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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동역자 (빌 2: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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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역자 (빌 2:19-30)

 
내 용 

우리가 일상생활 가운데서 ‘도무지 시간이 안 간다.’ 하고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에 보면 “Kill Time”이라고 합니다. 시간을 어떻게 죽이냐? 그런데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시간이 제일 안갑니다. 하나는 병원이고 하나는 감옥입니다. 정말 시간이 안갑니다. 왜 감옥에서 자살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가? 참고 기다리면 다 잘 될 텐데도 자살을 생각하고 감옥에서 죽을 것만 찾습니다. 그래서 죽을 수 있는 도구를 다 없이 하잖아요? 끈만 있으면 목을 매려고 하니까 그러는 겁니다. 왜 그러는가? 시간을 이기지 못해서 그러는 겁니다. 

이 지루하고 지겨운 시간을 도저히 이겨낼 수 있는 마음 조절이 안 되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방에 갇혀서 1초, 2초 가는 게 지긋지긋한 겁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자살 사건이 많이 일어납니다. 입원도, 감옥도 제가 스스로 경험해 본 일은 한 번도 없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일도 평생에 한 번도 없었으니까 직접 체험은 없습니다. 그러나 간접 체험은 누구보다도 많이 했습니다. 병원에 항상 심방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솔직히 감옥에도 심방을 많이 갔습니다. 간접 체험은 목회자가 누구보다도 제일 많이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지금 바울은 감옥에서 어떻게 풀려날 길도 없고 이제는 죽을지 모르는 그런 시간을 지루하게 아주 지겹게 보내고 있는데 그 어려운 시간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감옥을 찾아오는 두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디모데이고 하나는 에바브로디도입니다. 이 두 사람이 찾아와서 바울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바깥의 소식을 다 전해주고 또 돌봐주고 밥도 해주고 같이 있어주고 이야기 상대가 되어 주고 이 두 사람 때문에 로마 감옥의 지루한 과정을 무난히 잘 넘길 수가 있었는데 ‘제일 궁금했던 일이 빌립보 교회가 어떻게 되었을까?’였습니다. 

지금 같이 전화가 있어서 소식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편지도 안 됩니다. 편지도 사람이 직접 손으로 직접 가서 전해 주고 또 가지고 와야 되니 무슨 통신 수단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유럽의 첫 번째 교회인 빌립보 교회를 잘 설립하고 재미나게 목회를 하다가 이렇게 로마 감옥에 와 있으니까 그 소식이 너무나도 궁금한데 디모데하고 에바브로디도가 와서 그 소식을 소상하게 전해주니까 지루함이 해소가 되고 기쁘고 또 빌립보 교인들이 헌금을 해서 보내주어서 사식도 잘 먹고 이 두 사람의 역할과 빌립보 교우들의 후원 때문에 로마 감옥을 무난히 초월하게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긴 겁니다. 

여러분도 제일 궁금하신 소식이 있습니다. 누가 제일 궁금한가? 멀리 떨어져 있는 자녀들이 제일 궁금하실 겁니다. 군대 나간 아들딸이 잘 있는가? 어떤 상황에 있는가? 유학 간 아이들이 잘 있는지? 곁에 있지 아니하는 내 사랑의 대상자에 대해서 사람이 제일 궁금한데 바울은 그 궁금한 것이 빌립보 교인들입니다. 그러다가 그들에 대한 어떤 소식을 들을 때는 세밀하게 구체적으로 자세히 묻게 되고 알고 싶어 합니다. 저도 손자, 손녀들이 미국에 있으니까 “뒤집었냐?” 이렇게 묻습니다. “기어갔냐?” 이제 돌 때가 되니까 “일어서냐?” “한 발짝 걸었냐?” 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묻게 됩니다. 

칼 바르트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보통 “사랑, 사랑” 그러는데 “사랑이 무엇인가? 사랑은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렇게 정의를 했거든요? 일거일동을 관찰하고 싶은 겁니다. 여러분, 가까운 사람과 전화걸 때 순서가 네 가지입니다. 똑같습니다. 전화를 걸면 “어디야? 뭐해? 누구하고 있어? 언제 올 거야?” 이 순서로 말합니다. 바로 관심입니다. 구체적으로 내 머릿속에 이해가 될 수 있도록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언제 올 것인가를 알고 싶어 하잖아요?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 사도에게는 그의 마음에 이 아름다운 두 동역자가 있어 줌으로써 그 어려운 감옥 생활을 다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이들이 있었기에 바울은 외롭지 않았고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동역자 두 사람을 오늘 성경말씀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빌립보 교인들에게 감사편지로 두 사람을 천거해서 소식을 전하고 있는 내용을 우리가 본 겁니다. 

