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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이 새로워지는 기적 (엡 4: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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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새로워지는 기적 (엡 4:17-24)


오늘 아침 신문에 안경선목사님에 대한 글이 실렸습니다. 잠시 충격이었습니다. 고 손양원목사님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여순반란사건 때,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공산당 청년 안재선을 처형 직전에 양자 삼으신 것으로 유명하십니다. 예수 믿으면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안재선이란 청년이 나중에 양 아버지 손양원목사의 권면으로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사람을 죽인 자라는 죄책감으로 목사의 길을 포기하고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방황하였으나 임종할 때 고3이었던 자신의 아들에게 신학교 가서 목사가 되라고 유언하여 결국 목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성경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하셨는데, 단순히 말씀만 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말씀이 되라는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제자들에게 뭔가를 더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전할 복음이 그들 자신의 삶이 되게 한 사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증인이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하셨습니다. 

22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절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절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예수님을 믿으면 삶이 변화되게 됩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부자였고, 관리였고, 청년이었고 율법대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훌륭한 사람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스스로 천국에 가는 법을 알려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전도자들이 애타게 찾는 사람입니다. 만일 부자 청년에게 오늘날의 전도 방법에 따라 복음이 전했다면 그는 복음을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예수 믿게 하고 결신하게 하는 일은 너무나 쉽습니다. 그는 이미 99% 구원받은 자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합니다.” 고백하기만 하면 될 정도로 보입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여기저기서 간증해 달라고 할 것이고 기독교 유명 잡지들에 그에 관한 기사가 실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재산을 다 바치고 나를 따르라.”면서 어마어마한 희생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그는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그토록 효과없는 전도 방법을 사용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정말 전도하는 방법을 모르시는 분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청년이 겉으로는 훌륭해 보이지만 마음 속에는 탐욕이 가득함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막 10:21) 하셨는데, 결국 그의 탐욕이 드러났습니다. 그가 천국의 보화를 얻기 위해서는 ‘재물’이라는 신(神)을 버려야 했습니다. 이것이 참된 회개였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영생을 얻기 위해 주님께 달려왔지만, 자신의 재물을 버리기는 원하지 않았습니다. 탐심을 버리려고 하지 않는 이 부자 청년을 주님께서는 “괜찮아, 언젠가는 탐심도 버릴 때가 올 거야.” 하며 붙잡지 않고 떠나도록 하는 편을 택하셨습니다. 
이 일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철저한 회개없이는 구원이 없고, 예수를 믿는 것은 삶이 완전히 변화되는 것임을 가르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청년을 보시고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막10: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화를 잘 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음란한 마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순종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다 같은 말입니다.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옛 사람을 벗어 버렸습니까?
많은 교인들이 예수님을 믿고도 옛 사람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전도한 사람이 결국 여러분 같이 살게 된다면 전도할 의욕이 생기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대답할 자신이 없으니 전도할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삶이 변화된 증거가 없는데도 예수 믿는다 하니 한국 교회가 이 지경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옛 사람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것입니까? 옛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예수님을 믿고도 진정 죄를 회개하고 옛 사람을 청산해야 한다는 의식이 약합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지요.” 하는 정도입니다. “나만 죄인입니까? 털어 먼지 안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윗도 간음했었지 않습니까?”

