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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사랑, 나의 기쁨, 나의 면류관 (빌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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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나의 기쁨, 나의 면류관 (빌 4:1-3)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부르는 호칭을 눈여겨 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라는 한 마디로 부족하여‘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과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이렇게 반복하여 부릅니다.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주고받는 편지처럼 간절한 사랑고백이 담겼습니다.   

1장8절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여러분을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십니다’는 말을 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열정으로 교우들을 사랑합니다.   교우들 생각만 하면 기쁨이 솟아오릅니다.   두고두고 기억이 되며 그리운 사람들입니다.  

구약성경 잠언에서 백발은 노인의 면류관이라고 하였습니다(잠16:31).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 (잠17:6) 하였습니다.   어진 아내는 남편의 면류관이라 했습니다(잠12:4).  

이처럼 빌립보에 있는 사랑스런 믿음의 자녀들이 바울의 면류관이었습니다.  바울은 어딜 가나 누구에게나 빌립보의 성도들을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얼굴을 빛나게 해주는 면류관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수고를 마치고 주님 앞에 서는 날 그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동고동락했던 빌립보의 동역자들이 바울의 면류관이 될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바울은 옥중생활을 마치면 꼭 빌립보를 방문하여 사랑하고 사모하는 성도들, 동역자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옥에도 티가 있다고 빌립보 교회를 위해 바울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며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교우들이 서로 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바울의 간절한 소망이 오늘 본문에 담겨있습니다.   1절의‘그러므로’는 앞에서 언급한 이야기들의 종합이고 결론이며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말하기 위한 첫 마디입니다.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믿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나의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그러므로’ 주 안에 굳게 서있기를 바랍니다.  

앞에서 한 마음이 되라고 여러번 힘주어 강조했던 바울은 편지의 결론에 와서 기여코 문제의 핵심 인물 두 사람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내가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권한다는 말은 간절히 당부한다는 말입니다.   제발 부탁하는데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의 일에 협력하라는 말입니다.   교회 전체에게 보내는 공식적인 편지 속에 두 사람의 이름을 언급할 정도라면 두 사람의 관계가 심각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쓰면서 그동안 반복하고 또 강조했던 한 마음이 되라는 말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1:27)고 한 말과,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말고’(2:2,3) 했던 바울의 말은 어쩌면 이 두 여인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  열심히 일을 하는데 뭔가 불편한 모습이 보입니다.   권면과 위로와 교제와 긍휼과 자비가 있는데 마음이 갈라져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예로 들며 이 마음을 품으라고 할 정도로 강력한 부탁을 합니다.   두 사람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누군가 중간에서 도와주어야만 했습니다.  

‘나와 멍에를 함께 한 자 너에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 글레멘트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다’  이런 어려운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갈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지만 어려울 때 바울과 멍에를 함께 한 사람입니다.  바울이 대단한 인물이었지만 바울 홀로 복음 전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그를 능력있는 일군으로 붙들어 사용하셨고 그 곁에는 헌신적인 협력자들이 있었습니다.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동역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어려운 짐은 한결 가벼워집니다.   이 두 여인들 역시 바울이 빌립보에 있을 때 바울을 도와 함께 수고했던 자매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처음으로 유럽 지역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기 시작할 때 마게도니아의 첫번째 도시 빌립보 성에는 옷감장사를 하는 루디아 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루디아는 자기 집을 개방하여 바울과 전도자들이 묵을 수 있게 하였고 기도와 예배 처소로 사용하도록 제공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 곁에 돕는 이들이 있었기에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파되었습니다.   헌신적인 여성 루디아처럼 유오디아와 순두게 역시 빌립보 교회의 여성 지도자들이었고 복음을 위하여 바울과 함께 힘쓰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자리를 비운 지금은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서로 한 마음이 되지 못하고 나뉘어 있습니다.   이런 불편한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것은 주의 몸인 교회 공동체를 허약하고 피곤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개인의 독특한 취향이나 삶의 방식이 서로 하나되게 하는데 장애물이 되고 갈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갈등이든 복음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주 안에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래 전에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갈등을 이해하기 쉽도록 비유로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추측하건데 두 사람 다 좋은 일을 하려는데 실행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주일마다 점심식사로 비빔밥을 먹고 잔치가 열리면 음식을 준비하는 것처럼 빌립보 교회도 주일마다 혹은 큰 잔치가 열리면 여전도회원들이 모여 음식을 장만한다고 가정합시다.   

