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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민족의 흥왕은 오직 하나님께 (대하 24: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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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흥왕은 오직 하나님께 (대하 24:17-25)


솔로몬이 죽고 이스라엘 왕국이 남과 북으로 나뉜 후 남 왕국 유다의 왕위는 르호보암, 아비야, 아사, 여호사밧, 그리고 여호람에게로 계승되어갔음을 알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대로 다윗의 자손들이 대대로 왕좌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악한 왕 여로보암과 지극히 악한 왕 아합에 이르기까지 일찍부터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기울었던 데 반해 남 왕국 유다의 왕들은 비교적 그들의 조상 다윗의 길을 따르려고 노력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여호람이 왕이 되어서는 다윗의 길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호람의 아버지 여호사밧만 해도 역대기 기자는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그가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더라.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거하였더라.”(대하17:3-6) 그런데 여호람에 대한 역대기 기자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대하21:6) 그 결과는 여호람이 그때까지의 왕 중에서 가장 잔혹하고 그 자신 또한 비참한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 여호사밧 왕이 죽고 그를 이어 왕이 되자 자기 아우들에게 선왕이 나누어주었던 성읍과 금은보화들을 다 빼앗았을 뿐 아니라 모든 아우들을 죽여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 죄 값을 치러야 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과 아라비아 사람들에 의해 막내아들만 제외하고는 자기의 모든 아들들과 아내들을 잃고 말았으며 그 자신 창자가 빠져나오는 중병에 걸려 죽고 말았습니다. 왕위에 오른 지 팔 년 만에 그가 죽었을 때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았고 그에게 분향하는 사람도 없었으며 열왕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첫 번째 왕이 되는 치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여호람이 조상 다윗이 걸은 길, 하나님의 길을 버리고 아합의 길을 걸은 결과가 그 당대의 비극으로 그친 것이 아닙니다. 그의 몇 대 자손에 걸쳐 이어진 것을 우리는 봅니다. 

여호람이 자기 조상 다윗이 걸은 하나님의 길을 버리고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들의 길로 행하며 아합의 집과 같이 한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그가 아합 왕의 사위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아내 아달랴는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요(대하22:2) 아합의 딸이었습니다. 여호람이 죽자 하나님께서 다윗과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하여(대하21:7) 살려놓으신 여호람의 막내아들 아하시야가 왕위를 계승했습니다(대하 22:1). 이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합의 딸인 그의 모친 아달랴가 그를 꾀어 악을 행하게 했기 때문입니다(대하22:3). 역대기 기자는 “그가 패망하게 하는 아합의 집의 가르침을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아합의 집 같이 악을 행하였더라.”(대하22:4)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하시야는 아합 집안과 혼인한 관계로 그들과 동맹하고 왕래하다가(대하22:5-6) 하나님께서 아합 집안의 멸하시기 위하여 기름 부어 세우신 자 예후 앞에 잡혀가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대하22:27-9). 

아들 아하시야가 죽자 그 어미 아달랴는 자기가 왕위에 오를 야욕을 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거머쥘 왕권의 계승을 주장할 만한 위치에 있는 모든 왕족들을 다 죽여버립니다(대하22:10). 거기에는 죽은 아들 아하시야의 아들들 즉 자기 자신의 손자들까지 다 포함되었습니다. 오직 죽은 아하시야 왕의 누이이고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가 몰래 빼내 유모와 함께 침실에 숨겨 살린 간난아이 요아스 하나만 빼고는 몰살을 당한 것입니다(대하22:11). 

