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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는 우리의 하나님 (시 9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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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우리의 하나님 (시 95:1-7)


천문학자 켈퍼 씨는 천체경을 통해 우주를 볼 때마다 그토록 많은 별들과 태양을 중심으로 정확한 궤도를 도는 별들, 그토록 빠른 속도로 돌면서도 창조 이래 한 번도 충돌 사고 없이 정확하게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동료 중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태양을 중심으로 해서 여러 유성이 궤도를 따라 도는 태양계의 모형을 만들었는데, 마침 그의 친구가 와서 그것을 보고“야, 참 아름답게 잘 만들었는데, 이거 누가 만들었지?”라고 물었습니다. 

켈퍼 씨는“아무도 안 만들었어. 스스로된 거야.”라고 했더니, 그는 켈퍼 씨를 바라보며‘무슨 농담을 하는 거야, 스스로 되다니, 누가 만들었어? 말 좀 해봐?’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켈퍼 씨는 말하기를 “친구여, 하찮은 장난감도 스스로 되지 않거든 하물며 창조 이래 한 번도 충돌 없이 정확하게 도는 저 오묘한 전체들을 만드신 분을 모르겠나? 창조의 위대한 능력과 운행의 위대한 손을 믿지 못하는 자네를 위해서도 하나님은 사랑을 베풀고 계신다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칼발트라는 신학자는“하나님은 알 수 있는 분이지 볼 수는 없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우리들 각자가 누구이며, 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밝히신 귀한 말씀입니다. 

Ⅰ. 우리는 누구입니까?

나를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 때 거기에 합당한 생각과 행동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초등학교 친구의 딸 결혼식이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거기에서 40년 만에 만난 친구들이 여러 사람 있었습니다. 소개를 받지 않았을 땐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소개를 받고 알고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알지 못했을 때는 그냥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서로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본문 3절~5절에 말씀하시기를“대저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위에 크신 왕이시로다 땅의 깊은 곳이 그 위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것도 그의 것이로다. 바다가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만물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물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산과 바다와 육지와 인간을 창조하신 크신 왕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 6절에는“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것입니다. 

또한 6절 서두에“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의 영장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구약성경 예레미야 17장 9절 말씀에 밝히시기를“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라고 하셨습니다. 만물보다 가장 부패한 것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썩어진 쓰레기와 같은 존재가 사람입니다. 쓰레기는 쓰레기장에 버립니다. 부패한 인간쓰레기도 이처럼 버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쓰레기는 모아다가 소각장에서 불태웁니다. 인간쓰레기 소각장도 있습니다. 

그곳이 곧 지옥입니다. 모든 인간은 이 지옥에 버려질 운명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이 은혜를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해 요한복음 3장 16절에 기록하시기를“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하셨습니다. 이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우리를 향해“오라”하신 것입니다. 

와서 지난날 범한 더러운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씻음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만물보다 부패하여 주홍처럼, 진홍처럼 죄악으로 물든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하는 사람은 비록 그의 죄가 주홍이나 진홍처럼 붉을지라도 흰 눈이나 흰 양털처럼 깨끗하게 씻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무엇으로 씻으실까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죄를 없이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가치 없고, 쓸모없는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남달리 자격이 있어서 부름을 받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무 자격 없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이름이 하나님나라 생명록에 기록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지켜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19세기 미국의 위대한 부흥사 무디가 어느 주일, 교회 입구에서 실랑이가 벌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한 거지 소년이 교회에 들어가겠다고 떼를 쓰고 있었고 안내를 맡은 직분자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무디가 그 소년에게 다가서자 직분자들이 만류하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얘는 안 됩니다. 예배분위기가 훼손돼요. 들여보낼 수 없어요.” 그러나 무디는 그 거지 소년의 어깨를 감싸 안고 교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의아해하는 성도들을 바라보며 무디는 강대상 위에까지 그 소년을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설교시간 무디는 그 소년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 소년은 입장불가였습니다. 그러나 저와 함께 오니까 성전안만 아니라 이 강대상 위에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죄인인 모든 인간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남루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런 우리들을 안고 하나님의 보좌 앞까지 가셨습니다. 이 소년이 입은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날 성도들은 평생 동안 잊을 수 없는 구원에 대한 감동과 감격을 받았습니다. 

그렇다 해서 아무나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을 찾을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옵니까?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은 사람만 주님 앞에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 말씀에“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13장 48절 말씀에“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교회에 나와서 보지 못한 하나님께 찬양하며, 기도하며, 아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곧 우리의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면 아무도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아무나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만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역사가 함께하시는 사람이 아니면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기쁨으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내세에 영생을 얻는 것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함께 하셔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시기를“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33) 하셨으며“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20)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 앞에 나온 특권을 입은 사람들이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큰 은혜를 우리들이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은혜에 늘 감사하며, 은혜에 빚진 마음으로 순종하고 헌신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 입은 사람의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Ⅱ.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조금 전 제가 친구만난 이야기를 했듯, 하나님을 깨달아 알고 있는 우리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창조물인 우리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우리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죄 씻음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께 경배해야 합니다.

