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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작은 자들아, 서로 사랑하라 (요 13: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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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자들아, 서로 사랑하라 (요 13:31-38)  
 
 
1. 제가 잘 아는 모 목사님은 몇 개월 전에 담도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척추 여기 저기에 또 다른 암 덩어리가 발견되었습니다. 척추 부분에는 수술도 할 수 없습니다. 그 목사님은 성격이 아주 쾌활하고, 시간 있으면 테니스 치고, 등산합니다. 그런데, 수술 후 만나보니 몸이 많이 수척해졌습니다. 그 좋아하던 테니스, 등산 아예 못합니다. 그렇게 건강하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이렇게 약해지다니, 사람은 참 약한 존재이구나 하는 점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2. 이제 예수님은 얼마 안 있으면 십자가를 져야 하는데, 3년간 동고동락하던 제자들을 버려두고 세상을 떠나실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아직도 제자들은 신앙적으로 연약한 자들이었습니다. 
33절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마치 부모가 어린 자녀들에게 하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작은 자’ 라고 한 것은 제자들의 믿음이 연약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날이 다가오는데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유대의 왕이 될 것을 기대하면서 서로 영의정, 좌의정 하겠다고 논쟁을 벌이곤 했습니다. 
‘이런 답답한 자들, 쯧쯧’ 
그 뿐입니까? 예수님의 신망이 두터웠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은 30에 스승을 팔아 넘기려고 만찬 자리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하나님 앞에 앉아 있는 우리 자신을 찬찬히 보면, 우리 역시 작은 자들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들 앞에서는 큰 소리 칠지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많이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일본의 오쿠다 히데오가 쓴 소설 <공중 그네>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뾰족한 물건만 보면 오금을 못 펴는 야쿠자 중간 보스가 있습니다. 바늘, 주사기, 심지어 자기 책상의 뾰족한 모서리까지 보기만 하면 온 몸에 땀이 나고 가슴이 뛰고 힘이 쭉 빠지는 것입니다. 선단공포증이란 정신 질환입니다. 세상에 무서울 것 없는 야쿠자, 죽는 것도 겁나지 않는 이 야쿠자 중간 보스가 뾰족한 물건만 보면 이렇게 죽을 지경이니 누가 들으면 웃을 일입니다. 그는 이것이 정신 질환을 알고 마지막 부분에 가서 자기 부인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조폭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야. 모두들 약한 부분이 있으니까 오히려 죽어라 뻗대는 거지.”
(오쿠다 히데오, 공중그네, p.65)

3. 우리 모두 주님 보시기에 작은 자들입니다.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런 “작은 자들”을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31절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만찬장을 박차고 나간 후에,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밤에 유다는 스승을 팔아넘기는데 말입니다. 이제부터 온갖 수치와 모욕, 고통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데.... 주님은 영광을 받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난의 시작이 곧 영광의 시작입니다.
주님은 고난을 영광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과거형을 쓰고 있습니다. 이미 완전하게, 더 이상 부족함없이 영광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앞으로 부활의 영광을 받을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 자체가 영광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죽음으로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십자가, 
내가 고생함으로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는 십자가, 이것은 영광입니다. 
주님은 아무에게나 십자가를 지우지 않습니다. 
감당할 믿음이 되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을 구원할 하나님의 도구가 될만한 사람에게 지웁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 영광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런 영광을 얻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4.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작은 자들입니다. 아직 믿음이 연약합니다. 
작은 자들이 어떻게 십자가를 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께서 작은 자들에게 주신 말씀이 34절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작은 자들끼리 서로 사랑해야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곧 세상을 떠나시면 구심점 없는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 고난의 때를 감당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새 계명”이라고 하셨습니까?
레위기 19장에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이미 구약에 있는 옛 계명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방적으로, 혼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 이것은 새 계명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서로 기대라, 서로 버팀목이 되어주라, 서로 협력하라는 뜻입니다. 
“나도 연약한 사람입니다. 나도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도 당신에게 기대고 싶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상대방의 사랑을 기꺼이 받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또, “내 품 안에 들어오시오. 내게 기대시오. 나도 당신에게 작은 도움이 되어 주리다” 라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혼자는 쉬 넘어집니다. 혼자는 쉬 유혹에 빠집니다. 혼자는 쉬 낙심합니다. 
함께 이겨내야 합니다. 함께 헤쳐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까지 
서로 격려하며, 칭찬하며, 서로 위로해주며, 서로 기도해주며 함께 달려가는 것입니다. 
옆의 분들과 인사합시다. <함께 합시다.> <함께 갑시다.> <함께 이겨냅시다.>

5.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랑할까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예수님처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요 13:1 “예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자기를 배신하고 팔아넘기는 가룟 유다까지 품으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바로 이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사랑하라, 배신자까지 사랑하라,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 
신앙이 성장할수록 사랑의 품이 넓어집니다. 31에서 32, 35, 36으로 허리 사이즈만 늘어가는 게 아니라, 우리의 가슴에 사랑의 품이 더 넓어지기를 원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도록,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품을 수 있도록, 주여, 사랑의 품을 넓혀주옵소서. 

그 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과 함께 생활했던 베드로, 누구보다 열정이 넘쳐났던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주님,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는 머리보다 가슴이 앞선 사람입니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하기보다 가슴에 뛰는 열정으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 마음이 진실한 것을...
그러나, 그의 마음과 달리 믿음은 여전히 연약하여 작은 자라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현재의 약함을 인정하시고 용납하셨습니다. ‘왜 그 정도 밖에 안 되느냐’ 고 질타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은 못 하지만, 나중에는 할 것이라고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베드로의 현재 있는 모습 그대로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제가 서울에서 목회할 때, 저를 너무나 사랑하신 남자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지체장애인이셨지만, 교회의 일에 열심을 내셨고, 그래서 남선교회 회장이 되셨습니다. 저를 너무 사랑하셨지만, 언젠가 시험에 들더니 저를 미워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신앙의 ABC부터 가르쳐 세례를 주고 집사 직분까지 받고 교회의 지도자가 되도록 말씀으로 가르쳐드렸는데, 저를 미워하니 왜 그런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도 속으로 그분을 미워했습니다. “내가 뭘 잘못 했다고....” 후에는 우리교회에 출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이곳으로 옮기고 나서 수년의 세월이 지난 후 그 집사님께서 말기암환자로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그분을 신앙으로 잘 인도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어서 그분을 만나러 인천으로 올라갔습니다. 집사님은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얼마나 반갑게 저를 껴안고 맞아주시는데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집사님은 비록 저와 떠나 있었지만, 신앙생활을 잘 하고 계셨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나서 집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날 목사님을 힘들게 했던 것이 참으로 죄송합니다. 다 용서해주십시오. 목사님 계실 때, 너무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전보다 훨씬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아하, 그래서 주님께서 끝까지 사랑하라고 하셨구나... 현재는 나를 미워해도 후에는 나를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끝까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6. 작은 자들아, 서로 사랑하라. 
여러분, 우리는 작은 자들입니다.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부족한 사람들끼리 서로 기대고, 서로 협력하고, 서로 위하여 기도해줍시다. 
지금은 내 속을 썩이더라도, 나중에는 나를 기쁘게 해주리라고 생각합시다. 
지금은 믿음이 약해도, 나중에는 교회의 훌륭한 일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시다. 
지금은 기도 별로 못해도, 앞으로 기도 많이 할 것입니다. 
지금은 전도하기 힘들어해도, 나중에는 언제 어디서나 전도하는 전도자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용납하고 사랑하는 것,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런 주님의 사랑이 넘치는 우리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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