이렇게 해서 북 왕국 이스라엘 아합 왕의 딸 아달랴가 남 왕국 유다의 왕좌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대하22:12). 다윗왕가의 왕권계승에 육 년간의 공백이 생긴 것입니다. 이 육년간의 공백 기간은 북 왕국의 거짓 종교와 혼란이 남 왕국 유다를 지배하며 북 왕국과 남 왕국 사이에 영적으로 별 차이가 없어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꺼져가는 촛불과 같았던 다윗왕조가 다시 살아난 것은 여호야다라고 하는 제사장의 지도력에 힘입어서였습니다. 왕위찬탈자 아달랴가 남 왕국 유다를 다스린 지 육년이 지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다윗왕가의 유일한 피붙이 요아스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제사장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왕위에 올리기 위한 거사를 단행합니다. 여호야다는 다윗의 자손으로 유일한 왕자인 요아스가 즉위하는 것이 마땅함을 설득하여 백부장들과 레위인들과 족장들을 각지에서 불러 규합하고 성전과 왕궁을 장악한 후 철통같은 호위 속에 어린 왕자 요아스를 성전으로 인도해 내어 면류관을 씌우고 자기의 아들들과 함께 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웁니다(대하23:1-11). 그리고 이 거사를 알아채고 달려와 옷을 찢으며 “반역이라.”고 소리지르는 아달랴를 성전에서 몰아내고 처단함으로써 정권교체를 완벽하게 마무리합니다(대하23:12-15). 

여호야다의 꾸데따는 정통 유다 왕조를 복구했을 뿐 아니라 성전예배를 회복시켰습니다. 여호야다는 모든 백성과 왕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이 되리라.”는 언약을 세우게 합니다(대하23:16). 이에 온 국민은 바알의 신당으로 가서 그 신당을 부수고 그의 제단들과 형상들을 깨뜨리며 그 제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을 죽입니다(대하23:17). 여호야다는 성전의 직원들을 세워 레위 제사장의 수하에 맡김으로써 성전의 제사와 기능이 회복되게 합니다(대하23:18). 

또 문지기를 성전 여러 문에 두어 무슨 일에든지 부정한 모든 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성전의 성결함을 유지되게 합니다(대하23:19). 그는 또 백부장들과 존귀한 자들과 백성의 방백들과 그 땅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왕을 인도하여 여호와의 전에서 내려와 왕궁에 이르러 왕을 나라 보좌에 앉힘으로써 모든 백성이 즐거워하고 성중이 평온하게 했습니다(대하23:20-21).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있는 동안 요아스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습니다(대하24:1). 그는 백성에게서 돈을 거두어 하나님의 전을 수리하여 이전 모양으로 견고하게 유지하는 일에도 대단한 열의를 보였습니다(대하24:4-14).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은 후의 요아스는 너무나 급격히 달라진 모습을 보입니다. 그는 아마도 아달랴가 살아있을 때 그녀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유다 방백들이 와서 그에게 아첨하며 간하는 말을 듣고는(본문 17절) 하나님의 전을 버리고 다시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김으로써 그 죄로 말미암아 유다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들입니다(본문 18절).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보내셔서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고 선지자들이 경고하지만 듣지 않습니다(본문 19절). 그러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고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본문 20절) 했으나 오히려 무리가 왕의 명령을 따라 그를 성전 뜰 안에서 돌로 쳐죽였습니다(본문 21절). 

그는 돌을 맞으면서도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라고 말하며 죽었습니다(본문 22절). 요아스는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와 나라에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인 것입니다. 이런 배은망덕한 악행에 하나님의 중한 경책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일 주년 말에” 즉 농사 수확이 끝나고 건조한 계절이 시작되는 “봄”에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려고 올라와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러 백성 중에서 모든 방백들을 다 죽이고 노략한 물건을 다메섹 왕에게로 보낸 것입니다(본문 23절). 

아람 군대는 적은 무리로 왔지만 하나님께서 유다의 심히 큰 군대를 그들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이것은 유다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람 사람들을 들어 요아스를 징벌하신 것이라고 역대기 기자는 결론지은 것입니다(본문 24절). 요아스는 이 전쟁에서 크게 부상하을 당했고 적군이 그를 버리고 갔지만 그의 신하들이 그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을 죽인 데 대한 보복으로 그를 반역하여 그를 그의 침상에서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 여호람의 경우도 그랬던 것처럼 그를 왕들의 묘실에 장사하지도 않았습니다(본문 25절). 