먼저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 사람입니다.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유대 여자입니다. 아버지가 헬라인인데도 불구하고 디모데는 모계를 따라서 유대인으로 살았습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이 모계를 많이 따라갑니다. 우리나라는 아버지 쪽을 따라가는데 유대는 어머니를 따라갑니다. 만약 유대인 남자가 이방 여자와 결혼해서 탄생한 아이는 이방인이 됩니다. 유대인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이방인이 됩니다. 유대인 남자가 만약 한국 여자와 결혼했잖아요? 그러면 아이는 한국인이 됩니다. 모계를 따라갑니다. 

그런데 유대인 여자가 이방 남자와 아이를 출산하면 유대인이 됩니다. 디모데가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계를 따라서 유대인이 된 사람으로서 어머니 유니게와 외할머니 로이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고 자기는 유대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헬라인 아버지 신앙을 따라가지 않고 어머니를 닮아 훌륭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디모데가 얻은 것이 있습니다. 헬라 철학입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헬라 철학과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대의 신앙이 교육된 훌륭한 청년입니다.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 때 디모데를 만나죠? 

그래서 관계를 맺게 되고 급기야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 ‘멘토’라는 말을 많이 쓰고 ‘롤모델’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이 말은 다른 게 아닙니다. ‘내가 저 사람한테 모든 교육을 받고 싶다.’ 멘토링한다고 합니다. 롤모델은 ‘나도 꼭 저 사람과 같이 되고 싶다.’ 그 사람을 모델로 삼아서 내가 그쪽 길로 가고 싶어 하는 겁니다. 그래서 멘토와 롤모델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같은 성격의 내용을 지닌 사람들은 이러한 관계가 큰 영향을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치 지도자! 가끔 대통령 출마한 자들에게 기자들이 묻습니다. “당신이 존경하는 대통령은 누굽니까?” “당신은 대통령이 되면 누구를 롤모델로 생각해서 정치를 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 겁니다. ‘링컨’이냐, ‘워싱턴’이냐, ‘드골’이냐, ‘이승만’이냐? 누구를 롤모델로? 세상의 훌륭한 대통령 중에 하나를 묻는 겁니다. 기업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의 기업 정신을 이어받느냐?” 교육자도, 예술가도 다 똑같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분야에 롤모델을 정해놓고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그 사람과 같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굉장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롤모델을 정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될 수만 있으면 그의 멘토링을 받아서 영향을 받으라는 겁니다. 여러분! 요즘에 대한민국에서는 미셀콴과 김연아가 환상적 아이스쇼를 보여주었죠? 김연아가 말했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미셀콴을 롤모델로 생각하고 ‘나도 미셀콴과 같이 되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그를 존경했다.” 그랬더니 그렇게 되었잖아요? 그래서 둘이 환상적인 연기를 펼쳐서 모두를 행복하게 한 연기를 우리가 봤잖아요? 

누구든지 같은 분야에서 자기가 아주 존경하고 좋아하는 롤모델이 있습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낳은 사람이 제시 잭슨 목사입니다. 제시 잭슨 목사가 “나는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롤모델로 생각하고 열심히 따라다니고 교육을 받고자 했다.” 그러더니 제시 잭슨 목사가 유명해진 겁니다. 바울은 이 분야에 대해서 거침없이 말을 합니다. “디모데는 내 아들이다. 믿음 안에서 참 아들된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을 하지요? 디모데는 루스드라에서 핍박 받는 바울에 대한 인상이 너무 좋았습니다. 

거기 가서 전도를 하는데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돌멩이로 때려죽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이 죽은 시체를 사람들이 끌고 가서 성 밖에 내치니라.” 그런데 그 현장을 디모데가 어려서 봤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다시 일어나서 절뚝거리면서 전도하는 것을 보고 ‘아! 나도 이 바울 선생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오늘을 가져온 겁니다. 

