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기쁘시게 하는 삶 (삿 9:1-6)

  • 잡초 잡초
  • 264
  • 0

첨부 1


기쁘시게 하는 삶 (삿 9:1-6)

중세에 어떤 성자 한 분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새들에게 먹이를 주려고 눈이 많이 오고 아주 추운 날 그릇에 곡식을 담아 가지고 뿌려 놓고 새들이 와서 먹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근처에 있으니까 새들이 머뭇거리고 오질 않았습니다. 눈이 많이 와서 먹을 것이 없는데 얼마나 배고프냐 빨리 와서 먹으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그 사람을 경계 하면서 새들이 오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새들이 나를 신뢰하지 못하구나. 내가 너희들을 잡아 가지고 죽여 버릴까 싶어 오지 않는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그 때 그 성자가 아하 내가 이 새들에게 그렇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해도 새들이 오지 않는 것 같이 하나님도 우리에게 좋은 것을 다 준비해 놓고 아무리 오라고 해도 오지 않구나. 그 새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이구나 그렇게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우리가 저 새같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이 다 준비해 놓은 정말로 유익하고 배부를 것으로 다 마련해 놓았지만 의심하고 혹시라도 죽여 버릴까 싶어 오지 못하는 그 새 모양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오늘 새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깨달게 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잘 믿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지금 현재 힘들고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도 내가 해결해 보려고 하나님에게 오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늘 부르십니다. 그래도 내 속에서 해결해 보려고 저녁에 잠 못자고 이리 뒤쩍 저리 뒤쩍하고 또 이렇게 궁리해 보고 저렇게 궁리해 보고 또 이 생각 저 생각하명서 이렇게 하면 될까 저렇게 하면 될까 우리가 그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격을 인정을 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항상 어떤 일에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오늘 사사기 9장의 본문 내용은 여룹바알이라고 하는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의 이야기입니다.
아비멜렉이 사사시대인데 자기가 왕이 되고 싶어서 자기 외가인 세겜을 가서 이야기를 합니다.
70명의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좋냐? 한 사람이 다스리는 것이 좋냐?
즉 한 사람은 자기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70명은 기드온 즉 여룹바알의 전체 아들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왕이 되는 것을 더 좋다고 하는 그런 말을 들으려고 외가쪽에 가서 그들의 세력을 업고 자기가 왕이 되어 보려고 이 아비멜렉이 거기를 찾아 가서 그렇게 선동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의 마음이 아비멜렉에게 넘어 갔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형제라고 손을 내밀면서 우상 섬기는 곳에서 은 70개를 주면서 아비멜렉에게 힘을 보태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비멜렉은 그 돈을 가지고 못된 강패들을 사 가지고 자기의 세력을 구축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오브라에 가서 형제 70명을 한 반석 위에서 다 죽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말째 아들 요담만 남았습니다. 그리고는 아비멜렉이 왕이 되었습니다.
사사시대이고 왕정 시대는 아닌데 아비멜렉이 자기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을 죽이고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기쁨이 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므로 아비멜렉은 결국 이 반역 때문에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아비멜렉은 옆에 있는 사람들과 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지 못했고 많은 아픔을 주었던 사람이 아비멜렉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모든 삶에서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이 되고 또 하나님에게도 기쁨이 되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는 그 사람이 귀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신앙생활을 하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면 그 사람은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에게나 옆에 있는 사람을 기쁘시게 하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야 되는데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1절 2절입니다.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에 가서 그 어미의 형제에게 이르러 그들과 외조부의 온 가족에게 말하여 가로되 청하노니 너희는 세겜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인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의 골육지친임을 생각하라"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될 것인가 

첫 번째는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 보면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룹바알은 사사 기드온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아비멜렉이 자기 어머니 친정인 외가에 가서 거기에 있는 어미의 형제 그리고 외조부의 온 가족을 통해 힘을 얻어서 자기가 무엇인가 해 보려고 가서 선동을 합니다.

70명이 다스리는 것이 나으냐 아니면 혼자 다스리는 것이 나으냐?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는 너희의 골육지친이다. 너희의 형제라는 것을 생각하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 여기에 아비멜렉은 욕심을 따라서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억지로 하고 있는 그러한 모습입니다. 아비멜렉은 자기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잘 되는 대로 가는 것 같지만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이것 때문에 나중에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아비멜렉이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억지로 가서 외가 집 사람들을 이용해서 그들을 세력을 등에 업고 왕이 되어 보려고 선동을 하여
하나님 앞에 기븜이 되지 못하였던 것처럼 우리는 자기가 무엇이 되려고 욕심을 하게 되면 틀림없이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신대로 따라가는 것이 정도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무엇인가 물 흐르듯이 가야 되는데 물을 막거나 돌리거나 하면은 분명히 나중에 문제가 생깁니다.
바로 욕심과 하나님의 인도는 상충되어서 절대로 합해지지 않습니다.
아비멜렉은 욕심 따라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은 안되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해야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기억을 해야 됩니다.

