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롬 8:28-39)

  • 잡초 잡초
  • 794
  • 0

첨부 1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롬 8:28-39)


I. 도입

20살 갓 넘어선 한 청년이 어느날 부모님에게 말합니다. 
“아버지, 저는 제 인생을 찾아 떠나려고 합니다.”
아버지가 묻습니다. 
“네 인생이란게 도대체 뭐냐?”
“저는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돈도 많이 벌고 싶습니다. 
멋진 여자 만나 세계를 여행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들의 손을 꽉 잡았습니다. 
“아버지, 왜 이러세요. 막지 마세요.”
아버지 왈 - 
“누가 널 막는다고 했냐? 어서 앞장 서라. 같이 떠나자. 
그런 세상 구경이나 한번 하고 죽자.”

여러분, 이 세상엔 언제나 힘든 일이 있고 문제가 있습니다. 마냥 행복하고 돈 많고 멋진 여자랑 맘껏 세계 여행이나 다니며 살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은 고난 중에도 행복이 있고 고통 속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만사가 힘들고 어렵게 보이지만 그중에도 보람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 내가 당하는 모든 일들에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있고 뜻이 있습니다. 

II. 하나님의 선한 계획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통 중에도 하나님 안에서 내 인생의 선이 이루어 진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 하나님이 내 안에서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선이 무엇일까요? 고난이 떠나고 내 환경이 아름답게 펼쳐질 것을 믿는 것도 귀한 믿음이지요. 그리고 내 안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물질적인 욕구와 내 소원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도 좋은 믿음이지요. 그러나 그 다음절에 이어지는 29절에 보면 그 선을 한마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 받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평안이든 고통이든 내가 만단 모든 일들을 통하여 내 인격이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의 비전이 내 안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입니다. 내가 이 땅에 살아갈 때에 내 인격이 내 언어가 내 삶이 내 태도가 예수님을 닮을 수 있다고 하는 것 그것이 얼마나 근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 조차 전혀 없던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 안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비전이 이루어진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문제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분명한데 현실은 때로 위기가 있고 실패가 있고 문제가 있더란 말입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로마서 8장이 말하는 교훈이 있습니다. 문제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 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내 운명이겠거니 하고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육신이 절망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맡기고 살면 안됩니다. 고난의 현실에 빠져서 하나님의 승리를 보지 못하면 아니 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하나님이 우리편에 계시면 아니 내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기만 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공개하면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5가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이 5가지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을 빌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승리의 삶의 내용을 우리에게 펼쳐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우리의 삶의 장관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III. 첫 번째 질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한 꼬마가 주일학교에서 돌아왔습니다. 엄마가 오늘은 뭘 배웠는지 물었습니다. “오늘은 모세가 적들을 어떻게 이겼는지 배웠어요. 홍해에 도착하자, 모세는 다리를 건설해서 사람들을 모두 건너게 했대요.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건너자 그는 무전기로 본부에 연락을 해서 폭격기 지원 요청을 했죠. 폭격기는 폭탄을 떨어뜨려서 다리를 부쉈고, 애굽 군인들은 모두 바다에 빠져 죽었대요.” 
“아가, 선생님이 정말 그렇게 얘기하셨니?”
“사실은 아니에요. 하지만 선생님이 얘기하신 대로 말하면 엄마는 못 믿을 걸요?”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은 천지의 창조주이십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아버지이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다가 마지막 지상의 명령을 남겨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분이 우리 편인데 누가 우리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혼자의 몸으로 세상을 뒤흔들던 로마 천주교를 맞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습니다. 때로 좌절했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무서운 절망감에 신음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그의 친구요 후배였던 멜랑키톤이 루터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대형 우리가 발견한 복음은 분명한 하나님의 진리요 우리가 믿는 것이 분명히 진리라고 한다면 진리는 승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할 것이요.” 편지가 마쳐질 무렵에는 오늘 본문을 기록하고 마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넉넉히 이기느니라” 할렐루야!

