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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가르치나? (신 31:9-13, 딤후 3:14 - 딤후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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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칠 사명을 가진 여직원(신 31:9-13, 딤후3:14-4:5절) 


신자인 우리가 소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확장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종말을 기다리며 사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지난 주일에 말씀을 드릴 때 지금의 때가 종말의 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종말의 시대에는 어떤 현상들이 일어난다고 했습니까? 바른 교훈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 시대요, 스승을 많이 두는 시대요, 허탄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시대라고 했습니다. 또한 사랑의 대상이 잘못된 시대요, 이기적인 삶이 팽배한 시대요, 포악해지는 시대요,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시대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여직원들은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합니까?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어떻게 가르쳐야 합니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가정과 교회에서 성경을 부지런히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딤후3:14절에 보면 바울을 통해서 디모데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배우는 자가 있으면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배워서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규례와 법도를 모세를 통해서 주셔서 기록한 것이 신명기입니다.

구약의 본문인 신명기 31장 이하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9절을 읽어보면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서 그들에게 명령하여 말하기를 “10.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매 칠년 끝 해 곧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 / 11.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찌니”라고 하셨습니다. 12-13절에 보면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을 듣고 배워야 할 사람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12. 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 13.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찌니라” 배움의 대상이 누굽니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백성들입니다. 디모데후서 3:15절에 보면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어릴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곳에 태어난 후손들에게도 가르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절 보시면,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찌니라” 

심지어는 외국인들까지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바울은 디모데후서 4:1-2절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느 때든지 누구에게든지 말씀을 가르쳐야 하고 배워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가르치고 배워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성경을 시도 때도 없이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까? 왜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은 성경을 그렇게도 가르치며 배우라고 하셨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디모데후서3:15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종말의 시대에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의 종말이 오더라도 하나님과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바로 알고 영접하고 바로 믿어야 구원이 있습니다. 영생이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보다 정확하고 자세한 내용의 기록이 곧 성경입니다. 성경의 중심인물은 예수님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구원에 이르는 성경의 내용을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이 귀한 진리를 잘 배워야 합니다. 

요한복음20:31절에 보면 보다 분명하게 성경의 기록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베드로전서 1:23절 말씀,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성경에서 예수님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뭐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요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을 왜 믿어야 하는지, 믿으면 어떻게 되는가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로다”고 사도행전 16:3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16절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구원의 지혜를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위대한 학문적인 책도, 철학도 구원의 소식은 없습니다. 구원을 가르치는 책은 성경밖에 없습니다. 

사도행전 4:12절에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잘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학교에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빠지면 안 됩니다. 아무리 즐거운 프로그램이 있다 할지라도 그런 것은 성경을 가르치기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하는데 그쳐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날 성경학교나 수련회가 아이들을 우선 많이 참여시키도록 하기 위해 본질인 성경은 빠지고 다른 프로그램들 중심으로 시간표가 짜여지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디모데는 이 성경을 어려서부터 배웠다고 했습니다. 이 성경을 통해 믿음의 능력을 알았습니다. 믿음의 결국은 구원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여직원 여러분 자녀들이 성경학교, 수련회에 반드시 참여하도록 하시고 매 주일마다 교회학교에 참여하게해서 성경을 부지런히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배우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배우는데 성경을 읽는데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2. 성경은 우리를 교훈해 주기 때문입니다.

본문 16절 하반 절에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해 준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가르쳐 훈계해 준다는 것입니다. 가르쳐 훈계해 준다는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성경에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근본을 가르쳐주는 것이 성경입니다. 인생이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해야 하며 어디로 가는가를 정확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 성경입니다. 인생이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천국으로 가야합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어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를 교훈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119:9절 말씀에 보면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젊은이들이 무엇으로 정결하고 올바른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이 죄의 유혹이 태풍처럼 밀려오는 거센 세상의 물결 속에서 빠지지 않고 행실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말씀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나라 법조계에 김홍섭 판사가 있었습니다. 이분은 1915년 전라북도 김제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공부해서 검사와 판사로 일했습니다. 그는 법관이었지만 사랑과 청빈을 생활신조로 삼고, 늘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김홍섭 판사는 재판할 때는 항상 성경과 육법전서를 같이 펴놓고 재판했습니다. 그리고 판결할 때는 꼭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당신이나 나나 모두 죄인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대한민국 법관이 되어 당신을 재판하게 되었으니 널리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판사는 이혼하려고 하는 한 부부의 사건을 맡게 되었습니다. 장롱을 방안에 놓는 위치를 가지고 싸우다가 결국은 이혼하기로 합의를 본 부부였습니다. 세상에는 별스런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아니, 장롱을 왼쪽에 놓으면 어떻게 오른 쪽에 놓으면 어떻습니까?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혼을 하면 항상 따르면 문제가 위자료과 아이들 문제 입니다. 합의점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 자녀양육문제와 위자료 문제입니다. 재판 자리에서 김판사는 그 집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예, 너는 누구와 함께 살고 싶니?”그 아이가 부모의 손을 양손에 붙잡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 엄마, 아빠 두 분 모두와 함께 살고 싶습니다.”

