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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창 2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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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창 28:10-22) 
 

한 여자가 옷을 살 때 남편에게 허락을 꼭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하루는 백화점에서 그만 너무 비싼 옷을 샀습니다. 그리고는 남편에게 싫은 소리를 들을까 봐 애교를 부리며 말했습니다. “여보, 이 옷 봐. 너무 예쁘지? 사실 당신과 의논한 후 사려고 했는데 마귀가 앞에서 유혹하면서 ‘와! 멋지다. 이건 당신의 옷이다. 당신을 위해 만든 옷이다. 빨리 사라. 빨리 사라’라고 해서 내가 샀어요.” 그러자 남편이 말했습니다. “왜 예수님처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지 않았소?” 아내가 대답합니다. “했지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니 ‘뒤에서 봐도 역시 예쁘다.’라고 해서 할 수 없이 샀어요.” 

우리는 지금 사도 바울처럼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 안에 거하시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담대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설교에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야곱은 지금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눈이 어두운 아버지 이삭이 형 에서를 축복하기 위하여 별미를 준비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부모의 축복이 중요합니다. 성경에 보면 이상하리만치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축복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야곱은 아버지의 축복기도를 받고 싶었습니다. 부모님들은 자식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자식이 잘 못했어도 함부로 감정대로 말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잘 못했어도 자녀를 축복해야 합니다. 자녀를 향해서 축복의 소리를 하면 자녀의 미래는 축복된 미래가 될 것입니다. 자녀를 향해서 저주의 말을 한다면 자녀의 미래는 저주스러운 미래가 될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너는 하나님의 손에 있단다. 하나님이 너를 도와주시니 너는 잘 될꺼야”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를 통해서 아버지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이고 형이 받아야 할 축복을 받아냈습니다. 그 일로 형 에서는 동생 야곱을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에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야곱을 죽일 생각을 했습니다. 이를 눈치 챈 야곱은 형의 칼을 피해서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합니다. 
야곱은 도망가던 길에 루스라는 곳에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꿈에 보니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3-15)

야곱이 잠에서 깬 후에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라고 고백하고는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야곱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잠에서 깨어난 야곱이 가장 먼저 한 말이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기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가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1. 고난 중에도 함께 하십니다.

야곱이 그동안 살아온 인생에 있어서 이 사건은 가장 힘든 상황입니다. 아버지 집에서 편히 살던 그가 형과의 문제로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주막 하나도 만나지 못하고 길에서 돌을 베개하고 잠을 자는 상황입니다. 그는 한 번도 어머니 품을 떠나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의 인생의 경험 중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하심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야곱이 당한 이 고난은 야곱에게 유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은 고난도 유익입니다. 시 119:71에서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 말씀을 직접 들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환상을 보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체험한 것이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부잣집 아들로 많은 종들에게 섬김을 받을 때는 체험하지 못한 하나님을 그가 당한 큰 고난 속에서 체험했습니다. 야곱의 일생을 연구해 보면 어렵고 힘들 때마다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고난은 유익입니다. 

서울대 출신의 유명한 작가 한 분이 눈병으로 시력을 잃게 되었는데, 의술로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었습니다. 그 당시 건성으로 교회를 다니던 그의 마음에 ‘내가 시력을 완전히 잃기 전에 성경을 한 번 다 읽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성경을 다 읽을 때까지는 제 시력을 지켜 주세요.”라고 기도하며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경을 읽는 동안에 눈이 점점 밝아지고 깨끗하게 치료된 것입니다. 만일 그분이 시력을 잃을 위기가 없었다면 그는 영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종교생활만 하다가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고난이 찾아오니 소경이 되어 가니 모든 것을 내러놓고 하나님만 바라보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눈이 치료되는 기적을 체험을 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이어령 교수가 최근에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분이 기독교인이 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던 것은 가정에 찾아온 고난 때문이었습니다. 이어령 교수의 딸 민아가 눈에 이상이 생겨서 실명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어령 교수는 딸이 있는 하와이로 갔습니다. 그리고 딸이 가는 교회에서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서원기도를 하기에 이릅니다. “만약 민아가 어제 본 것을 내일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 얼굴을 내일 또 볼 수만 있게 해주신다면, 저의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나이다. 

