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광복절] 해방과 자유 (눅 4:16-19)

  • 잡초 잡초
  • 345
  • 0

첨부 1


해방과 자유 (눅 4:16-19)

  
1910년 우리나라는, 일본의 무력 앞에 합방되고 말았다. 그 후 일본은 식민지정책으로, 한국 사람을 일본의 노예로 만들어버렸다. 일본은 먼저 개명을 강요하여, 우리의 이름을 빼앗았다. 한국인이라는 인식을 완전히 말살시키려고, 우리의 말과 글을 빼앗았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말을 해야 했다. 

또 일본 문자를 써야만 했다. 이를 통하여,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완전히 일본에 예속시켰다. 일본정부는 한국의 청년들을 강제로, 전쟁터에 끌고 갔고, 소녀들은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 노릇을 해야만 했다. 장년들은 탄광으로 공장으로 끌려갔다. 

우리는 싫어 발버둥 쳤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45년 8월 15일, 하나님은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의 승리로, 해방과 자유를 주셨다. 우리는 이름을 되찾았고, 우리말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1948년 8월 15일에는, 우리 정부가 수립되고, 태극기가 하늘에 펄럭였다. 

해방과 자유는, 속박을 체험해 보지 않고는, 그 의미를 알 수 없다. 8월 15일 오늘은, 광복절이다. 우리 민족이 일본의 지배와 압박에서, 해방된 이 날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감격의 날이다. 일본 왕의 무조건 항복으로,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다. 이 해방은 우리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의 역사다. 따라서 광복절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해방과 함께, 외적으로는 해방의 자유를 이루었지만, 영적으로는 죄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참 많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나사렛에서 자랐고, 그 곳에서 사역을 시작하셨다.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읽으려고 섰을 때, (17) 누군가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려서, 책을 펴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셨다. (사61:1-2)의 말씀을,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찾아 읽으셨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오늘 본문 (18-19) 말씀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예수님은 고난당하는 백성에게,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는 내용이다. 예수님은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이 세상에 오신 자신의 목적을 말씀하셨다. 주님은 우리를 해방시키고, 자유를 주시려고 오셨다. 

1. 예수님은 기름부음을 받으신 분으로, 복음을 전하러 오셨다(18上).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자신을 성령으로 기름 부어진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하신다.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메시아(    , 마시아흐)요, 헬라어로 그리스토스(      )이다. 기독교(基督敎)는 그리스도를 한문의 음역이다. 다 같은 말이다.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이제 메시아로 왔음을 알렸다. 

(1)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말은? 
기름을 부었다는 말은, 공식적으로, 합법적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기름부음은 성령님의 임재, 또는 성령의 능력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침례 받으셨을 때, 하나님께서 공식적으로, 구원자로 인정하셨다. (마3:16-17)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고 하나님은 공식적으로 메시아가 되심을 인정하셨다. 

(2) 구약에서 기름부음을 받는 자들은, 선지자, 제사장, 왕이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하나님의 뜻을 통역하여 전하는 선지자, 죄지은 백성을 하나님께 연결시켜주는 제사장, 왕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억울함을 풀게 하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냥 그리스도가 아니다. 유일하신 그리스도(예수아 후 함 마시악              )이시다. 

예수님이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죄 지은 인생을 하나님께 연결시켜 주시며, 만 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죄를 심판하고, 우리의 억울함을 풀어주시는, 3가지 역할을 하시는, 유일한 분임을 보여준다. 기름을 부으신 목적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복음이 무엇인가? (왕하6:24-7:20)을 기억하라. 자기 자식을 잡아먹어야 할 정도로 가장 비참해진 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소식이 바로 복음이다. 그 말씀은 바로, 예수님이 육체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소식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2.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가?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 

여기 가난한 자는 프로토스(      )로, 프톳소(      두려워하여 움츠려들다. 쭈그리다)에서 유래된 말로,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가는, 비참한 사람을 말한다. 

도와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을 말한다. 힘이 없기에, 짓밟히고 억압당하는 사람으로, 보호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말한다. 또 하나님 앞에서, 고통 중에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을 나타낸다.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자들을 말한다. 

(창1:26-28)을 보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 하늘의 새와 가축,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배자로 만드셔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만드셨다. 또한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에덴의 낙원을 준비하셨다. 따라서 아담과 하와는 원래, 가난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기에, 가난이 형벌로 다가왔다. (창3:17-19)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라 하셨다. 

