행복한 가정은 살수가 없다. 
돈으로 책은 살 수 있으나 돈으로 명석한 두뇌는 살수가 없다.
돈으로 음식은 살 수 있으나 돈으로 식욕은 살수가 없다. 
돈으로 쾌락은 살 수 있으나 돈으로 행복은 살수가 없다. 
돈으로 황금 십자가는 살 수 있으나 돈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살수가 없다.
돈으로 세계를 여행할 수 있으나 돈으로 하늘나라는 살수가 없다.
돈의 위력이 대단하지만 정말 소중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 힘이 되지 못하는 것이 돈임을 밝힌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본문의 부자를 향하여 어리석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시기전 본문 15절에 말씀에“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하셨습니다. 

지폐의 일생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화폐 세계에서 은퇴한 십만 원짜리 수표와 천 원짜리 지폐가 있었습니다. 파티 석상에서 만난 이들은 서로가 살아온 인생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십만 원짜리 수표가 먼저 말했습니다. 
“제 인생은 정말 끝내줬어요. 늘 최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을 돌아다녔고, 휘 황찬란한 유흥가를 전전했거든요. 생각만 해도 신나지 않아요?”
그러자 천 원짜리 지폐가 말했습니다.
“전 정말 거룩한 일생이었습니다.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거룩한 교회로만 떠돌아 다녔거든요.”

광부들을 가득 태운 여객선이 미시시피 강에서 기관 고장을 일으켜 침몰 위기를 맞았습니다. 배안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승객들은 구명정에 올라탔습니다. 건장한 남자들은 모두 옷을 벗어 던진 채 강물로 뛰어들어 헤엄을 쳤습니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탈출한 후 한 남자 승객이 뒤늦게 갑판 위로 올라오더니 웃을 입은 채 강물에 뛰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물위로 올라오지 못했습니다. 한참 후 구조대원들이 물속에 잠긴 그의 사체를 건져 올렸습니다. 그 사람의 옷 주머니 속에는 승객들로부터 훔친 금덩이와 귀중품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그 귀중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채 이 사람은 익사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안감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재물에 눈이 멀면 그 사람은 체 면과 사랑과 우정도 모두 내팽개치게 됩니다. 마치 불을 향해 돌진하는 불나방처럼 재물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다가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 말씀하시기를“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넘긴 가룟 유다라는 몹쓸 제자입니다. 가룟 유다는 그 돈 한 푼도 쓰지 못한 채 자살로 생을 마쳤습니다.

시인 최승호 씨가 쓴〈황금털 사자〉라는 책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평생토록 자기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간의 이해득실로 얽힌 세상에서 손해보다는 이익을, 실보다는 득만을 취하며 살다보니 노년이 되었을 때 주위에 남은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습니다. 쓸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이라고는 사과 궤짝에 쌓아 놓은 돈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사람에게 헌신할 수 있는 마지막 기 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마지막 기회마저 자기를 위해 쓰고 말았습니다. 가지고 있던 돈을 몽땅 털어 순금으로 만든 관을 구입하여 그 속에서 죽기 로 한 것입니다. 결국 그는 금관 속에서 죽은 뒤 금관에 누운 채로 매장 되었습니다. 그날 밤, 그의 시체는 금관을 탐낸 무리들에 의해 무덤 밖에 내팽개쳐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굶주린 들쥐들의 기회였습니다. 들쥐 들은 시체의 배를 터뜨리고 내장까지 남김없이 뜯어 먹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31절~33절에 말씀하시기를“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하셨습니다. 

우리는 물질세계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흔히 재물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기 쉽습니다. 재물은 물론 중요합니다.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거할 집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벌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재물이 전부는 아닙니다. 재물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물질을 만든 창조주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들이 그토록 바라는 물질의 풍요로움도 하나님은 주식로 약속하셨습니다. 

신명기 28장 1절~6절에 약속하시기를“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하셨습니다. 

3. 이 부자는 현세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통해 어리석은 자의 시각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부자는 내세를 알지 못했습니다. 지극히 근시안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이 땅에서 잘 쉬고, 잘 먹고 마시며, 잘 노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이러한 부자를 향해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배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누가복음 12:20)라고 하셨습니다. 이 부자가 깨닫지 못한 세계가 있음을 밝히는 말씀입니다. 이 부자는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생명을 부르시는 하나님 앞에서 누가 항거할 수 있겠습니까? 

창고를 넓혀 재산을 가득 쌓아둔 부자입니다. 세상을 떠나지 않고 영영토록 부귀와 영광을 누리며 살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영혼의 창조자이시며 주인이십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던 영혼을 도로 찾으실 때 우리에게 나타나는 현상이 죽음입니다. 이렇게 영혼을 부르시는 하나님 앞에 누가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들의 영혼을 하나님께서 찾으실 때 가야할 곳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말씀에“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하셨습니다. 이 부자는 이러한 엄연한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어리석은 자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쉬며, 잘 노는 것을 싫어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것을 위해서 건강도 주시고, 물질도 주셨습니다. 그러 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들이 이 땅에 살면서 내세를 위해 준비를 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내세를 위한 준비가 무엇입니까? 가장 급한 것은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심판에 이르지 않고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마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이 구원을 받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은 장차 우리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상을 받도록 준비하며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내세에서 상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땅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많이 하며,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하나님과 내세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건강, 재물, 재능을 가지고 어리석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자의 삶임을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절기상으로 어제부터 가을입니다.“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라는 글귀가 생각났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기 위해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나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얼른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나는 그때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꿔가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놓은 
좋은 말과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 가겠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내 자신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혼자의 힘으로는 살아가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재물 밖에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재물보다 더 귀한 것이 있고, 또한 재물은 영원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밖에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짧은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말씀을 거울삼아 내 자신의 삶의 현주소가 어디인지 비춰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후회 없는 지혜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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