음식 메뉴를 정하는데 두 가지 의견이 제시되었습니다.   유오디아는 다음 주일 점심식사로 유부우동을 먹읍시다 제안하였고 순두게는 순두부 찌개가 더 좋다고 주장합니다.   둘 다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쓸쓸한 가을 오후에 뜨끈한 점심식사 한끼로 아주 좋은 음식입니다.  여유가 되면 둘 다 요리하여 취향에 따라 골라먹어도 좋겠고, 한 가지만 만들어 풍성하게 먹어도 좋을 듯합니다.   그런데 ‘유부우동, 순두부 찌개’하며 양쪽 다 자기 의견만 주장하고 한치의 양보가 없습니다.   게다가 두 사람이 빌립보 교회 여성도들 가운데 신앙적으로도 모범이 되고 봉사의 경력도 많아 나름 리더십을 가진 일군들입니다.   결국 어느 한 쪽으로 결정하지 못하고 두 리더십을 중심으로 그룹이 둘로 나뉘어 감정이 상할정도로 팽팽한 대립을 보입니다.   
    
두 여인의 갈등이 복음의 본질을 다루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음식 메뉴 정하는 사소한 일이 빌립보 교회를 하나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편지의 앞부분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런데 편지의 결론에서 결국 두 사람 이름을 언급하며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애원하다시피 간절히 부탁합니다.  그만큼 두 여인의 갈등이 교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덕스럽지 못하여 염려스러웠다는 말입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했는데 어떤 마음입니까?   유오디아의 마음도 아니고 순두게의 마음도 아닙니다.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편들어주자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라도 변질되고 악에게 끌릴 수 있는 불안정한 마음입니다.   어제까지는 정확한 판단으로 일을 했지만 오늘은 자기 욕심과 고집에 끌려 일을 망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어떤 사람도 내가 항상 옳고 다른 사람이 잘못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습니다.   이럴 때 정확한 판단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주의 말씀이 기준입니다.   성경에 음식 메뉴를 무엇으로 하라는 지시가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좋은 목적으로 어떤 일을 계획할 때 서로의 의견이 달라 해결점을 찾지 못할 때 일단 문제를 내려놓고 낮은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실까?  질문하고 그리스도의 예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께서 본을 보이신 낮은 마음,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희생의 마음, 나 개인의 편리와 영광보다는 아버지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교우들은 주 안에서 한 몸의 지체들이며 형제와 자매들입니다.  땅에서도 그렇지만 이 다음에 주님 앞에 설 때에 한 가족으로 만나게 될 형제자매들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 함께 먹는 것이라면 유부우동이면 어떻고 순두부 찌개면 어떻습니까?  둘 다 준비하면 됩니다.   그러나 꼭 한 가지만 해야 한다면 누군가 양보하고 한 가지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여 모든 식구들이 따뜻하게 먹고 마시며 기쁨을 누리도록 하면 됩니다.   이번에는 유부우동으로 하고 이 다음에 순두부 찌개를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나의 관심사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관심사에도 귀를 기울여주고 서로 높여주며 이해하고 격려하는 마음으로 일을 해야 선한 일이 되고 선한 열매를 거둡니다.   내 감정과 자존심이 중요하지만 형제자매의 감정과 자존심을 존중하면서 이럴 때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   질문하며 교회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위해 나를 내려놓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나를 낮추고 나의 권리를 포기하며 나를 희생함으로 많은 생명을 구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바울은 이 여인들에게 이 마음을 품으라고 간절히 권합니다.   