본문 6절에“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라고 하셨습니다. 경배란 예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영어로 예배를 worship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의 원뜻은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게 가치를 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사용될 때는“최상의 가치를, 최상의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최상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가장 성스러운 모습입니다. 교회의 가장 우선적이며 가장 큰 사명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교회의 최대 사명이 예배라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인 우리들이 해야 할 최대의 사명은 예배인 것입니다.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가난한 가정에 8남매를 둔 부모가 있었습니다. 이들은“하나님을 믿는 백성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며 매일 새벽기도를 다녀와서 자녀들을 깨워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장로와 권사로 교회를 섬기게 해달라고 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새벽기도를 드리기 위해 집을 나섰던 부모는 물에 흠뻑 젖어 되돌아왔습니다. 빙판길에 미끄러져 강물에 빠진 것입니다. 옷에 고드름이 맺힐 정도로 추운 날씨였지만 이들은 몸도 녹이지 않은 채 옷만 갈아입고 다시 교회로 갔습니다. 자녀들의 가슴에 이런 부모의 모습이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자녀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분야 인정받는 사람이 됐으며 부모의 기도 제목대로 모두 장로와 권사가 되었습니다. 특히 이중 한 명은 법무부 장관과 국정원장을 역임한 김승규 장로이고, 또 한 명은 제14, 15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국가조찬기도회 부회장을 역임한 김명규 장로입니다. 또 한 명은 미션스쿨의 교장선생님이 됐고, 또 두 명은 탄탄한 기업의 회장이 되었습니다. 
이들 8남매는 가족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신앙교육이 라고 말했습니다.“향상 큰 비전을 갖고 겸손한 마음으로 봉사하는 신앙인이 되라. 남에게 유익을 주고 선을 베푸는 꿀벌 같은 인간이 되고 이웃 교회와 사회에 덕을 끼쳐라.”이것이 이 가족의 전통적 가르침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대를 이어 예배와 기도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 말씀에“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참된 예배자를 찾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사랑하셔서 존귀하게 하십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신앙인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승리자가 신앙생활의 승리자이며, 신앙생활의 승리자가 곧 인생의 승리자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배를 존중히 여기는 사람은 그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게 됩니다. 영혼이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선 사람은 범사가 잘되며 강건케 되리라 하셨습니다(요한삼서 1:2). 

2.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본문 6절에“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라고 하셨습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존경과 복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며 우리는 피조물이기에 마땅히 존경하며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명기 30장 20절에 말씀하시기를“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복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이 되지 않으면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에 거하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순종하고 복종하라 하심은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들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신명기 10장 12절 말씀에“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하셨습니다.

부모들의 공통된 심정은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주려는 마음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이와 같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그의 자녀들이 축복을 받아 누리며 살기를 바라십니다. 행복하게 살기를 소망하십니다. 그래서 행복의 비결을 기록으로 남겨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방종을 자유로 착각합니다. 이는 사탄의 미혹입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의 경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으면 더 행복할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저주의 길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자신만이 아니라 천추만대에 저주를 물려주는 못난 조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신약성경 누가복음에 탕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집안의 둘째아들이 아버지 슬하에서 살아가는 것을 늘 부자유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는 끝내 아버지께 떼를 써서 자기에 돌아올 유산을 받아 먼 곳으로 갔습니다. 자유를 찾아 마음껏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가 추구한 자유란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곧 방탕함이었습니다. 얼마 후 가진 재산을 다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거지 신세가 되어 남의 집 돼지를 치면서 돼지 먹이인 쥐엄 열매를 먹고 살았습니다. 그나마 흉년이 들어 돼지 쥐엄 열매조차 먹을 수 없었습니다.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딱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 아들은 이때 비로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지난날 아버지 슬하에서 살 때가 가장 행복했던 때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사랑으로 맞이했습니다. 목욕을 시키고, 비단 옷을 입히며, 손에 금가락지를 끼우고, 돌아온 아들을 위해 전치를 베풀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아버지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집나간 탕자는 순종하지 않고 세상길로 나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밖의 삶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입니다. 성공 같아 보이나 끝내 실패하고 맙니다. 행복한 것 같으나 불행의 늪에서 한숨쉬게 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자유의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승리의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행복의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본문인 시편 95편 6절~7절 말씀에“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영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었던 사람은 빅토리아 여왕입니다. 그는 하나님 사랑, 국민 사랑, 나라 사랑으로 일생을 살면서 늘 어려운 사람들을 살폈습니다. 어느 날 여왕이 가난한 과부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과부는 여왕이 친히 왕림하니 너무 황송해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 과부에게 여왕이 물었습니다.“아주머니, 이제까지 이집을 찾았던 손님 중에서 가장 귀한 손님이 누구입니까?”과부는 대답을 했습니다.“ 저에게 가장 소중한 손님은 여왕 폐하시옵니다.”여왕은 실망한 눈빛으로“예수님이 아주머니를 찾은 가장 귀한 손님이시겠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그 여인은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폐하, 예수님은 손님이 아니십니다. 그는 저의 주인이십니다.”여왕은 과부의 훌륭한 신앙에 감탄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는 궁궐로 돌아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주님, 나는 오늘 과부를 위로하러 간 것이 아니옵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천사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천사였습니다. 나의 주! 나의 왕! 예수여! 이 나라에 세세토록 주인이 되시고 이 궁실의 주인이 되소서. 그리고 제 생전에 이 왕관을 주의 발 앞에 드리며 살게 하소서.”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나의 생명은 주님의 것입니다. 나의 자녀도 주님의 것입니다. 나의 사업, 나의 재능, 나의 재산도 주님의 것입니다. 오늘 내게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앙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사람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사랑이 머물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멕시코의 쿠이캐택 홍인종이 쓰는 예배라는 말은 개가 주인을 알아보고 꼬리를 젓는다는 말과 어근이 같다고 합니다. 한 가지 차이점은 예배의 경우는 꼬리를 젓는 것이 개가 아니라 사람인 것입니다. 개가 주인을 알아보고 기뻐하며,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하듯, 하나님께서 나를 비롯한 만물의 주인임을 알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살고자 다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성도들의 가장 소중한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만 할 수 있는 특권이며 특징입니다. 

예배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가장 아름답고 성스러운 모습니다.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뿐만 아니라, 예배를 통해 생명의 양식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깨달은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 이 말씀이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게 됩니다. 행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더없이 소중히 여기며, 예배를 위해 온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지혜롭고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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