오늘날 아프리카와 북한 등,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보라. 얼마나 비참한가? 예수님은 이 저주를 해방시켜 주시려고 오셨다.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부요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사람으로 오셔서, 가난한 나사렛 목수의 집에서 자랐다. 사역을 시작한 이후로도, 머리를 둘 곳 없이, 가난하게 사셨다. 왜?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형벌을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형벌로써의 가난과 저주를, 예수님이 친히 몸으로 짊어지심으로, 가난대신 축복을, 저주대신에 복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 

잠시 곁길로 가지만, (창1:26-28)의 말씀을 가지고, 엉터리 해석을 하는 이단이 있어 말씀드리겠다. 이단 하나님의 교회는, 장길자가 하나님 어머니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창조했는데,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으니,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라고 말한다. 너무나 무식하고 잘못된 해석이다. 

(창1:26)을 잘 보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했지, 하나님의 형상이 남자와 여자가 아니다. 그리고 (1:27)에는, '그 창조된 사람'이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 우리는 아니지만, 너무도 무식한 그들을 위해, 이런 예를 들어 보겠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키 큰 사람과, 키 적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이 문장이 무슨 뜻인가? 하나님은 키가 크고, 키가 작은, 두 분이라는 해석할 수 있나요? 절대로 없다. 마찬가지다. 엉터리 해석에 빠지지 마시기 바란다. 


(2) 은혜의 해를 전파하려고(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의 은혜의 해는, 이스라엘의 희년을 말한다. 이들이 가나안에 들어온 이후, 하나님의 지시대로, 매 7년마다, 안식년을 거행했다. 

안식년이 되면 땅도, 일하는 종도, 나귀도 모두 쉬어야 했다. 안식년이 7번 지나서, 49년 만에 큰 속죄제를 드리고, 50년이 되면 희년 나팔을 불었다. 희년을 선포하면, 모든 종은 해방되어 돌아가고, 팔아 버린 집이나 전토는, 도로 원주민이 돌려받는, 이스라엘 민족 최대의 경사가 바로 희년이다. 

희년이 되면, 가난으로 팔린 땅이, 원주인에게 돌아가고, 종들은 해방되었다. 포로 된 자들이 석방되며, 빚진 나가 탕감을 받으며, 헤어졌던 가족이 모두 만나, 감격의 눈물과 기쁨의 춤을 추는 해를 말한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이 은혜의 해를 선포하기 위해서 오셨다. 

우리가 일본에 빼앗겼던 모든 것을, 해방과 더불어 도로 찾은 것처럼, 아담이 범죄하여 잃어버린 모든 것을 예수님이 오셔서, 도로 찾아 주셨다는 말이다. 이제는 가난한 자에게는 복된 소식을 눌린 자에게는 자유를, 눈먼 자는 다시 보게 함을, 주님께서 허락하여 주시고, 묶인 자를 해방하는 역사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 속에 나타나도록 하셨다. 

온전한 해방이 이루어지려면, 구원자(    , 메시아)와 구속자(    )가 동시에 있어야 한다. 구원자는 권력이나 능력이 있는 자가, 자기 힘을 발휘하여 구출해서, 해방시켜 주는 자이다. 구속은 법적으로 응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풀어주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은 바로 구원자요, 구속자가 되신다. 


3. 전해야 할 복음은 무엇인가? 

(1) 마음이 상한 자들을 치료하신다. 누가는 히브리어와 헬라어 70인 역에 있는, 이 구절을 생략했다. 

(사61:1中)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상한 자는 완전히 짓이겨진 자, 산산조각난 자, 회복이 전혀 불가능한 자를 말한다. 고치신다(      , 이아오마이)는, 신적인 능력으로, 온전하게 한다는 말이다. 완전히 상하여 회복이 불가능한 자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님은 고치신다. 

어떻게 치료하셨나?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다. 

(2)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전파하라. 

'포로 된 자'는 창으로 잡은 자, 전쟁의 포로를 말한다.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다시 돌아오게 되었던 자들을 말씀한다. 인간은 타락하자 말자, 마귀의 포로가 되었다. 

(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예수님은, 죄의 세력에 포로가 된, 인류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오신 분이다. 