이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말하는 바울에게 진짜 아들 역할을 다 했습니다. 성경에 나옵니다. 얼마나 아들 역할을 했느냐? 전도 여행 때 이 디모데가 항상 따라다녀 동행을 해 주었습니다. 빌립보에서도, 데살로니가에서도, 베뢰아에서도, 고린도, 에베소, 지금 로마 감옥까지 항상 따라다니면서 함께 일을 했고 바울 사도를 도와드렸고, 자기도 도움을 받고 같이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니까 아들이라고 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습니다. 사실 저도 살아보니까 멀리 떨어져있는 아들은 아들이 아닙니다. 별로 쓸모가 없습니다.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이 떨어져서 사는 아들은 있으나 마나입니다. 

저도 아들이 외국에 사니까 있긴 분명히 있는데, 또 우리 아들은 성격이 얼마나 무심 태평하신지 어떤 때는 제가 계산을 합니다. “일 년에 아버지한테 전화 두 통화만 해주시면 성은이 망극 하오리다.” 항상 내가 못 견디고 안부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아들은 실제적으로 뭐합니까? 제가 감기가 들어서 의사가 “목사님, 수분이 많이 빠졌으니 수액을 좀 맞으세요.” “그러지요.” 그래서 우리 집에 가져와서 집에서 소파에 누워서 수액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 아들이 잠깐 한국에 왔습니다. 왔다가 비행기 시간이 되니까 공항으로 가야 되거든요? “야! 빨리 가라. 비행기 놓치면 어떡하려고 그러니?” “알았습니다.” 그러고 내가 이렇게 수액 맞는 것을 보고 공항으로 갔습니다. 그러면 미국에 갔으면 “아빠! 내가 미국 갈 때 아팠었는데 지금 좀 어때요?” 전화를 해야 할 거 아닙니까? 도무지 일주일 동안 전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안녕히 가셨느냐고 전화하고 나 수액 뺐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우리 아들은 너무 착한데도 보살피는 데는 무심 태평합니다. LA는 지진이 가끔 납니다. 

지진이 난다고 하니까 “야! 지진이 난다고 하니까 빨리 어떻게 해라.” “알아요.” 급한 거도 하나도 없고 천지개벽을 해도 뛰는 거 하나 없고 할아버지 닮은 거 같아요. 아들은 옆에 있어야 아들입니다. 옆에 없는 가족 솔직히 말해서 가족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할 때 인생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게 뭐냐? “시간적으로 지금이다.” 과거는 흘러가 버렸고 미래는 보장이 없고 오늘이라는 이 시간이 가장 중요한 겁니다. 또 인생에 있어서 나에게 누가 제일 중요한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입니다. 

과거에 만나고 있는 사람은 다 지나갔고 미래는 누굴 만날지 모르고 지금입니다. 이게 현명한 생각 같습니다. 바울이 전세방에서 자취할 때 디모데가 밥해 드렸습니다. 아들 역할을 다 했습니다. 바울이 시력이 안 좋아 글을 쓸 때 옆에서 다 대필했습니다. 여러분! 바울서신 가운데 데살로니가전후서, 고린도후서, 골로새서, 빌립보서는 디모데가 쓴 겁니다. 불러주고 디모데가 옆에서 다 기록해 준 겁니다. 이것보다 더 훌륭한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참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실제 아들도 이것보다 못합니다. 로마에서 빌립보까지의 세계지도를 펴놓고 거리를 한번 보십시오. 비행기로 가야 합니다. 자동차로 그 거리 힘든 거리입니다. 걸어서 갔잖아요? 그런데 바울이 지금 디모데를 빌립보에 가라고 하잖아요? 이게 무슨 장난입니까? 그런데 이 믿음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디모데가 갔잖아요? 어떤 아들이 어떤 아버지의 말을 그만큼 듣겠습니까? 바울은 디모데 때문에 외로움도 없고 너무 기쁘고 이런 아들 하나 얻어서 너무 좋은 겁니다. 22절을 우리 다 같이 읽어봅시다. 시작하겠습니다.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그 다음에 또 한사람은 에바브로디도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본래 빌립보 교회 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 목사님이 빌립보 교회를 떠나니까 이 에바브로디도가 교인 가운데 제일 훌륭했습니다. 또 설교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가 그 교회 담임 목사가 된 겁니다. 그런데 로마의 감옥에 계신다는 바울 사도의 소식을 듣고 빌립보 교인들이 헌금을 해서 담임목사인 에바브로디도에게 가서 좀 돌봐드리고 오라고, 그렇게 고생하시는데 어떡하느냐고 해서 헌금을 가지고 와서 보니까 바울이 너무 고생스러운 말년을 보내며 감옥살이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바울 사도를 혼자 두고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겨울을 바울 선생 돌보기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바울을 돌보러 간 에바브로디도가 병이 났습니다. 죽을병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에바브로디도를 돌보는 결과가 나온 겁니다. 아주 고생스러웠습니다. 이러한 상황 변화는 모두의 근심거리가 되었고 특별히 빌립보 교회의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아니, 바울 사도도 그렇게 고생스러우신데 우리 에바브로디도 목사님도 병이 나서 지금 죽을 지도 모른데!” 이런 상황이 된 겁니다. 