그리고 또 클레멘드와 다른 동역자들을 도우라고 합니다.   그들의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간절히 부탁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소중한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그 사람의 죄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으셨고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두 마음으로 갈라진 이유와 속사정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지만 적어도 이단의 문제나 비윤리적인 부끄러운 일은 아닌 듯합니다.   두 여인이 해결해야 할 것은 진리와 비진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과 태도의 문제입니다.   주의 일을 함께 할 때 형제자매를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가 하는 태도와 관계의 문제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함께 일할 때 생각의 차이가 있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매사에 꼼꼼하고 치밀하게 일하지만 어떤 이는 털털하고 덤벙댈 수 있습니다.   거기에 어떤 악의나 음모가 담긴 것이 아닙니다.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이나 도덕폐기론자들의 행실처럼 그리스도의 복음을 해치는 것이라면 단호하게 거절하고 단절해야 합니다.  하지만 방법의 차이일 뿐 원리와 정신이 복음에 기초하고 있다면 사소한 의견 차이나 방식의 차이는 서로 양보하고 협력함으로 해소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며 서로 돕는 태도입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천국 시민권을 가진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누리고 또 나누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는데 이 땅의 작은 일에 분노하고 상처를 받고 우울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지금은 비록 질병으로 고생하고 계획한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 우울할 때도 있지만 우리 연약한 몸을 영광의 몸으로 변하게 하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하면 다시금 기쁨이 회복됩니다.   어떤 이들은 땅의 일만 생각하고 끝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자신의 배를 신으로 여기며 살지만 우리는 영원한 그 나라를 사모하고 주님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천국시민입니다.   오늘 고생스럽고 불편한 것을 장래의 영광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내 마음을 상하게 만들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고 품어주며 위하여 축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로 서로 등지고 다투며 욕하고 비난하는 것은 땅의 일만 생각하는 사람들의 방식이지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사람의 방식은 아닙니다.   

말씀을 마치며 하늘에 시민권을 둔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난 8월6일 아프칸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하던 국제지원단 (IAM) 소속 의료진들 10명이 탈레반에게 살해를 당한 소식을 들으셨을 줄 압니다.  신문에서 읽은 내용들을 정리하여 말씀드립니다.   시신으로 발견된 10명 팀원 가운데 미국인이 6명, 영국인 1명, 독일인 1명, 그리고 아프칸인 2명인데 이 가운데 3명은 여성이었습니다.   IAM은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단체로1966년 부터 아프간에서 활동해 온 현지 구호단체들 중 가장 오랜 기간 아프간 국민들을 섬겨 왔습니다.  단원들이 약5백 명 규모이며 주로 의료봉사와 경제개발 지원사업 등을 펼쳐 왔습니다.  

피살당한 봉사단원들은 아프간 정부의 허가를 받고 아프간 동부 누리스탄 지역에 세워진 안과 진료소에서 활동해 왔으며, 피살당한 그날도 이 지역에서 가장 극빈층에 속하는 주민들을 찾아가 안과 검진을 하고 3주간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무장괴한들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같은 팀원들 가운데서 가까스로 생존한 2명은 무장괴한들이 자신들의 물품들을 강탈한 뒤에 일렬로 줄을 세웠으며 총격을 가해 한 명씩 차례대로 살해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생존자 2명은 모두 아프간인이며 이 중 한 명은 코란 구절을 읽은 뒤에 겨우 풀려났고, 나머지 한 명은 피습 전에 팀원들과 헤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중에는 팀의 리더였던 안과의사 톰 리틀(61)과 댄 테리(64)라는 노련한 아프간 전문가도 있었는데, 리틀과 테리는 70년대에 아프간에 도착했던 사람들로 세 딸들을 아프간에서 낳고 길렀습니다.   손자의 돌을 맞아 잠시 미국 뉴욕에 나와 있던 리비 여사는 남편 톰과 함께 지난 30여년간 아프간에 병원을 세우고 현지인들에게 의술을 가르쳤습니다.  남편 톰은 서방 의료진과 NGO관계자들에게 '아프간의 전설'로 통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톰의 친구로 10여년을 아프간에서 봉사했던 데이비드 에반스는8월 8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이자 가장 힘든 병자들의 봉사자였다"고 말했습니다.  의사 동료 톰 헤일리도 "그는 당면한 위험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며 "위험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봤다"고 회고했습니다