예수님은 무덤 사이에 살고 있는, 귀신들린 사람을 만났다(막5:1-20). 그들은 어느 누구도 당할 수 없게, 사납고 거칠었다. 쇠고랑을 채워도 끊었고, 돌로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혔다. 예수님은 이들을 지배하며 조정하는 군대귀신들을 쫓아내시어, 귀신의 지배에서 해방시키셔서 자유 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절대 자유를 가진 분이기에, 누구에게도 속박 받지 않으신다. 사람은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에, 하나님을 섬기고 살면, 절대 속박 받을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나자, 마귀는, 죄, 불안과 공포, 절망, 질병, 가난, 미움, 죽음 등으로, 파괴적인 세력으로 우리를 포로로 삼았다. 

우리를 포로로 잡아, 꽁꽁 묶어놓고 말았다. 그래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종으로 태어나, 마귀의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 모든 세력을 심판하셨고, 부활을 통해, 완전히 승리하셔서, 자유롭게 만들어 주셨다(엡2:1-7). 이는 우리 스스로의 힘이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유하도록, 해방시킬 힘이 없다. 그러나 우리 위에서,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마음 속에 모시게 될 때,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주신다.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3)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라 

'눈 먼 자'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보지 못하는 자들을 말한다. 이 말씀은 히브리 성경, (사61:1)에서는,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한다고 하였다. 

깊은 지하 굴속에 갇혀 있는 자들, 영적으로 갇혀 있는 자들은, 마치 눈 먼 자들과 같다. 그러나 풀려나면 다시 눈을 뜨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눈 먼 자들이 눈을 뜨고, 소경이 말하고, 듣지 못하는 자들이 귀가 열리는 이적은, 메시아의 표적으로 제시되었다(사35:5). 

예수님은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눈 먼 자들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셨다(요9:39). 인간은 영안과 육안, 두 눈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처음 지음을 받았을 때는, 영안이 열려, 하나님을 바라보고, 영의 세계를 바라보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손을 잡고, 에덴동산을 거닐며 대화를 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영의 눈이 멀어졌다. 그리고 영의 세계를 볼 수 없으므로, 영의 세계와 교제가 끊겨 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로 감각의 노예가 되고, 정욕과 세상의 탐욕의 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신령한 눈이 열리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게 되고,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심을 알게 된다. 

성령님이 보혜사가 되어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알게된다. 또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게 되고, 이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불로 타버리고,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이, 다가 올 진리임을 깨달아 알게 된다. 이와 같은 진리와 지식은, 영안이 열린 사람만이 깨닫게 된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다. 그렇기에 영안이 열린 사람만, 영적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영적인 어두움에서, 완전한 자유와 해방을 허락하여 주셨다. 

(4)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셨다. 

'눌린 자'는 부서지고, 상처받은 자를 말한다. 이 구절은 히브리성경과 70인 역에는 없다. 앞에 압제 당하는 자들의 모습을, 한 마디로 이렇게 설명한 것이다. 

마음이 완전히 짓이겨져, 산산조각난 자들을 말하고, 마귀와 죄의 포로가 되고, 어둠에 갇혀 볼 수 없는 자가 눌린 자다. 이들을 자유자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오늘도 사람들은 병든 감정과, 상처 난 감정에 억눌려, 잘못된 감정과 인격으로, 병들고 파괴된 인격을 형성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쇠사슬에 묶여, 노예처럼 끌려 다니는 사람들처럼, 세상 사람들은, 술의 노예, 담배의 노예, 마약의 노예, 정욕의 노예가 되어서 끌려 다닌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말씀과 영으로, 이 모든 억눌림에서 해방시켜, 자유 하게 하신다.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하신 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참 해방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 죄로 인하여, 마귀의 포로가 되어, 비참하게 울고 있는 우리를 해방시키고, 자유를 주시는 분이다. 

인간은 타락하기 전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지 않았고, 눌리지도 않았다. 사람이 마귀에게 눌려 있으면, 영과 마음과 몸과 생활, 모든 면에서 다 자라지 못한다. 마귀가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눌려 있는 인간의 고달픔과, 질병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지시고, 해방시켜 주기 위해서다. (마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자유 하도록, 해방시켜 주시겠다고 말씀이다. (행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눌린 삶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고, 생명을 얻되 넘치도록 얻으려면, 성령님의 생기로,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오직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모시는 길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예수님은 오시면, 눌린 자를 자유 하게 만들어 주신다. 왜냐하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물리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강한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희생의 대가를 지불했다. 그래서 마귀를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를 허락하여 주시는 분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해방의 기쁨과 자유를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