이 세상의 문제 때문에 염려하지 마십시오. 세상은 지나갑니다. 한순간의 실패 때문에 영원히 실패한 사람처럼 포기하거나 절망하거나 낙망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다고 한다면 반드시 우리는 이기게 됩니다. 

IV. 두 번째 질문은 32절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나아가서 독생자를 보내서 우리를 살려주십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독생자하고 맞바꿀만큼 내가 소중한 존재라고 성경은 주장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병들어 신음할 때에 “내가 대신 아파 줄 수만 있다면” 이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식이 죽어가고 있을 때에 “내가 대신 죽어 줄 수만 있다고 하면” 이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다 할지라도 “내 자식들을 죽여서 까지라도 나는 그 일을 이루고 싶다” 이런 부모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죽게 만들고 우리를 살려내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외아들의 신음소리를 외면하시고 그분은 우리를 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셨는데 무엇에 인색하겠습니까? 우리가 필요하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왜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분은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아까워 당신을 돕지 않겠습니까?
․믿으세요. 믿으세요.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세요.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믿으세요.
․당신에게 필요하고 유익한 모든 것을 주십니다. 

V. 세 번째 질문은 33절입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지은 죄로 인하여 괴로우십니까? 실수로 인하여 마음이 아프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소중한 내 아들이라고 품에 안아주셨습니다. 그런데 감히 누가 송사하리요.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송사를 받지 않습니다. 죄인들은 고발을 당할 수 있습니다. 죄가 있다면 사람들이 우리를 고발할 것입니다. 죄로 인해 죄의 통제를 받게 되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겠지요. 죄를 지으면 죄의 법칙에 따라야 됩니다. 포로들은 포로수용소에서 살아야 하고 죄인들은 감옥에서 살아야 합니다. 포로수용소에 살면 그 법규를 따라야 합니다. 포로들은 늦게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줄을 서서 먹어야 됩니다. 입고 싶은 옷 입을 수가 없습니다. 가고 싶은 곳 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그 법규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다면 죄의 법칙 아래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지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죄의 노예였습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고발을 당해서 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너는 이제 죽었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는데 그 독생자를 보내 피흘려 죽게 만들고 보혈의 능력으로 나를 의롭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누가 송사하리요. 이제 죄는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분명히 죄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망의 능력이 있습니다. 나를 고발할 능력이 있습니다. 나를 죽이고 괴롭힐 능력이 있습니다. 밤잠을 자기 못하게 합니다. 우울증에 시달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게 만듭니다. 시기하고 질투하도록 만듭니다. 용서하지 못하도록 내 가슴속에 한을 품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게 죄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어느날 예수님께서 오셔서 내가 져야될 인생의 짊을 대신 져 주셨습니다. 내가 당해야 될 모든 고통으로부터 모든 죄악의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친히 담당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직도 죄를 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롭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품에 안아 주셨습니다. 누가 송사하리요. 죄는 여러분에게 이미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탄은 여러분으로부터 모든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려 주실 것입니다. 주의 능력만 여러분과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보혈의 능력만 여러분과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이 여러분을 지켜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VI. 네 번째 질문이 34절입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그렇습니다. 마귀는 우리 안에 있는 죄를 보고 송사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정죄합니다. 우리를 심판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죄 선언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우리는 노예생활에서 해방을 받았습니다. 모든 빚을 탕감 받았습니다. 

33-34절에서는 3가지 근거를 대고 있습니다. 

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죽어야 될 자리에서 예수님이 대신 죽어주셨습니다. 나를 죽일 수가 없어 예수님은 대신 죽으셨습니다. 내 살을 찟을 수가 없어 예수님은 채찍에 맞아 살이 찢겨지셨습니다. 내 피를 흘리게 할 수 없어 주님께서 대신 피를 흘리셨습니다. 나를 음부에 보낼 수가 없어 예수님 대신 음부에서 고난 당하셨습니다. 주님이 다 감당을 하셨는데 누가 송사하리요. 누가 정죄하리요. 