이사야 58장 11절에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하나님이 항상 인도하신다구요. 하나님이 인도 하시는 그곳에는 만족이 있고 견고함이 있고 물댄 동산 같고 끊어지지 않는 샘같은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내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욕심대로 가면 잘못가게 되는 것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하나님이 만족하시고 견고케 하시고 물댄 동산 같게 인도하심이 내 마음에 안 들어도 따라가는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의에 있는 사람을 기쁘시게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이라고 하는 사람은 욕심을 다 버리고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고 해도 다윗은 자기 욕심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갑니다. 다윗은 사울이 죽이려고 10년이 넘도록 쫓아 다녀도 다윗은 사울을 처리해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 같으면 어떻하겠습니까?
나를 가장 성가시게 하든지 나를 어렵게 하며 늘 따라 다니면 그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는 사람이 없어지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만약 그 사람이 어디론가 가면 하나님이 역사 하셨다고 할 것입니다.

그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을 붙여 놓은 것도 저런 사람을 붙여 놓은 것도 다 하나님의 인도입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붙여 놓은 사람은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는 가운데 내가 보기에는 나빠도 하나님이 보기에는 좋으니까 그 사람을 붙여 놓은 거예요.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해도 저런 일을 당해도 이런 곳을 가도 저런 곳을 가도 이런 문제를 만나고 저런 문제를 만나고 골치 아픈 사람을 만나고 편한 사람을 만나도 그 모든 것은 다 내가 가고 거쳐야 될 과정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가야 할 과정 이예요. 
우리가 욕심 버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가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전부다 욕심을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것을 깨닫는 그 사람이 복된 자예요.

우리 다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또 주의에 옆에 있는 사람들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될 것인가 

3절 4절입니다.
"그 어미의 형제들이 그를 위하여 이 모든 말을 온 세겜 사람들의 귀에 고하매 그들의 마음이 아비멜렉에게로 기울어서 말하기를 그는 우리 형제라 하고 바알브릿 묘에서 은 칠십 개를 내어 그에게 주매 아비멜렉이 그것으로 방탕하고 경박한 유를 사서 자기를 좇게 하고"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될 것인가 

두 번째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따라서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절에 아비멜렉이 외가에 있는 여러 친척들에게 가서 자기를 왕 세워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려고 선동하면서 내가 당신의 골육지친이다 라고 하는 말을 했을 때에, 3절 4절에는 그 어미의 형제들이라고 가까움을 표시하면서 말했습니다.

어미의 형제로 이모도 있을 것이고 외삼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세겜 사람들에게로 가서 이야기를 하자 세겜 사람들의 마음이 아비멜렉에게로 기울렀습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우리의 형제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바알브릿 묘에서 우상섬기는 은 70개를 내어다 주면서 이것을 쓰라고 이야기를 하고 주었더니 그것을 가지고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을 샀습니다. 즉 깡패들을 샀다는 말입니다.

강패들을 사서 자기를 좇게 하고 자기 뒤에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세겜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쪽으로 가야 되는데 자기의 생각 속에 빠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아비멜렉이 왕이 되어서는 안되는데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생각하며 행동을 해야 됩니다. 즉 하나님에게 묻고 하나님이 원하는 쪽으로 가야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겜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 속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바로 여기에 외가에 있는 이 사람들은 아비멜렉의 편을 들어주는 이것 때문에 나중에 또 비참하게 됩니다. 

여기에 있는 세겜 사람들의 이 아비멜렉의 외가 사람들 또 다른 힘을 합한 세겜 사람들 나중에 아비멜렉과 나중에 완전히 등지게 됩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기 생각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따라 되는데 자기 생각 속에 결정을 하고 하나님에게 묻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따르지 못하고 자기들이 선택을 했습니다.

그리고 은 70개를 주어서 아비멜렉에게 힘을 보태니까 강패들을 동원을 했습니다.
자기들은 잘 될 줄 알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나중에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 사이에 큰 갈등이 생기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따라서 해야 되는데 내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내 생각대로 하면은 나중에 기쁨이 오는게 아니라 큰 슬픔이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기억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따라서 우리가 해야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기쁨이 되고 하나님에게도 기쁨이 될 줄 믿습니다.

역대하 20장 6절에 
"가로되 우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막을 사람이 없나이다"

여호사밧이 이렇게 하나님이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능히 막을 사람이 없으신 분이라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고백하며 따르고 있는 그런 모습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권세와 능력이 하나님에게 있다고 하나님의 주권을 따르다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에훗이라고 하는 사람은 왼손만 있는 사사입니다.
그래서 모압왕 에글론이 쳐 들어와서 힘들게 할 때 이 에훗이 자기는 오른손이 없는 왼손 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 안으로 들어가서 모압왕 에글론을 죽이고 사사로서의 일을 감당을 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에훗이지만 자기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주권을 따라서 사사로서의 일을 감당을 해서 옆에 사람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사람이 에훗이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 속에서 내 생각을 다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따라 가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사사기 9장 5절 6절입니다.
"오브라에 있는 그 아비의 집으로 가서 여룹바알의 아들 곧 자기 형제 칠십 인을 한 반석 위에서 죽였으되 오직 여룹바알의 말째 아들 요담은 스스로 숨었으므로 남으니라 세겜 모든 사람과 밀로 모든 족속이 모여 가서 세겜에 있는 기둥 상수리나무 아래서 아비멜렉으로 왕을 삼으니라"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될 것인가 

세 번째는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서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아버지 여룹바알인 기드온이 죽으니까 자기가 왕이 되어 보려고 그 때는 왕정 시대도 아닌대 자기가 왕이 되어 보려고 오브라에 있는 자기 아버지에 집으로 가서 거기에 있는 여룹바알의 아들 형제 70명이 있었습니다.

