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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골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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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골 1:27)

(골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001년 소위 9.11테러 사건이 났을 때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감동을 끼친 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테러 당일 유나이티드 93편 비행기를 탑승했던 승객중에 타드 비머라는 휘튼 대학 출신의 신실한 그리스도인 회사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비행기가 테러범들에게 납치된 것을 깨닫는 순간 비행기내에서 주변 몇 사람과 함께 테러범들과 싸울 것을 의논하고 마지막 주기도문으로 기도하고 시편 23편을 암송한 다음 “자 나가자”(Let's Roll)고 외치며 조종실로 뛰어 들어 비행기를 추격시킴으로 와싱턴 국회의사당으로의 진격을 막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진정한 영웅은 이 사건을 믿음으로 수용할줄 알았던 그의 가족들이었습니다. 

얼마후 그가 출석했던 뉴저지 프린스톤 연합교회에서 미 전역에 방영되는 추모예배가 열렸을 때 그의 누이동생 미셀 비머가 추모 찬송을 연주한 후 강단에 오른 타드 비머의 아버지는 아들의 장례식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타드 비머를 저희의 아들로 저희 가정에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의 고귀하신 선물, 하나님의 독생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주심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지금까지는 머리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 아들을 보내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저의 아들 타드가 주 예수님의 선물인 영생의 약속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옵나니--제 아들 타드의 죽음의 스토리와 이웃과 이 땅을 구하기 위한 그의 행동이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사용되게 도와 주시옵소서.--한가지 더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에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주신것과 함께 좋은 아들을 선물로 주셨던 것을 감사드립니다. 또한 내 아들과 천국에서의 만남의 소망을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며칠후 여기 전국에 방영된 래리 킹 프로그램에 출연한 타드 비머의 아내 리사 비머는 래리 킹에게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당신의 남편이 마지막에 기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리사는 이런 대답을 합니다. “조금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기도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 땅에서의 삶은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기 위한 준비의 인생인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타드와 저는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최선을 다해 살아왔습니다. 타드는 최후까지 그렇게 산 것입니다.” 

그리고 두달후 11월초 리사 비머는 뉴저지에 약 2만 5천명이 모인 크리스챤 여성들의 세미나에 참여하게 됩니다. 본래 9.11테러 전에 리사비머는 이 모임에 참석하기로 신청을 해두었다고 합니다. 리사는 이 모임에 계획한대로 참석하는데 그냥 회원이 아닌 강사로 참여할 것을 요청 받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9.11전만해도 9.11은 저에게 평범한 달력에 나온 하루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9.11날짜를 들을 때마다 공포와 분노, 그리고 개인적인 상처와 손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 이런 감정들을 우리가 어떻게 할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의 몫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만을 생각할 것이지 아니면 아직도 남겨진 것들을 생각하며 살것인지. 계속적인 공포속에 살 것인지 아니면 소망속에 살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소망안에 살기를 선택하였습니다.--제가 이렇게 할수 있는 것은 제가 강한 여성이어서가 아닙니다. 제가 소망안에 살기로 선택한 이유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 영원한 소망 때문입니다. 

저와 제 남편은 계획성이 철저한 사람들이었지만 우리는 9.11을 대처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집회가 오래전에 계획된 것 처럼 9.11도 제 남편의 죽음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주관아래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저와 제 아이들의 미래도 그분의 신실하신 계획속에 있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앞날에 다하여도 소망이신 그분을 의지하며 살 것입니다.”(그녀가 쓴 “자, 나가자/Let's Roll"은 우리말로는--”나는 소망을 믿는다“로 번역됨 이동원 목사 설교중)

소망은 기대입니다

소망이란 말에는 '기대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기대'란 말은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사실 현재 실현 가능한 일,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기대가 아닙니다. 기대란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 현재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일을 이루어질 줄로 믿고 확신하는 것이 기대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러했습니다.

(롬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은 75세의 노인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아들 약속을 받고 이 약속이 이루어질 줄로 소망하며 25년을 기다렸습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은 100세에 90세 된 아내를 통해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기대입니다.

소망은 신뢰입니다

'소망한다'는 말은 성경에서 '신뢰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시 146: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확신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복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생각해 봅시다. 복의 근원인 하나님께서 자신께 소망을 두고 세상 즐거움과 쾌락을 포기한 자신의 백성에게 크고 놀라운 복을 허락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소망을 가진 성도, 하나님에게 소망을 둔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복을 받아 누리게 될 것을 믿고 확신해야 합니다.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나님의 복이 분명하게 약속되었음을 확신 하고 소망 가운데 즐거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가나안을 약속받고 아직 그 약속이 성취되지 않았지만 장차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자손들에게 온전히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졌고, 마침내 430년 후에 약속의 성취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복을 확실히 믿는 자를 축복해 주십니다.
   
