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삼상 25:2-3, 히 3:7-9)

  • 잡초 잡초
  • 1707
  • 0

첨부 1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삼상 25:2-3, 히 3:7-9)


“오늘 나는 나무판자처럼 온몸이 딱딱해진 여성을 보았다”. 프랑스인 의사인 기 파탱이  1962년에 발견한 진행성골화성섬유이형성증 환자에 대한 최초의 임상적 설명입니다. 몸이 점점 굳어져서 나무 같이 된다는 병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무서운 병도 다 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마음이 굳어지는 것입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석회화되는 것이야말로 더 무섭고 나쁜 것입니다. 
  
마음이란 인간 사고와 행동의 중심적 요소인 속사람을 일컫습니다. 인간의 지성, 감성과 의지의 좌소(坐所)가 마음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이란 참 복잡하고 온갖 인간 구조가 어우러져 있는 곳입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늠하기도 힘들고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완고하게 하지 말라”는 말은 헬라어로 ‘메 스클레뤼네테’라는 말입니다. ‘메’라는 단어는 부정어입니다. ‘스클레뤼네테’라는 말은 ‘말라서 굳은’, ‘딱딱한’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역사, 사랑, 섭리에 대하여 거부하는 성향으로 굳어져 버린 인간 심성을 의미합니다. 이전 성경에는 “강퍅케 하지 말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완고함은 성공에의 적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완고하면 절대로 사업이나 인간관계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온유함은 완고함을 이깁니다. 유동성은 무정함을 이깁니다. 영성가들은 ‘하나님이 인간과 사귀는 곳이 마음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좋은 사귐이 있어야 하는데 마음으로 가능합니다. 마음이 완고하면 하나님과 사귐이 끊어집니다. 
  
많은 사람들은 의지가 있는 것과 완고한 것을 혼동합니다. 의지가 있는 것은 배려하고, 양보하고, 후퇴하고, 져주지만 완고함은 고집만 남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의지가 있어야지 고집을 부리면 안 됩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의지보다 고집이 앞서서 결국 추한 모습으로 변하고 맙니다. 
  
도마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 도마는 마음이 완고한 사람입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 고집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 봤다고 하면 그런 줄로 알아야지 그는 끝까지 “나는 보지 않고는 못 믿겠다”고 고집하였습니다. 도마는 의심 이전에 완고함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거절한 것입니다. 
  
존 템플턴의 ‘열정’에는 “아집을 신념과 혼동하지 마세요. 신념은 문제를 만날수록 그 안에서 지도자를 얻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도록 합니다. 반면, 아집은 완고하게 자기 뜻만 고집하게 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집은 마음을 완고하게 하고 결국 자기와 남을 파멸시킵니다. 
  
요한복음 12:40에는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불신하는 유대인에게 완고하면 믿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돌이키지 못하고 고침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읽지는 않았지만 3:13, 15, 4:7에 반복해서 “네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완고한 사람이 어떻게 되는가를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마음이 완고하면 하나님을 거역합니다. 

히브리서 3:8에는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완고하게 되니 하나님을 시험하고 거역하였습니다.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이란 말은 선지자, 천사, 모세보다 더 높으신 하나님 말씀을 듣거든 이란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과 즉각적인 행동을 요청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고집부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완고하게 굴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면 수용하고 아멘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하기 직전에 긴 설교를 합니다. 스데반이 예수님께 대한 설교를 할 때에 유대인들은 귀를 막고, 이를 갈았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마음의 완고함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고 마음에 와 닿으면 회개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고 귀를 막아 듣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를 갈면서 돌로 쳤습니다. 마음이 완고하니 말씀을 듣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의지로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7:11에는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라고 하비다. 베뢰아 사람들은 말씀에 대한 넓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너그럽다는 말은 이전 성경에는 “신사적이어서”라는 말로 번역하였습니다. 새 번역에는 “마음이 넓어”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에 대하여 완고하지 않고 마음 굳어있지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안 듣고 부모님을 공경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들으면 그것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완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들으면 하나님을 거역하게 되는 법입니다. 말씀을 안 듣는 것이 말씀하신 분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때의 하나님께 대한 반역 사건을 말합니다. 그들이 출애굽할 때에 애급의 병사가 따라오면 죽이려 합니다. 홍해 앞에서 그들은 대항합니다. “우리에게 매장지가 없어서 여기에서 죽게 하느냐?”.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넜습니다. 므리바라는 곳에 와서 마실 물이 없다고 물 투정을 하였습니다. 신 광야에서 먹을 양식과 고기가 없다고 투정하였습니다. 르비딤에 와서 다시 마실 물을 달라고 합니다. 고라라는 사람은 백성들을 선동하여 “다시 애급으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광야에서 모세가 보이지 않자 금송아지를 만들어 자신들을 이끌 신이라고 하였습니다. 
  