김판사가 그 모습을 보고 재판을 한 달 연기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는 성경 한 권을 건네주며 이렇게 판결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고린도전서 13장을 하루에 세 번씩 100번을 읽고 다음 재판에 임하도록 하십시오” 부부가 집에 돌아가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이 부부는 성경을 읽다가 자신들에게 사랑이 없었음을 깨닫고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침내 그들은 이혼 소송을 취하하고 새롭게 행복한 삶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성경을 가르치고 배워야 할 이유 중의 한 가지입니다. 


3. 성경은 우리의 잘못된 삶을 책망해서 회개에 이르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16절 하반절에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에 보면 책망한다고 했습니다. 

디도서2:15절 말씀,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책망은 언제 받습니까? 바르게 가르침을 받았으나 가르침 받은 대로 살지 못했을 때 책망 받습니다. 우리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잘한 것인가를 성경에서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잘못된 삶에 대해 책망도 성경에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선지서를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거나 자신들의 안일한 삶을 살았을 때 책망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 책망은 오늘 우리들이 그런 삶을 살 때 받아야 할 책망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잘못된 교리나 불법에 빠지지 않도록 미리 경고해 주는 역할도 합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여 하나님의 책망을 잘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책망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망하는 인생이 됩니다.

잠언 1:22-23절에 보면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그래도 하나님은 경고의 메시지로 책망합니다. 책망을 듣고 돌이키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됨을 보여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잠언1:24-25절에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불렀지만 듣지 않았고 손을 펴고 복을 주시려고 했으나 그것을 소망하는 자가 없었고 하나님의 교훈을 멸시하고 책망을 받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시는지 아십니까? 26절에 보면 하나님이 잠언 기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와 책망을 잘 받아 돌아서면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따라서 성경을 부지런히 읽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4. 성경은 우리를 바르게 인도해 주기 때문입니다.

16절 하반 절에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잘못된 길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비뚤어진 것을 바로 세운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준다는 것입니다. 바로 세워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케넌(canon)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바르게 사는 것인지를 모른다면 성경을 읽으십시오. 성경은 나의 삶을 바르게 합니다. 성경은 표준이 되며, 바르기 때문입니다. 

트루만은 미국의 33대 대통령을 지낸 뒤 고향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에서 독서와 봉사로 말년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오래된 도서관에서 그가 책을 보고 있을 때 견학 왔던 초등학생들이 트루만 전 대통령에게 다가가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 공부도 잘했고 지도력도 있었죠?” 라고 물었습니다. “아니야, 정 반대였지. 눈이 나빠 안경 없이는 사물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였고 열등생이었으며 큰 소리에 벌벌 떠는 심약한 아이였어”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까지 되셨어요?” “나는 하나님을 믿었어. 그리고 성경말씀을 늘 읽었지”

성경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좋은 길로 인도해줍니다. 선한 길로 인도해줍니다. 


5. 성경은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기에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의롭게 살도록 가르쳐 줍니다. 의와 불의함을 구별시켜 줍니다. 선악을 분별하는 것을 총명이라고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의롭게 되어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며 총명하게 됩니다. 그리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게 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을 아시지요. 민족 운동가, 계몽가 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고 크리스천이 되고 나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이제 살길은 기독교뿐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정직, 꿈에서라도 진실을 잃었으면 회개하라고 말할 정도 민족이 일제의 압박을 이기고 승리할 길은 기독교 정신, 사랑으로 인한 진실뿐이라”고 했습니다. 