그래서 바울도 에바브로디도 자신도 빌립보 교회도 건강을 위해서 기도를 아주 집중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가 병이 나았습니다. 에바브로디도를 다시 빌립보 교회로 보내서 목회하게 하는 과정의 역사를 지금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바울의 심정은 다섯 가지로 오늘 본문에 말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말하고 있느냐 하면 “이는 나의 형제”라고 말했습니다. 디모데는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형제라고 했습니다. 아마 연령 관계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디모데는 어립니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는 바울과 나이가 그렇게 차이가 안 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나이가 나보다 두세 살 아래보고 내 아들 같은 녀석이라고 못하잖아요? 내 형제 같다고 하면 말이 맞잖아요? 그래서 바울 신학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인간관계는 “나의 형제, 자매들이여!” 항상 이런 말이 많이 나타나지요? 이 형제 자매는 아주 좋은 관계인데 이 관계성 때문에 우리는 형제를 위해서 수많은 괴로움과 고난도 참아 넘기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형제의 고난을 덜어주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하고 또 나도 그런 도움을 받기도 하고 그러면서 살아가지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듯이 이 형제자매라는 관계는 아주 훌륭한 관계인데 “나의 형제자매들이여!” 그런데 이 에바브로디도를 나의 형제로 보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이는 나와 함께 수고한 자”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면 “하나의 같은 목적을 위해서 함께 가는 자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다 각기 다른 자기 은사 사역을 하고 있죠? 그런데 목적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여선교회에서 바자회를 해서 냉면을 만들고 빈대떡을 부치든지 남자들이 무엇을 깎아 수공예품을 만들어서 팔든지, 또 음악을 하든지 춤을 추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은사대로 움직이는데 목적은 언제나 하나!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도움이 되게 한다는 이 목적 하나를 가지고 우리가 사역 하는 겁니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는 “나와 목적이 같다. 그래서 같은 목적을 향해서 함께 가고 있는 거다.” 생애 목적이 같으면 가는 길도 언제나 같습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함께 군사된 자”라고 합니다. 군인의 특징은 사사로운 개인 사정은 생각하지 아니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군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또, 군인 사회의 하나의 특별한 법이 있는데 졸병은 희생되어도 대장은 상을 받습니다. 장군의 어깨에 별 하나를 붙여주기 위해서 사병들이 수천 명이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쟁 영웅’하면 졸병들이 수만 명이 죽은 겁니다. 그래서 영웅이 된 겁니다. 우리의 대장은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상은 예수님이 받도록 하시고 나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희생의 길을 간다는 “나와 함께 군사된 자”입니다. 

우리가 찬송가에 부르잖아요? “♬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군사 개념입니다. 좋은 것은 주님께, 대장께 다 돌리고 우리는 전선에 나가서 보병 부대로서 일선에 나가서 쓰러지는 “나와 함께 군사된 자” 에바브로디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나의 쓸 것을 돕는 자입니다. 지금 바울의 필요를 다 채워주었잖아요? 돈이 없는데 돈을 가지고 와서 사식을 넣어주면서 건강을 돌봐주고 바울 주변을 다 ‘나의 쓸 것을 돕는 자’가 되었습니다. 지금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에게 몇 가지 필요가 채워졌습니다. 마음의 필요! 나와서 함께 동거해주었잖아요? 사람에게는 이야기할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또, 필요한 만큼의 돈을 가지고 왔지요? 궁금한 빌립보 소식을 전해주었지요? “이 에바브로디도 때문에 나는 완전히 해결이 되었다. 나의 있을 것을 돕는 자!” 그 다음에 그것을 하기 위해서 에바브로디도는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치한이 하나도 마련되지 않은 무법지대 2천 년 전 사회에서 이 동네에서 저 동네에만 갈려도 강도, 도둑떼가 득실거렸는데 빌립보 지방에서 돈 보따리를 둘러메고 걸어서 로마까지 그 먼 거리를 온다는 것은 목숨을 건 일입니다. 얼마나 충성스러우면 바울에게 목숨을 걸고 동역자로 도울 수 있을까? 그래서 오늘 제목이 “아름다운 동역자”입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와서 바울을 돌보다가 목숨을 걸고 험한 길을 왔기 때문에 병이 났습니다. 죽을병이 든 겁니다. 

