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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맹신적 신앙을 극복하자 (히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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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적 신앙을 극복하자 (히 3:1)


여성 운전자와 남성 운전자 중 누가 더 사고를 많이 낼까요? 대개 남성들은 여성이 사고를 더 많이 낸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운전을 못한다는 편견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어떨까요? 경찰청 통계를 보면 여성 운전 면허소지자는 약 38.2%입니다. 그런데 교통사고 발생건수를 보면 여성운전자의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14.9%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교통사고는 남성운전자들이 훨씬 많이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성 운전자들이 사고를 내는 경우가 남성과 많이 다릅니다. 여성전문보험회사가 설문조사를 해 보니까 여성 운전자들 중 27%가 화장을 하다가 사고를 낸 경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주로 마스카라를 바르다가 사고를 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여성 운전자들이 사고를 내게 되는 많은 이유는 다급한 순간 눈을 감기 때문입니다. 많은 여성들이 운전 중 앞에 갑자기 위태로운 상황이 벌어지면 "엄마야!" 하면서 눈을 감아버립니다. 그 결과 사고를 내게 됩니다. 

다급한 순간일수록 눈을 크게 떠야 합니다. 눈을 뜨고 올바로 보고 정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적절한 행동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고를 피하거나 사고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눈을 감아버리면 사고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운전을 할 때 눈을 감으면 안됩니다. 
운전할 때 뿐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눈을 크게 떠야 합니다. 눈을 감고 인생을 살면 인생길을 올바로 헤쳐 나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눈을 감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맹목”(盲目)이라고 합니다. 대개 이 말은 “이성을 잃어서 적절한 분별이나 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맹목적”이라고 할 때 무조건적이나 무분별이나 무비판적과 비슷한 뜻으로 사용됩니다. 한 마디로 이성의 눈을 감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맹목적인 행동 가운데 하나가 “묻지마 행동”입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 설명할 수 없으면서 충동적으로 저지르는 행동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묻지마 투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주식 투자에서 “... 카더라”는 소문을 듣고 다급한 마음에 충동적으로 특정 주를 마구 사들입니다. 부동산 투자에서 “어디 어디가 개발되어 몇 년 뒤에 대박이 난다더라”는 근거 없는 말만 믿고 남보다 먼저 더 많이 확보하려고 부동산을 마구 사들입니다. 

이렇게 “묻지마 행동”을 하는 이유는 이성적인 눈을 감고 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생각하지 않고 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생에 큰 낭패를 보게 됩니다. 두고두고 후회하게 됩니다.

사자성어 가운데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합은 하되 부화뇌동하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논어(論語)의 자로(子路)편에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하고, 소인동이불화(小人同而不和)니라”는 말에서 나온 말입니다. 여기서 화(和)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차이를 존중하면서 조화를 이루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비해서 동(同)은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맹목적으로 남의 의견을 따라 가는 것을 말합니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군자인데 화는 하지만 동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화합은 하되 부화뇌동하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소인배인데 동은 하지만 화는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부화뇌동만 하지 화를 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군자와 소인배의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눈을 뜨고 사느냐 눈을 감고 사느냐의 차이입니다. 다른 말로 생각하며 사느냐 생각 없이 사느냐의 차이입니다. 군자는 생각하면서 상황을 정확하게 분별하고 판단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소신껏 행동합니다. 그러나 소인배는 생각없이 ‘남들이 어떻게 하는가?’, ‘남들이 뭐라고 하는가?’를 의식하면서 시류에 편승해서 따라 행동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눈을 뜨고 살아야 합니다. 맹목적으로 살면 안됩니다.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소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맹신이란 무엇인가

눈을 감고 인생을 살면 안되는 것처럼 신앙생활할 때도 눈을 감으면 안됩니다. 즉 생각없이 분별없이 신앙생활하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잘못된 신앙의 길로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눈을 감고 신앙생활하는 것을 맹신(盲信)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는 맹목적인 신앙이라는 말입니다. 글자 그대로 “눈먼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덮어 놓고 믿거나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한국교회 통계를 보면 기독교인이 860만 정도로 추산됩니다. 그런데 그 중에 약 100만 정도가 이단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인 가운데 약 12%가 이단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교주에게 속아 그야말로 맹신에 빠져있습니다.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기독교 복음선교회의 JMS라고 하는 정명석은 자신을 메시야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여기서 열매는 남자의 성기를 말하고 자신이 생명나무라고 주장합니다. 