이런 태도를 갖는 것은 옛 사람의 행실을 벗어버리지 못하면 지옥에 간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붙어있는 옛 사람이 얼마나 지긋지긋하게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지, 결국 지옥까지 끌고 갈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진정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는 것입니다. 삶의 주인을 바꾸기를 싫어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이런 정도의 믿음을 가졌기에 재산 문제 하나로도 영생의 주님을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삶의 변화를 원하는 이들도 좌절에 빠져 있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새 사람이 되어 보려고 노력하고 노력합니다. ‘이제부터 죄짓지 말아야지, 혈기부리지 말아야지, 사랑해야지, 참아야지, 하나되어야지, 자비로와야지.’ 그러나 안됩니다, 노력하면 할수록 계속 두려움과 좌절에 빠집니다. 결국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어렵다! 면서 좌절하거나 적당하게 살 수 밖에 없다고 타협합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은 우리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노력으로 할 수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은 십자가의 능력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그리고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임하심으로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하시는 일은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23절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 사람이 되려면 행실을 고칠 것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새로워져야 합니다.
17-19절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감옥에 갇힌 사람은 자유가 없습니다. 그것이 형벌입니다. 그러나 생각마저 가둘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두려운 것은 육신이 감옥에 갇히는 것 보다 마음이 감옥에 갇히는 것입니다. 
마음에 악한 진이 생겨 마음이 묶인 자들이 많습니다. 불신, 미움, 증오, 좌절, 우울, 악령, 음란, 탐심, 거짓 등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굳어져 생각에 묶여 지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진정 새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우리 마음에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겔 36:26-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성령님께서 오시면 마음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안수기도 받을 때, 쓰러지거나 방언하게 되기를 기대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성령께서 역사하신 증거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마음의 변화로 분별해야 합니다. 쓰러지거나 방언하는 것보다 더 놀랍고 중요한 것이 마음이 바뀌는 것입니다. 마음에 회개가 일어나고 평안이 임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에 대하여 확신이 생기고 순종할 마음이 일어나면 성령님이 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사람을 입으려면 무엇보다 더욱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20-21절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예수님을 영접하셨다면 마음에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동안 여러분의 마음에 왕이 있었습니까? 마음에 아무나 들어오고 나가고 하지는 않았습니까? 아무 생각이나 받아들였습니다. 결과가 무엇입니까? 미움과 상처, 은밀하고 음란함, 도적질, 거짓말, 두려움과 염려, 분노와 혈기, 우울증과 슬픔, 열등감, 좌절, 나쁜 기억, 쓸데없는 공상이 가득해졌습니다. 
음식은 그렇게 먹지 않을 것입니다. 잠자는 집 안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몸보다 더 중요하고 집안보다 더 귀한 마음은 왜 아무렇게나 내버려두는 것입니까?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아십니까?

마 12:43-45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이런 상태에서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 보다도 먼저 예수님을 마음에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감사할 일이 그렇게 많아도 불행하다 슬프다, 불평 원망이 많은 것은 마음이 병들어서 그렇습니다. 

도넬라 메도스(美 환경전문가)가 만약 현재의 인구 통계 비율을 그대로 반영해 지구를 100명 밖에 살지 않는 마을로 축소한다면 80명은 적정 수준 이하의 주거 환경에 살고 있고, 70명은 문맹, 50명은 영양 부족, 1명은 빈사 상태, 1명(겨우 단 한명)은 대학 교육을 받았고 1명은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은행에 예금이 있고 지갑에 돈이 들어있고 집안 어딘가에 잔돈이 굴러다니는 사람은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8명 안에 드는 한 사람입니다. 자가용을 소유한 자는 100명 중 7명안에 드는 사람입니다. 

냉장고에 먹을 것이 있고, 몸엔 옷을 걸쳤고, 머리 위로는 지붕이 있어 잠잘 곳 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주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이 세상 75%의 사람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부모님이 두 분이 모두 살아계시고, 이혼을 하지 않을 상태라면 미국에서 마저도 아주 드문 경우일 것입니다. 
만약 고통, 체포, 고문, 나아가서 죽음에 대한 공포 없이 매주 교회를 다닐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세계 인구의 상류 중 한 사람인 셈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도 바로 뜨이면 감사가 된다면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면 정말 행복한 사람, 부유한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어느 집사님께서 담배를 피시다가 제게 걸렸습니다. 아무 말도 않고 집사님의 손을 잡아드렸더니, 고백을 하셨습니다. 담배에 자꾸 손이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담배를 피면 마음이 안정된다는 것입니다. 중독이 되었다고 깨닫지만 도무지 담배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 집사님의 문제는 담배 피는 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담배보다 더 확실한 기쁨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충청도 산골에서만 살았기에 대학에 들어가서야 실제 바다를 처음 본 청년이 바다 본 이야기를 글로 썼습니다. 이미 사진으로, 영화로는 여러 차례 보았기에 별 기대는 없었답니다. 그런데 실제 바다를 보고, 그 엄청난 바다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울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너무 커서, 너무 가슴이 벅차고 감동적이더랍니다. 
바다를 보고도 이 정도면 예수님을 만나면 어떻겠습니까?
삶이 변화되지 않으면 이상한 것입니다.