1993년 7월부터 1994년 9월까지 당시 26세였던 전라도 출신이었던 김기환씨 등 일당 7명이 지존파라는 이름으로 5명을 연쇄 살인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살인 공장을 만들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잡혔을 때 저녁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행동대장인 김현양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사람 고기도 먹어 보았다.” “내가 잡혀 죽는 것은 괜찮지만 우리 어머니를 칼로 찔러 죽이지 못하고 먼저 죽는 것이 억울할 뿐이다.” 그렇게 말하면 웃었던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6개월 만에 사형장에서 죽었습니다. 여섯 명 가운데 한 명은 천주교에 귀의했고, 다섯 명은 기독교에 귀의해서 죽을 때 찬양을 부르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나의 잘못된 생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내가 진작 예수님을 만났으면 이런 일은 벌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장기를 기증하고, 어떤 사람은 영치금을 모아서 가난한 죄수들을 다 도와주고, 어떤 사람은 자기를 화장해서 강에 뿌려달라고 하면서 찬송을 부르며 죽었습니다. 여섯 명 모두 각기 다른 일로 멋진 일을 하고 죽었습니다. 

여러분 성경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극악무도한 젊은 청년들을 바꾸어 놓을 수 있었습니까? 성경에 소개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 새사람으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바른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그래서 이 성경에 대해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은 살았고, 나에게 말한다. 성경은 발을 가졌고, 나를 뒤쫓아 온다. 성경은 손을 가졌고, 내 위에 그 손을 얹는다”그러면 이 성경을 어떻게 가르쳐야 합니까? 아니 어떻게 배워야 합니까? 신명기31:11절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가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에게 듣게 할지니”

이 말씀이 기록될 때에는 읽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았던 때이기 때문에 지도자만 성경을 갖고 있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낭독해주어야 했습니다. 

오늘날로 표현하면 읽어야 하는 의미입니다. 성경을 어릴 때부터 읽도록 해야 합니다. 모일 때에 말씀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배울 사람만 있으면 가르쳐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도 좋고 두 사람도 좋습니다. 아니 열 명도 좋고 100명도 좋습니다. 모인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사람이 있으면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르침을 받는 것을 감사하게 여겨야 합니다. 

신명기11:18-21절 말씀,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 /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의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과 같으리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르쳐야 함을 의미하는 표현의 말씀입니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눈썹과 눈썹 사이에도 붙이고 집에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날 때 등 언제든지 항상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하신 사역 활동 중에 대표적인 것이 세 가지입니다. 

마태복음4:23절 말씀,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질병을 치유하셨습니다. 교육과 전도와 치유사역을 하셨습니다. 

어느 가정에 두 자녀가 있는데 밥을 먹을 때 성경 요절을 외우게 하고서 밥을 먹도록 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그런데요 한 아이는 ‘왜 이런 방법으로 해야 하느냐? 왜 이것을 외워야 하느냐? 꼭 이렇게 해야 합니까?’등으로 불평하는데 한 아이는 잘 외우고 밥을 먹는다고 합니다. 불평 없이 말씀을 외우고 밥을 먹는 자녀와 그렇지 않는 자녀가 앞으로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복을 받을지는 두고 봐야할 것입니다만 여러분도 이런 방법을 사용해보지 않으렵니까? 

수련회 때 성경 요절을 외우게 하고 외우지 못하면 밥을 못 먹게 하면 체면이 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다 외웁니다. 그렇게라도 가르쳐야 합니다. 심지어는 바깥문에도 기록하고 문설주에도 기록하여서 들어가며 나오며 보고 읽고 말씀을 배우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름수련회와 성경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가르치고 부지런히 배워야 합니다.

신명기6:7절에 보면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어려서부터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이틀 전부터 성경학교를 시작했는데 얼마나 잘 따라하는지 몰라요. 

공산주의자들이 18세 미만의 아이들에게는 종교 교육을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중국도 교회는 허가하면서도 교회학교는 허락이 안 됩니다. 비공식적으로 하지만 18세 미만은 종교교육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아이들을 성경 공부시킬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18세 미만은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릴 때의 교육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의 사상을 다 습득시켜 고정시켜 놓겠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디모데도 어려부터 성경을 알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도 중요합니다. 학문도 해야 합니다. 기술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성경은 필수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거기에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르게 하고 교훈하며 책망하고 의로 교육하여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지기 때문입니다. 

성경 없는 가정과 성경학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 없는 가정과 성경학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이 없는 가정, 성경의 가르침 없는 가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항상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가정,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딤후 4:5절에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개역개정판- 신중하여, 표준새번역-정신을 차려)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이 종말의 시대에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것은 오직 성경입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든지 부지런히 가르치고 누구로부터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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