거역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불순종의 가장 확실한 징후는 바로 불평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불평은 끝이 없었습니다. 웬 불평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불평은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사사 사무엘이 죽은 후에 마온이란 동네에 나발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아비가일이었습니다. 나발은 부자였지만 마음이 완고하고 행실이 악했습니다. 아비가일은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웠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길 때에 다윗이 자신의 부하 10명을 보내어 물질적인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나발은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라고 아예 다윗의 부하들을 멸시하였고 떡과 물과 양고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그의 아내 아비가일이 이 말을 듣고 다윗에게 남편의 잘못을 용서를 구했습니다. 아비가일을 봐서 다윗은 나발을 죽이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아비가일은 남편을 위하여 잔치를 배설하였고 나발이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고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다음 날 포도주가 깬 다음 아비가일이 그 동안의 일을 얘기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발은 놀랐습니다. 

사무엘상 25:37에는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 같이 되었더라”라고 합니다. 나발은 몸이 돌 같이 되어 열흘 후에 죽었습니다. 
  
나발이 왜 이렇게 인색하고 행실이 악하고 다윗에게 잘못을 하였습니까? 결국 이 일로 죽었습니까? 성경은 그 이유를 “완고하고”라고 합니다. 나발의 완고함은 다윗이나, 아비가일이나, 국가에 상처를 주고 손해를 끼쳤습니다. 자기와 남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완고함은 스스로 파멸을 가져옵니다. 몸과 마음이 돌같이 됩니다. 인간관계를 파괴합니다. 남에게 피해를 줍니다. 완고함이란 잃는 것밖에 없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똑같이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 일로 가인은 동생 아벨을 들에서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였을 때에 가인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반항하고 거역하는 것은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게 되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집니다. 눈에 뵈는 게 없다는 것은 마음이 완고하게 된 상태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는 두 아들의 비유가 있습니다. 어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밭에 나가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큰 아들은 “나가서 일하겠습니다”라고 했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둘째 아들은 “일하러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지만 뉘우치고 가서 일을 했습니다. 첫째 아들은 입으로는 마음이 부드러워 순종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첫째 아들이 아버지의 말을 거역한 까닭은 마음이 완고하여졌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완고했던 헤롯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2살 이하의 남자아이들을 다 죽였습니다. 마음이 완고한 사람이었고 마음을 상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이 완고한 사람은 언제나 그 마음이 죄악의 상태입니다. 

  
둘째, 마음이 완고하면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히브리서 3:9에는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고 합니다. 마음이 완고해지니 하나님을 시험하고 증험합니다. 마음이 완고해지니 겁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감히 하나님을 시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라고 합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였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텐데 오히려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시험하여 증험하고”는 헬라어로는 ‘에페이라신 엔 도키마시아’입니다. ‘에페이라신’은 ‘시험하였다’는 뜻이고, ‘도키마시아’는 ‘입증하는’(proving)의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입증하기 위하여 시험하였다’(tested in proving)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40일간 금식을 하시고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라고 물리치십니다. 다시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세 번째 다시 마귀는 예수님을 데리고 가서 동네를 다 보여주면서 절하면 천하만국을 다 주리라고 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마귀는 십자가를 지지 않아도 온 세상을 주겠노라고 예수님께 제안했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마음이 완고하여진 타락한 천사입니다. 마음이 완고해지면 시험합니다. 마귀에게 사로잡히면 시험합니다. 
  
애급 왕 바로는 마음이 완고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였다기 보다 조롱하였습니다. 열 번씩이나 자신의 말을 번복하고 결국 열 가지 재앙을 당합니다. 자신의 병사들이 다 죽습니다. 결국 완전히 파멸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완고한 마음은 반드시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사탄의 유혹은 첫째는 하나님을 의심하게 하는 유혹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시험하게 하는 유혹입니다. 셋째는 사탄을 믿게 만드는 유혹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완고해지면 하나님을 시험하고 다른 존재를 믿게 됩니다. 사탄의 유혹은 언제나 이런 수법으로 사람에게 다가오며 마음을 완고하게 만드는 법입니다. 
  
