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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얼음 냉수 같은 사람(1) (잠 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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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냉수 같은 사람(1)』
          
▶성경본문: 잠25:13

요즘 날씨가 많이 더워졌습니다. 요즘 같이 더운 날씨면 시원한 얼음 냉수, 팥빙수 한 그릇이라도 먹고 싶지 않으십니까? 표정들을 보니 한 그릇씩 먹으면 정말 좋겠다는 그런 표정들이십니다. 
벌써 어떤 분은 침이 고이시죠? 
오늘 말씀을 주의 깊게 잘 듣는 성도에게 팥빙수 한 그릇 사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정말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 말씀을 듣는다면 아마 이 시간이 우리가 먹고 싶어 하는 그 팥빙수보다 더 시원하고 달콤한 은혜의 시간이 될 줄로 믿습니다.  

서두에 얼음냉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먹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 사람들도 살펴 보면 두 가지 종류의 사람으로 나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을 보면 남을 시원케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을 덥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 가지 일들로 짜증나고 불쾌한 사람들의 마음을 마치 더운 여름날 얼음냉수와 같이 시원케 해 주는 그런 사람입니다. 유쾌 지수를 최고로 높여주는 사람 , 우리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이 오면 그 사람 때문에 모두가 즐거워할 수 있고 상쾌해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목욕탕처럼 덥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기분이 좋았다가도 그 사람만 보면 갑자가 더워지고 열 받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운 여름을 더욱 덥게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덥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불쾌지수를 최고로 높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 불필요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오늘 본문 잠25:13절에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시원케 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시원케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아버지의 마음을 시원케 해야 하며 또한 그 아버지의 마음으로 우리 주위의 사람들을,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시원케 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시원케 하는 사람은 간단합니다. 
바로 충성된 사자입니다. 25:13절을 다시 보십시오.. 충성된 사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 그 사람은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충성된 사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사자인데 충성된 사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옆 사람을 축복하면서 인사해볼까요? 충성된 사자가 됩시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말하는 충성된 사자란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여러분, 사자하면 제일 뭐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옛날 전설의 고향에서 이렇게 하고 보았던 까만 갓에 까만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생각나시나요?. 
우리는 까만 옷에 까만 갓이 아닌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뜻을 대신 수행하는 하나님의 사자들 즉 빛의 사자들인줄로 믿습니다.

기억하시죠? 이 찬송말입니니. 빛의 사자들이여 어서 가서.. 어둠을 물리치고  주의 진리 모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추자..
우리는 어둠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수 많은 영혼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고 생명의 빛을 비추어야 할 빛의 사자들인 것입니다.

