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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자녀 됨의 축복 (레 9: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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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자녀 됨의 축복 (레 9:22-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줄 아십니까?   성경은 그 자녀 됨의 축복이 얼마나 엄청난지 구약 처음부터 시작해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구구절절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그 자녀 됨의 축복이 얼마나 좋은지 모두 깨닫고 힘 얻기를 바랍니다. 

1. 여러분은 하나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물 떠난 고기가 죽듯이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는 하나님 떠나면 죽습니다.  물고기가 사는 길은 물 만나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려면 하나님 만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만나 살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라고 했으며  “하늘에서 내려 온 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 간 자가 없다(요3,13)”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하늘에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가는 길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지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 다 갚아 주시고 용서해 주셨을 때,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새롭게 열렸습니다. 

(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하나님 만나는 길이 막혀 있었는데, 예수님으로 그 길이 열렸습니다.  
성경은 여러분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말씀합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에게는 생명이 영원히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여러분이 누구인지를 말씀합니다. 생명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것이 복음, 기쁜 소식입니다.  

여러분의 가치는 하나님의 아들을 내어 주고 그의 핏값으로 산만큼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게 귀합니다.  아들과 바꿀만큼 귀합니다. 그래서 그냥 자녀가 아니라 요1,12에 권세까지 주셨습니다. 
 

2. 하나님의 자녀이니 손을 들어 축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약에는 앞으로 이루어질 복음의 예표가 많습니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탈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을 들어가는 것은  세상에서 사단의 종살이 하다가 유월절에 십자가의 흘린 보혈의 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예표입니다.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 죽을 때, 장대에 높이 놋뱀을 달아 올려 쳐다 보는 자마다 살아난 것은  죽음의 권세를 가진 사단에게 유혹받아 죽어갈 때, 골고다 언덕의 나무 장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생명을 얻는 것의 예표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도 예표가 많이 나옵니다.  22절의 속죄와 번제와 화목제를 마칠 때 제사장은 손을 들어 축복합니다.  오늘날 예배를 마치면서 목사가 축복 기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23절에는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회막에 모세와 아론이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백성에게 축복했다고 했는데, 레4,6-7에 의하면 회막에 들어가서는 제물의 피를 지성소 앞 휘장에 7번 뿌리고-이 휘장은 예수님의 피로 갈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향단 네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나오면서 축복한 것입니다.  이 때는 임재하신 여호와의 영광이 모든 이들에게 보여 지도록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불이 제단 위에 올려놓은 재물들을 다 사르면서 열납했습니다.  마치 붉은 인주의 도장을 꽉 찍히듯이 제사장이 축복한 것들에 하나님의 불 도장이 내려서 확증되는 순간입니다.  이 제사장의 축복이 확증의 순간에 백성들은 불이 순식간에 임하니 소리를 지르며 엎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피 흘림이 있는 제사로 죄가 사라져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합니다.  죄인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지만, 용서함 받아 의인이 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을 자격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표현됩니다.  자녀는 당연히 사랑받고 복을 받습니다.  바로 여러분이 그렇게 손을 들어 축복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자, 여러분! 제사장이 무엇이라고 축복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민 6:22-27을 보면 그 축복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구절마다 음미해 보십시오.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제사장의 할 일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하는 것입니다.  목사의 할 일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축복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민수기 시작에 이렇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그 얼굴을 향하고 있으니까,  민수기 끝부분에서는 모압 왕 발락이 발람 선지자에게  고관들을 보내서 회유하고, 또 더 높은 고관들을 보내 돈으로 매수하며 부탁하고 불러 와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저주를 해달라고 했지만 입을 열면 복이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민 23:7-8, 개정) 『[7] 발람이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쪽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8]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발락은 발람을 2번을 부르러 가고, 3번씩 다시 제사를 하면서 저주하라고 했더니 계속해서 축복만 합니다.  소를 잡을 때마다 더 좋은 축복이 나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는 넘어 뜨리려고 할 때마다 더 전화위복이 됩니다.  
축복할 때마다 점점 더 좋아지더니 마지막 4번째 축복은 ‘야곱의 별’ 곧 다윗과 그의 후손이 나와서 열방과 만민을 통치 할 것이라는 예언적 축복까지 합니다.  