아주 작은 힘이지만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글을 쓰는 것과 말하는 천한 능력밖에 없사오니 그것이라도 좋으시다면 당신께서 이루고저 하는 일에 쓰일 수 있도록 바치겠나이다.” 하나님은 그가 고난 중에 드린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기적처럼 딸의 눈은 원래상태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세례를 받고 점점 더 깊이 지성에서 영성의 세계로 발을 들여 놓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고난 중에 함께하셨습니다. 

너무 편하고 안전한 것만 좋아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은 고난도 씹어 삼킬 수 있는 영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고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편안한 것이 좋기는 하지만 결코 유익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 수명은 47세였다고 합니다. 지금 제 나이 정도면 조선시대 왕들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왕들이 일직 죽었던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과로와 주색에 빠져 산 것이 주원인이었다고 합니다. 그 외에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은 운동부족입니다. 식사도 궁녀들이 가져다주고 그들이 먼저음식 맛을 봅니다. 세수도 궁녀들이 시켜 주었기 때문에 운동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왕의 삶은 섬김을 받기만 했지 몸을 놀려 남을 섬길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편하고 좋은 것처럼 여겨졌겠지만 단명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편안한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어려운 과정을 통과할 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다니엘의 세친구가 평소보다 7배나 되는 풀무불 속에 들어갔을 때 주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할 때도 주님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나의 광야, 나의 빈들에도 주님은 함께 하십니다. 지금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고난 중에 있는 나와 함께 하십니다. 

2. 사닥다리를 통해서 함께 하셨습니다(12절).

야곱이 꿈에 보니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는 그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고 하나님은 그 위에 서 계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자는 천사를 말합니다. 그리고 사닥다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들을 연결해 주는 사닥다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예수님께서 빌립과 나다나엘을 만나는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나를 따르라.”라고 하시니 빌립이 예수님을 따라가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줄 알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고 나다나엘에게 달려갑니다. “나다나엘! 모세의 책에 기록된 메시아를 만났어. 나사렛 예수가 바로 그분이야. 어서 가서 만나.”, “쓸데없는 소리 말아. 그 나사렛 시골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어?”, “아니야, 이 사람아. 가보면 알아.” 그래서 빌립이 나다나엘을 데리고 예수님께 갑니다. 

나다나엘을 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라! 이는 정말 참 이스라엘 사람이로다. 그 속에 간사함이 없구나.”, “처음 보시는 분이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 “빌립이 너를 찾아가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내가 보았다” 나다나엘이 충격을 받습니다. 나다나엘은 ‘아무도 없는 들에서, 무화과나무 밑에서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기도하는 나를 보았다면 이분이 하나님이시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주님이 나다나엘의 고백을 들으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그렇게 놀라고 나를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여기서 ‘인자’는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창세기 28장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과 똑같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오늘 본문에 하늘 문이 열리고 그 사닥다리를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예수님 사닥다리에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입니다. 
이 본문을 보면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천사는 날개를 가지고 있으니 사닥다리가 필요 없습니다. 날개가 있으니 날아서 오르락내리락하면 됩니다. 그런데도 사닥다리를 통해서만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든 하나님 편에서 사람에게 찾아올 때든 예수님을 통해서만 왕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닥다리를 오직 하나만 보여주셨습니다. 만약 사닥다리가 여러 개라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도 다양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른 길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길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사람들은 다른 길도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아무리 확고하게 믿는다 할지라도 오직 한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닥다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3. 천사로 함께 하셨습니다. 

12절에 보면 천사를 ‘하나님의 사자’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사자라는 말은 하나님을 대신한 입이요 손이요 발이라는 말입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하나님이 하시고 싶은 말씀을 말하고 하나님이 하시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천사입니다. 그러니 천사가 함께 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천사는 하나님의 사자이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하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에 천사가 하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돈 많은 사람이 자기 아들집을 수리하기 위하여 기술자를 샀습니다. 기술자에게 돈을 주며 아들집을 수리 했습니다. 일은 기술자가 했는데 아들은 기술자에게 감사를 표현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감사를 표현합니다. “아버지 집을 수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기술자는 아버지의 대리자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천사는 능력이 있습니다. 시 103:20에서는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천사들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능력이 있는 천사들이 우리를 위하여 일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히 1:14을 보면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천사들을 보내신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을 섬기라고 보내신 것입니다. 
마 18:10에 보면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그들의 천사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수호천사의 개념이 나온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섬기라고 보낸 천사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항상 뵈옵는다고 했는데, 이것은 고대 절대군주의 왕궁을 연상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누가 왕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까? 왕이 신임하고 사랑하는 신하들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을 만큼 영광을 부여받은 존재들이 지극히 작은 자들을 돕고 지키는 일에 동원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그 소자들을 귀하게 여기시고 챙기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들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4. 복주시기 위하여 함께 하셨습니다.