여러분, 박문수를 아시나요? 그는 조선시대 유명한 어사였습니다. 
여러분 어사가 어떤 사람입니까? 임금의 사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옛날의 유명했던 어사 박문수만 어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어사들이라는 것입니다. 
박문수는 조선의 어사였지만 우리는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어사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어사는 겉보기에는 행색이 초라하고 남루하기 때문에 때로는 사람들이 무시하기도 하고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지도 못하는 사람이지만 실상 그는 결코 사람들이 무시할 사람이 아닙니다. 왜 그렇죠?
그의 품속에는 왕의 권세를 상징하는 마패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마패를 가지고 있는 한 그는 행색이 아무리 초라하고 거지같이 남루해보여도 그는 왕의 명령을 수행하는 왕의 사자인 어사인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는 어디서나 당당하며 용기 있고 진실하게 악의 무리와 싸워 진리를 바로 세워가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어사만 되어도 그토록 당당하고 용기 있게 살아갈진대 하물며 모든 왕의 왕이요 모든 나라와 정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보내신바 된 우리들이 겉모습이 어떠한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삶의 조건이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우리에게 남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이 없어도 남들이 가지고 있는 학식과 명예가 없어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마패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가슴속에 새겨진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너는 내 사람이다. 너는 내 사자이다. 너는 내 자녀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패가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기독교 역사를 이끌어왔던 수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조건이 화려하고 외모가 뛰어난 어떤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2000년 기독교 역사를 이끌어 왔던 믿음의 사람들은 그 심장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새겨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마패를 가졌던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어사로서 지금까지 뿌린 피와 땀과 눈물로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 복음이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어사들입니다. 이 세상의 악한 것들과 부정과 불의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로 잡고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가야 할, 하나님의 사랑을 펼쳐나가야 할 하나님의 사자 ,어사들입니다. 
어사들에게 왕의 권위를 표현하는 마패가 있다면 우리에겐 영원히 잊어버릴 수 없는 우리의 가슴속에 새겨진 예수그리스도라는 보화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렇기에 나의 모습을 보면 초라하고 보잘것없지만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라고 고백하며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그런 왕의 권세와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사자들인데 그 사자라는 직분 자체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시원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사자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충성된 사자만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시원케 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직분을 어떻게 감당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기도 하고 덥게 하기도 한다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25장에 보면 분명히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했던 사람들과 하나님의 마음을 덥게 하여 진노하게 하였던 사람이 나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바로 달란트 비유입니다.  
여러분, 달란트 비유를 너무 잘 아시죠? 
주인공은 주인과 세 명의 종입니다. 주인이 세 명의 종에게 각각 5달란트 2달란트 한 달란트를 남기고 떠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주인이 돌아 왔을때 5달란트와 2달란트 받았던 자는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며 칭찬을 받고 상급을 얻었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주인의 마음을 불쾌하게 하여 바깥 어두운데로 쫓겨나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달란트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싶어 하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를 많이 받았느냐에 관심을 갖고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은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남겼느냐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일을 감당하려고 하는지 보다 그 일들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지 또 그 일들을 통해 무엇을 남기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주신 모든 직분을 그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고 인정하실만한 모습으로 감당하는 충성된 사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그런 충성된 사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명문 평안북도 오산학교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당시 그 동네에는 아주 똑똑한 청년이 살았답니다. 그는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는 청년이었답니다. 그는 비록 집안이 가난해서 머슴살이를 했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열심히 일을 했답니다. 그는 매일같이 주인의 요강까지 깨끗이 닦아놓을 정도로 성실하고 충성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주인은 이 청년이 머슴살이를 하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 학자금을 대주며 평양에 있는 숭실 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켰답니다. 그 청년은 숭실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오산학교 선생님이 되었답니다. 이 청년이 바로 그 유명한 독립운동가요 신앙의 원로이신 조만식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제자들이 인생의 성공 비결이냐고 물 물을 때마다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거든 요강을 닦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일러주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작은 일에 충성된 자는 큰 일에도 충성되고 작은 일에 불의한 자는 큰 일에도 불의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머슴으로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충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떻게 충성할 수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그 직분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서 맡고 있는 일들은 무엇입니까? 
학교나 직장에서 맡고 있는 일들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가정이나 사회에서 맡고 있는 일들은 무엇입니까? 그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입니다. 
그 모든 일이 만약 내 일이라면 우리는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감당해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들은 내가 하고 있지만 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입니다. 그렇기에 그 직분들은 우리 마음대로 함부로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집사의 직분을 맡고 있다면 그 직분을 맡겨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그 마음을 시원케 하는 모습으로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그야말로 집사들의 홍수시대인 것이 분명합니다. 
정말 셀 수도 없는 수 많은 집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 가운데 하나님이 인정하실만한 집사가 몇 명이나 있을까? 
초대교회 일곱 집사와 같이 생명을 걸고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집사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우스개 소리로 집사가 잡사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집사가 무엇입니까? 잡을 집에 일사 입니다. 일을 잡고 있는 사람이 집사입니다. 그런데 집사가 일 잡는 일을 싫어한다면 그 집사는 더 이상 집사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혹자는 그런 사람을 잡사라고 하던데.. 하나님 날 잡아 잡사요.. 난 못해요.. 우리 교회 집사님 가운데는 단 한 사람도 그런 집사님은 없기 바랍니다.
