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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시 1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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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시 19:1-14)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는 한마디로 신비의 세계입니다.  창조세계의 신비로움은 크게 3가지 영역에서 나타납니다.  자연과 우주와 그리고 인체입니다.  모두가 신비롭지만 무엇보다도 인체가 참 신비롭습니다.  내 몸을 보면서 창조의 신비를 깨닫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하나님을 믿는 동기가 됩니다.  보면 볼수록 너무도 놀랍고 신기한 것이 인체의 구조입니다.  우리 몸에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기관이 없고, 우리 몸의 모든 지체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었고, 상호보안과 대체가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위는 섭취된 음식물을 저장하면서 일부 소화액을 분비하고, 음식물을 잘게 부수어 죽처럼 만든 후에 십이지장으로 내려가게 하는 기능을 합니다.  그런데 위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요즘 위암 수술 등으로 위를 잘라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혹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습니다.  하지만 인체의 신비는 놀랍습니다.  위가 없어도 위를 대체하는 기관이 발달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입과 소장이 그것을 대신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사람이 눈이 나쁘면 다른 기관이 발달합니다.  시각장애인들은 손의 촉각과 귀가 매우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두운 곳에서는 눈이 좋은 사람 보다 훨씬 물건을 잘 찾습니다.  크로즈비 여사는 평생 소경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무엇보다도 귀가 발달이 되었습니다.  듣는 것을 잘했고, 늘 듣기를 즐겨했습니다.  어디든지 그녀는 들려오는 소리에 민감했고, 그곳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것이 그의 신앙과 삶에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노래에는 '보는 것'과 함께 '듣는 것'도 매우 강조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으로 삼은 노래도 바로 그런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녀는 주의 음성을 듣는 것이 가장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평생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이제 우리도 영의 귀가 열려야 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통해 성숙한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음성은 무엇을 통해 오는 것일까요?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는 통로가 무엇일까요?  본문을 통해 그것을 함께 생각하며 살펴보기 원합니다.

첫째는 자연입니다.  

오늘 우리는 시편 19편을 함께 읽었습니다.  이 시는 다윗이 지은 시편23편과 함께 널리 알려진 시입니다.  이 시는 평생 다윗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 시는 무엇보다도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시를 선포합니다.  1절부터 6절까지에 먼저 말하는 것이 바로 ‘자연의 노래’입니다.  1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자연은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선포하고 전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자연을 통해 전하려는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간이 자연을 보면서 하나님을 알고, 신앙을 배우고, 자연 앞에 자기를 발견하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1:20)  자연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을 보면서도 인간은 얼마든지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을 보면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고, 자연을 섭리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자연을 통해 나의 작음을 알고 인생의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자연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인생을 배우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더 알아 가야 합니다.

요즘 시대는 더욱 자연이 몸살을 앓고 아프다고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구촌에 이상기온이 이어집니다.  우리나라도 지난주간 폭염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런 때에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연의 질서가 파괴되어 점점 마지막 때를 알리는 경고의 소리입니다.  이제 믿음의 귀를 열어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자연은 주님의 음성을 전하는 우선적인 통로입니다.  날마다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큰 깨달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말씀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자연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 통로임을 알려줍니다.  7절부터 10절까지에서 이것을 강조합니다.  여기에 보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다양하게 말합니다.  율법, 증거, 교훈, 계명, 도, 규례 등으로 설명합니다.  특히 다윗은 말씀을 자연과 대비하여 더 특별한 하나님의 계시임을 강조합니다.  자연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아 감동케 하고, 하나님과 인생을 배우게 하는 통로가 되지만, 말씀은 더 나아가 특별한 계시임을 선포합니다. 

성경이 기록되기 전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직접 사람에게 임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기록된 이후, 우리는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소리를 듣습니다.  보통 성경은 기록된 문서로서 하나의 책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순한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보통 책을 의미하는 ‘북(Book)’이라고 말하지 않고, ‘바이블(Bible)'이라고 부릅니다.  바이블이란 말은 라틴어의 ’비블리아(Biblia)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어의 ‘비블로스(biblos)에서 유래된 말로서 ’책‘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비블로스는 고대시대의 필사 재료였던 파피루스, 즉 종이 풀의 줄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성경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책임을 알려줍니다.  성경만큼 오래되고, 성경만큼 시대와 역사의 고전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그냥 ’Bible‘ 이라고 부르지 않고 ’The Bible' 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곧 성경은 책 중의 책이고,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일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성경을 ‘The Holy Bible'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유일하면서 거룩한 책입니다.  왜 성경이 거룩할까요?  그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단순한 보통 책이 아니라 가장 오래된 책이요,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책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만이 진리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17:17)

우리가 믿음의 사람으로 한 시대를 살아갈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당연히 믿음입니다.  이미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되었지만, 이제 더 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은 어디서,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지 않을 때가 개인과 공동체의 큰 비극입니다.  그래서 아모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8:11-13)

성경만이 사람을 살립니다.  성경이 우리를 소성케 하고, 환란과 시련의 때에 극복하는 힘이 됩니다.  그래서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치고 실패한 사람이 없었고, 말씀에서 벗어난 사람치고 궁극적인 성공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다시 말씀을 사랑하십시오.  말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말씀대로 살아보십시오.  분명 말씀은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를 소성케 하고, 지혜롭게 하고, 마음을 편하게 하고, 눈을 밝게 할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기를 소원합니다.