(민 24:17, 개정) 『...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궁극적인 완전한 승리가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부르실 때,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하셨습니다. 그래서 실수투성이요, 넘어지기를 잘하는 베드로였지만,  수제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점점 좋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화위복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3. 무한한 축복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서 옵니다. 

제가 너무 긍정적인 소리만 한다구요?  우리들이 처한 현실은 그렇지 않다구요?  다 맞는 것 같은데, 뒤 돌아서 갈 때는 한없이 연약한 자신을 보면서 다시 힘들어 진다구요? 
맞습니다. 여러분의 걱정과 여러분의 현실을 보는 눈은 정확합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무한하고 변함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아기처럼 연약합니다.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습니다. 똥, 오줌도 못 가리듯 사리 분별도 잘 못합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여러분이 아기 부모님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일도 하지 못하고, 돈도 벌지 못해도, 먹고 잠만 자고, 자는 동안에도 싸 놓아도 한없이 사랑스럽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똑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만 하면  그것으로 만족 해 하십니다.

어린아이니까, 그렇다구요?  아닙니다.  집 나간 탕자는 재산을 물러 받아도 될만큼 장성했습니다. 실제로 제몫의 재산을 가지고 집을 나갑니다.  그런데 잘 되기는커녕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의 사랑은 동구 밖에 매일 나가 아들을 기다리는 사랑입니다.  돼지 우리에서 같이 살다시피한 아들의 목을 껴 안고 입을 맞춥니다.  잘못하고 실패해도 아버지의 사랑은 변함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우리 집 애들에게 농담으로 한 말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무엇인가 시원치 않고 잘못하면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도 웃으면서  ‘어디 가서 뉘 집 아들이라고 하지 마라!’

잘못하니까, 아버지 자존심이 상한다 이거지요. 창피하다 이거지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 말이 엄청난 말이잖아요. ‘너 내 새끼 아니다’. ‘너 내 새끼 하지 않겠다.’  ‘너 계속 잘못하면 당연히 받아야 할 사랑을 주지 않겠다.’ ‘어디 가서 나,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생각할수록 끔찍한 말이 더군요.  
그러나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나를 창피하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변함없이 아들이라 여겨 주시고, 그 사랑으로 품어 주시고 받아 주십니다. 

어느새 우리들은 세상의 가치관으로 물들어서 서로를 힘들게 하고 있었습니다.  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도 우리들의 가치를 공부 잘하는 것, 높은 지위에 올라 간 것, 세상이 알아 주는 큰 일을 한 것으로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복음성가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에, 나에게 실망하며 내 자신 연약해 고통 속에 눈물 흘릴 때에” 어떤 때입니까?  세상 현실을 만났을 때입니다.  세상 가치로 평가 당하여 마음이 아프고 무너질 때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십자가 고통 해산의 그 고통으로 내가 너를 낳았으니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단지 아무 것도 하지 못해도 자녀로 보아 주고 단지 그것 때문에 사랑하고 기뻐합니다. 그래서 그 사랑은 무한합니다.  그래서 거기서 나오는 축복은 무한한 축복입니다.  

로마서는 이 복음, 기쁜 소식을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롬 4: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우리가 직원이면 일 잘못할 때, 감봉당하고 쫓겨날 수 있습니다.  무능하고 가치없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인 우리는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고,  때문에 무한한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한 일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  공부 잘 못해도, 돈 잘 못 벌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성과를 가지고 사랑받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사랑받고 축복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가치는 바로 우리들 자신입니다.   하나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시고, 귀하게 보십니다.  
(서연교회 이명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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