정말 하나님의 기적으로 회복이 된 겁니다. “그렇게까지 충성을 한 자기의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나와 함께 군사로서 충성한 사람이다. 나를 위해서 그렇게 일을 했다.” 그래서 지금 바울은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이 아름다운 동역자가 옆에 있어줌으로 인하여 감옥생활이라는 지겹고도 지루한 시간을 매우 기뻐하면서 보낼 수 있는 힘이 주어진 겁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에바브로디도는 나중에 건강해졌습니다. 빌립보로 돌아가서 목회를 훌륭하게 해서 확신하면서 글을 써서 보내고 있는 겁니다. 

오늘 말씀에 나타난 이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서 하나의 같은 목적을 향해서 함께 일하는 동역자의 관계성을 성경이 우리에게 지금 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사람들은 누가, 어떤 자리에 있든, 어디를 가든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 담임 목사를 바울이 하든지 에바브로디도가 하든지 디모데가 하든지 복음만 전해지면 그만이다. 또 헌금도 누가 쓰든 어떻게 썼든 복음 전파만 됐으면 그만이다.” 하나의 목적만 위해서 이 세 사람이 지금 빌립보 교회와 더불어서 함께 손을 잡고 일해 가는 아름다운 동역자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오늘 새벽에 준비하다가 조금 눈물을 흘렸습니다. 엉엉 운 것이 아니고 눈물이 좀 났습니다. 제 동기생 하나를 생각하다가 그렇게 됐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갔는데 3학년 때 학교에서 전체 학생이 다 모여서 회장을 뽑는다고 선거를 했습니다. 제가 회장이 되어 총무 하나 임명을 해서 둘이서 학생회를 위해서 일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회장과 총무가 일을 하다 보니 가까워졌습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 날마다 모여야 하잖아요? 둘이 만나서 자장면 먹으면서 “오늘 일을 어떻게 하자. 우리 학우의 장학금 어떻게 하자.” 오고 가면서 회의 했습니다. 

그런데 둘이 다 야간학교를 다니면서 개척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교회를 가서 부흥회도 해주고 그 친구가 우리 교회 와서 부흥회도 해주고 여름학교 때 오고가며 해주고 그랬습니다. 말할 수 없이 친해지고 정말 아름다운 동역 관계를 이루었는데 학교 졸업을 며칠 안두고 어떤 분이 그 신학교에 나와서 목사가 되려는 분이 아니고 성경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고 다니시던 기업인이 한 분 계셨는데 “이 회장 바쁘지 않으면 내 사무실에 한번 오시오.” “네, 그러지요. 어디 입니까?” 그래서 주소를 주셔서 찾아가 보니까 우리나라에서 제일 땅값이 비싼 명동 복판입니다. 

“어휴! 아니, 이 건물이 집사님 겁니까?” “네, 이리 오세요.” “왜 저를 보자고 하셨습니까?” “졸업하고 뭐할 겁니까?” “뭐하기는요? 목회를 해야지요.” “다른 교회 부목사로 가고 그럴 계획 아닙니까?” “아닙니다. 저는 다른 교회 부목사로 가면 그 교회 담임목사 곤란해집니다. 처음부터 개척교회 할 계획입니다.” “잘 되었소. 그러면 어디든 개척교회를 하면 첫 번째 교회는 내가 건축해 드리겠소.” “예? 우와!” 나는 그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정말이요?” “소문 내지 마십시오.” “알았습니다.” 가슴이 뜨거워 흥분했습니다. 