② 예수님께서 살아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죽으셨을 뿐만 아니고 그는 다시 살아나셨느니라.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 된 것입니다. 그분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 된 것입니다. 그분의 영원한 낙원이 우리의 낙원이 된 것입니다. 

③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역사를 운행하고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자이시니라. 누가 정죄하리요. 할렐루야!

VII. 마지막 다섯 번째 질문 35절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핍박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배고픔 기근도 끊을 수 없습니다. 위험한 일을 당해도 끊을 수 없습니다. 칼과 총과 원자폭탄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끊으리요.

여기 “그리스도의 사랑”이란 말이 나오고 39절에서 보면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이 사랑에서 아무도 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이 사랑을 아무도 끊을 자가 없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못하도록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얼마나 방해를 하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탄생하지 못하도록 사탄은 방해를 했습니다. 그가 태어날 모든 여관을 채워버리고 말았습니다. 헤롯을 동원하여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베드로를 동원해서 십자가를 가로막고 나섰습니다. 가롯 유다를 동원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 주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에 영원한 승리는 자기 것이라고 쾌재를 불렀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탄의 권세를 부셔뜨려 주셨습니다. 그분은 무덤에 갇혀있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승천하셨습니다. 무덤이 그를 가두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영원히 승리한 분이십니다.

이 다섯 가지 질문다음에 한 가지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37절) 여기서는 이기고 저기서는 패배하고가 아닙니다. 이 모든 일에 승리한다. 할렐루야. 

어떨 때는 패배하고 어떨 때는 승리한다가 아닙니다. 이 모든 일에 넉넉히 이기느니라. 때로는 어려운 상황에 부딪힐 수 있고 인생의 짐이 무거워서 신음할 때가 있고 가슴에 찢겨진 상처를 끌어안고 몸부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병고에 시달릴 때가 있는가 하면 참으로 처절한 상황속에 짓밟힐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도 우리를 지옥으로 몰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영원한 멸망으로 몰아갈 수가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할렐루야!

VIII. 내 잔이 넘치나이다

정현이씨가 쓴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책에 보면 맹의순이라는 한 신학도의 얘기가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6.25사변 피난 길에서 맹의순은 빨갱이로 오해를 받고 체포당해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다른 것도 아니고 빨갱이로 오해를 받아서 감옥에 갇히다니 하나님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포로수용소에 들어가 보니 그가 섬겨야 될 뭇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광야교회를 세우게 되었고 그가 섬겨야 될 모든 사람들을 섬겨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부족할 줄 알고 복음을 전해야 될 사람들을 수없이 내게 보내주시는 군요. 섬겨야 될 사람이 이렇게도 많이 보내주시다니요. 하나님 앞에 눈물로 감사할 수 밖에요. 그러던 어느날 중공군들이 포로수용소에 몰려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신학도 때에 중국 땅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기 원했는데 이방 땅에 내가 들어가지 못할 줄 알고 하나님께서 선교의 문을 여시사 100명 200명 1,000명 10,000명도 아니고 수없는 사람들을 이렇게 많이 보내주시다니 선교의 문을 여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들을 섬겨가기 시작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고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한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성경의 능력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세월가는 줄도 몰랐고 시간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새벽 2시, 3시까지 중공군들을 끌어안고 기도하고 그들을 씻어주고 닦아주고 약을 먹이기가 일쑤였습니다.

어느날 시편 23편을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읽어주다 말고 하늘을 향하여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쓰러져 죽었습니다. 맹의순 선생의 장례가 집례되고 있는데 편지 한 장이 도착되었습니다. 포로수용소에서 중공군들이 보내온 편지였습니다. 그 편지의 일부분을 읽어드립니다.