또 어떤 분들은 목사가 먹사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합니다. 어떤 분들은 장로가 장롱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합니다. 어떤 분들은 권사가 권세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합니다. 교사가 고사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홍수가 나면 물이 많아서 사람들이 시원하게 물을 먹고 마실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홍수가 나면 물이 많아도 먹을 수 있는 식수는 더욱 부족하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시대 이름뿐인 집사, 이릅뿐인 장로 이름뿐인 목사 이름뿐인 권사, 이름뿐인 교사가 아닌 그 이름에 걸맞게 땀 흘리고 눈물 흘리며 사랑하며 섬기는 직분자들, 충성된 사자들을 원하고 기다리고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마치 추수하는 더운 날 시원한 얼음냉수와 같은 그런 하나님의 사람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한국교회가 침체되고 영성을 잃어가고 있는 이유는 직분자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직분을 제대로 감당하는 충성된 직분자들이 없어서 일것입니다. 
여러분이 맡고 있는 각각의 직분들은 그저 이름뿐인 직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믿고 맡겨주신 하나님의 직분입니다. 고귀한 직분입니다. 자랑을 위한 직분이 아니요 남을 비판하고 깍아내리기 위한 직분이 아니요 섬김을 위한 직분이며 땀과 눈물로 지켜야 할 거룩한 직분인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안디옥 교회 모든 성도들, 모든 직분자들은 맡겨주신 하나님의 직분들을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모습으로 충성되게 감당하는 신실한 성도들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에서 충성된 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충성된 사자란 과연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오늘 말씀에 보면 이 충성이라고 번역된 원어는 피스티스라고 하며 영어로는 트러스티 워티라고 하는데 이는 믿을만한 가치가 있는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충성되다는 말은 믿을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믿을만한 충성된 사람이겠습니까? 저는 오늘 이 충성의 의미에 대하여 한자로 한번 묵상한 내용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먼저, 충의 의미를 살펴볼까요? 가운데 중의 마음심 
무엇인가에 충성한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마음 중심에 충성하고자 하는 그 대상이 자리 잡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마음먹은 대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충성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게 된다면 그 대상에게 충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나라에 충성한 수 많은 애국지사를 살펴보십시오. 그들의 가슴엔 이 나라와 민족을 향한 뜨거운 애국심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들의 가슴을 열어보면 나라를 사랑하는 뜨거운 피가 철철 흘러넘치고 살아 숨쉬고 있었음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한참전에 회교 자살 특공대가 레바논에 있는 미국 해병대의 기지를 기습 공격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2백여 명이나 되는 미국 해병대원들이 사망했고 많은 수가 부상당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당시 사령관인 4성 장군 '폴 켈리'는 즉시 현장으로 달려가 중상을 입은 해병들을 위로했고 그들에게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강인하기로 소문난 켈리 장군이었지만 훈장을 달아주는 그의 손은 떨고 있었으며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한 군인은 너무 심하게 다쳐서 말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장군은 그에게 다가가 자기가 사령관 켈리 장군이라고 말하며 그를 위로했습니다. 그러자 그 해병은 손가락으로 침대의 시트 위에 무슨 글씨를 썼는데 도무지 알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간호사가 그의 손에 펜을 쥐어 주었습니다. 
'Semper fi …." 
그는 여기까지 쓰다가 손에 힘이 없어 펜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그가 쓰려다 만 글은 "Semper fidelis.(항상 충성하라.)" 였습니다. always faithful 이것은 미국 해병대의 구호였습니다. 이것을 본 켈리 장군은 그만 목이 메어 울고 또 울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Semper fidelis 는 미 해병대의 구호뿐만 아니라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의 구호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나라에 대한 충성도 이처럼 감동적인 것일진대 하물며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충성된 사자가 된다는 것도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애신심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애국심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애신심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애예심은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히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겠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애신심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애예심이 태양처럼 불타오르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그렇게 애신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굴까요? 
바로 단3장에 나오는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입니다. 
그들은 느브갓네살이 만든 금신상에 끝까지 절하지 않음으로 결국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짐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느브갓네살은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겁게 풀푸불을 달구었고 결국 단3:22절에 보면 그 세명을 풀무불에 던져 넣으러 갔던 사람까지 불에 타 죽을 정도로 풀무불은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아무리 뜨거웠던 그 풀무불도 이 다니엘의 세 친구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보다 뜨거울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의 뜨거운 태양같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결국 이 풀무불로부터 그들을 지켜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토록 당신을 사랑하는 그 하나님의 사람들을 그냥 풀무불속에서 한 줌의 재로 비참한 인생으로 끝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목숨을 버리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충성스러운 마음을 지키는 그들을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도록 지켜주셨고 보호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25절 말씀에 보면 이 풀무불 가운데에는 분명 네 사람이 있었는데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다고 말씀하심으로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뜨거운 풀무불가운데 그들과 함께 하고 계셨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을 우리 중심에 갖는 이것이 바로 충성의 시작입니다. 오늘 이 시간 이 애신심을 회복하는 밤이 되길 바랍니다. 잃어버렸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뜨겁게 회복하는 이 시간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기 원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분명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충성된 사자들이 될 수 있을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축복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번 주 수요일 제 이탄  충성의 두 번째 의미 성의 의미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을 맺으면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자 즉 어사로 부름 받은 사람들임을 살펴보았습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어사처럼 행색이 초라하고 여러 환경과 조건이 완벽하지 못할지라도 그러나 우리의 가슴에 새겨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마패가 있음을 기억하고 담대히 전진해 나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은 단순히 그 직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가 아니라 충성된 사자가 됨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충성의 첫 번째 의미 충에 대하여 묵상해보았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 중심에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마음 애신심과 예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마음 애예심이 불타오르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이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회복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또한 이 뜨거운 사랑이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이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아울러 그 뜨거운 마음으로 우리에게 맡겨주신 모든 직분들을 충성 되이 감당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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