셋째는 영혼입니다.  

사람은 육체와 함께 영혼이 있습니다.  영혼이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자연과 말씀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들어도 궁극적으로 영혼이 듣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본문은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계속되는 말씀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여기에서 다윗은 경고를 받는다, 지킨다, 자기 허물과 죄를 깨닫는다고 말합니다.  죄가 자기를 주장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정직하게 살기를 사모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소원합니다.  

여기에서 다윗은 무엇을 고백하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영혼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듣는 자의 신실한 고백입니다.  그는 자연과 말씀을 통해 확실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이제 영혼이 반응을 일으킵니다.  아무리 자연과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와도 영혼이 소리를 듣지 못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소리를 못 듣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못 듣는 것도 아닙니다.  영혼에서 주님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혼의 소리까지 들어야 합니다.  믿음의 길은 지성이나 감성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영성까지 가야 합니다.  영성이 무엇입니까?  자연과 말씀을 토대로 내 영혼이 하나님의 소리,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바로 그럴 때 자연도 새롭고, 말씀도 힘이 있습니다.  바로 그럴 때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압니다.  바로 그럴 때 상처가 치유됩니다.

한 사람 선교사에게 영혼을 통해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태국 땅으로 갔고, 거기에서 신실하게 사역하며 선교센터를 완공했습니다.  거기에는 태국 땅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도 영혼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헌당예배를 드리며 감격하고 헌신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앞으로 그들의 헌신을 통해 많은 영혼이 주께로 돌아오고, 선교센터를 통해 태국에 큰 바람이 불어 올 줄로 믿습니다.

이어령 교수가 지은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어령 교수는 문화부장관을 역임하고, 서울대와 이대의 석좌교수로서,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주의자입니다.  그는 성경을 알고, 읽고, 때론 가르치기도 하였지만 예수님을 영접한 크리스천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아 주님의 제자로 살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딸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우수한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 검사, 판사가 된 딸입니다.  그의 딸은 인생의 어려운 때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을 영접한 이후 딸은 누구보다도 먼저 아버지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어령 교수는 아직 지성에서 영성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딸에게 시련이 닥칩니다.  딸은 갑상선암이 생겨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옵니다.  게다가 딸의 아들은 특수자폐아동으로 판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딸에게 망막이상이 생겨 실명의 위기를 맞습니다.  

이런 딸을 너무도 마음 아프게 지켜보던 아버지는 어느 날 하나님께 딸을 낫게 해주시면 예수를 믿겠다고 다짐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그는 교회에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눈물로 감동적인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가 세례를 받은 것이 한국사회에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신문과 잡지에서 '이성을 넘어 영성으로'라는 제목으로 글이 실렸습니다.  그가 아직 지성에 머무를 때 쓴 유명한 시가 있습니다.  바로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입니다.  

그 내용은 하나같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는 소원입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에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 믿고 싶지만 믿지 못하고, 아니 믿어지지 않는 고백입니다.  그러던 그가 영혼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사람이 된 이후 그는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2'를 지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닙니다/ 어렴풋이 보이고 멀리에서 들려옵니다/ 어둠의 벼랑 앞에서/ 내 당신을 부르면/ 기척도 없이 다가서시며/ '네가 거기 있었느냐/ 네가 그동안 거기 있었느냐'고/ 물으시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달빛처럼 내민 당신의 손은/ 왜 그렇게도 야위셨습니까/ 못자국의 아픔이 아직도 남으셨나이까/ 도마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나도/ 그 상처를 조금 만져볼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혹시 내 눈물방울이 그 위에 떨어지더라도/ 용서하소서/ 아무 말씀도 하지 마옵소서/ 여태까지 무엇을 하다 너 혼자 거기 있느냐고/ 더는 걱정하지 마옵소서/ 그냥 당신의 야윈 손을 잡고/ 내 몇 방울의 차가운 눈물을 뿌리게 하소서"

그는 영혼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지성인으로서 자연을 노래하고, 말씀도 가까이 했지만, 아직 영혼의 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영혼에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을 알고, 말씀을 아는 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자연과 말씀을 통해서만 아니라, 내 영혼에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영혼의 소리를 듣는 자만이 진정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나의 허물과 죄를 깨닫고 몸부림치며 살아갑니다.  다윗처럼 자신이 하나님 앞에 티끌과 같은 존재임을 압니다.  크로즈비 여사처럼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삽니다.  그분의 위로와 사랑을 가장 큰 힘으로 알고 곤고한 인생을 평안과 기쁨으로 나아갑니다.  이제 영혼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믿음의 길로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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