졸지에 남편을 잃은 사건 후 첫 주일이었던 지난 8일, 리비 여사가 예배를 드린 뉴욕 델마의 로우던빌 커뮤니케이션교회 스탠 키 목사는"많은 사람이 복음에 대해 말하지만 복음과 함께 사는 사람은 적다. 그러나 톰과 그의 가족은 분명 복음과 함께 살았다"고 설교했습니다.  기사를 쓴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가족 이름(리틀)은 작지만 그들의 삶은 컸습니다.   그리고 가족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리비 리틀 여사는 이날 CBS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가족은 다시 아프간으로 돌아가기로 했다"며 "남편의 뒤를 이어 아프간에서 계속 일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프간은 세상 사람에게 버림 받았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들을 버리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마음이 아니고 어찌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또 한 사람, 영국인 의사 캐런 우(36) 박사는 의사가 되기 전 서커스단에서 일했습니다.   16세 때 현대무용을 배우기도 했던 캐런은 비행기 날개 위에서 공연하는 곡예사였습니다.   주홍색 고공낙하용 옷을 입고 쌍엽기를 탔습니다.   그러다 22세 때 의대에 진학했고 호주를 비롯해 파푸아뉴기니, 남아프리카공화국, 서인도제도 최남단에 위치한 트리니다드섬과 토바고섬 등에 의료봉사를 자원했습니다.   그리고2년 전에 카불에 있는 한 친구를 만난 이후 연봉 15만 달러(1억8000만원) 의사직을 버리고 카불로 이사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캐런은 두 주 후 결혼을 앞두고 있다 변을 당하였습니다.

의료진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탈레반의 끔찍한 테러에도 불구하고 국제의료단(IAM)은 진료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혔고,9일(현지시간) 10명의 희생자 중 5명이 아프간에 묻혔다고 전했습니다.   이번에 희생된 10명의 의료진들은 헌신과 희생, 그리고 죽음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세상 끝이자 참혹한 땅인 아프간을 위해 그들의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편한 삶을 마다하고 위험지역으로 들어가 사서 고생하는 그들을 가리켜 어리석은 자들이라 비웃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야말로 땅의 것보다 하늘의 것을 바라보며 땅에 속한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자기 생명까지 나눈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감히 감당하지 못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그 가족들에게 계속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시민권을 하늘에 두고 땅에서는 나그네처럼 살며 위험과 질병 가운데 버려진 사람들을 위해 살았던 그들은 진정한 천국시민들이었습니다.  땅에서 충분히 가지고 누릴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이 있었지만 그것들을 포기하고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 어려움을 당한 자들과 함께 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들은 진정한 천국시민들입니다.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는 그들은 죽어도 빼앗기지 않는 생명을 가지고  주의 이름으로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가족들에게는 큰 슬픔이지만 동시에 가족들과 동료들의 면류관이 되었습니다.   

땅의 것에 매달리고 사소한 문제들에 얽매여 울고 웃는 우리의 좁은 생각과 시야가 보다 넓어졌으면 합니다.   지금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은혜로운 삶을 힘써 살아갑시다.   영원토록 변함없는 주의 말씀 위에 우리의 믿음을 굳게 세우고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는 것부터 시작해봅시다.   복음을 위하여 함께 멍에를 지고 하나가 되며 서로 돕는 마음으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서로에게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며, 기쁨이 되고 면류관이 되어 주의 일을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천국시민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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