메일 상담 

모태신앙, 부모님이 목회를 하시고, 지금 장교인데 거듭나지 못하였습니다.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없습니다.
대학을 들어가서 선교단체에 들어가고 여기저기 모임도 나가보고 수련회 같은 것도 가 보고, 단기선교도 가 보고 DTS(예수전도단이요..)에서 훈련도 받아보았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구원의 확신, 죄 사함의 확신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자아가 죽어야한다고 해서 어떻게 하면 죽는 걸까 며칠 몇 주를 기도해도 안 죽고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는 내가 죄인됨이 너무도 생생하고 깨어질 수 밖에 없다고 하기에.....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아무 일 없고... 성령의 조명하심이 없이는 이런 것들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진정으로 성령님을 갈망해 보았지만 또 다시 낙심하고‘아, 믿음이 없었구나.’해서 믿음을 구해보기도 하고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나온다기에 말씀도 읽어보지만 축 늘어진 생활을 계속해서 하고 있지요. 
일과가 끝나면 기도시간을 정해두고 기도하려고 애쓰지만 그 기도시간이 부담스럽고, 그 시간조차도 어쩔 줄을 몰라 중언부언하고 부르짖으려고 노력도 해보아도....잘 되지가 않더라고요. 성경을 읽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교회 다니는 기간이 늘어나면서 느는 것은 주워들은 이야기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이론들이 대체 나에게 무슨 생명이 되는가? 정말 생명이 내 안에 있어야 된다. 성령님이 계셔야 한다. 생각은 하지만 구해도 구해도 미지근하게 중얼거리는 저를 발견하고 마네요.
저의 뜨뜻 미지근한 이러한 태도를 보면서 하나님이 나를 치시면 어쩌나~ 
정말 마지막의 때가 가까워오는 듯한 이 시대에....당장 오늘 죽거나 주님이 오신다면....정말 자신이 없는 저인데...내가 아브라함, 이삭의 자손인가? 이스마엘 육신의 자녀가 아닌가? 이런 문제로 떨고 있는 저를 보면 더욱 조급한 마음이 듭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계시는데 성령님은 나를 나보다 더 만나고 싶어하시는데, 저에게 어떤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요. 마음이 강팍하다던가 교만하다던가 아니면 내가 스스로 보지 못하는 하나님의 역사하실 수가 없는 완벽한 불신앙으로 뭉쳐있다던가 단지 의지력이 없거나......하나님께 묻는다 고하지만 혼자 중얼거라고 있는 형국이네요.

이 형제에게 허드슨테일러 선교사님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 분도 이 형제와  똑같은 고민과 좌절에 빠졌습니다. 복음과 성경 지식을 다 가지고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예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답을 얻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그 때 그분께서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께서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 뿐 아니라 내가 그 분과 하나라는 사실을 보았다. 주님을 바라보는 순간 헛된 노력을 그치고 그리스도의 능력과 평안 속에 쉬기로 하였다.

“오, 거기에 안식이 있구나!” “그동안 예수님 안에서 안식하기 위해 헛되이 애써 왔구나. 이제 결코 더 이상 애쓰지 않겠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나와 함께 거하시겠다고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시고 결코 나를 저버리시지 않으시겠다고 - 약속하지 않으셨던가? 그것이면 충분하였다.”
그는 이후에 더 이상 염려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느 곳에서 어떻게 지내더라도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언제나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장사되었으며, 또한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 중국 대륙의 복음의 씨앗이 된 허드슨테일러 선교사가 태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만나지 못하여 답답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남자 성도들과 함께 믿음으로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실험을 3개월째 하고 있습니다.
3개월이 지나면서 엄청난 간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계속 생각하다보니 도무지 이길 수 없다고 여겼던 일들을 이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성도님은 비자금을 정리했답니다. 죄지을 일이 없어졌기에 비자금 가질 이유가 없더랍니다. 아내 속일 일도 없고 괜히 들키면 어떻게 하나 고민할 것도 없고. 
은밀한 죄, 음란 동영상 보는 일이 그쳤다고 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짜증과 분노, 혈기가 사라지고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이 품어진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십자가 복음을 의지하여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새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을 마음의 왕으로 모십시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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