소망은 견고하다는 뜻이 함께 합니다

(시 93:2)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소망'에는 '견고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견고하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견고하다는 말입니다

(롬 15: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백성과 맺으신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변치 않습니다. 또 변경되지도 않습니다. 연기되지도 않습니다. 무효화되지는 더더욱 않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 불변하며, 견고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에게 소망을 둔 자의 소망은 결코 허망해지지 않습니다. 세상에 소망을 둔자는 허망함을 맛보아도 말입니다. 이렇게 견고한 하나님의 언약에 소망을 둡시다. 

'견고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보좌를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즉 하나님의 보좌는 견고함의 대명사입니다. 세상 임금과 통치자의 보좌는 아무리 길어도 수십 년을 지속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통치는 수백, 수천 아니 영원 무궁합니다. 이렇게 영원 무궁토록 우주 만물과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하시기에 하나님의 보좌와 하나님의 통치에 소망을 두어야 그 소망이 허탄해지지 않습니다. 견고한 하늘 보좌에 소망을 두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소망을 지닌 성도는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시 62: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시 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하나님께 소망이 있는 성도는 어려움이 닥칠 때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세상 수단으로 위기를 극복하려 하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합니다. 

다윗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울 임금의 엄청난 박해중에서도  인간적 수단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차례 있었지만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자신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원받는 선한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 소망을 둔 자의 태도입니다. 조금만 어려움이 있어도 불평하고, 비신앙적 방법을 간구하는 것은 성도의 올바른 자세가 아님을 명심합시다. 
  
또한 하나님께 소망을 둔 성도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사모합니다.
많은 세상 사람들이 세속적 방법으로 재물을 모으고, 또한 그것을 불신앙적 방법으로 향유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사모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더 크고 소중함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복은 약속의 형태로 주어졌습니다.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주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늘 함께 동행하실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우리에게 날마다 세상의 그 어떤 세력도 방해할 수 없는 절대적인 평안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어디 그 뿐입니까?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보호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롬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롬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또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마침내 승리케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 모든 약속들을 굳게 믿고 주님만 소망하며 주어진 날들을 기쁘게 복되게 살아가야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절망과 고통과 죽음이 상존하는 광야에서 기나긴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도 완전히 낙망치 않고 40년간을 버틸수 있었던 힘의 원동력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믿고 하나님이 약속한 약속의 땅 가나안땅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리라는 그 빛나는 소망이 있었기에 죽음의 땅에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 역시 광복절을 맞았음에도 여전히 분단의 문제가 있고 세상은 불안정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협하는 각종의 위험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만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절망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천국이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과 복과 기쁨이 넘치는 영원한 복지 천국을 약속하시고, 매일 그 천국을 향해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불평을 삼가고 천국을 향한 거룩한 행진을 계속해가야 하겠습니다.

(골 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소망은 복음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온 것이라고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골 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이어서 이 복음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우치는 그 순간부터 그들은 소망의 사람이 되어 온 천하에 소망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모든 소망은 일시적이고 무너질 것들입니다. 그러나 복음이 전해준 이 소망은 “하늘에 쌓아둔 것”입니다. 무너지거나 변질될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찍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셨습니다.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마태6:20)고 하셨습니다.
사실 세상에서 우리가 가진 소망은 세상살이 끝나는 날 끝날 수 밖에 없는 소망들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소망은 이 세상의 경계선을 넘어서서 저 영원까지도 계속되는 것입니다.

2차 세계 대전 때 네팔 출신 영국 특수부대 용사 한 사람이 미안마 정글에서 실종되었습니다. 일본 적진에 포위되어 거의 생존 가능성이 없을 것으로 판단한 영국군은 수색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병사는 실종 4개월 만에 거의 2,240킬로미터를 헤맨 끝에 지도 한 장을 손에 움켜쥔 채 부대에 복귀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병사의 손에 있는 지도는 미안마 밀림 지도가 아니라 런던 시가지 관광 지도였습니다. 네팔 출신이었던 병사는 전쟁이 끝나면 영국에 귀국하여 반드시 런던을 구경하겠다는 일념으로 적진 속의 정글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소망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이렇게 자그마한 소망만 있어도 온갖 역경을 능히 이겨낼 수 있다면 천국 소망을 가진 성도야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롬 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하나님은 인간의 가슴속에 영원에 대한 사모심을 넣어 주셨습니다. 이 사모심은 소망에서만 충족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소망이 없는 세상은 의미도, 목적도 없습니다. 소망이 없으면 만사가 붕괴 되고 맙니다. 심지어 믿음과 사랑까지도 메말라 버립니다.

(고전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이 소망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것은 소망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된다고 해도 만족이 없고, 만족이 있다고 해도 잠시뿐입니다. 참 소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아니합니다. 이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참된 기대요 신뢰요 견고함입니다
국가적 소원인 통일도 개인적 소망인 평강도 예수님안에서 이룰 수 있습니다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만 믿고 의지하며 소망하며 사명 감당하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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