사실 개척교회 하는 목사는 그런 사람이 예수님 같이 보입니다. 흥분해서 계획을 하는데 미국갈 일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미국 갔다 오시오. 기다리고 있겠소.” “감사합니다.” 갔습니다. 그런데 내가 안 오잖아요? 거기서 목회를 하게 된 겁니다. 그분이 미국에 오셨습니다. “어떻게 할 거요? 나는 약속하고 실없는 소리 안합니다. 나는 말하면 지키는 사람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 이 LA교회가 날마다 부흥하고 확장되어 가니 이 외로운 이민자들을 두고 내가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하시오.” “나 해주시려든 것을 내 친구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 그렇게 하지.” 그래서 서울 복판에 건물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목회를 잘 했습니다. 그래서 너무 좋아서 편지, 전화하면서 연애편지 하듯 서로 편지가 한 박스가 되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편지를 주고받는데 아내들이 질투할 만큼 네가 없으면 내가 못산다는 식으로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된 게 용어가 “여보”, “당신”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17년 만에 미국을 한번 왔습니다. 와서 보니까 교회가 크고 미국 처음 와서 여러 가지를 보고 그러니까 미국 올 마음이 있는 겁니다. 

“이 목사! 미국 올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어? 올 거야?” “오고 싶다.” “만약 당신이 정말 결정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 모든 법적 서류는 내가 해줄 거야. 그런데 실없는 소리 하지 말아야 해. 딱 결정해야 해.” “결정했어. 나 좀 미국으로 데리고 와.” “알았어.” 그래서 내가 뭘 제안했는지 아세요? 놀라실 겁니다. “당신이 이제 이 나이에 미국에 와도 개척교회 못해. 나는 벌써 20년 전에 와서 이렇게 이루었어. 그러므로 당신이 이 교회를 맡아. 알았지?” “그러면 이 목사 어떡해?” “나는 이민 교회 노하우가 생겼어. 

성경책 하나 들고 가면 나는 자신 있어. 그러니까 이 교회를 맡아. 나는 당신에게 물려주고 나는 또 교회를 개척할 거야. 알았지? 그러므로 이번 주일날 교인들에게 아주 멋진 설교를 해! 알았지?” “그래!” 그래서 설교를 했더니 교인들이 다 좋아했습니다. 사실 나와 그 친구 둘이 다니면 사람들이 나보다 그 친구를 더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인격이 따뜻하고 저도 그 사람 만나면 따뜻해서 어쩔 수 없는 걸 어떡합니까? 너무 좋고 그 사람은 싫어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친구를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도와주고 싶고 그렇게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둘이만 약속을 하고 이것은 아내들에게는 이야기를 안 하고 “그러면 그렇게 하겠다. 가서 빨리 준비해.” 그리고 “그래, 그렇게 하자. 너무 고맙다.” “걱정 말고! 어디든 같이 가자.” 이렇게 아름다운 동역 관계를 해서 약속을 하고 한국에 와서 죽었습니다. 바로 죽었습니다. 온지 몇 달 만에 죽었습니다. 그날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게 수요일이었습니다. 설교하러 나가서 설교 못했습니다. 교인들에게 “지난번에 와서 설교했던 내 친구 목사가 오늘 죽었습니다. 

내가 너무 슬퍼서 이렇게 말을 더듬고 있으니까 이해를 해주십시오.” 그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래서 대략 끝내고 “여러분, 기도하시고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내가 이렇게 끝냅니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서랍에 하모니카 꺼내서 그 친구와 마지막 대화를 하던 산타모니카 모래밭 바닷가 달이 환하게 비치는 곳입니다. 한국을 바라보면서 “서편의 달이 호숫가에 질 때에” 그것을 내가 10번도 더 하모니카를 불면서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정말 그렇게 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만 영광이면 됐지 이게 무슨….’ 그래서 오늘 이 아름다운 동역 관계를 설교 준비하다가 그때가 생각이 나니까 눈물이 주르륵 났습니다. 

여러분! 여러분과 우리 모두는 지금 아름다운 동역자로 만난 겁니다. 이렇게 바울과 디모데, 에바브로디도, 빌립보 교회같이 말을 남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야 동역자입니다. 그래야 주님을 위해서 사역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 아름다운 동역자가 되어서 이 관계에서 행복하게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은 저희들의 관계를 아름다운 동역 관계로 인도하여 주셔서 바울, 디모데, 그리고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 교회와 함께 이루었던 역사를 이루어 가심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 마음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복음 역사에 도움 되는 사역자들의 동역 관계가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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