13-15절을 보면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다섯 가지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무슨 복을 약속하셨습니까? 첫째 땅에 대한 약속입니다. 둘째, 자손에 대한 약속입니다. 셋째,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넷째,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다섯째,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사실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행한 불신앙적인 행동을 생각한다면 마땅히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에서를 축복하려고 하니 야곱은 에서의 옷을 입고 에서인 척 하여 형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리고 형과 심각한 대인관계의 문제가 발생하여 도망치고 있는 중입니다. 축복보다는 책망을 받아야 할 입장인데 책망은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시고 축복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의 행위와 상관없이 그를 택하여 하나님의 백성 삼아주시고 그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을 이루어 나가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 십니다.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할 수만 있으면 은혜와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만들자마자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창 1:28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노아가 홍수 후에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복을 주셨습니다. 창 9:1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자마자 복을 주셨습니다. 창 12:1-3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인간에게는 복입니다. 창 26장에는 이삭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있어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 39장에 보면 세 번이나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요셉이 형통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왕하 18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왕과 함께 하셔서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고 앗수르 왕의 압제로부터 자유했다고 말씀합니다. 사 41:10에 보면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고 붙들어 주시기 위하여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하여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5. 어디든지 함께 하셨습니다(16절).

야곱은 아버지 이삭이 있는 브엘세바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기가 있는 루스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꿈을 꾸고 나서 ‘하나님께서 브엘세바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여기도 계시구나’라고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들 중에도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교회에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평일에 내 가정, 내 직장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경건한데 집이나 회사에서는 아무렇게나 살아버립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를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계십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분은 변함없이 내 속에 계시며 내 곁에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모시고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실 부부는 부모보다 더 가깝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 앞에서 발가벗고 놀지만 나이가 들면 그렇게 못합니다. 그런데 부부끼리는 발가벗고 춤을 춘다 해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부부는 잘 살아야 됩니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20대 부부는 포개서 잔답니다. 옆에 누워 있는 것도 아까워서랍니다. 그런데 30대에 접어들면 손잡고 자고, 40대는 손 놓고 떨어져 자다가 50대에 들면 서로 돌아누워 자고 60대가 되면 남편은 이 방, 아내는 저 방에서 잔답니다. 

그러다 70대가 되면 한 사람은 방에서 자고 한 사람은 산에서 잔답니다. 사랑의 불이 자꾸 꺼져서 그렇게 된답니다. 부부는 싸워도, 80, 90이 되어도 한 방을 써야 하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부부는 한 몸입니다. 부부는 세상 누구보다 가까운 관계입니다. 여러분은 부부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부부보다 더 가까운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입니다. 부부는 한 방에서 잠을 자는 사이지만 하나님은 믿는 자 속에 와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며 사는 것을 임재의식 속에서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임재의식으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하며 담대하게 삽시다. 

요한 웨슬레는 임종할 때 기력이 쇠하여 말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잔잔히 입을 열었습니다. “모든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아는 것이네” 얼마 후에 웨슬레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모든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라네”라고 말하며 평화롭게 임종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내가 이긴다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골리앗이 공격하고 사울 왕이 공격해도 넘어지지 않고 섭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삼상 17:47절에 다윗이 말합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 영적 전투도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모든 전쟁이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를 공격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편이십니다. 우리를 이기게 하시는 분입니다. 
모세를 바로가 공격하고 고라와 250명 마귀의 도구들이 공격해도 결국 모세가 승리했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고라와 250명 족장들이 모세를 공격할 때 모세가 괴로워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로 다 태우시고 모세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요셉의 형들과 보디발 장군의 부인이 요셉을 공격했으나 요셉은 망하지 않고 결국은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니 그들이 요셉 앞에서 벌벌 떨었습니다. 결국 그들이 요셉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입니다. 삼하 8:6에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삼하 8:14에도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하나님께서는 나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기게 하신다.” 이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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