여호람이 악하게 살고 부끄럽게 죽은 이후 그의 아들 아하시야와 그의 손자 요아스는 모두 적군이나 반역한 신하들에 의해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또한 반역한 무리들 때문에 도망하였다가 역도들에 의해 살해를 당하게 됩니다. 여호람에 이어 왕위에 오른 삼대가 모두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하시겠다고 언약하신 다윗 왕조에 덮쳐온 이런 연속적 비극의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에 대해 역대기 기자가 제시하는 대답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20절을 봅니다: “이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또 24절을 봅니다: “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니 이는 유다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이와 같이 아람 사람들이 요아스를 징벌하였더라.” 하나님을 버린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다윗의 길을 행하지 않고 아합의 집안의 길을 행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 길은 패망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일본제국에 의해 강제적이고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한일병합조약이 공포된지 꼭 1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공식적으로 조선왕조가 역사에서 사라진 날입니다. 100년 전 우리 민족에게 영원히 씻을 수 없을 굴욕적인 상처를 남긴 국치일이고 패망의 날입니다. 그로부터 35년간 우리는 일본제국의 억압과 수탈과 민족말살정책의 희생이 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65년 전 광복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남과 북으로 나뉘었습니다. 

나뉜 지 5년만에 우리끼리 3년간 처절하게 전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한반도가 폐허가 됐습니다. 남북이 다시 나뉜 채 전쟁은 멎었고 반세기가 좀 더 지나는 동안 남과 북의 상황은 너무나 판이하게 변했습니다. 한때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부르던 평양은 김일성 우상숭배의 도성이 되었습니다. 평양대부흥운동의 진원지였던 그곳이 하나님을 버리고 주체사상의 아성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곧 패망의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북한은 지구상의 가장 비참한 생지옥의 땅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한편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60년대만 해도 북한보다 못 살던 나라라고 했습니다. 75년에 유학 갔을 때만 해도 한국이란 나라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88년에 올림픽을 서울에서 유치하고서야 비로소 세계 속에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불과 이십여 년 사이에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로 비약했습니까?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나라” 순위에서 전체 100개 나라 가운데 우리나라가 15위에 올랐습니다. 

이 잡지는 “삶의 질”, “경제의 역동성”, “교육수준”, “국민건강”, “정치환경” 등 5개 부문의 평가를 실시한 결과를 종합했는데 한국이 총점에서 15위를 한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우리보다 앞선 나라는 9위의 일본뿐입니다. 세계최강이라는 나라 미국이 11위이고, 유럽의 선진대국 독일이 12위이며, 영국이 14위, 프랑스가 16위인데 우리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15위를 차지한 것입니다. “교육수준”에서는 핀란드에 이어 2위이고, “경제의 역동성”에서는 싱가포르, 미국에 이어 3위입니다. 지난 40년간 1인당 GDP 상승률이 4위이며 인터넷 보급률은 세계 1위입니다. 

머리 좋고 공부 잘하기도 세계 최상위권으로 나타났습니다. 그토록 짧은 세월에 이렇게 눈부시게, 어지러울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나라가 또 있는 줄 아십니까? 없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입니까? 최근 독일의 유명 자동차 회사 포크스바겐그룹의 회장은 인터뷰 기사에서 말하기를 “지난해 경제위기 속에 성장을 이룬 자동차회사는 단 2곳뿐이었다. 폴크스바겐과 현대자동차다. ... 현대차는 우리의 매우 심각한 경쟁자다. ... 한국자동차회사를 가장 주목할 만한 라이벌로 보고 있다. ... 우리의 경쟁자는 도요타가 아니라 현대차다.”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이었습니까? 

우리는 한국의 이 비약적인 경제, 과학, 기술의 발전과 함께 평행선을 이룬 또 하나의 성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성장입니다. 한국의 경제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있을 때 교회가 폭발적 성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분명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이 나라가 발전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하려는 것입니다. 문제 많은 교회들도 있고 신자답지 않은 신자들도 많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이 나라를 이토록 복되게 하셨다고 믿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남과 북의 극명한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버린 북쪽이고 하나님을 붙잡고 몸부림치는 남쪽이라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세계 최빈국 북한과 세계 최고의 나라 15위 남한을 가른 결정적 요인이 아니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다 바라는 민족의 흥왕이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은 명약관화한 일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북한이 죽기 살기로 중국에 매달리고 있는 것을 보며 정말 딱한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 매달리면 다 해결될 터인데 엉뚱한 데 목을 매고 있으니 참 불쌍한 노릇입니다. 그들이 사는 길은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밖에 없음을 그들이 빨리 깨닫게 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남과 북이 하나님 안에서 함께 민족의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기도합시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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