예수님의 시험은 예수님에게서 핵심정체를 앗아가려는 유혹입니다. 예수님 자신을 다른 존재로 믿으라는 유혹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란 말을 생각해 보세요. 마귀는 이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줄을 뻔히 알면서 꼬입니다. 이것이 시험하는 것이고 이것이 가장 나쁜 마음입니다. 
  
시험, 유혹, 연단, 테스트와 같은 단어들이 성경에는 200번 이상 등장합니다. 사람이 뱀에게 꼬임을 받고 하나님께 죄를 범한 다음에는 시험이나 유혹은 인간의 일상이 되었고 시험하는 자가 있는 동안은 시험에서 면제받으며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7년 동안 미디안에게 지배를 받고 다시 하나님은 백성들을 해방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해방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셨는데 기드온은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마당에 양털을 두고 밤새 이슬이 양털에만 내리게 해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슬이 양털에만 내리게 하셨습니다. 양털을 짜니 물이 한 그릇이 나오게 했습니다. 기드온은 다시 하나님께 양털만 마르고 마당이 젓게 해 달라고 합니다. 

사사기 6:39에는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시험을 허용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를 쓰시기 위해 용납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하나님을 시험한 벌을 톡톡히 받았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사의 가정 중 가장 혼란한 가정이 되었습니다. 아들이 70명이었는데 큰 아들 아비멜렉이 동생들을 다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고 아버지를 반역하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하나님을 시험한 결과가 이렇습니다. 
  
바로의 파멸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홍해에 그 많은 병사가 다 수장되었습니까? 왜 빠져 죽었습니까? 히브리서 11:29에는 그 해답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급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스스로 죽는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물이 없다고 투정합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트집입니다. 지쳐서 돌아가자고 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광야에서 불 뱀에게 물렸습니다. 고린도전서 10:9에는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고 합니다. 마음이 완고하여 하나님을 시험한 결과는 불 뱀에게 물려 죽는 것이었습니다. 
  
동물조련사들은 관광객에게 흥미를 북돋우기 위하여 악어의 입에 머리를 넣습니다. 팔 을 넣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태국의 조련사는 팔을 물렸습니다. 호랑이 우리에 손을 넣고 호랑이를 약 올리던 사람이 물린 적도 있습니다. 어떤 동영상을 보니 어떤 사람이 도마뱀을  약 올리다가 코를 물렸습니다. 동물의 본성, 동물의 야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이런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입니다. 
  
99세가 된 아브라함에게 천사가 와서 아들이 있으리라고 합니다. 사라가 장막 문에서 엿듣고 웃었습니다. 순간적이지만 하나님을 의심하였습니다. 광야에서 물을 얻으리라고 하였지만 백성들은 사막에서 물을 주리라고 하신 하나님을 의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늙어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사라이지만 아기를 낳게 하십니다. 물이 없는 사막이지만 사막에서 물을 내십니다. 악어에게 물리고, 호랑이에게 물리는 이런 정도는 오히려 낫습니다. 불 뱀에게 물리면 소망이 끊어집니다. 야고보서 1:13은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 하시느니라”고 합니다. 

  
결론 

마음이 완고하여 하나님을 거역하고 시험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벤허’의 작가 류 월리스는 하나님이 없다는 글을 쓰려고 자료를 모았다가 예수님의 이야기인 ‘벤허’를 썼습니다. 일본의 어느 불교학자는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다음 “나는 800만 신에서 한 신으로 옮겨왔다”라고 하였습니다. 완고한 마음이 부드러워지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시험하였지만 하나님을 인정하고 돌아옵니다. 
  
사람들이 피조물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이 하나님을 믿지 않기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완고하면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합니다. 마음이 완고하면 하나님과 마음이 맺혀 풀리지 않습니다.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완고한 사람은 사람에게도 완고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시험하듯이 사람의 사랑과 호의를 무시하고 거역합니다. 사람을 의심하고 시험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굳어지면 몸도 굳어집니다. 완고한 마음을 말씀으로 변화하여 하나님과 사람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