8장 30절에 보면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인이었고"라고 그렇게 말을 합니다.

이렇게 많은 아들이 있었는데 아비멜렉은 외가집 사람들에게서 은 70개를 받아서 강패를 샀어 5절에 보면 한 반석에서 70명을 다 죽였습니다. 자기가 왕이 되려고 형제 70명을 다 죽였습니다.

8장 32절에 기드온이 나이가 많아 죽자 
9장 5절에 아비멜렉은 70명의 자기 형제를 다 죽였어요.
그리고 자기가 무엇이 되려고 했어요.
자기가 무엇인가 되려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나중에 이 피 값을 이 아비멜렉이 다 받게 됩니다.
거기에 관계된 여러 사람들이 얼마나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지 못한 이 아비멜렉이듯이  우리는 이런 사람이 절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가 아버지가 죽었으니까 그 다음에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있어야 됩니다.
사사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가 사사이면 아들이 사사가 되지 못합니다.
사사는 뒤로 승계가 되지 못합니다.
어느 기간이 끝나고 또 그 일이 끝나면 사사는 사사가 아닙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사사로서의 일을 다 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면은 아비멜렉은 사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는 다른 형제들을 다 죽이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렇다고 사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가야 되는데 하나님의 섭리를 못 따라 가니까 이런 큰 아픔의 일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일 막내 요담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요담이 저 높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세겜 사람들에게 그리심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나무들이 모여서 왕을 뽑는데 먼저 감람나무에게 당신이 왕이 되시오 그러니까 감람나무는 나는 기름을 짜야 되니까 나는 못합니다.

그 다음 포도나무에게 당신이 왕이 되시오 그러니까 포도나무는 나는 포도주를 만드니까 나는 못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다음에 무화과 나무에게 당신이 왕이 되라고 이야기를 하였더니 무화과 나무는 나는 정말로 단 실과를 내야 하므로 나는 왕이 되지 못합니다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가시나무에게 말을 했습니다.

가시나무는 그러면은 내 그늘에 와서 피하라 그랬습니다.
요담이 이비멜렉이 왕이 될 수 있는 것을 비유로 비꼬고 있는 것입니다.
될 사람은 못한다고 그러지만 되지 못할 자인 아비멜렉을 가시나무로 비유하면서 그럴려면 내 그늘에 와서 피하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아비멜렉이 엉터리라고 비유를 한 사람이 요담입니다.
세겜사람들에게 너희들 때문에 아비멜렉이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방법을 버려야 됩니다.
우리의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됩니다.
이것이 곧 무엇이냐 믿음입니다.

믿음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허락받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되게 해 주는 것을 내가 갖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섭리를 따라 간다는 것은 하나님이 지금 하시고 계시는 것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억지로 물을 거꾸로 위로 올려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 내 방법을 좇아가면 큰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기억을 해야 됩니다.

시편 127편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헛사로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의 섭리가 없으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집을 세우지 아니하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
하나님이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도 허사로다.
즉 내가 아무리 좋은 방법을 써도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내 방법 버리고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야다라고 하는 대제사장은 아달랴가 부정한 방법으로 자기의 후손들을 죽이고 왕이 되었는데 거기 아들들 가운데 하나인 요아스를 숨겨서 자기 아내 여호세바와 같이 성전에서 6년 동안 숨겨서 키웠습니다.

그리고는 7년째가 될 때 여러 다른 레위인과 제사장들에게 왕자를 보여 주면서 이 진짜 왕자가 지금 살아 있으니 아달랴 왕을 물려내고 진짜 왕을 세워서 온전히 만들어야 된다고 해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다 합해 가지고 반역해서 아달랴를 뒤집어 엎어 요아스를 왕으로 세운 사람이 여호야다입니다.

여호야다는 자기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않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6년이나 성전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다가 들키면 여호야다와 여호세바는 다 죽게 됩니다.

그런 위험 속에서도 자기가 어떻게 하려고 방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 때까지 기다리다가 7년째 돼던 해 성공을 해서 요아스가 왕이 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기쁘게 했던 사람이 여호야다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 속에서 다른 사람을 여호야다와 같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든가 다른 사람을 성가시게 하면 안 됩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됩니다.
그럴려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될 것인가

첫 번째는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고
두 번째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따르고
세 번째는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서 

어디서 무엇을 하거나 어디를 가거나 어떻게 되어도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