바로 이것이 정명석 이단의 섹스 모티브(sex motive)입니다. 그래서 여신도들을 성추행하고서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가르칩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전도할 때 미인들만 전도하라 못생긴 여자는 사탄도 무시한다”고 가르칩니다. 왜 이렇게 가르쳤을까요? 어렵지 않게 그 의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가르침에 속아 그 뒤를 따르는 무리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정명석이 구속 이후의 상황입니다. 정명석은 현재 대법원 최종 판결을 받고 징역 10년의 형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추종자들의 신앙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다. 여전히 그 추종자들은 무한신뢰를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십자가형을 받으신 것처럼 JMS도 지금 고난을 받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섭리 역사를 펴기 위한 고난의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나아가 정명석 교주의 구속과 관계없이 기독교 복음선교회의 활동은 지금도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맹신입니다. 영적으로 눈이 멀어있는 것입니다.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영적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 15: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냥 두라 그들이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예수님께서는 영적 맹인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바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즉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을 지칭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전문가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들입니다. 평생을 하나님의 말씀과 씨름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영적인 맹인이라고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저들은 맹신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저들에게 문제가 무엇입니까? 왜 저들이 영적 맹인이 되었고, 저들이 맹신에 빠지게 됐습니까?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고 형식적으로만 그 말씀을 지켜왔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라는 것만 하고 말라는 것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가 쌓이고 쌓여서 결국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박해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맹신은 꼭 이단에 빠지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상한 종교적 일탈행위를 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교회를 다니면서도 맹신에 빠질 수 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평생 신앙을 지키며 살면서도 맹신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영적 맹인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생각하지 않고 신앙생활하기 때문입니다. 고민하지 않고 신앙생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신앙생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은혜 받고 복을 누리기만을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지금 내 앞에 닥친 문제 해결에만 골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맹신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오늘 본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깊이 생각하라' 는 말은 헬라어로 '카타노에사테' 입니다. 이 말은 '생각을 고정시키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직역해 보면 우리의 생각을 예수님께 고정시키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예수님께 고정시키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 때문에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맹신을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우리가 예수를 깊이 생각할 때 예수님의 두 가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뜻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뜻을 세우고 삽니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고자 노력하며 삽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하면서 자기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고자 노력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뜻이 예수님의 뜻과 다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과 다른 자기의 뜻을 좇아 신앙생활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영적 맹인이 되기 쉽습니다. 맹신적 신앙에 빠지기 쉽습니다.

마 20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시는 장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도중에서 예수님께서 12 제자들에게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벌써 세 번째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부탁했습니다. 주의 나라에서 한 아들은 주님의 우편에 다른 아들은 주님의 좌편에 앉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왕이 되시기 위해 오르시는 줄로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왕이 되시면 자기 두 아들을 2인자와 3인자의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청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경우 주님의 뜻과 우리의 뜻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우리는 영적 맹인이 되기 쉽습니다.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잘못 판단하게 됩니다. 맹신에 빠지게 됩니다.

찬 549장은 독일의 벤자민 슈몰크(Benjamin Schumolk)목사님이 작사를 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목회 도중 과로로 쓰러져 오른 손을 쓰지 못하게 되었고 백내장으로 실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큰 교회를 목회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부부가 심방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집이 완전히 불타고 두 아들은 회재로 숨지고 말았습니다. 잿더미를 파헤치자 그 안에 두 어린 아들 형제의 시신이 있었습니다. 그 두 어린 아들 시신을 부둥켜안고 하나님께 울며 드렸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를 가사로 하여 이 찬송이 만들어졌습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이 목사님은 그토록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주님의 뜻을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고 주님의 뜻을 찾고자 해야 합니다. 오늘 내게 생명 호흡을 주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오늘 내게 평안을 주셨으면 그 뜻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혹 오늘 내게 고난을 주셨으면 또 그 뜻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오늘 내게 출세하여 어떤 지위에 앉게 하셨으면 그 뜻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혹 내게 참담한 실패를 주셔서 바닥에 떨어지게 하셨으면 또 그 뜻이 무엇인지 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의 행동을 깊이 생각하라

사람은 행동하며 살게 됩니다. 그 마음과 생각을 행동으로 나타내며 살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의 사람이라고 하면 우리의 행동은 예수님의 행동과 같아야 합니다. 아니 비슷하기라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저를 비롯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이 예수님의 행동과 많이 다릅니다. 때로는 비슷하기조차 하지 않습니다. 더 문제는 그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그것 때문에 죄송스럽게 생각조차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챨스 쉘돈 목사님이 쓴 “In his step"(예수라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목사님이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에는 목회 도중 겪은 충격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어느 날 설교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자는 내용의 설교입니다. 그런데 마침 그 때 한 실직자가 찾아와 도움을 청했습니다. 설교 준비 중이여서 다음에 오라고 돌려보냈습니다. 주일이 되어 예배 중에 준비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실직자가 설교 도중 예배당에 들어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그리고는 며칠 뒤에 죽고 말았습니다.

이 목사님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깊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때 내가 계속 설교 준비를 하는 것이 옳았던가? 아니면 설교 준비를 그만두고 그 사람을 돕는 것이 옳았던가?” 그러면서 한 가지 마음속에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 목사님의 목회 방향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우들과 그 고민을 함께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교우들에게 제안했습니다. “앞으로 1년 동안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고 그대로 실천합시다.” 처음에는 교우들이 너무 힘이 들어 실패도 많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큰 은혜를 체험하고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교우들의 삶이 바뀌게 되었고 그 교회에 큰 영적 부흥이 일어나게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함부로 행동할 수 없습니다. 생각없이 후회할 행동을 하지 않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맹신적 신앙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아무런 생각없이, 고민없이 교회생활하고 신앙생활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 습관적으로 기계적으로 신앙생활할 때가 있습니다. 또한 때로 시류에 편승하여 부화뇌동하며 신앙생활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깊은 영적 침체에 빠집니다. 때로는 잘못된 영적 흐름에 휘말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런 맹신적 신앙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예수를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뜻을 깊이 생각하고,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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