맹의순 선생 영전에 드립니다. 평화의 왕자, 화평의 사도, 인애의 왕, 우리에게 사랑의 주였던 맹의순 선생이 정말 가셨습니까? 우리 곁을 정말 떠나신 것입니까? 우리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우리처럼 포로의 옷을 입은 그가 미국 군인 의사들을 도우며 우리 병동을 찾아오는 초기에 우리는 그를 경멸했고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얼굴은 늘 온화했고 우리를 돕는 당신의 행동과 희생과 헌신은 한결같았습니다. 우리는 대개 그 무엇인가에 대해서 몹시 화가 나 있던 사람들이었죠. 적이 따로 없었습니다. 전쟁이란 것에 대하여 화가 났고, 우리를 전쟁에 보낸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들을 죽도록 원망했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맹선생은 십자가의 도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에게 글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일일이 글씨를 가르쳐가며 찬미가를 불러 주셨고 나무십자가를 안고 다니며 그 뜻을 성심껏 설명해 주셨지요. 선생은 새벽 2시 3시 늘 병동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초저녁에 치료와 간병을 맡았던 사람들이 모두 물러가고 나서 중환자들이 더욱 심하고 무거운 고통에 짖눌리는 그 시간, 선생은 고통을 다스리는 천사로 우리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한 손에는 성경책이 다른 한 손에는 물통이 늘 들려져 있었습니다. 선생은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를 일일이 만져주면서 간절히 기도를 하셨습니다. 선생의 손은 신비한 힘이 있었습니다. 그 손이 얼굴에 닿으면 시원하고 가벼웠었습니다. 선생이 발을 씻어 주시면 천상에 오르는 것처럼 평화로워지고 마음에 걸리는 것은 모두 벗겨졌습니다. 우리는 염치도 없이 한번만 더 한번만 더 그분의 손으로 씻기움 받기를 원했습니다. 어루만짐 받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선생에게서 사랑의 신이 계시다는 것을 보고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말이 필요없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에 대해 별로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것은 잘사는 사람 몇몇이 우리들의 기회를 빼앗았기 때문에 그들만 기름지게 살고 우리는 가난할 수 밖에 없다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모택동의 깃발아래 모여서 공산주의만 잘하면 잘 살 수 있는데 그렇게 되려면 미국이나 구라파에 몇몇 나라와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포로가 되었고 그렇게 되고 보니 쓰레기같은 낡은 무기로 무장된 총받이가 된 것을 알았습니다. 친구들은 무더기로 우리 곁을 떠나 죽어갔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붙잡혀 포로가 되었고, 팔 잘린 사람은 신음했고, 다리 짤린 사람, 눈 잃은 사람은 절망하며 울었습니다. 살점이 달아난 사람, 동상으로 살이 문들어진 사람이 수없이 많았고 적군에 의해 치료받을 때에 절망감, 자존감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사와 끝없는 원망과 증오가 굳어져 우리의 마음은 캄캄하기 이를 때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맹 선생 당신이 찾아 온 것입니다. 맹 선생의 숨결은 우리 껍데기를 녹여 주었습니다. 얼음짱처럼 차고 두껍고 어둡던 마음의 문을 기도와 찬미의 손과 사랑으로 녹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도가 사랑인 것을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랑의 시작이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인 것을 알았습니다. 십자가는 내 죄의 모양이었고 내 죄를 인하여 예수가 그 위에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나의 죄가 죽고 사랑이 살아남으로 승리했고 그 승리가 영원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8월 11일 새벽, 마지막 환자를 씻기고 난 선생은 자신의 눈물을 씻을 생각도 하지 아니하고 시편 23편을 우리말로 더듬더듬 읽어 주셨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편23:1-6)

당신은 이 말씀 봉독하신 후 한번 더 힘차게 “내 잔이 넘치나이다” 먼 곳 바라보며 쓰러지시면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를 외치셨지요.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그 자리에 세워진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랑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 자신의 삶의 목적임을 당신은 알고 있었습니다. 사랑의 명령 앞에 순종했던 맹의순 선생 앞에 고백하나이다. 이제 우리의 잔이 넘치나이다. 우리는 통곡하나이다. 그러나 우리는 맹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예수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 가기 시작합니다. 우리 모두는 통곡하나이다. 그러나 우리는 버려진 것이 아님을 이제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맹 선생과 함께 주님안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류영모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